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로마서

[롬 1:18] 하나님의 심판, 인간은 구제불능인가?

'코이네' 2023. 5. 20. 11:27

하나님의 심판

1:18-32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의 대주제가 복음에 나타난 에 있으며, 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입혀주신다는 것을 기록한 후, 가 모든 인류에게 얼마나 그리고 절실히 필요한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먼저 이방인의 의 필요성에 대하여 자세히 말하고 다음에는 유대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인류가 범죄하여 하나님의 정죄아래 있기 때문에 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결론지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롬1:17절 말씀입니다. 복습하는 의미에서 다시 한번 읽어보십다.

거기에 보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합2:4절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 18-32절까지는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한 목적은 17절에서 말씀한대로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만 나타난 것을 증명하려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복음 외에는 세상에 어디서든지 그리고 무엇을 하든지 인간의 노력으로는 의인이 될 수 없으며 그래서 인간 스스로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구제불능의 인간이 되었는가, 다시말하면 왜 전적으로 타락하였는가?

그것은 바로 인간이 범죄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은총을 거절하고 탕자와 같이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고 타락한 처참한 인간상을 바울은 여기서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을 분류하면 네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가 있습니다.

.18절은 전체 내용의 요약입니다.

.19-20절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이미 사람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21-23절은 하나님에 대한 진리가 사람들의 죄로 말미암아 가리워졌고 추방되었을 말하고 있습니다.

.24-32절은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가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진노라는 말이 나오는데 잘 못하면 오해하기 쉽습니다.

이 말은 인간의 어떠한 감정이나 야심이나 복수심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일면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잘못한 아들을 책망하고 초달하는 것은 죽고 망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깨닫고 잘 되라고 하는 것입니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12:6절에 보면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 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하였으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는 사랑의 일면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죄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병들게 하며, 상하게 하며, 괴롭히는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사람을 파멸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는 이런 것을 막으시는 사랑의 태도이며 죄에 대하여 취하시는 엄위하신 태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죄인일지라도, 그리고 부족하고 못난 인생일지라도 하나님의 자녀인고로 끝까지 사랑하시되 우리를 끝까지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엄격하신 표현입니다.

 

진노라는 말은 로마서에서 모두 10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사랑을 근거한 것이니 만큼 우리는 이때마다 우리의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진노를 생각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박윤선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 자는 그의 사랑의 가치를 모르는 자라고 했습니다.

 

사실 인간은 연약하고 어리석어서 계속적으로 평안하면 그것을 귀한 것으로 생각조차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고통과 어려움을 당해야 평안의 참 맛을 깨닫고 그 평안을 소중히 여기며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스펄젼우리의 인간이 언제나 꿀같이 달아도 해롭고, 언제나 써도 해롭다. 그 두가지가 합한 것이어야 이세상에서 우리의 영혼을 건전하게 보전할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영혼의 건강을 위하여는 궁휼의 남풍도 필요하고 환난의 북풍도 필요한 것입니다.

 

리취(Leach)라는 분은 말하기를 언제나 태양만 쪼이면 사막이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따뜻한 태양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그대로 계속된다면 해롭게 되는 것입니다. 흐린 날도 필요하고 심지어는 만은 손해를 보드래도 태풍도 필요하고 폭우도 필요한 것입니다. 태풍과 폭우가 없으면 지구의 신진대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지구는 썪고 그래서 사람도 동식물이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언제나 사랑하시되 징계로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며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로 복되고 풍성한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깊고 오묘하신 사랑을 깨닫고 범사에 감사하는 자로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로 죄를 묵인하거나 죄를 용납하시는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를 미워하시는 공의를 겸한 사랑이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났다고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일면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가 왜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는가를 알아야합니다.

환자가 병을 고치려면 의사에게 가서 병명을 알고 지시에 따라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구원을 받으려면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매를 맞아도 무슨 이유로 맞는지 알아야 할 것이아닙니까? 또 심판을 받고 죽되 무슨 이유로 죽게 되는지 알아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방인이 구원받지 못하고 죽는 이유가 무엇이며 유대인들이 선민이라고 자부하나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죄는 반드시 결과로 나타납니다. 6:23절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했습니다.

