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요한123

요삼 1:2, 진리 안에서 행하라

'코이네' 2023. 2. 22. 12:06

진리 안에서 행하라

요한삼서 1:2-4

 

 

저는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역사를 보았을 때 역사를 이끌고 갔던 주인공들이 있었고 무의미하게 사라져 간 사람들이 있었고 역사의 진전을 가로막았던 가치 없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영광스러운 세계를 실현해 나가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참으로 귀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들이 교회 생활을 통하여서 정말로 가치 있게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복된 삶을 주시기 위해서 자기의 독생자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해 내어 주셨습니다. 아들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다른 어떤 것이라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저는 금요일 새벽 기도를 하면서 대림절(강림절)의 의미를 묵상하면서 나 같은 것을 위해 오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얼마나 감격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나같이 부족하고 가치 없는 자를 그래도 주님께서는 사랑하시고 낮고 낮은 자리에 오신 주님····················’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너무나도 감사하고 송구스러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이 소중한 생명을 가치 있게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왕 한 번 사는 것 세월에 쫓기다 보면 벌써 몇 년씩의 세월이 빼앗기는 것처럼 지나가 버리고 마는 인생 길에서 좀 더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올바르게 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는 일에 사로잡혀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그런 무의미한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 요한은 가이오라고 하는 성도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가이오가 믿음에 견고히 서서 성숙한 신앙의 모습인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알고서 너무나도 기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삼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삼1: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요삼1: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네 영혼이 잘됨같이영혼이 잘되는 것은 진리 안에서 행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절에서는 다시 한번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복음 사역을 위하여서 충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순회복음 전도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바울도 베드로도 바나바도 모두 순회복음 전도자들입니다. 지역은 넓고 교역자의 수효는 적었기 때문입니다. 가이오는 이런 하나님의 종들을 잘 대접했습니다. 그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을 통하여 성장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성도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9절에 보면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이 등장하고 있는데 하나님 나라에 하등에 쓸모 없는 사람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으뜸 되기를 좋아하고 하나님의 종들을 대접지도 아니하고 괜히 다른 사람을 모함하고 올바르게 살려고 하는 성도를 괴롭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있으면 교회는 큰 시험거리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결단에 따라 가이오도 될 수 있고 디오드레베도 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편을 택하겠습니까?

 

우리 철원성결교회 모든 성도들은 가이오와 같은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진리 안에서 행하면 가깝게는 제 마음이 즐겁고 그리고 여러분의 주님이신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이왕 하나님 섬기면서 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되는 놀라운 하나님의 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충청도에서 목회하면서 겪은 일들이 많지만 하나님께 감사하고 목회에 위로를 받았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교목으로 있다가 교회로 부임해 가니 그 때부터 교회에 나오게 된 부부가 있었습니다. 부부 다 나이가 사십 정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자는 한달 전쯤 해서 중풍으로 쓰러져서 반신불수가 된 사람입니다. 집이 부자입니다. 동네서 최부자라고 소문이 난 집입니다. 얼마나 몸이 건강했던지 동네 노인들 농사는 거의 다 짓고 온갖 농사 기계는 다 가지고 있고 학교 운동회 날에는 달리기 선수로 동네 명예를 지킨 젊은이였습니다. 그런데 중풍으로 쓰러졌으니 사람이 무력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돈은 있어서 서울로 대전으로 좋다는 약은 다 써 보고 유명하다는 의사에게 다 보여 보고해도 낫지를 않았습니다.

건강할 때 그렇게 예수 믿으라고 해도 믿지 않더니 몸이 그 모양이 되고 보니 하나님을 믿기로 하고 교회에 등록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는 활기가 돋는 일이었습니다. 그를 위해 열심히 기도해 주고 하나님의 기적의 손길이 함께 하시기를 원했습니다. 날마다 그 집에 가서 예배를 드려주었습니다. 이들 부부도 열심이었습니다. 예배드릴 때 자세가 제대로 갖춰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빨아들이듯이 듣습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시간시간 빠지지 않고 열심을 냈습니다.

