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요한복음

[요 5:39] 믿음을 보이라

'코이네' 2023. 10. 27. 09:35

믿음을 보이라

 

5:39-40; 10:27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의 핵심이 믿음이라는데 모두 동의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믿음이 무엇인지 왜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한지 그리고 그 믿음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하면서 자신이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자칭 그리스도인들이 많다는데 우리는 지금의 신앙에 심각성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믿음이 그리고 믿고 있는 믿음의 성격이 진정으로 성경이 말하는 믿음과 동일한 것인지에 대해 심각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은 성경을 통해 깨달아져 믿음이 형성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경험과 종교적 분위기를 통한 간접적 경험이 대부분의 신앙인의 믿음에 뿌리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동안 그렇게 길들여진 우리의 신앙생활은 성경이 말하는 믿음에 대해 별로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생활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성경을 몰라도 신앙생활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과연 성경을 대신할 그 무엇이 우리에게 있을 수 있다고 여러분은 믿습니까?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과연 성경적인가에 대해 분명한 대답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는 믿음의 오류를 통해 비참한 절망의 경험을 갖는 사람들이 간간히 소개되기도 합니다. 7:21-23절에 보면 그 대표적인 사건을 주님은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근거로 우리의 믿음을 확신하고 있는지 이제부터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믿음의 근거! (5:39-40)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제가 처음 신앙을 시작했을 때 성경을 별로 알지 못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대부분의 신앙의 기준을 간증하는 사람들의 고백에 그 근거를 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저보다 먼저 신앙을 가졌던 사람들의 고백을 흉내내는 것이 신앙인지 알았습니다. 처음 저는 성경이 아닌 사람들의 경험이 제 신앙의 근거였습니다. 어린 저에게 그들의 고백은 환상 그 자체였습니다. 너무도 드라마틱 했으며 너무도 영웅적이였습니다. 당시의 충격을 돌이켜 보면, 그들의 간증에는 절망과 좌절에서 기적적으로 소망과 기쁨의 환경으로 변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기적이 있었다는 것이며 그 기적을 이루게 하는 비밀이 믿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경계해야 할 것은 진정으로 믿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했던 방법을 답습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나 그럴것입니다. 내게도 내 인생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욕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그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에게 몰두하고 매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금식도 했습니다. 금식하는 동안 무엇인가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철야를 하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삼일을 이어 철야를 하기도 했습니다. 진짜 애절하고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불쌍해서라도 내 소원을 들어 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 기대감이 3일을 세워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산기도도 갔었고 봉사도 누구보다 많이 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나에게 믿음이 아주 좋은 학생이라고 칭찬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믿음이 좋은 신앙인 인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은 괴로웠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진정 주님이 나를 사랑하는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고 내가 어떻게 신앙생활 하는 것이 진리인지도 몰랐습니다.

 

이제 신앙이 좋다는 주변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해야만 했습니다. 드디어 나를 본받아야 하겠다는 분위기가 교회의 학생들에게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이상한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현실이 하나님의 뜻이고 응답이라고 믿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따르는 후배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들은 내 말이 성경적이며 신앙적이라는데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믿음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나의 방황은 아무도 모르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다 선교기관을 통해 성경공부에 대한 소개를 받고 말씀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배우면서 경험되는 것은 혼란이었습니다. 내가 믿고 있던 모든 것과 조금씩 다르다는 느낌이 나로 하여금 말씀을 배우는데 부담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믿음은 성경에서 부터 였으며 성경이 증거하는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주님을 부르며 매달리는데 어떻게 주님은 우리에게 주님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여기서 우리는 믿음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욕구에 간절한 것이 믿음의 근거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의 근거는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주님과 올바른 교제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2. 믿음의 증거(10:27)

본문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느냐 못 듣느냐 하는 문제보다도 중요한 것은, 성경은 믿음이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선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욕망의 소리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잘못된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본문에서 말하는 믿음의 증거는 분명하게 두 가지의 특징으로 밝혀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현실과 주님의 말씀앞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결단된 생활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부족함과 연약함으로 변호하려고 애쓰기 전에 분명하게 인정해야 할 것은 내가 과연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그리고 순종하는 삶이 있는 믿음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근거는 성경이며 그리스도이십니다. 결코 우리의 믿음의 근거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나 나의 욕구가 아니라면 우리는 그 증거를 우리의 삶에 나타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면서 그 유일한 능력의 통로가 되는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면서 살아야 할까요?

 

과연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습니까? 아니면 여러 이유로 하나님의 말슴을 불신하십니까? 여러분에게 진정한 믿음이 있다면 진정 거듭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자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사명을 가진 사람입니다. 제가 전하는 말씀이 성경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심각하게 받아 들이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고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에 근거를 두고 전한다면 여러분은 순종해야 할 당위성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가로막는 것은 바로 죄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죄를 모두 자백하고 고백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를 통하여 나타내기를 기대하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죄에 매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또 순종하지 못한다는데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증명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과 무관하게 성경은 그렇게 증언합니다. 야고보 선생은 야고보서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하며 그 믿음을 증명하라고 초대교회를 향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도전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 모두 믿음으로 구원을 받으셨습니까? 그렇다면 그 증거를 보여 주시지 않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여러분의 구원의 비밀을 알 수 있도록 보여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욕심을 감추지 말고 하나님 앞에 자백합시다. 그리고 진정으로 하나님이 나의 인생을 인도할 수 있도록 겸손하게 우리의 인생을 맡깁시다. 여러분이 만약 부족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말할 수 있는 깨달음이 있다면 여러분이 지금까지 고집하던 생각과 생활을 바꿔야 한다는 말도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살아 온 인생보다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할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를 고민하고 갈등하며 절망하기 보다는 십자가의 사랑에서 이제부터 시작하는 우리의 믿음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저에게는 다른 교회에 있는 어느 형제자매 보다 여러분이 더 소중하며 또 여러분을 더 사랑합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사람들보다 우리는 우리에게 서로가 가장 소중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하나인 것을 감추거나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현실을 부정할 때 우리의 믿음은 시험에 들게 되며 서로를 통해 위로와 기쁨보다 상처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난하다는 것이 불행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처럼 우리의 부족한 환경과 가난한 현실이 신앙의 형제와 자매의 사랑을 누리는데 원인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진정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라면 지금부터 믿음이 있는 사람처럼 삽시다.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나에게는 여러분이 필요하고 여러분에게 나와 또 서로가 필요한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가 변하면 하나님은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우리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