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요한복음

[요 11:50] 한 사람이 죽어서 _이동휘 목사

'코이네' 2024. 4. 13. 18:56

한 사람이 죽어서

본문 : 요한복음 11장 50절 

이동휘 목사

 

 

1. 유대 종교 최고 지도자들인, 대제사장, 바리새인, 산헤드린 공회 의원 등이 예수께서 행하신 여러 표적(기적)들에 대해 듣거나 직접 보기도 했습니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가 되게 하신 기적, 오병이어의 기적(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2만 여명을 배불리 먹이시고 12광주리가 남은 기적), 태어날 때부터 소경되었던 사람을 고치신 표적, 그리고 가까이는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나사로를 무덤에 찾아가서 다시 살리신 기적 등 이러한 많은 기적과 권세있는 가르치심에 수많은 백성들이 따르게 되었습니다. 상당수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기적과 가르치심을 보고 들으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로마의 식민지에서 구원할 정치적 메시야로 삼고자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그 많은 무리들을 정치세력화해서 로마 당국에 저항운동을 한다면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저항운동이나 독립운동이 식민지 유대에서 일어나게 될 경우, 로마 당국에서 이를 제압할 병력을 파병할 것은 당연하고, 그간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주어진 일말의 자율 통치권과 기득권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렇게 될 경우에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그간 누리게 된 정치, 경제적 특권과 종교적 제반 특권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은 물론 종교 지도자들이 누리고 있는 여러 분야에 걸친 경제적 특권과 이권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던 것입니다.

(16: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그래서 예수께서 행하신 일들로 인해 유대 종교 지도자들 무리가 한결같이 초긴장 상태에 들어간 것입니다. 특히 죽은 나사로의 부활 사건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막강한 파괴력을 가진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400여년 동안 나라 잃고 여기 저기 흩어져 로마의 식민지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이 학수고대하던 메시야가 바로 그 죽은 나사로를 살려낸 예수가 아닌가 했던 것입니다. 죽은 사람을 살려냈다면 얼마든지 죽은 나라 민족도 살려 낼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추종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예수를 그대로 방치해 이 사건을 비화로 해서 민중 봉기가 일어나게 되면, 로마 당국이 이스라엘 민족을 완전히 멸망시키는 것이 아닌가 해서 산헤드린이 긴급 의회를 열고 그 대책을 숙의하게 되었습니다.

 

산헤드린에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양파가 있었습니다. 바리새파는 전혀 정치적인 당파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은 율법의 모든 세칙을 규정하고 백성들이 그에 따라 생활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율법을 간섭하지 않는 한 누가 정권을 장악하든지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편 사두개파들은 극히 정치적인 당파였습니다. 사두개는 부유하고 귀족적인 당파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로마 정부에 협력적인 당파였습니다. 자기들의 부귀와 안일과 권력자로서의 지위를 향수하고 유지할 수만 있다면 그들은 기꺼이 로마에 협력하는 것을 양심에 조금도 거리낌없이 만족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은 모두가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산헤드린에서 지배적인 지위에 있었던 것은 분명히 그 제사장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발언권을 갖고 있었던 것은 그 모두가 사두개인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 사두개인들은 제사장들의 무리들로 조직된 종교 단체이면서도 정치적인 관심이 대단한 사람들로 세속적이고 타협적인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정치와 잘 타협하여 자기들의 권력을 유지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이 사두개인들이 목표로 삼고 있던 유일한 것은 자기들의 정치적, 사회적 권력과 명망을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우려했던 것은 예수와 그 추종자들이 일으키는 소요사태였습니다. 당시 로마는 식민지에 대해서 관대한 정책을 펴나갔지만 시민 폭동에 대해서는 항상 확고하고도 무자비한 방법으로 시민 폭동을 진압했던 것입니다. 만일 예수가 주도하여 소요사태가 발생한다면 로마당국의 폭압은 뻔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의심할 여지도 없이 사두개파는 부귀와 권력, 그리고 영광을 누리고 있던 그 권위있는 지위에서 추방되고 말 것입니다.

