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마태복음

[마태복음22장] 큰 계명에 대한 논쟁

'코이네' 2015. 9. 30. 19:07

큰 계명에 대한 논쟁

 

성경:마 22:34-46

 

 

예수님께서는 왜 이땅에 오셨을까요? 물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그것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 사랑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셔서 위로는 하나님을 마음과 뜻을 다해서 사랑하고,밑으로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바로 이러한 사랑을 실천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말입니다.우리가 이 시간에 살펴보려는 큰 계명에 대한 논쟁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아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1.당시 율법학자들의 분류법

 

유대인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율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전부 계산해 보니까 613가지의 율법이 나왔습니다.그러나 그들은 도저히 다 기억하고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그래서 그들은 이것을 조금 더 무거운 계명과 가벼운 계명으로 분류했습니다.사람의 몸에는 248가지의 지체가 있다고 합니다.이들은 기억하기 쉽게 우리 몸과 연결을 시켜서,성경에 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하라’고 한 248가지의 율법을 좀더 중요한 무거운 율법이라고 했습니다.그리고 이것보다 덜 중요한 율법이라 하여 ‘하지 말라’라고 부정적인 면으로 표현되어진 율법들을 전부 365가지를 찾아내었습니다.사실 율법은 ‘하라’와 ‘하지 말라’는 두 가지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그러나 호세아서 8장 12절에 “내가 저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저희가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도다”라고 했듯이 하나님의 법은 어느 것을 막론하고 귀중하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가 되면서 이 율법을 의식법과 도덕법으로 나누었습니다. 교회에는 번제,소제,화목제,속죄제,속건제 같은 5대 제사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 많은 의식들이 있습니다.그러나 이런 의식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완성이 되어졌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가 지킬 필요가 없다.왜냐하면 로마서 10장 4절에 분명히 말하기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고 했기 때문에 이 의식법은 이제 폐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그러나 도덕법,즉 살인하지 말라,간음하지 말라,도적질 하지 말라 등등의 모든 도덕법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인해서 끝난 것이 아니고 십계명과 연결이 된다고 보았습니다.구약의 613개의 율법 가운데 가장 핵심이 되는 율법이 바로 십계명입니다.그런데 이 십계명을 분석해 보면 하나님에 관한 계명(1-4계명),다시 말하면 종적인 대신(對神)관계를 어떻게 가져야 할 것이냐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과,이웃에 대한 계명(5-10계명),즉 인간관계를 어떻게 가져야 할 것이냐 하는 내용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으로 크게 나누어질 수 있습니다.예수님께서는 37절에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제1계명부터 제4계명까지를,그리고 39절에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제5계명에서부터 제10계명까지를 요약했습니다.

 

2.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

 

첫째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입니다.본문 37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여기서 마음이라는 것은 의지를 다하라는 것입니다.그리고 목숨을 다하라는 것은 내적인 생명을,생명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와 생명과 지식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런데 마가복음 12장 30절에 보면 “힘을 다하여”라는 한 가지가 더 나옵니다.힘을 다한다는 말은 육체적인 노력을 말하는 것입니다.우리는 마음과 목숨과 뜻뿐만 아니라 힘을 다하여 우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입니다.본문 39절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우리 이웃을 우리 몸과 같이 사랑하라,이 말씀은 레위기 19장 18절에서 인용되어진 구절입니다.그런데 여러분,정말 우리가 우리 이웃을 우리몸처럼 사랑할 수 있던가요? 내 몸은 바늘에 조금만 찔려도 따갑고 아파서 소리를 지르는데 옆에 있는 사람이 몽둥이로 얻어 맞아도 아프지를 않아요.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이웃을 우리 몸처럼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가능합니다.예를 들어서 설명하면 사랑하는 자녀가 아플 때 부모들은,특별히 어머니는 굉장히 괴로워합니다.아이가 아파서 끙끙 거릴 때 엄마가 차가운 수건을 바꿔 얹어주며 밤새도록 한잠을 못자고 간호하는 그 사랑의 모습,그게 바로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그 비결입니다.자녀의 아픔을 보는 어머니의 마음이 자기의 아픔 이상으로 아프고 안타까운 이유는 피를 나누었기 때문입니다.그러니까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은 피를 나눈 가족처럼,형제처럼 그렇게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3.사랑 실천의 방법과 결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우리의 이웃을 우리의 몸처럼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받고자 하는대로 주는 것입니다.“그러므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둘째로 보상을 바라지 않고 주는 것입니다.우리는 항상 무엇을 줄 때에 보상을 바랍니다.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눅 14:13,14) “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나의 백성 중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이거든 너는 그에게 채주같이 하지 말며 변리를 받지 말 것이며”(출 22:25) 셋째로 속이지 말고 주라는 것입니다.“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엡 4:25) 넷째로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뻐하라는 것입니다.“자기도 함께 갇힌 것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히 13:3)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롬 12:15)

 

그러면 이렇게 할 때에 어떤 결과가 옵니까? 한마디로 말해 하나님께 영광입니다.이말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첫째로 우리의 기도가 응답이 됩니다.여러분의 기도가 혹시 응답이 안되는 경우가 있습니까? 우리의 기도가 응답이 안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우리의 마음속에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다시 말하면 남을 용서해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사 58:6-12).둘째로 우리가 정말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게 될 때에 “주의 장막에 거하게 된다”(시 15:1-3)고 했습니다.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이 정말 사랑을 실천하게 되면,항상 주님이 우리와 동행을 하십니다.셋째로 예비된 나라을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누가 하나님 나라에 갑니까?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그런데 믿음의 가장 깊은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4.본문이 주는 교훈

 

첫째로 율법의 대강령은 사랑입니다.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했습니다(롬 13:8).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했습니다(롤 13:10).우리가 항상 사랑을 하게 되면 바로 그것이 613가지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모든 율법을 완성시키는 것입니다.왜냐하면 율법의 어느 하나도 사랑에 기초하지 아니하고는 온전히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이 사랑이 바로 율법의 완성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반드시 이웃에 대한 사랑과 봉사로 표현되어져야만 합니다.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쟁이 입니다(요일 3:16-18).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그런 자들은 우리 예수님이 재림하실때 엄청난 책망과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반드시 해야합니다.본문에 예수님께서 두 가지 계명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만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계명은 하나입니다.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하나입니다.

 

이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우리 성도들의 이웃은 누구입니까?

 

 그것은 불우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입니다.어떤 때는 우리의 원수가 바로 우리의 이웃이기도 합니다.로마서 12장 20절에 말하기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게 하라”고 했습니다.우리는 우리의 원수에게 조차 사랑을 베풀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어야 합니다.자녀는 부모를 닮습니다.사랑이신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도 사랑이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요일 3:16).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심으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신 그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하여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가장 큰 계명을 몸소 실천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