죄는 반드시 고통과 비참과 사망의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깨닫고 회개하는 성도들에게는 유익이 되는 징게로 나타나나 그렇치 않은 사람들에게는 진노와 형벌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사람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나타납는 것입니다.

.경건치 않은 자에게 나타납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바르지 못한 태도입니다. 다시말하면 우상섬기는 죄를 말합니다. 21-25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고 했습니다.

.불의에 대하여 나타닙니다.

이것은 인간에 대하여 바르지 못한 태도입니다. 이불의는 하나님에 대하여 바르지 못한 태도에서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기지 못하면 결국은 인간의 관계가 바로 될 수도 없으면 덕을 세울 수도 없는 것입니다.

29-31절에서 그 죄악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곧 모든 불의,추악,탐욕,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살인,분쟁, 사기,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이두가지 종류의 범죄는 진리의 빛’, 곧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생활을 거절할 때에 생기는 것입니다.

경건과 불의는 언제난 진리를 막는 것입니다. 여기서 진리를 막는다는 것은 쉽게 말해서 옳은 것이 아닌 거짓으로 옳은 것을 막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진리가 되시는 예수님을 죄인이라고 정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게한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좋은 선물을 가지고 오시는데 사람들이 가로막고서서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와 같습니다.

자기도 받지 않고 남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심판날에 누구도 그 앞에서 핑계치 못하도록 이 진리에 대하여 알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서 예수 믿지 못하였다고 아무도 핑게하지 못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이진리는 양심의 빛 가운데 나타납니다. 둘째는 자연계를 통하여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만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없이도 이미 나타난 것입니다. 3:11절에 보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양심가 자연을 통하여 이미 하나님에 대한 단순한 지식을 전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진리를 가로막는 죄에 대하여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입니다.

 

20절에 보면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불경하고 불의한 자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어떻게 나타나는가?

첫째는 21-23절 말씀과 같이 죄인들이 더욱 어두어집니다. 어두어짐은 하나님 앞에서 받는 벌입니다. 무서운 진노입니다.

옛날에는 국법을 어긴 자에게 눈을 뽑는 형벌이 있었습니다. 눈을 뽑히고 살바에는 오히려 죽는 것이 날 것입니다.

 

여러분, 앞을 보지 못하는 자야말로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렇습니다. 만물을 보지못하는 것도 불쌍하거든 하물며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천국을 못한다는 것은 너무도 불행한 일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가장 무서운 진노는 마음이 더욱 어두어져 하나님을 아예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24-32절 말씀과 같이 범죄한 인간들에게 회개함이 없이 더욱 더 죄짓도록 내버려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내버려 두사란 말이 24절과 26,28절에 세번 나옵니다.

만일 어린 자녀가 부모에게 버림을 당했다면 그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어쩌다 고아가 된 것도 불행한 일인데 버림을 당했다면 그 불행은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시요, 생명의 주관자이시요, 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는 가장 복있는 자요, 반면에 하나님을 멀리 떠나 버림을 당한 자는 가장 불행자입니다. 영원히 불행한 자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질문을 합니다. 저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악을 행하는데도 일도 잘 되고 부자가 된 이유가 무어냐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죄라는 것은 일시적으로 사람에게 기쁨을 미끼로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더 큰 슬픔과 불행에 걸려들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진노는 범죄한 자들을 내버려 두시는 것으로써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내버려 두십니까?

첫째는 24절 말씀과 같이 그들을 더러움에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더러운 욕망의 강한 물결에 휩쓸리어 부도덕과 죄악의 심연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26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저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두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음욕과 타락한 죄악에 희생이 되는 것입니다.

세째는 28절 말씀과 같이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지 않고는 이 죄에서 해방 될 수 없으며 멸망에서 구원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죄인들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구제 불능의 죄인임을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나와 주의 은총을 기다려야 합니다. 겸손히 기다리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이 무한하신 사랑과 은혜가 항상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