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요한복음

[요 15:1] 예수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인

'코이네' 2024. 8. 16.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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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인

요한복음 15 : 1 - 8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수난을 앞 두시고 포도나무 비유를 통하여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고별적 유언의 당부의 말씀 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열매를 맺을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먼저 예수님과 하나님과 제자와의 관계를 말씀하십니다.

 

1절을 보면,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참 포도나무란 흠이 없고 부족함이 없어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나무를 말합니다. 또 들 포도나무와 구별시키는 참 포도나무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로서 극상품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참 포도나무를 인생 가운데 심어시고 참 포도 열매를 기다리는 농부십니다.

5절을 보면 제자들은 참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참 포도나무에 접붙임 받은 가지입니다.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탄식이 나옵니다.

(5: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슬 틀을 팠었도다.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

(2:21)"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

 

하나님은 인간을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이 땅에 살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의의 열매와 진리의 거룩함의 열매를 맺길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육체의 본능을 좆아 죄의 열매를 맺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들 가운데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임 되는 자마다 극상품의 열매를 맺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우리그리스도인들은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하나님의 형상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부름을 받은 복된 존재입니다. 본래 죄악에 붙어서 죄의 열매를 맺던 자이지만 거룩하신 예수님께 접붙임 받아 의와 진리의 거룩함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제 극상품의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께 보여드려야 합니다.

 

에베소서 5:22-24절은 제자된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가 무엇인가를 말씀해 줍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4:13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22,23절은 구체적인 열매를 제시함니다."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마태복음 28:19-22절에서는 제자양성의 열매를 맺는 은혜도 주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분분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의와 진리의 거룩함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리고 내적인 아홉가지 성령의 열매를 맺혀가야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열매를 맺지 못할 때 어떤 일이 생깁니까?

 

2절을 봅시다.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하나님은 열매로 판단하십니다.

줄기에 붙어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열매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야고보선생은 "믿노라 하고 행함이 없어면" 믿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줄기에 붙어 있는 가지가 그 수액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과실을 맺듯이 예수님에게 붙어있어면 성령의 능력 때문에 열매들이 맺힐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열매가 없는 것은 줄기에 붙어 있지 않기 때문이요,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많은 신앙인들의 문제입니다.

로이드 존스는 오늘날 많은 신앙인들이 믿는다고 착각하면서 살아간다고 폭로하고 있습니다.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생활속에 열매는 없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옛 습관을 좆아 육체의 죄를 즐깁니다. 본능을 좆아 갖가지 죄의 소욕을 불태웁니다.

 

어떤 전도사님이 여러 교회를 다니면서 한국교회의 아픈 모습을 많이 봤답니다.

그것은 대체로 그리스도인들이 믿는다고 하면서도 가치관의 변화가 없는것 이었읍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은 주제로 대화하고 세상에 대한 관심도 똑 같고,

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관심도 없고 주님과의 교제는 꿈도 꾸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것을 발견하고 몹시도 실망과 회의(懷疑)를 갖게 됬단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예수님은 마태복음7:23절에서도 이런 사람들을 향해 경고하십니다."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이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리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능력을 행하고 선지자 노릇을 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팔도방언을 하고 안수해서 병을 낫게 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은혜로운 찬양을 하는 것도 문제가 아닙니다. 내적인 열매,생활의 열매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열매를 보시고 판단하시고 심판하십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은 처음부터 완전한 열매를 요구치는 않으십니다. 열매는 점차적인 것이요, 현재는 그 싹입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내적인 열매에 대한 은은히 솟아나는 소원이 현재에 요구됩니다. 이러한 소원은 결국 건실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2절 하반절을 보면 하나님은 과실을 맺어가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고 깨끗케 해 주십니다. 곧 성장케하는 작업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포도에는 원 가지가 있으면 그 원가지에 여러 잔 가지가 붙어서 원가지에 갈 수액을 함께 흡수합니다. 이때문에 원가지는 극상품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들포도 같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때문에 농부는 때가 되면 잔가지들을 다 잘라 낸니다. 이를 통해 극상품의 열매를 맺히게 돕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잔가지는 과거의 죄악된 습관과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불신이 심각한 잔가지 입니다. 또 안다고 생각하는 교만이 잔가지 입니다. 이때문에 성장할 것 같으면서도 성장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잔 가지들은 우리의 노력으로도 잘 잘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잔 가지들을 잘라 내고자 해야 합니다. 가치관을 바꾸려하고 옛 죄악된 생활에서 듣던 음악도 멀리해야 합니다. 술과 담배도 끊어 가야합니다.

불신의 생각을 극복하고자 해야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러한 잔가지들을 친히 잘라 주십니다.

 

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볼 때 주님의 말씀에는 깨끗케 하는 능력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극상품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제자들이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4,5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어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

 

"내 안에 거하라"는 말은 요한복음에 무려 40번이나 나옵니다. 이말의 단어적인 뜻은 "머무르다"는 말입니다. 곧 이말은 "끊임없는 교제 가운데 계속적인 수액을 공급받는 상태"를 말합니다.

 

제자들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끊임없는 교제를 지속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계속적으로 공급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가지가 열매를 절로 맺듯 제자들도 열매를 맺게 됩니다.

 

제자들이 극상품이 열매를 맺어가는 삶은 너무나 쉽고 단순합니다.많은 노력이 필요치 않습니다. 인간적으로 애를 쓰고 기를 쓸 필요가 없습니다.단지 예수님 안에 거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쉬운 열매 맺는 삶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삶을 살지도 않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도 하지를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열심으로 열매 맺는 삶을 살려고 발부둥 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안에 거하기만 하라, 저가 내 안에 있어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그러나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않으면 쓸모 없는 가지처럼 말라 비틀어져 버리워 집니다. 또 사람들이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릅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수없이 반복적으로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예배때나 혹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 할 때에도 우리는 많은 은혜를 받습니다. 죄인된 자아를 발견하고 죄인을 정죄치 아니하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또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심도 합니다.

 

그러나

한 은혜의 과정이 끝나고 나오게 되면 우리에게 즉시 죄악된 생각이 들어오고 죄에 빠지는 우리 자신을 보게 됩니다. 이 모든 원인이 무엇입니까? 받은 은혜를 과신하고 잠시 예수님과의 교제를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은혜를 공급받기 보다 우리의 생각을 세상 것에 돌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계속적으로 예수님 안에 거할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먼저 가지된 자아를 발견해야 합니다.

가지는 줄기에 붙어있지 않으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이러한 가지임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예수님안에 거하고자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또 묵상하며 적용을 해 봐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때 마다 말씀을 듣고 나서 교회 밖을 나서면 다른 생각을 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생각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항상 주 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여금 나를 지배하도록 해야합니다.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1: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이러한 생활은 예수님 안에 계속적으로 거하게 해 줍니다. 무엇보다 주일 예배의 절대성은 가지에 지속적으로 거하는 비결입니다.

 

이렇게 거할 때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절로라는 단어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사실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생각지 않는 사이에 열매들이 맺혀 가고 있고 맺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서 제자들이 어떻게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열매 맺는 인생을 살 수있는 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극상품의 열매를 맺게 할 수 있는 참 포도나무이십니다. 우리가 참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께 거하면 절로 열매를 맺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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