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고린도서

[고전 13:1]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코이네' 2022. 4. 18. 21:50

그 중에 제일은 사랑

본문 : 고린도전서 13 : 1 -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Is :1SJ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이 땅에서 사는 날 동안 행복하게 살기를원 하십니다. 인생들이 타락하여 울며 괴로워하고 불행하게 사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습니다. 오늘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위로와 평안으료 풍성 한 삶의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이 행복을 느키며 살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있는 물질적인 소유에서 얻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은 답변하고 있습니다.,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 이리라.' (고전l2 :3l) 그러면서 사랑의 찬가인 고린도전서 l=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지나온 인간 역사를 더듬어 볼 때 가장 아름답게,그리고 가장 고상하게 남겨진 인간의 행동은 다 [사랑]의 행동이었습니다. 행복했 던 사람들. 삶의 빛나는 가치를 실현한 사람들은 다 [사랑]의 실천 자였습니다. 인생은 단 한 번 지나갈 뿐입니다. 일생 동안에 하고 싶은 제일 고상한 욕망과 이루고 싶은 제일 고상한 업적이 있다면 이는 곧 사 랑의 사업입니다. 이 사업은 실패가 없는 사업입니다.땅 위에 변치 않는 사상이 있다면 이는 사랑의 사상이요, 하고 또 하여도 감사와 기쁨 만이 있는 것은 사랑의 운동인 것입니다. 이 말은 사랑 만이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인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 은 사랑이라. 신앙 생활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있어야 합니다.미 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나 소망은 성도가 지녀야 할 큰 덕목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 제일은 사 랑이라고 하였습니다. 가정 생활을 생각해 보면 서로 믿기 때문에 삽니다. 미래에 대한 회망을 걸고 삽니다. 만약에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고 불행할 것이 기대된다면 이흔하든지 자살하여 버릴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랑 이 있다면 가정 생활은 더욱 행복하고 완전할 수 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신앙 생활이나 가정 생활에서 다 필요한것 이지만 그 중에 제일 필요하고 우선적이고 좋은 것은 여전히 사랑 이란 말입니다 바울은 이떻게 사랑을 노레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 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이것은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주는 말씀입니다.

하늘의 세계(천사의 말) ,땅의 세계애서 인간의 언어를 다 사용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무가치한 것이고, 예언, 지식, 믿음이 특별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고 구제와 순교의 제물이 된다 한들 사랑이 없다면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슈바이쳐 박사는, '끼독교의 최대의 이단은 교리상의 이단이 아니라 형제를 사랑하 지 않는 이것이 최대의 이단이다. 산상 수훈에 나타난 기독교의 진 리, 그것은 사랑의 선포다. 기적을 믿는다든가 안믿는다든가 삼위 일체 신이냐 아니냐 이런 것이 중대한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은 사 랑이다. 내가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어찌 내가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할 수 있으리오.' 말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예배가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드려져야 하며, 또한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을 가리켜 제일이라고 한 것은 고린도 전서의 편지만의 특별한 점이 아니고, 모든 사도들이 받은 [영감의 일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 랑하라'하였고 요한은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은 사랑이라'하였 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하였습니다. 바울이 그러한 말을 한 것은 그패 사람들이 계명과 율법을 지킴으 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일을 사랑하게 될 때는 모든 율법을 다 지킬 수 있고 순종하게 될 것?니다. 사도 바울은 큰 은혜를 딨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예수님 이후 바 울처럼 큰 은혜 받은 종이 없습니다. 그는 신비한 체험을 다 하였 고 천국까지 갔다온 분입니다. 신유의 은사,예언 기도 능력이 있었 습니다. 당시 그 누구보다도 최고의 지식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

나 그는 오직 사랑만이 최고요, 믿음의 완성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분은 그런 말을 하였습니다. 바울이 그토록 큰 은혜를 받은 것은 고린도전서 l5장을 쓰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을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여도 땅엣 것을 가지고 살 수 있읍니 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으로 부터 사랑을 받고 살려 는 것입니다. 가정 생활에 가구.텔레비 젼,자가용,,, 보석없어도 살 수 있지만 사랑이 없으면 불화요, 모든 삶은 무의미 하게됩니다 오늘날 많은 여인들이 남편의 적은 돈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닙니 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사랑의 결핍입니다. 사랑없이 울고 있는 여인들이 얼마나 많이 있읍니까? 사랑이 없으 니 탄식이요 불행입니다. 아이들도 어린 시절에 사랑을 받지 못하 면 사랑의 결핍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온갖 사회악을 가져오는 것 입니다. 사랑의 빵을 먹어야 합니다. 빌리 그레함 목사의 설교 중에 어느 부부가 고아원에 가서 양자 를 삼으려고 아이를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좋은 방과 침대, 장난감 과 먹을 것이 넘치도록 안겨주었습니다. 그때 아이는 이것만으로는 고아원과 다를 것 없다고 울면서 고아원에 보내달라고 하더랍니다. 그러면 무엇이 필요한가 물으니까 '나는 사랑이 필요헤요'라고 말 했답니다. 그러므로, 곳곳마다 사랑 없어 탄식이요,사랑 없어 눈물이요,사 랑 없어 불행에 울고 있습니다. 지금 이 땅에 일으켜야 할 운동은 사랑의 운동인 것입니다. 도산 안 창호 선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이천만이 다 서 로 사랑하기를 공부하자. 그래서 이천만 한 민족은 서로 사랑하는 민족이 되자'고 부르짖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랑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을 프리 즘으로 비추어 보면 일곱 가지 색이 나오듯이 사랑에도 일곱 가지 특성을 볼 수 있습니다. '오래 참고 온유하며 사랑은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자랑하 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자기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 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오직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 라.'

