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요한복음

[요 4:34] 일하는 자들

'코이네' 2023. 10. 7. 20:11

 일하는 자들 

말씀 : 4:34-3

 

 

조금은 늦은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지금 농촌에는 새해의 농사 일이 시작되였습니다. 지금 시골에는 따뜻한 아지랑이가 오르고 나무들이 부끄러운 듯이 살포시 잎사귀를 내며 프르러 지기 시작하고 개나리와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만발하게 피었을 것입니다. 제가 이곳에 오기전에 시무하던 거성교회에는 김종필씨가 경영하던 거다란 목장이 있습니다. 지금 그 목장의 풀밭에는 온통 프른 풀들이 피어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목장을 가로 질러가는 길 양옆에는 노란 개나리가 활짝 피어서 노란 터널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이 때쯤이 되면 농부들은 일손이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못자리를 만들고 논갈이를 해야 합니다. 요즈음은 우르과이 라우드 때문에 농촌 사정이 우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쯤의 농촌은 발길이 빨라지고 일손이 바빠지는 계절에 된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많은 요인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일하는 것 만큼 기쁨을 주는 것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여 일을 다 끝내고 난 다음의 오는 그 기쁨은 어느 기쁨보다도 더 크다고 생각을 합니다. 서양의 격언에 일만하고 놀줄을 모르는 사람은 바보다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일할 줄 모르고 놀기만 좋아하는 사람은 아에 사람축에 들지를 못한다고 하겠습니다.

 

성지순례중에서 느낀 것중에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다른점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 오늘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이집트 사람들은 놀기를 좋아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아주 게을러서 씻는 것도 귀찮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를 안내했던 이집트 현지 가이드도 아침에 출근할 때 집에서 씻고 오지를 못하고 우리들이 묶는 호텔에 와서 화장실에서 얼굴을 씻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인들도 제대로 씻지를 않고 향수만 진하게 바르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이집트의 공무원이나 모든 직장인들은 아침 7시쯤 출근을 하고 오후 1시에 퇴근을 한 후에는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고 4-5시에 일어나서 저녁을 먹고 나일강이나 시외로 놀러나가서 밤 1112시가 되야 집으로 들어오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는 술을 팔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지만 시간만 나면 음악을 틀어 놓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놀기를 좋아하는 이집트 사람들은 성품은 곱고 늘 웃으며 인사하기를 좋아하고 근심과 걱정이 없습니다. 이집트는 홍해의 스에즈 운하에서 운하를 통과하는 배들이 내는 세금과 홍해에서 나오는 석유를 가지면 그 나라의 예산을 쓰고도 남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놀기를 좋아하고 게으르기 때문에 많은 자원을 가진 나라지만 GNP 800달러의 가난한 나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쓸모가 없는 사막을 모두 개간을 해서 나무를 수입하여 심고 나무마다 물을 주어 길렀습니다. 이스라엘의 산을 보면 대부분 바위산입니다. 그 바위산 틈에 나무를 심고 물을 주고 길러서 이스라엘의 많은 산들은 나무가 가득합니다. 또한 넓은 사막에는 농장을 만들고 과일나무를 심고 갈릴리 바다에서 물을 끌어다가 물을 주어서 농사를 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꽃을 많이 생산하는 나라이고, 소 한마리단 우유 생산량이 세계에서 제일 많은 나라가 되였으며, 야채 오랜지등의 과일을 수출하는 수출국이 된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첨단 산업고 발달을 하여 컴퓨터나 전자제품 등이 세계의 일류가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자원으로 비교하면 이집트는 자원의 부국이고 이스라엘은 자원의 빈국입니다. 땅덩이도 이집트는 이스라엘의 몇십배가 되고. 사람의 숫자도 이집트는 5천만명이 넘고 이스라엘은 3백만 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나라안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들과의 갈등이 있고 늘 외국의 침략의 위험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이집트보다 몇배를 잘살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민족이기에 자원의 빈국에서 이나마 잘살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일을 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일하는 자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들이 일하는 자세를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보상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힘겹게 노력하여 일을 하였으면 당연히 보상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였는데 보상이 없다면 참으로 허탈한 것이고, 보상이 없는 일을 누가 하려고 하겠습니까?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적당한 보상이 주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수고한 자에게 응분의 댓가를 지불하지 않는 다면 정의에 어긋나는 것이 되며 이것은 큰 범죄중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전9:9-10에서 말하기를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 하심이냐 전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한 것이니 밭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며 갈며 곡식을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하셧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을 위하여 일하는 자도 그에 해당되는 보상이 있을 것이니 하나님께서 주실 응분의 보상을 소망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 주님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도 하나님께서 그에 상당한 보상을 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또한 야고보서 1:4에서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치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도 이 땅에서 일한 자들에게 그에 상당한 보상을 하지 않는 다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리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과 이 땅의 법은 일한 사람에게는 보상을 주는 것입니다. 일한 자에게 보상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하는 자들이 보상만 바라고 일을 한다면 그 자세는 참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우기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이 무슨 댓가나 눈에 보이는 보상을 요구하며 일하는 자리에 선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며 오직 댓가만 기대하며 일하는 것은 일하는 자에게 기뿜이나 복이 될 수가 없는 것이며 도리여 무겁고 고통스러운 짐이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0:1-16을 보면 포도원의 품군의 비유가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포도원 주인은 아침 일찍이 품군을 구하여 한 데나리온을 주기로 하고 일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아침 아홉시에도 길거리에나가서 노는 사람들을 모아다 일을 시켰고 12시에도 오후3시에도 그랬고 5시에도 길거리에서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노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쯤 일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날이 저물어 나중에 온 사람부터 품삯을 계산하여 주는데 한 데나리온씩을 주었습니다. 이 것을 본 이른 아침에 온 사람은 더 많은 품삯을 기대했다가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게 되자 불평을 터트렸습니다.

