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빌립보

[빌4장] 사도바울이 터특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결과 상상력

'코이네' 2015. 6. 1. 21:21

사도바울이 터득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결과 상상력

빌 4: 10-14

 

 

우리가 성서를 읽을 때도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음악가가 악보에서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감동적인 음악을 살려내듯이 우리가 성서를 읽고 기도를 하면서 읽고 그 속에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삶의 지혜와 힘을 우리의 삶에 살려내는 것입니다. 성서 그 자체는 하나의 책이지만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을 우리 삶 속에 살려내면 그 때 비로소 살아있는 말씀이 되는 것이며,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삶을 우리의 삶에 살려낼 때 비로소 신앙의 힘이 발효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의 생의 찬가가 나오는데 사도바울이야 말로 그의 신앙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삶을 자기의 삶에 살려냄으로써 가장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가장 큰 기쁨을 누리며 산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여기에 나오는 그의 생의 찬가는 삶의 조건이 어떠하더라도 그 삶에서 기쁨과 보람의 생을 살아갈 수 있는 상상력을 담고 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는 어떤 처지에 처하더라도 적응해 나갈 수 있는 삶의 비결을 터득했다고 했습니다. 이 삶의 비결이란 그냥 견디어 나가고 참고 나가는 비결 정도가 아니라 이 말을 하기 바로 전에 바울이 말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하는 말씀과 연관지어 볼 때, 이 삶의 비결이란 그 삶의 상황과 조건에 관계없이 기쁨의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을 말합니다. 이것은 신앙으로 자기의 궁핍한 삶을 가장 부요한 삶으로 살려내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바울의 위대한 신앙적 상상력이었습니다.

 

 

삶에 있어서 최대의 지혜는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환경속에서 최대한의 기쁨을 살려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슈베르트가 물 속에서 힘차게 꼬리치며 노니는 숭어의 모습을 살려내는데 필요했던 것은 꼭 연못이 아니라 벽에 돌로 조각된 숭어조각품이었듯이, 또 그 돌로 된 숭어조각품에서 숭어의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그려냈듯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쁨의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모든 기쁨의 조건들을 갗추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삶의 조건 속에서도 기쁨을 살려내는 비결이 중요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사람이 삶에서 기쁨을 가지려면 기쁨의 조건이 필요합니다. 돈도 어느정도 있어야 하고 사회적 지위도 남뒤지지 않게 있어야 하고 나를 괴롭게 하는 골치아픈 것들이 사라져야 기쁨이 있지 않겠느냐 합니다. 그러나 삶에 대해 통달을 하면 꼭 그렇지를 않습니다. 때로는 괴로움을 스스로 짊어지는데서 더욱 진한 기쁨이 경험될 수도 있습니다.

 

 

언젠가 신문에서 한 서울대학교 교수가 지방대학의 학문적 육성을 위해 서울대학교 교수직을 사임한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 교수는 무슨 문제가 있어서 서울대학교를 사임하는 것이 아니었고, 그가 사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 분이야말로 서울대학교에 남아있어야 할 분이라며 섭섭해 하는 후학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대학교 교수가 되는 것이 명예스런 길이고 서울대학교 교수가 되면 기쁨이 충만할 것같이 생각하며 서울대학교 교수가 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지방대학의 학문적 육성을 위해 서울대학교 교수직을 사임하는데는 더 큰 기쁨이 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삶의 기쁨은 어떤 의미에서는 역설적입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을때 반드시 기쁨이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쁨의 조건이라 할 만한 것이 빼앗기고 상황은 더 어려워 졌을 때 기쁨은 오히려 더 크게 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삶의 비결을 터득하는데는 심오한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내가 상황에 의해 지배를 받아서는 안되고, 상황을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 상황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상황에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해석할 수 있는 주인이 될 때 비로소 그는 상황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고 기쁨을 간직해 나갈 수 있습니다. 환경이 우리의 주체가 아니라 우리가 환경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삶의 비결을 그리스도의 진리를 터득한 이후에 얻게 되었읍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그 겸허의 삶이, 그 진리의 삶이, 그 사랑의 삶이 어떤 인간의 외형적 삶의 조건에 앞서 근본적 삶의 기쁨을 준다고 보고 그 분의 삶을 따르는 것이 기쁨의 원천이 된다고 결단하였습니다. 그는 세상의 학문과 사회적 명성과 부에 관한한 다른 이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완벽하게 갗추었으나, 그리스도라는 분을 만나고 그 분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본 이후에는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정신에 있어서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사람 위에서 거들먹거리며 위세를 떠는 삶이 아닌 지극히 낮은 자들과 그 낮은 자리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그 삶의 자세에서 그 어떤 높은 자보다 높은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기쁨이란 것은 세상적으로 높아져야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없이 낮아지는데서 더욱 의미깊게 얻어진다는 이 원리를 안 뒤에 그는 일체의 삶의 비결을 터득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사도다운 상상력입니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