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에 동참하자
성경본문: 출 12:8-11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오늘 종려주일에 이스라엘의 유월절을 생각해 보며 유월절에 기억되는 어린양을 통한 교훈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애굽 천지를 죽음으로 몰아 넣었던 천사가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발라진 어린양의 피를 보고 이스라엘 백성의 집은 넘어가게 되는, 즉 유월하여 죽음이 지나갔던 것을 보게 됩니다. 언제나 어린양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애굽의 장자를 치던 밤에 잡아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던 어린양,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속죄제로 드려졌던 제사때의 어린양, 세례요한이 지칭했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로다" 했던 그 어린양, 계시록에서 밝히고 있는 어린양의 길 등 이 모든 것이 다 주 예수님을 지칭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유월절에 희생되었던 어린양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의 장자는 생명을 건지게 되었으므로, 사실 모든 백성의 생명이 건짐 받은 것과 마찬가지인데, 우리가 오늘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어린양을 문에 발랐던 이스라엘 각 가정은 그 밤은 어떻게 보내었는가 하는 것입니다.어린양의 피를 문에 발라놓고 아랫목에 드러누워서 그 밤을 보냈을까요?오늘 본문의 말씀도 그들에게 어떻게 그 밤을 보낼 것인가를 명확히 밝혀주고 있습니다.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려졌던 그 밤의 명령은 어린양의 피를 의지했던 그들에게 어떻게 그 피를 의지하여야 했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믿는 우리들의 자세가 어떠해야 될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죽음의 천사가 넘어가도록 그 밤에 피가 발라진 방안에서 그들이 준수했던 내용들은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섬겨야 되는 것이며 따라야 될 것인가를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먹으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그 고기는 물론 어린양을 말하고 있습니다.
불에 구워먹으라고 하는 것은 성도들의 연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뜨거운 불에 굽는 연단 속에서 더러운 것들은 완전히 태워지는 것이며, 깨끗게 되는 것입니다. 불에 구워지는 고기처럼 성도가 걸어가는 길은 연단과 고통이 많이 따르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이 그러한 길을 걸어갔기 때문입니다. 연단 속에서, 뜨거운 불 가운데서 정금같이 나오는 역사가 기독교의 진리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존 브로우스라는 사람이 잉글랜드에 나이팅게일이라는 새를 사냥하기 위해 깊은 밤에 숲 속에 들어갔습니다. 숲 속에서는 휘파람새의 지저귀는 소리가 요란히 들려왔습니다. 하나의 돌멩이를 던지면 잠시 조용하여 졌다가 이내 요란스럽게 지저귀는 것입니다. 그의 사냥에 지장을 받지 않으려고 계속적으로 돌멩이를 던져보지만 그들의 소리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휘파람새는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지저귀기 시작하는 새인 것입니다. 그들은 밤의 음울함과 어두움을 극복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침침한 밤은 휘파람새로 하여금 아름다운 목소리를 갖게 만든 셈이지요.
음식 가운데서도 불에 구운 고기가 가장 구수한 맛을 내며 좋은 맛을 내는 것 같습니다. 통으로 굽는 각종 바베큐(Barbecue)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멧돼지 바베큐, 통닭 바베큐 등등 뛰어난 맛을 내는 것은 뜨거운 불에 구워진 고기의 맛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그의 그 위대한 신앙고백이요, 가르침은 복음 전파를 위해 어디든 갈 수 있었던 자유로운 발이었을때가 아닌 것입니다. 쓸쓸하고 자유가 빼앗긴 고통의 감옥에서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밤에 어린양을 불에 구워 먹으라는 말씀은 실로 진리의 길에서 고난과 연단을 이기며 걸어가야 되는 그리스도인들의 운명을 보게 되는 말인 것입니다.판소리를 하는 명창들이 그 목에서 몇 번씩이나 피를 토해내고야 원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둘째는 무교병과 아울러 먹으라 하였습니다.