 

이른 아침에 온 사람은 맨 나중 오후 5시에 온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게 되자 더 많은 보상을 바란 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의미하는 뜻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한 가지는 이른 아침에 온 사람은 처음에 한 데나리온을 받기를 계약했기 때문에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또한 그는 한 데나리온이라는 돈을 보상받기 위하여 하기싫은 일을 억지로 하였다는 말씀도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삼년간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큰 보상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면 제자들은 자기가 더 높은 자리에 차지해야 한다고 다투었습니다. 그리고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는 예수님을 찾아와서 내 아들들을 하나는 오른편에 하나는 죄편에 앉게 해달라.고 부탁까지 한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제자들이 3년간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고생을 한 것은 인간적인 얄팍한 보상을 바랐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이러한 보상을 바라고 예수님을 따라 다녔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힘없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삼년간 수고가 헛수고가 되였고 보상을 받을 소망이 사라졌기 때문에 모두가 도망을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보상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위대한 일을 할 수 없는 것이며, 그는 눈에 보이는 품삯 많큼만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보상을 바라고 일하는 사람은 최선을 다하지 않고 일이 조금만 힘들어도 불평과 원망을 하게 됩니다. 보상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일을 하지 못하고 주인이 시키는 일만 억지로 하는 비 창조적이고 비 능률적인 일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의 씨스틴 성당의 천정벽화 천지창조를 그린 사람은 마켈란젤로 입니다. 그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48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소비했습니다. 48개월 천정에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고개는 삐뚤어지고 수 없이 눈에 떨어진 물감 탓으로 눈은 실명할 정도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이 천재화가 마켈란젤로가 성당에서 주는 몇푼의 보상을 바라고 일을 했다면 이 위대한 그림을 완성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는 일하는 기쁨을 안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하나님의 위대한 사업을 하는 것을 깨닫고 기쁨과 감사를 느끼면 일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수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세상의 일이나 하나님 나라의 모든 일에는 보상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진리입니다. 그러나 보상만 바라고 일을 하는 사람은 그가 하는 일은 고역일 뿐이며 일에 기쁨을 얻을 수 없는 것이고 위대한 창조를 이룰수 없다는 것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의 일이든지 하나님의 일이든지 보상만 바라는 자리에서 더욱 성숙한 자세로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의무감만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릇 인간은 의무를 아는 동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의무감 때문에 살아간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남편의 의무, 아내의 의무, 부모의 의무, 국가에 대한 의무, 부모에 대한 자식의 의무등 이 의무에 얶매여 사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얽매는 의무감에서 해방을 얻고 자유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인간이란 의무감속에서 일하고 의무감속에서 행복을 찾고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고. 의무감 속에서 일하는 것이란 단순한 보상만 바라고 일하는 것 보다는 구별되고 성숙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의무는 보상을 바라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의무에 충실하다고 하는 것은 귀한 것이고 칭찬을 받을 만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자신의 의무마져도 망각하고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여기며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생각할 때에 의무를 다하며 사는 사람은 참으로 휼륭한 사람이라고 창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무감에서만 일하는 사람도 기쁨을 잃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딱딱한 의무감 때문에 일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그 일에 기쁨이 사라지고 얼쩔 수 없이 하는 기계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남자는 국방의 의무를 잘 치루어야 훌륭한 대한의 남자가 될 수 있는 것인데 대부분의 남자들이 군대생활이 즐거웠다. 군대생활이 참 좋았다. 군대생활을 더 하고 싶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편하고 좋은 보직을 가지고 군대생활을 하였다고 하여도 군대는 지겹고 힘든 곳입니다. 그 이유는 의무 때문에 어쩔수 없이 보내는 시간이였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에서 탕자의 비유가 나오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 탕자는 아주 나쁜 녀석으로 아비의 속을 지지리도 썩이던 녀석입니다. 그러나 큰 아들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순종을 잘하면서 집을 지키고 아버지를 도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큰 아들도 엄밀하게 말하면 의무감속에서 기쁨을 잃어버리고 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거나 불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아들처럼 가출을 하지도 않았고 그러한 생각조차 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는 여러해 동안 아버지를 섬겨왔던 성실한 사람이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가 장자이기고 장자라는 의무감 때문에 아버지를 떠나지 아니하고 아버지를 섬겼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래서 방탕한 동생이 돌아 올 때 기쁨으로 동생을 맞이하지 못했고 죽었던 아들이 다시 살아서 돌아 왔다고 기뻐하며 잔치를 베풀고 있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며 잔치 자리에도 참석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렇듯 의무감에 속하여 일하는 사람은 보상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보다는 고상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일에 기쁨이 없는 것이나 일의 속박 아래에 있다는 것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도 의무감 때문에 하고 있지 않는가 생각을 해봐야 할 것입니다. 바울도 의무감 때문에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미칠 까봐 복음을 전한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의무감만 가지고 일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회에서나 교회에서 자신의 의무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서 문제가 되기는 하지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들은 의무감에서 한단계 더 성숙한 일군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 세번째로 사명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명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구차한 보상이나 어쩔 수 없는 의무에 매이지 않는 자유인입니다. 사명으로 일하는 사람은 그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애착을 가지고 사랑하며 창조적으로 일을 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서 큰 기쁨을 얻을 것이며 자신에 엘에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탈무드에보면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있을 때 세사람의 석공이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열심히 돌을 다듬고 있습니다. 그중의 한 사람은 일은 많고 품삯이 너무 적다고 인상을 쓰며 불평을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피곤한 기색을 하고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어서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 갔으면 좋겠다고 말을 하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번째 사람은 회파람을 불며 때로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기쁜 기색을 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짖는데 내가 참여하여 일을 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고 기쁘게 생각한다.” 라고 말을 하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사람은 보상만 바라고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먹을 것을 얻기 위하여 일터에 나온 구차한 사람입니다. 이는 자신이 정당한 보수를 받지 못한다고 불평만하고 있으니 자신이 받는 보상만큼만 일을 할 것입니다. 둘째 사람은 자신이 봉사해야할 시간만 계산하는 의무에 속한 사람입니다. 세번재 사람은 일에 기쁨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일을 할 것이며 일도 더 잘할 것이지만 일하는 것에는 다른 사람보다 어려움을 덜 느끼게 될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은 일에도 능률이 있고 하는 일이 창조적이며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교회의 성직만이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세운 성직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직업이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세우신 소명의 일터라.”고 하셨습니다. 이 루터의 교훈을 받은 독일인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어떤 일이라고 하여도 하나님앞에 범죄하는 일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귀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위대한 나라가 된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구두를 만드는 사람은 이 구두를 만드는 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귀한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편하고 질긴 구두를 만들 수 있는가 기쁜 마음으로 연구하고 노력하여 세계에서 가장 좋은 구두를 생산하게 되였고 따라서 돈도 벌게 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독일의 가정 주부는 자신이 하고 있는 아이를 키우는 일, 요리를 만드는 일은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가장 귀한 사명이기에 최선을 다 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일하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일에 기쁨이 넘치고 창조적인 가정이 되고 훌륭한 자녀들이 생산되는 것입니다.

