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창세기

[창13;14] 현실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라

'코이네' 2015. 11. 22. 00:38

현실 속에서 하늘을 바라봄

14절에서 배우는 사실이 두 가지가 더 있습니다.
첫번째는 ‘너는 눈을 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찾아 오셨을 때 그에게 비전과 믿음과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시는 첫번째 이야기로 ‘네 눈을 들라’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땅을 보며 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하여 가장 먼저 고개를 들고 눈을 들어 땅을 보지 말고 하늘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현실과 환경을 보면 절망하고 좌절하지만,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보면 자신이 없어지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눈을 들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그곳에는 놀라운 환상과 비전과 하나님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너 있는 곳에서’라는 말씀입니다.

당신이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축복이라고 하는 것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땅에서 솟아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현실을 싫어합니다. 고통스럽고 질척거리고 따분한 이 현실을 피해 어딘가 가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당신이 있는 곳에서 기적이 시작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병이어가 기적의 시작이 된 것처럼 내 모습 이대로 내 환경 이대로 고통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나의 현실적인 상황 바로 그 자리가 기적의 시작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무엇을 보느냐가 비전입니다. 어떤 총각이 한 처녀를 계속 보고 있으면 결국 어느날부터 그 여인과 함께 살게 됩니다. 보고 있으면 그것이 비전이 됩니다. ‘네가 보는 땅을 내가 주리라’
눈을 감고 있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늘을 보고 하나님을 보십시오. 이 축복은 아브람에게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진정으로 축복받은 사람은 자신의 세대보다 그 다음 세대에서 나타납니다. ‘재벌 30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돈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영원한 것입니다. 진정한 축복은 여러대를 통해 계속 이어집니다. 믿음은 이 새로운 세계를 보는 것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이 말은 하나님의 축복이 무한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셀 수 없으며 상상할 수 없으며 크기를 측량할 수 없습니다. 세상이 주는 축복은 너무나 뻔한 것입니다. 앞을 보아도 그렇고 뒤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측량할 길이 없을 정도로 무한하십니다.

17절입니다.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얼굴을 들라’, ‘보라’에 이어 아브람이 받는 세번째 축복의 메시지는 ‘일어나 걸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며 누리는 축복의 조건은 고개를 들고 비전을 보고 그것을 향하여 일어나 걸으며 땅을 밟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축복을 거저 주지 않으십니다.


그는 보았고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일어나 종과 횡으로 걷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의 미래는 아무 누구도 가본 일이 없습니다. 미래는 여러분의 것입니다. 믿음있는 사람의 것입니다. 미래는 갖는 사람의 것입니다. 축복도 갖는 사람의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우즈베키스탄의 땅을 밟기 바랍니다. 아프리카의 땅을 밟기 바랍니다.
어떤 여자는 시집가서 애를 낳고 기저귀를 빨면서도 ‘나는 내일의 모세의 기저귀를 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은 기저귀를 빨고 있지만, 그저 밥하고 빨래하며 살고 있지만 그녀는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땀흘려 번 돈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돈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믿음은 새로운 세계를 보게하며 새로운 마음을 갖게 합니다. 하나님만큼 마음을 갖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비전과 꿈을 소유하게 해주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을 가졌다 할지라도 현실은 항상 초라하고 배고프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18절입니다.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아브람이 그 모든 비전을 보았지만 현실은 아직 ‘상수리 수풀’이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변한 사람이었습니다. 태양을 본 사람은 촛불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이미 그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고 듣고 맛본 사람이기에 현실은 외롭고 고독하고 가난할지라도 그의 마음에는 이 하나님의 말씀, 미지의 세계, 축복의 세계가 불타 오르는 것입니다.


그런 아브람이 무엇을 합니까?
‘단’을 쌓았습니다. 그는 고독하고 외롭고 성취감이 없는 현실에서 하나님께 예배하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예배하는 순간 믿음이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예배하는 가운데 상황이 변하고 기적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단을 쌓습니다.

이제 아브람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보통사람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말입니다. 갈등을 겪고 기근을 만나고 손해를 경험하면서 그는 점점 더 하나님과 가까이 동행하는 사람으로 변신해 가고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축복이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하용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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