무교병은 누룩을 넣지 않은 음식입니다. 무교병은 순수하고 깨끗한 상태를 가르키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은 물질을 사랑하는 것이었고, 세상에서 인정 받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에는 이 누룩이 들어가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무교병이 아닌 누룩이 들어간 유교병을 먹게 되면 그는 그 백성 가운데서 끊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돌이켜 어린아이가 되어 깨끗하고 순수한 신앙생활을 하여 무교병을 먹는 생활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비록 맛이 없고 재미없는 것 같지만 말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길 아니겠습니까? 세상의 누룩을 취하면서 우리는 주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버렸던 사도 바울의 정신이 바로 무교병을 먹었던 정신인데 어찌할 것입니까! 무교병을 먹기엔 너무도 유교병에 익숙한 입은 아닌가요! 우리의 그러한 입이 과연 무교병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요? 유교병의 달콤하고 향긋한 냄새가 여지없이 우리의 코를 자극해 여전히 세상을 취하며, 그 가운데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어린양은 무교병과 함께 먹어야 합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주님의 말씀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쓴나물과 함께 먹으라는 것이지요.
당시의 쓴나물은 「피크리스」라는 야생 양상치와 「세리스」와 「키코리온」이라는 꽃상치가 있었습니다. 저는 어릴적 어머님이 씀바귀와 고들배기를 드시면서 참 맛있다고 하시는데 어린 입맛으로는 너무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성숙한 신앙일수록 쓴나물과 같은 고난이라 할지라도 감당하며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린양을 쓴나물과 함께 먹어야 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항상 낮은 곳과 섬기는 곳에 있어야 함을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희생의 자리는 쓴나물을 먹는 것과 같은 고통이 따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쓴나물을 먹는 것과 같은 고난과 희생을 감수하는 길을 걷지 못한다면 우리의 앞길에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어린양을 쓴나물과 아울러 먹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다면, 그 밤에 어린양의 피를 의지하여 지냈던 백성들이라 할지라도 그 백성들 중에서 끊쳐질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닙니까? 최후의 심판 장면에서 우편 양의 무리들에게 주님은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들의 삶이 참으로 희생적이었고 항상 관심을 낮은 곳에 두었음을 칭찬하시며 영원한 영생의 축복을 허락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나그네 된 자를, 헐벗은 자를, 굶주린 자를, 갇힌 자를, 병든 자를 돌아보기에 충분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들의 마음을 낮은 곳에 두고 있었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열린 눈과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왼편 염소의 무리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결코 낮은 곳에 관심을 갖지 않았으며, 그곳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그들의 구세주로 인정하면서도 그 주님이 그토록 간절하게 쓴나물과 아울러 먹으라는 진리의 말씀을 외면한 채 그들의 관심과 목표를 화려한 곳과 세상의 부와 명예에 두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더해지는 물질이나 명예를 주님의 축복이라 생각하며 사람들 앞에서 간증도 했을 것이고, 주님의 영광을 나타낸 듯 하였을 것입니다.하지만 자신의 그 재물과 명예를 헐어서 지금 도움을 필요로 하는 어떠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지 않았다면, 그의 감정에 그토록 감사가 있었고, 축복을 손에 받아 쥔 채 눈물 흘렸던 그 기도가 그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의 그러한 어린아이와 같고 감상적인 신앙이 마지막 쓴나물을 먹으며 주님을 따랐던 의인들의 영광과 비교될 때 그의 가치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 허무함과 퇴색함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라는 주님의 명령 속에서 한없이 떨게 될 것이며, 눈물짓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 계셨던 어린양 예수께서 섬기고 희생하여 한알의 밀알이 썩어지듯 하였던 것처럼, 구원의 영광을 영원히 빛낼 사람들이란 "그 어린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르던 자들(계14:14)이란 사실을 기억하십시요. 또한 주님은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요12:26)하였지 않았습니까? 다시금 부탁합니다. 