 

첫째, 사랑은 끊임없이 참고 용서하는 것입 니다

 

사랑의 오래 참는다는 뜻은 대인 관계에서 오래 참는 것입니 다. 크리소스톰은 이 말의 뜻을 남에게 욕을 당하거나 손해를 본 사람 이 보복할 힘이 있으면서도 하지 않고 용서하는 것이라고 하였읍니 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 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 라.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하였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실천하라는 윤리 가운데 가장 실 천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면 바로 이 말씀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참고 용서하는 사랑을 십자가 상에서 실천하셨읍 니다. 원수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고 처형할 때 예수 님은 이떻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은 아지못하여 그러 하오니 저들을 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은 사랑을 용서로 표현 하셨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죽으면서도 원수들을 용서하여 주었습니다..주예 수여, 내 영흔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 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n하였습니다.

조셉 피커가 런던에서 스데반 설교를 할 때 불신앙 청년이 듣고 묻기를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스데반을 위해 무슨 일을 했느냐고 했읍니댜. 이때 조셉 피커는 떨리는 음성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스데반에게 자기를 돌로 치는 자들을 위하여 용서 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영감으로 대답한 것 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들의 잘못을 끊임없이 참고 용서하십 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51s절에서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 ?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 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 게 매는 띠니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사랑은 겸손히 섬기는 것입니다

 

질투하는 것은 사랑의 표시이면서도 시기는 사랑이 아닙니다. 교 만이나 자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남을 다 멸시하는 태 도입니다. 진정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이 잘 되는 것을 질투하지 않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교만한 자의 야심은 하늘까지 땋 으나 만족이 없고 사랑은 땅을 향해 겸손한 봉사로 만족한다'는말 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그의 사랑은 겸손히 제자들을 씻기는 것이었습니다. 교만은 섬김을 받으려는 것 이요, 사랑은 섬기는 겸손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어머니는 일생 동안 자녀들을 돕고 살피고 섬기는 종으로 사는 것을 보람으로 삼고 있습니다. 알버트 슈바이처가 5o여년 동안이나 아프리카에서 의사요. 선교사로서 헌신한 후에 한번은 그 검은 대륙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느 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슈바이쳐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 는 봉사할 수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에게나 족 한 행복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의 목숨을 많 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일생 동안 사랑으로 겸손을 나타내셨습니다. 사랑은 남을 유익하게 하는 것입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하 나는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고 자기의 특권을 생각하여 세상이 자기 에게 빚진 것처럼 구하는 사람입니다. 이와 반대로 자기의 의무를 생각하고 자기의 책임에 충실하며 자기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갚 지 못한 빚진 자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사랑은 받기보다 주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기 유익보 다 모든 사람의 유익을 구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도록 힘써야 합 니다. 어떻게 하면 줄까를 생각하십시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사랑을 주려고 할 때 그 가정은 진정한 행복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IO25 절부터 보면,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께 와서 어 떻게 하면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물을 때, ~이웃을 사랑하라., 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이웃을 사랑하느냐 ? ..는 질 문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대답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예루살 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갈 때 강도를 만나서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은 다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 은 가까이 가서 기름을 붓고 포도주를 부어 상처를 싸매고 나귀에 태워서 주막에 가서는 데나리온 둘을 주인에게 내어 주고 잘 돌보아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 비유는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의 선한 행동, 남을 유익케 하는,바로 주는 자의 모습입니다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어떤 가정에 불화가 있었습니다. 참으로 보기 딱한 모습입니다. 그 아내는 저에게 이렇게 말하 였습니다. 자기 남편은 철저한 에고이스트(Egoist) 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자기 중심, 자기 본위에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될 수 있는한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슬픔과 고통을 당한 자에게 위로를 주고, 기도하여 줄 수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죄와 허물로 죽은 영흔을 사랑해서 복음을 주어 영생을 얻게하는 것 이 최대의 사랑인 줄 믿습니다. 물질적으로 조금 구제하는 것보다 도 죽어가는 영혼을 전도하여 그 사람이 예수를 믿고 복음을 받아 영생을 얻게하는 것이 최대의 사랑인 것입니다.