그들은 분명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제사장들의 무리이면서 아직까지도 예수가 옳으냐 아니냐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전혀 관심 밖이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이것이 나의 안일과 권위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하는 것에만 촉각을 곤두세웠을 뿐이었습니다. 오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로마 당국에 협력하여 모든 정책을 세우고 추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도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우선 순위에 두었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것이 마치 나라 민족을 위한 것인 양 서슴없이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11:48)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더군다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산헤드린 의회에서 서로 권력 다툼을 일삼는 무리들로, 바리새인들은 육체의 부활과 천사를 믿는데 비해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죽은 나사로의 다시 살아난 사건은 바로 바리새파의 교리가 옳고 사두개파의 교리는 틀렸다는 중대한 증거가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바리새파는 이 사건을 빌미로 국민 대중의 지지 기반을 더 한층 확고히 하여 사두개파의 기세를 꺾고 의회의 주도권을 장악하고자 했고, 사두개파는 그 사건을 빌미로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척 하면서 정치적 문제로 삼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 때 대제사장 가야바가 한 마디 합니다.

(11:49-50) 그 중에 한 사람 그 해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저희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이 말은 소위 대제사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한 사람을 죽여서 나라가 무사하다면 죽이자는 말입니다. 유대 종교의 최고 지도자인 대제사장이라면 죽은 자의 부활을 놓고 하나님의 뜻을 묻고 행동했어야함에도 그런 것에 전혀 마음이 없이, 한 사람을 죽여서 나라가 무사하다면 죽이자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으로서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정치적 수완을 부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죽여서 나라가 조용하고 자신의 권력이 유지된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다. 적은 수의 희생으로 많은 이익을 보자는 공리주의(功利主義) 발상입니다. 이같은 공리주의는 분명히 죄악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당한 것은 한 사람의 의인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다수가 원하는 바일지라도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면 그것을 추종해서는 안됩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입니다. 소수의 의견이 분명히 옳은 것이라 할지라도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부결되면, 그 옳은 것이 폐기되고 그릇된 것이 옳은 것이 되고 마는 우매한 것이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하나님은 다수를 싫어하십니다. 진리는 다수결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리란 한 사람이 주장해도 어디까지나 진리입니다. 대제사장 가야바는 다수 백성들을 위하는 길로 공리주의를 택하여 한 사람, 의인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자는 것입니다. 나라 민족이 사는 길은 그 나라에 의인이 많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나마 하나 있는 의인을 죽여서 여러 사람이 기득권을 지키고 속 편하게 지내자는 것입니다.

(28:2) 나라는 죄가 있으면 주관자가 많아져도 명철과 지식 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장구하게 되느니라. (29:2)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

간디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내가 한 마디의 거짓말을 해서 평생 원하는 이 나라가 독립된다 해도 나는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거짓말 위에 세워지는 나라는 곧 무너질 것이니까.” 그가 평생을 나라 독립을 위해 바친 몸이지만 자기 한 마디의 거짓으로 나라가 독립된다 해도 거짓말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가야바는 유대 종교의 최고 지도자인 대제사장으로서 의냐 불의냐를 묻지 않고, 나라가 안정 속에 무사할 것이라면 얼마든지 불의를 행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2. 대제사장은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고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어린 양을 찾으러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첫 사람 아담의 죄로 인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둘째 사람, 즉 하늘에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 한 사람이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희생되시므로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희생되셨습니다.

(고전15:45-47)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께서는 기적을 행하는 능력과 권능으로 민중들을 세력화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로마 식민지에서 해방하고자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죽어야만 하는 인간을 구원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기 위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그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희생하시므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나라 민족의 안정을 위한다는 구실로 예수를 죽이고자 했지만, 그것은 순전히 자신들의 기득권 보호와 당리당략을 위한 술책으로 결국 이스라엘 나라는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자기 나라를 구하고자 취했던 바로 그 수단이 나라 민족을 멸망케 했던 것입니다. 예수를 잡아 죽이는데 합작한 로마와 이스라엘은 결국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길은 예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살리는 길입니다. 나라와 민족이 사는 길은 예수 믿는 의인들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정치가가 없어 망한 나라가 없습니다. 대기업이 없어 망한 나라가 없습니다. 학교 교육이 없어 망한 나라가 없습니다. 오직 의인이 없어 나라와 민족이 망했다는 것이 성서가 증언하고 있는 역사의 산 교훈입니다. 하나님은 이 나라 역사의 관심을 핵무기나 어떤 정부, 정책에 두지 않습니다. 오직 의인의 존재 여부에 두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 시편33:8-22을 보겠습니다.