그 헛되고 헛되며, 탐욕스럽고, 교만하기 짝이 없는 세상길에서 주님의 길, 즉 낮은 곳에 마음을 두어 죄인과 세리와 창기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병든자를 치료하셨으며 강도들에게 매를 맞고 산 기슭 한 모퉁이에서 신음하고 있는 불쌍한 사람이 "네 이웃"이라고 가르쳐 주셨던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이제부터 실천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넷째는 날로나 삶아서 먹지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날(生)로 바치는 것은 우상종교인 이방인들이 가졌던 풍습이었습니다. 즉, 당시의 디오니소스, 바커스를 숭배했던 자들의 제사 풍습이었습니다.물에 삶아서 드리는 것도 역시 애굽의 식사 풍습이었던 것입니다.주님은 이렇게 우리가 썩어져 가는 옛 구습이나 세상 풍속을 따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세상 사람들이 자랑하고 추구하는 것을 성도들도 함께 춤을 추는것 아닙니까? 이를테면 누가 더 많은 재물을 가졌는가, 누가 더 성공했는가 이러한 사고방식은 좋은 차, 좋은 집으로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키려 하고 있으며, 몸에 걸친 의복으로 자신을 과시하려는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날로 먹고 삶아서 먹는 이방인들처럼 그리스도를 이해할 것입니까? 불에 구워 먹으라는 것이 주님 말씀 아니었던가요? 주님의 삶의 방식인 청빈과 성결을 추구하도록 하십시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깃들일 곳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던 주님의 말씀이 항상 가슴 속 깊은 곳까지 메아리 칠 수 있도록 하십시오.
다섯째는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까지 불에 구워 먹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과 사상을 온전히 취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 있는 축복이나, 성공이나, 치료나, 희생이나, 사랑의 세계나 이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 있어야 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영광의 말씀과 고난의 말씀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취해야 합니다. 하지만 죽음이 있고 부활의 영광이 있듯이 우리의 관심과 촛점을 사랑의 정신과 희생과 섬김에 두도록 합시다. 우리가 장차 받게 될 영광은 지금의 고난과는 족히 비교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섯번째는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침까지 남겨두면 짐승이 먹을 수 있고 벌레가 생기거나 거룩한 것이 부패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옥토밭에 떨어진 씨앗과 같이 온전히 취해야 됩니다. 남겨진 말씀, 잘 받아들이지 않은 말씀은 부패하게 되고 악취가 될 뿐입니다. 그 말씀이 오히려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
일곱번째는 뼈를 꺽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9장 36절에서는 「"그 뼈가 하나도 꺽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하였는데, 좌우에 달렸던 두 강도의 다리는 꺽이었지만 주님의 다리는 꺽이지 아니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진리가 꺽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삶 속에서도 진리가 꺽이지 아니하도록 강직하고 진실한 삶이 요구됩니다.
"예"나 "아니요" 이 둘 중에서 지나는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이 주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약함과 무능함으로 주님의 말씀이 꺽여지는, 다시 말하면 부인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천지가 없어진다 할지라도 사라지지 않는 말씀인 것이며, 떨어지지 않는 말씀인 것입니다.
일곱번째는 이 어린양을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잘 이해할 수 있을 줄 압니다. 주님을 섬기고 따라야 되는 그리스도인들의 정신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깨어있어야 할 것과 근신해야 될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악한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자를 찾고 있다(벧전5:8)는 말씀 그대로 우리의 갈길은 긴박한 것이고, 사단의 계략과 공격은 쉴새없이 날아들고 있는 것입니다. 항상 침노하는 자세를 잃지 마십시요.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마지막으로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칠 일 동안은 누룩을 너희 집에 있지 않게 하라. 무릇 유교물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 무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쳐지리니" 또한 "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 것이니" 하신 말씀입니다.
by 코이네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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