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신명기

[신명기4장] 신자의 자랑 / 김창인 목사

'코이네' 2015. 7. 31. 23:08

신자의 자랑(신명기 4: 1-10)

 

본문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신자의 자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을 자랑한 내용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제가 이렇게 제목을 붙인 까닭은 본문을 아무리 읽고 묵상해 보아도 이 내용은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됨에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붙인 제목이 『신자의 자랑』, "신자의 자랑거리" 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랑거리가 다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돈이 좀 있으면 돈 자랑을 하고 좋은 집에 살면 집 자랑을 하고 좀 좋은 자리에 있으면 아래 사람들을 어찌나 홀대하는지 모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좀 배웠으면 배운 것 가지고 자랑, 외모가 잘났으면 외모 자랑, 자식이 잘되면 자식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을 합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것들이 우리의 자랑거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믿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히 자랑할 바가 따로 있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가 예수 믿기 전에는 얼마나 자랑할 것이 많았습니까? 그런데 예수를 알고 보니까 그런 것들이 다 헛된 것이라면서 자기는 예수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더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꼭 자랑할 것이 있다면 '나는 약하다, 나의 약한 것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 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우리 믿는 사람으로서는 어떤 것들을 자랑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I. 약속의 자랑(1-4절)

 

 

첫째, 생명의 약속(1절 상반절)

 

 

우리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배우는 것이 참 많이 있는데 아이들은 자기가 요구하는 것을 아버지가 해 준다고 약속하게 되면 그것이 얼마나 큰 자랑거리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아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러면 너희가 살 것이요…" 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너희가 광야에서 살아남을 것이요, 살아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에는 이것이 무슨 큰 자랑거리가 되겠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역사적인 배경을 알게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애굽에서 이끌어 내실 때 그들을 광야에서 40년 동안이나 빙빙 돌려놓으십니다. 곧 바로 가면 두 주간이면 갈 수 있는 길을 왜 40년 동안이나 돌게 하셨겠습니까?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 백성들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갈 자격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말씀을 듣는 이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요단강 가에 다다른 백성들입니다. 이들은 자기 부모들이 광야에서 헤매다가 너무나 허무하게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니 자기들도 이렇게 광야에서 의미 없이 방황하다가 죽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조상들과 하나님이 비록 약속을 하셨지만 조상들이 광야에 묻히는 것을 수 없이 보았던 이들에게는 살아서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불안해하고 초조해 하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은 틀림없이 살아서 너희 조상들이 그렇게 보고 싶어했던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이라는 말씀을 해주신 것입니다. 이 보장의 말씀을 들으니 그 기쁨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러면 역사적으로 이런 배경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살아서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갈 것이라는 약속이 그렇게 큰 자랑거리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은 우리가 이 땅 위에서는 죽는 것 같아도 하늘 나라에 가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영생을 우리들에게 약속으로 보여 주시는 교훈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하는 영생의 약속을 주신 이것이 바로 우리의 큰 자랑거리인 것은 하나님의 약속은 믿는 대로 받기 때문입니다.

 

 

둘째, 기업의 약속(1절 하반절)

 

 

1절 하반절에 "너희의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고 하셨습니다.

 

 

그 옛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의 후손으로 택한 백성, 곧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삼으셨는데 아브라함으로부터 모세가 지금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까지는 몇 백년의 역사인가 하면 600여 년이 지났습니다. 이 600여 년이 지나도록 이스라엘은 땅 한 평 없이 살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약속을 들었던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도 그리고 그의 손자인 야곱과 애굽으로 내려가 살았던 그 후손들은 430년을 보내다가 이제 애굽을 탈출하여 광야에서 40년을 헤매고 있지만 아직도 약속의 땅을 한 평도 얻지를 못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지금 여기 와서 이 말씀을 약속으로 받고 있는 이 백성들은 전부 광야에서 태어나 자라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한번도 보따리를 풀어놓고 살아보지 못했고, 편히 누어 잠을 잘 수가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장막을 치고 있다가 밤중이라고 떠나라면 떠나야 했습니다. 어디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불안한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생활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럴 때 너희들이 바로 이 요단강을 건너가게 되면 그렇게 기름지고 꿀과 젖이 흐르는 그 땅을 너희들에게 다 나눠주겠고 너희는 거기에 말뚝을 박고 장막을 치며 자자손손 살아갈 땅을 주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들은 사실 땅에 대해서는 뼈에 사무친 사람들인데 이들에게 자자손손 터를 닦고 살 땅을 주시겠다고 하니 얼마나 큰 자랑거리입니까? 이것이 기업의 자랑입니다.