그런데 목회자인 제가 땅이 꺼지게 실망할 일이 그 집에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 집의 둘째 아들, 공부도 잘하고 키도 크고 잘생기고 공부도 잘 할 뿐만이 아니라 학급의 반장까지 하고 있고 교회에도 잘 나오는 고등학교 1학년 애가 죽고 만 것입니다.

그것도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당숙에게 맞아서 죽었습니다. 당숙이라는 애는 품행이 나빠서 학교에서 퇴학을 맞은 애입니다. 밤에 야간 학습을 하고 있는 애를 불러내어서 건방지다고 그러면서 같이 어울리고 있던 친구들에게 손을 뒤로해서 잡으라고 하고서는 각목으로 때려서 죽인 것입니다. 아침에 건강하게 나갔다가 밤에 시체가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온 동네가 술렁거리고 어머니 할머니는 기절을 하고 그 소식을 들은 저도 정말로 죽고 싶은 심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항의가 됩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너무나도 안된 사람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이렇게 상처를 주시면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 의지하고 이제 좀 마음을 잡을려고 하는 사람에게 해도해도 너무하십니다. 이제 예수 믿기는 다 틀렸습니다울고 불고 하는 집에 가서 뭐라고 할 말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애가 신앙생활을 했다고 저에게 장례를 부탁을 합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라서 정말로 괴로운 장례를 치렀습니다. 주일 날이 돌아왔습니다. 아마도 9월 마지막 주일인 것 같은데 마음이 심란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그 집에 가서 궂을 해야된다는둥 예수 믿어서 그런다는 둥 말이 많다는 소식을 들은 저로서는 하나님의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를 준비하고 있는데 한 집사님이 자루를 하나 가지고 왔습니다. 무엇이냐고 하니 중풍으로 쓰러진, 자기 아들을 비명에 잃고 만 그 성도가 첫 방아를 찧었다고 햅쌀을 목사님 드려야겠다고 지팡이를 짚고 쌀 한 말을 자루에 담아 감당도 못하면서 고생하면서 교회 언덕을 오르는 것을 대신 받아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받고 얼마나 얼마나 감격을 했는지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뭉클해지고 하나님께 감사가 됩니다. 그 부부는 이런 충격적인 일을 당하고도 신앙 생활에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이제 겨우 말씀을 들은지 두 달이 조금 지났는데 말입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자기 아들을 죽이고 홍성 교도소에 형을 살고 있는 그 친척에게 사람을 보내어서 용서한다는 말과 함께 성경 찬송을 사서 예수 믿으라고 권면을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 애의 눈이 커지면서 정말로 그랬냐고 믿지 못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장서서 형을 감해 주도록 도장을 찍어 주었습니다. 그리고서는 한없이 한없이 울었답니다. 자신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저는 그 분들을 보면서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예수를 몇 십 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인간 관계의 조그만 응어리 하나 풀지 못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렇게 믿으면서부터 말씀 앞에 순종하는 그 태도가 너무나도 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저는 여러분을 바라보면서 진리 안에서 행하는 여러분을 그리며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니 저도 여러분이 언젠가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될 것을 꿈꾸며 소망합니다. 여러분도 정말로 내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겠다고 하는 결심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때로 여러분이 세상에서 어렵고 고달픈 일들을 많이 겪는다고 할지라도, 때때로 여러분의 삶 속에서 실패를 겪고 자신에 대해 믿음이 사라질 지라도 이렇게 주님의 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힘을 얻고 교회 문을 나서면서 주먹을 불끈 쥐고서 하나님 나에게 힘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주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진리 안에서 행할까요?