 

독일에서는 여인이 시집을 갈 때 꼭 준비하는 혼수품은 그 가정에서 옛날 부터 내려오는 특별한 요리법이 적혀 있는 요리책이 두권쯤이 있어야 하고 육아상식 책 즉 아이를 키우는 법의 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회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라는 생각을 가지시고 일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지금 나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적성이 맞지 않고 내가 이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는 얼른 다른 일을 찾아야 하겠지만 그런 사람은 다른 일을 찾아서 해도 똑같은 결과를 가져 올 것입니다.

 

우리 감리교회의 시조인 웨슬레 목사님은 열심히 일하라. 그리고 낭비하지 말고 저축하라. 그리고 가난한 자들을구제하라.” 라고 하였습니다. 이 교훈을 받은 사람들이 미국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이 교훈을 따라 어떤 일이든지 열심히 하고 절제를 하여 저축을 하고 남을 돕는 일에 앞장을 섰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그들이 힘있는 나라 부자나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사명감으로 일하시기를 바랍니다. 몇푼되지 않는 보상만 바라고 일하면 우리 자신이 불쌍한 존재들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일한만큼의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다고 하여도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의무감에서 일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기쁨으로 일할 때 놀라운 능력과 역사와 하늘의 복이 나타날 것입니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가문은 대대로 대장장이의 집이였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대장장이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라고 알고 최선을 다하고 살았기 때문에 그의 후손들이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할 때 대통령도 탄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무엇보다고 천국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이고 천국을 향하여 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꼭 필요하여 맡겨주신 사명이라고 믿고 기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