설교자료/고린도서

[고전1;26] 자랑은 주님 안에서 하라

'코이네' 2016. 4. 10. 00:26

 

주 안에서 자랑하라!

성 경: 고전1:26-31

 

 

<서론>

교회 안에서 학식과 재산을 과시하며 직책을 자랑하는 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밖에 없습니다. 교회는 외적인 조건을 자랑하는 마당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찬양하는 자리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은혜의 복음 보다도 인간의 자랑이 앞서 있었던 것입니다. 이같은 인간의 자랑이 마침내 파당과 분열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파당과 자기 당파 자랑을 무색케만들 수 있는 하나님께서 어떻게하여 성도를 부르셨는가?를 그 배경을 적나라하게 파헤쳐 보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인간적인 자랑이 얼마나 덧없는 것이며, 어리석은 일인가?를 깨닫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아가진정한 자랑이란? 무었을 어떻게 하는것인 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1.본래의 나의 모습 -- 보잘것 없고 천한 지위(26절)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대부분 지혜가 없었고 능하지도 못했으며 문벌도 좋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 26절에서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아니하도다."라고 말하므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신분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그들을 얕잡아 보거나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적나라한 본래의 모습을 밝힘으로써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얼마나 영화롭게 하셨는가를 깨닫게 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구성원들은 당시 여러 교회들(행4:13)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천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물론 회당장 그리스보(행18:8)같은 이도 있었고, 고린도 성의 재무를 보던 에라스도(롬16:23) 같은 이도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귀족 계층의 사람과 상류 계층의 사람이 얼마만큼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많지 아니하며.."(26절) 하는 말씀에서 나타나듯 그 숫자가 많지 않았던 것입니다. 전체 교인 숫자에 비하여 극히 미미한 숫자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당시 고린도시에는 노예수가 상당수에 이르렀습니다. 70만명의 인구 중에서 약 3분의 2에 이르는 숫자가 노예였습니다. 아마도 고린도 교회는 이 노예들이많이 포함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고전7:21) 이들은 노예들은 당시 혼재했던 많은 우상숭배에 깊히 물들어 있었고 한결같이 부도덕하고 천박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들의 지위나 생활을 탓하기 이전에 오히려 악마의 도성과도 같은 고린도에 교회가 들어섰다는 사실이 하나의 놀라운 기적이요,은혜요, 축복이었습니다. 그것은 불의한 세계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2.성도로 부름 받은 이후의 나의 모습 -- 영광스러운 지위(27-29절)

 

복음의 능력은 아무리 천하고 악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변화시킵니다. 천하디 천한 노예도 복음의 능력으로 귀하게 바뀝니다. 무식하던 사람도 복음의 능력으로 지혜롭게 변합니다. 약하고 힘없는 자들이 복음의 능력으로 강하고 담대한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세상적으로 지혜있고 가진 것있고 권세도 휘두르고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보실때에는 그 모든 것이 미련련하고 약하고 천하게 보일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도로 부름받기 전 세상에서의 우리의 실상이 어떠했는 지를 27-28절에서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변화시켜 주셨는 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세상의 미련한 나를 택하사 지혜롭게 변화시켜 주셨습니다.(27절)

 

미련하다는 것은 무식하고 가치없음을 뜻합니다.무식하고 가치없는 우리들을 택하여 주신것 만으로도 감사한데 거기에다 하나님의 지혜까지 선물로주신 것입니다. 세상에 지혜를 말하는 철학자들이 있으나, 그들은 자신의 능력과 경험으로 지혜를 터득하여 알아낸 자들입니다. 결국, 철학자들의 지혜는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며, 자기자신을 믿는 지혜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인간의 이성과 머리에서 나온 지혜가 하나님의 지혜로 무장된 성도들 앞에서는 부끄러움을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신을 믿는 지혜와 하나님을 믿는 지혜는 근본적으로 비교되어질가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지혜자들이 볼때에 성도들이 미련하게 보일지 모르나 성도들 속에는 하나님께서 함께하는 지혜가 있으므로 세상의 지혜와는 비교도 할 수없는 큰 지혜가 있는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나같이 "세상에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세상의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변화와 축복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둘째, 세상에서 약한 나를 택하사 강하게 변화시켜 주셨습니다.(27절)

 

여기서 약한 자들이란? 육체적으로 병들고 나약하며 정신적으로 허약하며 부적절한 자를 말합니다. 세상에서 강한 자들은 자신을 의지합니다. 그러나,약한 자들은 약한 만큼 강한 자들에게 의존하려고 합니다. 왜냐면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 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나약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세상에서 강하다고 하는 자들은 때때로 자신의 나약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러한 나약함을 감추기 위한 허세로 강하려 애쓸 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강한 자가 되는길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길 뿐입니다. 우리를 성도로 부르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나약함을 거두어 가시고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강하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강력한 사랑의 줄이 우리를 붙들고 있는 한 결코 두려워하거나 나약해 지지 않는 강하고 담대함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세상에서 허세 부리며 강하다고 스스로 큰소리 치는 자들을 놀라게 만들며, 부끄럽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바로 나약했던 나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것에 감사치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너무도 많은 변화의 은총을 입은 것입니다.

