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에베소

[엡 6:1] 인격형성과 부모의 교육적 책임

'코이네' 2023. 5. 6. 16:58

 

인격형성과 부모의 교육적 책임

엡 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 6:1-4 --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직책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나라의 대통령, 군 참모총장, 대학 총장, 선교사나 목사 등은 모두 무거운 직책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부모로서 좋은 자녀를 양육하는 일입니다. 내가 낳은 자식이지만 내 마음대로 키울 수가 없는 것을 부모라면 누구나 다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성서를 보아도 사무엘이나 다윗이나 솔로몬이나 이삭과 같은 사람들도 본인의 신앙은 훌륭했지만 그 자녀들은 실패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업에는 성공했는지 모르지만 자녀교육에는 실패한 아버지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는 물질 생활이 급격히 향상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정의 정신적인 수준은 그에 미차 따르지 못하기 때문에 물질의 풍요함에 가려진 갖가지 부작용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존엄성을 잃어버리고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오고 윤리와 도덕 수준이 타락하고 삶의 표준을 잃어버린 채 방황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주일 설교를 준비했다가 지난달에 일어난 끔직한 살인 사건을 보면서 다시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온국민이 경악한 살인 사건의 범인은 결국 23년동안 애지중지 키워 온 맏아들이 부모의 재산을 노리고 부모를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것은 남의 일로만 보고 넘길 수 없는 심각한 가정문제요 사회문제입니다. 가정의 달 5월에 일어난 이 끔찍한 사건을 보면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인가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문제는 비단 우리 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자식에게 매를 맞는 부모들이 80만 명이나 된다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부모 형제를 쏴 죽이는 사건도 종종 일어납니다. 물질적인 향상은 가져왔지만 우리의 가정이 병들었고 부모와 자식이 병들었고 이 사회가 병들었습니다. 남보다 더 빨리 달리지 아니하면 건뎌낼 수 없는 경쟁 사회속에서 가장 소중한 자식 교육을 과소평가하고 경시한 나머지 학교 교사에게만 모든 것을 맡기고 부모들은 자녀의 인격 형성 교육에 무관심하게 지냈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교육학자들은 말하기를 인격 형성은 대학이나 중고등학교에서 선생님들의 영향보다도 부모님의 가정교육에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딸을 알려면 그 어머니를 보아야 하고 자식을 알려면 그 아버지를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의 인격 형성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동감해야 합니다. 부모가 교육을 많이 받고 적게 받은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부모의 가치관, 삶의 스타일, 말보다도 실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냐 하는 것을 자녀들은 무의식중에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자녀의 인격 형성은 부모의 가정 생활에서부터 영향받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오늘 아침에 다시 한번 본문 말씀을 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성경말씀에 근거해서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려 합니다.

 

1.자녀에게 순종의 도리를 가르치라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자연히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부모 공경을 가르쳐야 됩니다. 내가 내 부모에게 순종하는 생활로 자식들에게 가르쳐야 그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게 됩니다. 주 안에서 순종하는 도리를 행함으로 자녀들에게 가르치라고 하는 것입니다.

레만 스트라우스가 말하기를 순종은 우주의 첫째되는 법이다.”라고 했습니다. 모든 우주 질서는 순종의 법을 따를 때에 유지됩니다. 태양계의 별들이 운행하는 것, 계절이 바뀌는 것, 그리고 인간 생활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순종의 법입니다. 이 법을 떠나서는 생존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자유롭다 하지만 만유인력의 법칙에 순종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바빠도 교통 법규를 지켜야 합니다. 빨간 불과 파란 불을 지켜야 삽니다. 만약 그 법을 어기면 나도 죽고 남의 생명도 해치게 됩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회사의 법에 순종할 때에 직장인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실직자가 되고 맙니다.

미국은 민주주의가 아주 잘 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그들은 데모를 해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합니다. 그 선을 넘어가면 처벌됩니다. 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미군 민주주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그런 질서를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에 사회 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순종의 법을 가르치는 것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자녀에게 순종하라고 말은 하면서도 과연 부모가 자식에게 순종의 법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구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갖가지 시련을 당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이 신앙생활을 싫어하는 까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싫고 교회 생활에 순종하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구속당하기 싫다는 얘기입니다.

불순종의 자식들이 오늘날 사회에 큰 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저희 4형제들이 모두 큰 교회를 섬기고 있는데 사람들은 저에게 어떻게 그렇게 큰 교회를 섬기느냐고 묻곤 합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그것은 어머님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저희 어머님은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기도를 가르쳤고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을 늘 마음속에 새기고 순종하다 보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 세상에서도 보람있는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순종의 도리를 가르쳐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선생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웃어른게 순종할 때에 이 땅위에 평화를 이룩하고 하나님의 풍성하신 축복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2.자녀를 노엽게 하지 마라.

부모는 어떻게 자녀를 노엽게 하고 있습니까?

첫째, 변화되어가는 세대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에는 세대차가 있습니다. 부모들은 이것을 이해하면서 자식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자녀의 노여움을 사게 됩니다.

둘째, 지나친 통제입니다. 과잉보호입니다. 균형잡힌 훈련이 없이 일방적인 강요를 할 때 자녀들은 노여움을 사게 됩니다.