(33:8-22) (8)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상의 모든 거민들은 그를 경외할지어다 (9)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10) 여호와께서 나라들의 계획을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하게 하시도다 (11)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12)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1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14)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살피시는도다 (15)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살피시는 이로다 (16)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17) 구원하는 데에 군마는 헛되며 군대가 많다 하여도 능히 구하지 못하는도다 (18)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19)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도다 (20)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21) 우리 마음이 그를 즐거워함이여 우리가 그의 성호를 의지하였기 때문이로다 (22)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

 

예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18:12)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전체를 위해서는 사람 하나쯤 희생시키는 것을 파리 죽이는 것보다 더 쉽게 하는 것이 현대인입니다. 모든 것을 숫자로 옮겨서 풀이하는 현대인에게 다수가 선이고 소수가 악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는 이에 반기를 들고 계십니다.

(18:14)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아흔 아홉의 중요한 것은 그 구성분자인 하나 하나가 값어치가 있기 때문이지 99이라는 많은 숫자 때문에 가치가 부여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예수께서 만일 오늘 이 땅에 오신다면 이렇게 외치실 겁니다. “어린 딸 한 명의 인격을 존중하십시오. 어린이 하나도 집안 체면이나 가문의 명예나 부모의 얼굴을 세우는 희생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나라의 번영을 위한다는 구실로 작은 한 개인이나 힘없는 민중이 희생되어서는 안됩니다.” “대자본 축적을 위하여 작은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악마적인 경제론을 철회하십시오. 대자본이 흘리는 공해로 한 인간도 생명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비겁한 99명보다 바른 말 할 수 있는 한 명의 인간이 천국 건설에 더 필요합니다.” “모두가 손을 드니 나도 손을 드는 눈치꾼 숫자의 노예보다 <><아니오>를 분명히 하는 인간을 나는 기다립니다.” “소수의 신체 장애자, 적은 수의 정신 박약자들도 하나의 인간으로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똑똑하고 건장한 자들만의 주님은 아닙니다.” 나라 민족이 잘 되는 길은 의인들이 대접받는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나라 민족이 잘 되고자 하면 한국 종교의 정치가 사라져야만 합니다. 교회가 만민의 기도하는 집,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이 되지 못하고 강도의 소굴이 되어갈 때,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어왔습니다. 교회가 교회로서 책임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그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심판은 먼저 교회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교회가 나라 민족의 파숫군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때 삼킴을 받지 아니 합니다. 교회가 나라 민족의 파숫군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게 될 때, 나라 민족은 위기를 당하게 되고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56:9-12을 보겠습니다.

(56:9-12) (9) 들의 모든 짐승들아 숲 가운데의 모든 짐승들아 와서 먹으라 (10)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11)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12)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마시자 내일도 오늘 같이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길은 예수가 살고 내가 죽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먼저 죽어야 나라 민족이 삽니다. 미국의 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그의 취임식 때, “(14:34)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는 성구 위에 손을 얹고 선서를 했다고 합니다. 나라 민족이 잘 되는 길은 나라의 지도자들이 의로워지는 것입니다. 미국 역사에서 새 나라 헌법을 제정하기 위하여 헌법 제정 회의가 필라델피아에서 소집되었을 때였습니다. 그들은 한가지로 의견일치를 못보고 서로 분열하여 퇴장하려고 할 때에 벤자민 프랭크린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잠깐만 기다립시오. 이 나라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 가운데 탄생한 국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모두 기도의 응답을 믿습니다. 우리 다같이 무릎을 꿇어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 드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이 어려운 궁지와 문제에 해답을 주시기를 기다립시다.” 그러자, 그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고, 드디어 불후의 문서인 미합중국 헌법을 제정하였던 것입니다. 기도로 세운 헌법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기도로 세운 나라는 번영합니다. 미국 의사당에는 기도실이 있다고 합니다. 예레미야 5:1말씀처럼 이 땅에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5: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헬라의 철인 디오게네스는 대낮에 등불을 켜고 아테네 거리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조국의 위기를 막아 낼 인물을 찾는다.”고 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의인이 요구되는 시대에 처해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길은 우리 예수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발견되는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살고 가정이 살고 나라 민족이 사는 길은 예수를 죽이는 길이 아니라 내가 죽고 예수를 살리는 길뿐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정황이 어떠할지라도 진리를 사수하며 사명을 감당하는 가정과 교회, 그리고 나라 민족의 의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