 

 

그러면 또 이 사건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에게 사실 이 세상에서 땅 한 평이 문제입니까? 하늘 나라에 가서 영원히 자자손손 살아갈 하늘 나라인 천국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천국 약속인 것입니다. 세상에 다른 것은 안 준다고 해도 좋습니다. 이 천국을 우리가 기업으로 얻을 수 있다고 하는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자랑거리 중 최고의 자랑거리입니다. 우리가 천국을 기업으로 받지 못하고 이 세상의 온갖 좋은 것을 다 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얼마나 큰 자랑거리가 되겠습니까? 차라리 세상 것을 다 못 가져도 천국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큰 재산이요, 자랑거리라는 것입니다.

 

 

셋째, 귀감의 약속(2절)

 

 

2절에는 '지키고' 하는 말이 반복해서 세 번 나오고 3절과 4절에는 지켜야 할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2절에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켜야 할 이유로 여호와께서 「바알브올」의 일을 인하여 행하신 바를 너희가 묵도하였다는 것입니다. "바알브올을 좇은 모든 사람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중에서 진멸하였으되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철저히 지키며 살아야 될 이유가 분명히 나옵니다. 그 이유는 바알브올에 속했던 사람은 하나같이 하나님께서 완전히 진멸시켜 버리고 말았다는 겁니다. 그러면 한 사람도 남겨 놓지 않고 진멸시켜 버렸다는 '바알브올' 의 사건이란 무엇입니까? 바알브올이란 바알신을 섬기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 브올의 사건이란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을 행해 갈 때 모압 지정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모압 왕이 너무너무 겁이 났습니다. 큰일났다 싶어서 전쟁으로는 못 이길 것 같으니까 꾀를 하나 내었습니다. 발람이라는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하였는데 발람 선지지가 이스라엘을 아무리 저주하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오히려 축복을 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러자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발람이 "임금님! 이래서는 안 되겠으니 방법을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하고 계략을 짜내었습니다. 모압에는 브올 산이 있는데 그곳에 바알이라고 하는 태양신인 남자신을 만들어 놓고 섬기는 곳입니다. '바알브올' 의 이름은 여기서 나왔는데 브올 산에서 바알을 섬긴다는 뜻입니다. 태양신인 '바알' 은 생명의 신으로 아기를 낳기 위해서는 이 신을 통해야만 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농사의 신이기도 해서 풍년을 얻기 위해서는 바알에게 제사를 드려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생식과 풍요의 신인 바알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왔다가는 그 신전에 있는 창녀들과 관계를 맺으며 질탕하게 노는 것으로 제사를 마치곤 하였는데 여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초청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은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자기들이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되고 듣지 못하던 소리를 듣게 되고 급기야는 그 우상에게 절을 하게 되었고 그 신전에 있는 창녀들과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것을 그냥 둘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거기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모조리 쓸어버리셨는데 세어보니 이만 사천 명이나 되는 많은 숫자였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누구겠습니까. 아무리 새로운 소릴 해도 우린 못 가겠다, 죽어도 우린 바알 앞에 못 가겠다, 끝까지 버틴 사람들 아닙니까. 왜? 하나님이 원치 않는 일은 못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살게 하시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 이 사실을 두고 후손에게 귀감을 삼겠노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 혼자 잘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나의 후손들에게 믿음의 귀감이 된다고 하는 이것이 큰 자랑거리입니다. 그래서 살게 되는 약속, 얻게되는 약속, 귀감 되는 약속입니다.