셋째, 지나친 방임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돌볼 시간이 없으니까 자기가 돌보지 않는 보상으로 돈을 주고 방임해버립니다. 이것은 부모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불간섭하고 내버려두는 것이 자녀를 위한 일인 것 같지만 결국엔 자녀들의 노여움을 사게 됩니다. 부모가 자기의 사회적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서 또는 물질적 풍요를 과시하기 위해서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외국 유학을 보냅니다. 이것은 자녀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보상 심리로 자녀를 다그칠 대에 이 아이는 탈선하고 맙니다. 돈은 있지만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목적의식이 없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잘못된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비어 있을 때에 일곱 귀신이 들어가서 그 사람을 더 악하게 했다고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넷째, 부모의 생활에 일관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하고 때와 장소에 따라 자꾸 변합니다. 자녀에게 술 마시지 말라고 하면서 자신은 술을 마시고, 부도덕한 생활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자신은 부도덕한 생활을 합니다. 말과 행동이 다를 때에 자녀들의 노여움을 사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녀와 함께 교회에 나와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럴 때에 자녀가 아버지를 이해하고 신앙 가운데서 자녀들이 성숙해지고 그리스도 주안에서 인격 형성이 바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회개해야 됩니다.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교회 생활에 충실해야 합니다.

오늘날 가정은 점점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내외간에도 자신의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 남편이나 아내를 이용하는 가정이 있습니다. 형제간에도 이기주의 때문에 갈등이 생기곤 합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첫째, 나의 권리, 나의 만족만을 취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그 가정은 문제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둘재, 자기의 욕구가 충족되지 못할 때에 좌절하고 쉽게 분노를 일으킵니다. 복수심을 갖게 됩니다.

셋째, 삶에 대한 피해의식을 가지고 다른 사람이 나를 해치려고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남에게 적대감을 갖습니다.

넷째,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경쟁 의식에서 남을 누르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남을 짓밟고 일어나려는 이기심이 가정과 사회에서 나타납니다.

다섯째, 비판적인 말을 많이 합니다. 자기의 감정으로 남을 판단하려고 합니다.

여섯째, 내 잘못을 회개하지 못하고 남의 용서도 받아 들이지 못합니다.

일곱재, 남과의 바른 관계성을 맺지 못합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관계성의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녀를 가르칠 때에 이기심에서가 아니라 주안에서 바른 사랑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자녀들을 가르치고 자녀의 인격 형성을 위해서 책임지고 교훈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3.주의 교양으로 양육하라

TV, 비디오와 잘못된 노래 등을 통해서 자녀들이 오염되고 있는 것을 우리들은 알지 못합니다. K.애플이라는 펜실베니아 대학 교수가 오늘날 가정의 위기를 두 가지고 얘기했든데 하나는 가정의 분산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직장 때문에 늘 가정을 떠나 있고 자식은 유학으로 덜어져 있고 어머니는 혼자서 빈 둥지와 같은 집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치 않는 이산가족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가정의 뿌리가 없어진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35세 이하 가정의 삼분의 이가 직장을 따라서 가정을 옮겨 다니고 있습니다. 오래 정착하지 못하고 새 이웃과 새 집과 새 학교에 가서 자녀들은 혼란을 가져오고 안정감이 없어집니다. 마치 나무을 자꾸 옮겨 심으면 그 나무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쓰러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뿌리를 내릴 수 없는 가정, 여기에 오늘 가정의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가정이 일체감과 안정감과 조화를 잃어버리고 가족간의 의사 소통을 잃어버린 여기에 성서는 주의 교훈을 양육하라,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우리 마음의 중신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중심을 이루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안 계시면 재물이 우상이 되어 돈만 가지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때 가정의 비극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좋은 관계성을 맺어야 합니다. 인간은 관계성이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사랑의 관계성을 가지고 살도록 도와야 합니다.

셋째, 서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사랑은 느낌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보면 사랑은 행동하는 것, 실천하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도록 가르쳐야 됩니다.

넷째, 믿음 안에서 용기와 인내력을 갖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신앙인은 용기가 있어야 하고 목표를 가지고 참고 이겨야 합니다.

다섯째, 남에게 무엇인가 주면서 살도록 도와야 합니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가지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고 재주를 나누고 재물을 나누는 삶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인격이 형성되도록 해야 합니다.

여섯째, 기도의 능력을 가르쳐주고 기도생활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앞에 기도하는 자는 결코 곁길로 갈 수가 없습니다. 혼자, 사막 가운데 있다할지라도 흑암의 한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기도하는 자녀는 하나님께서 바르게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가정에서 부모의 교육으로 자녀의 인격형성을 이루어 나아가는 가정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백두산에 중학생들이 등산을 갔습니다. 그런데 그만 학생 하나가 길을 잃어 숲 속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이 학생은 어떻게 살아 내려 갈 수 있을까 곰곰 생각했습니다. 저만치 물이 졸졸 흘러 내려가는 것을 보고 그는 이 시냇물만 따라 내려가면 큰 강이 될 것이고 그 강가에는 분명 사람이 사는 마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만치 물이 졸졸 흘러 내려가는 것을 보고 그는 이 시냇물만 따라 내려가면 큰 강이 될 것이고 그 강가에는 분명 사람이 사는 마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강물만 따라 가면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는 시냇물로 목을 축이고 풀뿌리를 먹으면서 바위 밑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강물을 따라 내려 왔습니다. 드디어 그는 일주일만에 사람사는 동네로 내려와 살아났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진리의 생수를 마시며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칠 때에 저들이 어디를 가든지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여 사회에 빛이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녀가 될 줄로 믿습니다.

인격 형성에 책임을 지는 부모님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