 

셋째, 사랑은 허믈을 덮습니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남 의 잘못을 기억치 않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불행에 빠지거나 허 물진 소식을 듣고 은근히 기뻐하는 것이 인간의 얄팍한 마음들입니 다. 사람은 남의 행복을 시기하고 남의 불행을 겉으로는 동정하나 속으로는 쾌감을 느끼는 것이 보통입니다. 우는 자와 같이 울기는 쉬우나 웃는 자와 같이 웃기는 쉽지,않고, 남의 잘못됨을 듣고 속 으로 은근히 쾌감을 느끼는 악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남의 허물을 동정할지언정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신문이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들추는 일이 많습니다. 요즈 음 신문 읽을 거리가 없다고 합니다. 노파의 칼맞아 죽는 기사는 신 문 몇면을 몇일씩이나 기사화 하는데, 사회 구석의 명랑한 기사는 소개도 되지 않습니다. 미국의 어느 유명한 분이 사회의 밝고 아름 다운 면만을 기사화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신문 발행하다가 얼 마후에 망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럽니까 ? 밝은 면을 읽기 싫어하는 인간성 때문입니다. 고린도 같이 음난하고 도덕적으로 문란한도시에서 남의 잘못된 소식에 자기 우월감과 은근히 고소해 하는 악습이 있는 것을 알고바 울은 이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사실이라 하더라도 남의 추문이나 실패에 귀를 기울이거나 호기심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성도가 삼갈 것은 말씨입니다. 성도는 끊임없이 남의 허물을 보고 허물진 인간을 동정하고 안타까이 여기며 복음을 주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8절에,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lO12절에는,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가리우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l79절에 보면,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하였습니다.

잠언 l88절에,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불행한 사람은 남의 허물만 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가정에서 부부가 서로 허물을 보고 산다면 불행한 사람들입니다.왜 허물만 봅니까? 서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성공할 가능성을 보고 참고 기다리 십니다. 갈릴리 어부들에게서 제자될 소질을 보셨으며,백부장의 좋 은 점을 칭찬하셨으며, 창기에게서 성녀를 찾으셨습니다.그러면 이 런 사랑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H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이처럼 사랑하사' 여기에 비로소 사랑의 근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모든 시 랑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진정한 사 랑을 하나님께서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인간 자신에게서는 진 정한 사랑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 악하며, 타락하여 철두철미하게 이기주의자가 되어 버렸기에 인간 에게서 참된 사랑의 모습을 찾아낼 수가 었는 것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에로스의 사랑, 정욕적인 사랑입니다. 친구의 사 랑인 필레오의 사랑은 이기주의적인 사랑이요, 부모의 사랑은 스톨 게의 사랑으로 한정된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 의 사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인 것입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마 땅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사 사랑하여 주시는 참 사 랑이십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신앙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하나님의 지극 한 사랑을 체험하고 있는 성도입니다. 행복한 자녀는 부모님의 따 스한 사랑 속에서 자랍니다. 행복한 결혼은 서로 사랑하는 생활입 니다 호화 찬란한 축하 무드 속에서 웨딩마치를 울렸을지라도 남 편의 사랑 속에서 살지 못하고 눈물포 옷깃을 적시는 여인들이 이 땅에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하나님을 사랑하 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살아갈 때 참으로 행복한 삶이 될 것입니다.

 

김흥섭 판사에게 어느날 젊은 부부가 성격이 맞지 않아 이혼을 신 청하러 왔습니다. 이들은 아이 부양 문제와 재산 보상 문제로 서로 다투었습니다. 그때 김 판사는 이 아이를 누가 책임질 것이요,하였 으나 대답이 없었습니다. 아이에게 '너는 누구하고 살기를 원하느 냐?'물었습니다. 그때 아빠의 손과 엄마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 면서 ,함께 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 판사는 재판일정을 한 달 연기하기로 하고 성경 한권을 사주 면서, 고린도전서l=장을 하루에 세 번이상 한달 동안 1OO번을 읽 도록 요청하였습니다. 그들이 집에 돌아가 성경을 읽었습니다. 매 어 그들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욕심을 회 개하고서 이혼 소송을 취소하였습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사랑하기 위해서 입니다. 마음 속에서 사랑 을 잃은 사람은 사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하게 살든지,사업에 실패 를 하든지 어떤 경우에도 사랑에 실패하지 않는다면 프 인생은 성공 한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제 일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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