 

성숙한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요즈음 교회 안에는 만년 갓난아기 신자라고 부르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교인 가운데 수년 동안 설교를 들었는데도 처음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목사는 어제나 오늘이나 여전히 그 하나 하나를 돌봐 주어야 합니다. 기저귀가 젖었는지 가끔 들춰보아야 하고, 토닥토닥 베이비 파우더를 발라 주어야 하기도 하고 우유가 너무 뜨겁지 않은지 볼에 대어 보아야 하고 ·······, 주님은 우리를 십자가의 군병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오늘날의 대부분의 교회는 군대라기 보다는 차라리 신생아로 가득찬 산부인과 병원처럼 보입니다.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스 목사님의 저서인 주님과 동행하십니까?”에 나와 있는 글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때로는 숫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우리들의 교회를 바라보며 우리는 자신을 속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숫적 증가가 곧 영적 성장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덤들도 역시 숫적으로는 증가하고 있으니까요. 사랑이 없는 백명의 성도들이 여전히 사랑이 없는 이백명으로 늘어났다는 것은 디룩디룩 비곗살이 쪘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위해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사랑이 더욱 넘쳐야 하며 평화가 더욱 넘쳐야 하고······” 물론 이렇게 말은 하지만 어린아이들에게는 이런 것들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오직 어른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영적 성장을 이루지 못한 것을 보고 바울 사도도 똑같은 탄식을 하였습니다. ‘너희가 아직도 어린 아이들이구나

여러분은 계속해서 성장을 해야 합니다. 자라나야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자랐기 때문에 어른이 된 것입니다. 남자 아이들의 빨리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아마도 면도를 하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 아이도 제가 면도를 하면 꼭 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털도 없는 맨 살에 면도를 해주는데 아이들은 아무리 면도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자라나면 됩니다. 16살 정도가 되면 수염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가 자라납니까? 생명이 있는 자가 자라납니다.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이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 있으면 자라는 것입니다. 성장은 생명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생명이 무엇입니까?

(요일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우리의 가슴 속에 그 분이 계실 때, 그리고 우리가 그 사실을 인식하며 살 때, 비로소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점점 그 분을 닮아가게 되고 우리 안에 계신 그 분의 생명이 우리가 사는 모습 속에서 점점 더 잘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되어 결국 그분과 같은 형상에까지 자라게 됩니다.

여러분이 기쁨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 기쁨이라는 게 어떤 문제가 생기면 사라져 버리는 정도의 기쁨이라면 여러분은 그 기쁨이 여러분 속에서 흘러 넘쳐서 세상의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결코 빼앗기지 않는 것이 될 때까지 그 기쁨을 성장시켜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에 있어서 영적으로 성장해야만 합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어제 사랑했던 것보다 오늘 조금이라도 더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그만큼 더 성장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기독교에 대해 더 많이 알았다고 해서 성장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알았다는 것은 살이 쪘다는 것을 말합니다. 크지 않고 살만 찌는 것은 문제입니다.

전에는 어떤 사람이 시비를 걸어오면 맞받아 시비를 걸었던 사람이 이를 악물고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면 이전보다 나아진 것입니다. 그러나 시비를 걸어와도 오히려 주님을 찬양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성장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처럼 되기 위하여 기도하고 금식하고 봉사하고 회개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장은 우리의 삶의 중심을 예수님께 맞추고 그 분이 우리 안에 살아 계심을 알 때 자연적으로 오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는 것은 우리의 생명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의 생명입니다.

 

예수님께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성장이 정체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예수님을 우리의 삶의 중심에 모시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생명이 없다면 그 이유도 주님께서 중심이 되지못하기 대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주님은 이 순간에도 살아 계시다고 증거 하십니다. 이것이 다른 종교와 차이점이기도 합니다. 그 분은 살아 계실 뿐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문제는 그분이 하실 수 있도록 우리가 도무지 자리를 내어 드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나와 교회를 다스리지 못하고 우리가 마음대로 모든 것을 처리해 버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그래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여러분 모두와 함께 계십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십니다. 여러분은 우리 스스로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생명이라는 사실을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옛사람은 주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에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살고 계시다고 하는 것을 의식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우리의 생명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안에 그 분의 성품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그리스도를 더 많이 드러냄으로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하고 열매를 맺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리 안에 삶으로 충만된 삶의 감격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열매를 많이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은혜목회정보- 설교/박성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