 

 

II. 교육의 자랑(5-7절)

 

 

첫째, 생활인간 교육(5절)

 

 

5절에 "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로 들어가서 기업으로 얻을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명하신 대로 내가 너희에게 가르쳤은 즉,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인 너희들은 하나님께 배웠다는 말입니다. 모세가 선생 노릇을 하긴 했지만 하나님이 어떻게 가르치라 하는 그대로 가르쳤으니 너희들의 진짜 선생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가르치라고 명한 대로 백성들을 모아놓고 그대로 가르쳤으니 백성들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 교육받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나안땅에 들어가 이렇게 사는 사람이 되어라' 하고 교육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 교육, 생활 교육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사실상 얼마나 가졌느냐, 얼마나 배웠느냐, 심지어는 무엇을 했느냐 하는 것이 판단의 중요한 일이지만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일은 내가 무엇이 되었느냐 하는 것이 더 근본 문제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었느냐 못 되었느냐 이것이 근본 문제이지 하나님의 아들 딸은 되지 못하고 내가 가진 것이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하고 내가 공부한 것이 있으면 무엇 하느냐는 겁니다. 또 하나님의 자녀 되지 못하고 내가 자선사업 좀 했다고 해서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무엇이 되었느냐, 무엇을 하였느냐 보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귀한 일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하나님께 배워 가지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법대로 사는 사람이 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활 교육, 인간 교육입니다.

 

 

여러분! 혹시 뜻 있는 분들은 예배 마치고 내 옆에 서서 우리 교인들과 인사를 나누어 보십시오. 나이 드신 분 치고 인사 안 하는 사람 없고, 젊은 사람 치고 인사하는 사람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요즘 젊은이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도무지 인사를 안 하니 저 사람이 우리 교회 청년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도둑질하러 들어온 도적놈 같기도 해서 뭐라고 말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습니다. 분명히 목사인 나를 모를 리는 없겠는데, 그래서 경비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저 청년이 아무개 아닙니까 하는데 그 소리를 들을 적마다 참 허탈해집니다. 저래가지고 어디 가서 사람 노릇 제대로 하고 살겠느냐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여섯 시간, 열 시간 공부시키면서 외워버리는 지식만 넣어주고 사람되는 법을 안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이 학생들은 선생님한테 배울 것을 다 배운 다음에는 너 아는 것은 나도 다 안다고 하며 일대일 즉 수평적으로 생각해 버립니다. 그러니 선생님들이나 윗사람을 존경할 줄 모르는 것은 당연하죠. 그래서 데모했다 하면 총장실에 들어가 두드려 부수고 총장을 이틀, 사흘씩 감금을 하지 않습니까?. 세상에 이렇게 못된 버릇이 어디 있습니까? 난 데모하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해도 좋으냐는 그 말입니다.

 

 

교회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람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교회 나와서는 사람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겁니다. 본문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라, 이렇게 생활하도록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활 교육, 인간 교육입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 섬겨서 정말 사람답게 살고 이웃에게도 정말 사람답게 사람으로 살아가는 교육, 이 교육이 우리에게는 자랑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경외 교육(6절)

 

 

6절에 보면 이런 기록이 나옵니다.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함은 열국 앞에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즉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 지혜와 지식이라 그 말입니다. 그들이 즉 열국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즉 이스라엘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니라." 잠언서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고, 섬기고 모실 줄 아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세상에서 제일 무식한 사람을 변호사라고 합시다. 그 다음으로 무식한 사람을 의사, 가장 무식한 사람을 목사라고 할 때 이 사람들이 왜 무식하겠습니까? 왜냐하면 변호사는 법밖에 모르고 의사는 병 고치는 일밖에 모르고 목사는 성경밖에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좋은 의미로 하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자기 분야에선 제 일인자라고 해도 부모를 제대로 섬기지 못한다면 진짜 무식한 사람입니다. 차라리 국민학교 졸업하고 부모 잘 섬기는 사람이 더 지혜롭다는 말입니다. 세상 것을 다 배우고 부모 섬길 줄 모르는 박사라면 그런 사람을 어디에 씁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고 하나님 섬길 줄 아는 그것이 바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교육을 어디서 받습니까? 세상 학교에서는 못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교회를 통해서 이런 교육을 받게 되는데 이 교육이 우리들에게는 가장 자랑거리입니다.

 

 

셋째, 기도 교육(7절)

 

 

7절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

 

 

이 말씀의 뜻은 모세가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단강 가에서 한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가나안 땅을 행해 가기까지 광야에서 40년을 살아오는 동안에 얼마나 심각하고도 큰 문제가 많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때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느냐,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셔서 우리 문제에 개입하고 우리 문제에 참여하시고 우리 문제를 직접 해결해 주시지 않았느냐, 이런 신을 어느 민족이 섬기고 있더냐는 말입니다. 이 민족은 기도 없이는 못 사는 민족이고 그 자손들에게도 바로 그 기도를 가르쳐 주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기도를 가르칩니다.

