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마태복음

[마태복음18장] 사랑과 용서의 생활

'코이네' 2015. 6. 10. 19:02

 

사랑과 용서의 생활

성경:마18:21-35

 

 

오늘 본문은 베드로의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생활을 보고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복음을 사랑과 용서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용서를 하면 몇번을 용서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하고 질문을 하였고, 아울러 "일곱번까지리이까?"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일반적으로 용서하는 한계는 세번입니다. 그러니까 제일 크고 제일 많이 사용하는 것이 세번이라는 것입니다."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다메섹의 서너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철 타작하듯 길르앗을 압박 하였음이라"(암1:3) 그리고 유대인들의 전승에는 세번까지 용서하도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을 받아서 살아가는 그들 중의 한 사람인 베드로의 입장에서 본다면 세 번만 용서하면 많이 해주는 용서이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노라니 예수님의 말씀은 일반 랍비들의 교훈에 비해 그 한계가 더 넓고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생각에는 넉넉 잡아 일곱 번쯤이면 아마 되겠지 하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엉뚱하게도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할지니라" 이를 계산하면 490번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계산하고 앉았는데 이는 곱셈을 통하여 답을 구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490번이 아니라 4900번이된다할지라도 이 말씀의 뜻은 얼마든지 끝까지 용서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인간은 용서의 한계를 정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은 용서할 수 있고 저런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판단이나 말을 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한계 없는 용서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베드로가 용서의 한계를 묻고 있지만 이것은 어찌 보면 용서의 조건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용서의 한계나 용서의 조건에 대하여 대답하지 않으시고 무엇 때문에 용서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즉 용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조건없는 용서가 있어야함을 예수님은 설명하십니다.

 

용서라는 말을 그의미와 과정을 생각하며 사랑이라고 바꾸어 표현한다면 사랑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사랑을 알든 모르든, 사랑을 받든 못받든, 사랑에 대한 이해가 있고 없고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조건없는 사랑, 조건없는 용서, 한계없는 끝없는 용서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환경과 경험, 과거와 현재의 모든 상활을 다 추월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악할 때는 나도 악할 필요가 있고 또한 괜찮다고도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놈하면 나도 놈하고 상대방이 사랑하면 나도 사랑한다는 것인데 이는 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러한 관계를 종속적 윤리라고 합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다른 사람에게 속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윤리는 상대적윤리가 아니라 절대적 윤리입니다.

본문의 주제도 또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천국은 언제나 두 가지 차원에서 이해되어져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사는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는가 하면 그 하나님의 나라의 지부가 현재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영원한 천국을 바랄 뿐만 아니라 현재도 천국과 같은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은 마치 장차 이뤄질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연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천국백성다운 생활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 생활이 바로 사랑과 용서의 생활입니다.

 

사랑과 용서의 생활을 이뤄야 하는 우리의 생활은 어떠해야 합니까?

 

1.원수가 없습니다.

용서받은 자는 용서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1)내가 용서함으로써 내 인격과 자존심이 상한다는 것. 2)좀더 크게 사회적으로 생각하면 이렇게 못된 인간을 용서하면 사회 질서가 파괴된다는 생각)

 

2.용서의 동기가 문제입니다.

용서의 동기는 주위 환경이나 이웃의 태도 혹은 어떤 조건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용서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조건없이 나를 용서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용서의 동기는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엡4:32"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골3:13"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3.먼저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를 생각해야 합니다.

용서받는 자는 항상 자기의 입장으로 남을 이해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즉 받은바 은혜에 감사하면서 남을 생각해야 합니다.

 

4.자기가 받은 은혜가 더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만달란트=천만불, 100데나리온=20불)

 

5.감격을 쉽게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의 감격을 쉽게 잃어버림으로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했다.

 

용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분명히 있습니다.

 

약5:9"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눅6:37"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주기도문: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