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자료

감사예화, 미국교회와 한국교회의 추수감사절 유래

'코이네' 2014. 10. 19. 00:29

감사예화, 미국 교회와 한국교회의 추수감사절 유래

 

 

지금부터 370여년전 즉 1,620년의 일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종교 개혁자 위클리프(Wycliffe)의 영향을 받은 청교도(Puritans)들은 형식종교인 영국국교의 박해를 만나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그 나라를 떠났습니다. 처음에 도착한 곳은 네덜란드였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에서도 마음껏 자유로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자는 이들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탄압하는 기세가 있었기 때문에 다시 자유를 찾아 배를 탔습니다.

 

1620년 9월 6일 그들은 처음 한 해 먹을 양식을 싣고 메이 플라워호(May-flower)에 몸을 실었습니다. 배에 오른 사람은 승객이 남자 78명, 여자 24명으로 총 102명, 승무원은 25에서 30명이었습니다. 메이플라워호의 제원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무게가 180톤으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의 상선의 전형적인 크기로 길이 27.4 ~ 33.5m, 폭 약 7.6m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들은 이 배를 타고 그해 11월 19일 63일간의 죽음의 항해를 마치고 구사일생으로 도착한 땅이 지금의 미국 플리머스(Plymouth)였습니다.

 

그들은 감격하여 한 발은 배에 싣고, 한 발은 육지를 딛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상륙하여 산림을 채벌하여 먼저 통나무교회를 짓고, 그 다음 학교를 짓고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집을 세우니 크리스마스였습니다. 아무런 준비가 없었기 때문에 추운 겨울을 지나는 사이에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모자라 병이 들어 그들 반수가 죽어 갔습니다. 그러나 원망없이 청렴하게 하나님을 믿는 생활을 통하여 토인들과도 가까이 지나게 되었고, 청교도라 부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습니다. 그들은 원주민의 도움을 받아 토지를 개간하여 옥수수,원두,밀,보리씨... 등을 파종했습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었습니다. 예상 외의 많은 수확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기쁨에 넘친 그들은 처음 추수한 오곡백화 곡식을 앞에 놓고 하나님께 추수의 감사를 드리지 아니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협력해 준 근처의 토인들을 청하여 칠면조를 잡고 옥수수와 밀가루 빵과 원두로 케키를 만들어 성찬으로 식탁을 나누며 하나님께 찬송과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때가 11월이었습니다. 그들은 그후 해마다 점점 풍성해지는 오곡백화를 거둘 때마다 추수감사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1864년 미국에서는 링컨 대통령의 제의로 이 아름다운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여 11월 넷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여 지키게 하니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감사일은 각 나라의 형편에 따라 일정하지 않으나, 대개 11월 중에 지키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교회가 추수 감사절을 교회의 절기로 지키게 된 것은 1904년부터입니다. 처음에는 장로교 단독으로 11월 10일을 추수 감사절로 기념하던 것이, 1914년 교파 선교부의 회의 결과에 따라 미국 선교사가 조선에 입국한 것을 기념하는 뜻에서 11월 셋째주 수요일로 변경되어 지켜지게 되었습니다. 이 날은 한국 최초의 선교사 알렌(Allen)의사가 인천에 상륙한 날입니다. 그 후에 추수 감사절은 그 요일이 수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어 11월 셋째주 일요일을 추수 감사절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한편 오늘날 우리나라의 교계에서는 추수 감사절을 우리의 실정에 맞게 추석(중추절)으로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일부 교회와 교파에서는 이미 이를 시행하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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