 

 

사무엘은 백성들 앞에서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라는 선언을 하였습니다(삼상 12:23). 그가 기도하지 않는 것을 죄로 여길 정도로 기도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 한나는 기도의 어머니였습니다. 그녀는 서원 기도를 드렸고 또 오래 기도하였으며 그리고 하나님과 심정이 통하는 기도를 드려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사무엘을 낳게 되었다고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기도의 어머니에 기도의 아들이었습니다. 즉 기도가 기도를 낳았고 기도가 기도를 가르쳤습니다. 아주 멋진 기도의 교육이었습니다. 이것은 말로는 가르칠 수 없는 산 교육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인간 교육, 경외 교육, 기도 교육을 체험화 해서 기도로 자녀들에게 가르칠 수 있다고 하는 이 교육을 가장 자랑거리로 삼았기 때문에 교육을 중요시 여긴 것입니다.

 

 

III. 재산의 자랑(8-10절)

 

 

첫째, 법의 재산(8절) 8절에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하는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그 율법에 명시된 규례와 법도처럼 공의로운 법이 세상에 다시없다는 뜻입니다. 국민이 그 나라의 국법을 가진다는 것은 큰 재산입니다. 법이 없다면 자기의 가정도 거느리지 못하고 자기의 재산도 지키지 못합니다. 무법천지에는 주먹이 법입니다. 법이란 공의로운 법일수록 재산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악법이면 곤란합니다. 필리핀 같은 나라는 대통령이 자기 혼자 장기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별의별 악법을 다 만들어 놓고 그것을 고치자고 하는 사람들을 가두어 넣다가 쫓겨나지 않았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재산이요, 자랑거리인지 모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법, 오직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법,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 가장 큰 재산이요, 자랑거리입니다.

 

 

둘째, 체험의 재산(9절)

 

 

9절에 보면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두렵건대 네가 그 목도한 일을 잊어버릴까 하노라. 두렵건대 네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날까 하노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한마디로 간단히 얘기하면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모세를 통해 받고 있는 사람들은 광야에서 태어나서 수 십년 동안 살아온 백성들인데 전부 기적 속에서 살아온 백성들입니다. 광야라는 곳이 금덩어리를 준들 쌀 한 톨 살수 있는 곳입니까? 광야에서 열 길 스무 길을 판들 거기서 샘물 한 방울 나오는 곳입니까? 그러니 전부 하나님의 기적 속에서 먹고 마셨습니다. 이제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 그 기름진 땅에서 우물을 파고 농사지어 먹을 때에 지나온 날에 체험한 것들을 다 잊어버릴까 조심하라는 겁니다. 너희들이 지금까지 하나님을 모두 배워서 믿은 것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서 믿게 된 것이 아니냐는 뜻입니다. 이 체험이 우리들에게는 큰 재산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항상 하나님을 새롭게 체험하는 신앙이 여러분들에게 큰 재산이요, 자랑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모임의 재산(10절)

 

 

10절을 보면 "네가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기를 나를 위하여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려 하노라 하시매" 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들려주신 다음에 네가 이 산 아래 내려가서 나를 위해 백성들을 전부 모으라는 겁니다. 즉 하나님을 위한 모임, 이것이 큰 힘이 되고 그 힘을 큰 밑천이 되고 재산이 되고 자랑이 됩니다. 여러분! 그 때 300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흩어져서 하나도 안 모였다면 가정이나 나라꼴이 되었겠습니까? 가정이나 나라가 모였다, 혹은 교회가 모였다 하면 힘이 되고 큰 재산이 되고 우리의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재산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법이 재산이고, 신앙의 체험이 재산이고, 우리들의 모임이 바로 힘이 되어 재산이 되고 이것이 자랑거리가 된다는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불신자와 전혀 다른 자랑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에게는 큰 자랑이 되고 생활 교육이 그 어느 것보다 더 귀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우리에게 주신 영적 재산이요, 자랑거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자랑거리를 간직하고 어디서나 자랑스럽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창인 목사 (광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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