 

셋째, 세상에서 천하고 멸시 받으며 가난한 우리를 택하사 존귀와 영광과 부요의 축복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보잘것 없는 우리들을 선택하사 고귀한 인격체로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이 된 것입니다. 이와같은 변화는 기독교만이 일으킬 수 있는 변화요,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을 인간적인 외모나 구비조건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존귀한 자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3.세상것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 -- 아무 가치도 부여하지않으심<버림>(28)

 

하나님의 인간을 평가하는 방법은 사람과 다릅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고 평가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지혜롭게 여기고, 존귀하게 여기고, 강하게 여기는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폐하신다고 하였습니다.(27-28절) 세상의 지혜, 권세, 부귀는 인간적인 눈으로 볼때에 아름답습니다. 인간들은 모두 그것을 흠모합니다. 그러나, 본문 27-28절에서는 그것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폐하시고 버리신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세상 것들에 대하여 아무런 가치도 부여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게 하실까요? 거기에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사람들 마음속에 들어가 그 세상적인 지혜와 권세와 부귀로 하나님을 멸시하고 대적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사탄은 지금도 세상의 지혜와 권세와 부귀의 능력으로 성도들을 유혹하여 믿음을 거두어 가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를 넘어뜨리는 세상의 지혜와 권세와 부귀를 하나님께서는 비웃으시고(시2:4) 꺽어버리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세상의 미련하고 약하고 멸시받는 자들을 통해서 그렇게 하신다고 하십니다.(삿11:1-11삼상17:32-58) 여호와 하나님 경외함이 없는 세상적인 것들은 이처럼 허망한 것임을 알아야합니다.(잠1:7)

 

4.자랑할 것만 자랑하라!(29-31절)

 

1)자랑치 말아야 할것 -- 인간 육체의 일들(29절)

 

본문 29절에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전하고자 하는 뜻을 분명히 하였습니다.즉,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만한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변화를 가져온 것은 자신의 노력이나 공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철저히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능력이 그들의 신분과 삶의 모습을 변화시켜 놓았습니다. 또한, 세상의 권세자나 지혜자나 부요한자 역시 자랑할 것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들이 현재는 부귀 영화를 누리고 자랑하지만 '영원'에 견주어 볼때에 그것은 찰나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약4:1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생명이 무었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또한, 벧전1:24에서는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로 부터 우리는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을 미워하십니다. 교만한 자를 패망케 하십니다. 교만한 자를 낮추시지만(잠16:18), 겸손한자는 높이시고 존귀하게 하십니다.(잠18:12)

 

2)진정으로 자랑할 것 -- 주 안에 있는 것들(30-31절)

 

그러므로 인생이 진정으로 지랑하고 높일 것은 주 안에서 받은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은 온갖 좋은 것과 필요한 것을 받았습니다.그러므로,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의 의미있던 세상의 부귀 영화 권세에 대한 자랑을 버려야 합니다.

이미 성도는 필요한 모든 것들을 주님께로부터 받아 소유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왜? 자꾸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경쟁하는가? 하는 사실을 깊이 숙고해 보아야 합니다.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간주되는 세상 것으로 되돌아가 우쭐대고 자랑하고 낙심하는 마음은 우리 성도의 본래 자세가 아닙니다. 오직,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나에게 이루어 주신 것들을 자랑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의로움이 되시며(고후5:21), 그리스도께서 나의 지혜가 되시며(골2:3), 그리스도께서 나의 거룩함이 되시며(요17:19),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속함이 되심을(롬3:24) 자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하잘것 없이 천한 나를 억만 죄악 가운데서 구원해 주셨으니 이 은혜와 이 사랑을 어찌 다 말로 표현 할 수 았으리요? 받은 바 은혜와 구원의 축복을 생각하면 세상의 부귀 영화 권세는 한낱 먼지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주 안에서 누리는 은혜와 축복만을 자랑하고 전파하십시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