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14장] 시온산에 서신 어린양 / 김명혁목사

'코이네' 2015. 9. 17. 17:34

예수님은 누구신가(36)

 "시온산에 서신 어린양"

계14:1-5

 

"예수님은 누구신가?" 오늘 그 36번째 설교를 하겠습니다. 작년 4월 입당 예배를 드린 후부터 같은 주제를 가지고 너무 오래 설교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깊이 아는 것이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 설교를 했습니다. 앞으로 두세 번 더 같은 주제를 가지고 설교를 한 다음 다른 주제를 가지고 설교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1. 첫째 예수님은 어린양이십니다.

 

1절을 읽습니다.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예수님은 어린 양이십니다. 그것이 요한 계시록이 보여주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요한 계시록에 어린양이란 말이 27번 이상 나옵니다. 계시록 5장은 어린양을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섰는데"(5:6). "어린양이 나아 와서 책을 취하시니라"(5:7).

예수님을 어린양이라고 제일 먼저 부른 사람이 누구지요? 예,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이 요단강가에 나오시는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불렀습니다(요1:29). 메시야를 가리켜 끌려 가는 어린양이라고 제일 먼저 예언한 구약의 선지자가 누구지요? 예, 이사야였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메시야를 가리켜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양"과 같다(사53:7) 고 예언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양이십니다. 예수님이 어린양이란 말은 예수님이 우리 대신 속죄 양으로 죽으셨다는 말입니다. 베드로가 그 사실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너희가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1:18,19). 예수님은 우리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속죄양으로 죽으신 분이십니다. 천국에 계신 예수님이 어린양의 모습을 하고 계시는 이유는 구속함을 받은 모든 성도들이 그 사실을 영원토록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어린양이십니다. "어린양 예수"를 성가대가 한번 불러 주시기 바랍니다.

 

2. 둘째 예수님은 시온산에 서 계신 분입니다.

 

1절을 다시 읽습니다.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여기 시온산은 하나님이 계신 곳 즉 하늘에 있는 천성을 가리킵니다. 히12:22에 보면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이라고 했는데 여기 시온산은 하나님의 도성인 천성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시온산에 서 계시다는 말은 주님께서 천성에서 승리하신 당당한 모습을 나타내 보인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구원 받은 성도들을 향한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내 보인다는 말입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 갈 때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스데반이 보았다고 증언했습니다(행7:55). 예수님이 시온산에 서 계시다는 것은 승리하신 당당한 모습을 나타내 보이고 그리고 순교자들과 성도들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내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천국에서 스데반과 베드로와 막달라 마리아와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과 그리고 여기 계신 구속 받은 성도 여러들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가지고 서 계시는 분이십니다.

 

3. 셋째 예수님은 십사만 사천과 함께 서 계신 분이십니다.

 

1절을 다시 읽습니다.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십 사만 사천은 구속 받은 모든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십 사만 사천은 어린양과 함께 서 있고 어린양은 십 사만 사천과 함께 서 있습니다. 즉 주님은 성도들과 함께 서 계신 분입니다. 주님과 성도들과의 이별은 더 이상 없습니다. 성도들은 주님이 있는 곳에 있고 주님은 성도들이 있는 곳이 계십니다. 주님은 임마누엘 즉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와 동행하시는 분이십니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 나라"(495). 이제 예수님과 함께 서 있는 십 사만 사천의 성도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잠간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 십 사만 사천은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써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이 회개하고 예수 믿고 세례 받을 때 머리와 이마에 물 뿌림을 받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인침을 받습니다. 그 때 우리는 성령의 인침을 받습니다. 우리들의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 집니다.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진 사람들만이 천국에 들어 갑니다. 계13:7에는 그 이마에 짐승의 이름이 쓰여져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는데 그 사람들은 점쟁이와 무당을 찾아가서 그들의 지시를 따른 사람들입니다.

 

둘째 십 사만 사천은 큰 뇌성 같은 소리로 어린양의 새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구속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 그 은혜에 감격해서 뇌성 같은 큰 소리로 찬송을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큰 소리로 어린양의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들만이 천국에 들어 갑니다. 189장을 뇌성 같은 큰 소리로 불러 봅시다. 1절은 성가대 2절은 여자들 3절은 남자들 4절은 다같이 부릅시다.

 

셋째 십 사만 사천은 세속에 물들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세상주의에 더럽히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우상과 음란과 탐욕과 부정부패의 길을 따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여기 여자는 세상주의와 향락주의를 말합니다. 정절은 신앙의 절개를 말합니다.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세상주의에 빠지지 않은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갑니다.

 

넷째 십 사만 사천은 어린양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수가성으로 가자고 하면 수가성으로 가고 베다니로 가자고 하면 베다니로 가고 이른 새벽에 산으로 새벽기도에 가자고 하면 새벽기도에 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요10:4에 보면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아는 고로 목자를 따른다고 했습니다. 지금 세상에서 어린양의 지시를 따르는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갑니다.

 

다섯째 십 사만 사천은 세상에서 구속함을 받아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사람들입니다. 소속이 분명한 사람들입니다. 이중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기 거짓 말이 없다는 것은 이중성이 없다는 말입니다. 일편단심의 충성심과 신앙의 투명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베드로는 일편단심의 신앙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행4:19).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5:29).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첫째 예수님은 어린양이십니다. 우리 대신 속죄양으로 죽으신 분이십니다. 둘째 예수님은 시온산에 서 계신 분이십니다. 천국에 승리하신 모습으로 당당하게 서 계시면서 구속 받은 성도들을 바라보시는 분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십사만 사천과 함께 서 계신 분이십니다. 구속 받은 모든 성도들과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이 말씀을 주시는 목적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예수님을 바라보고 천국을 바라보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예수 중심 천국 중심으로 사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