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마태복음

[마17:14] 무기력을 극복하려면

'코이네' 2021. 11. 21. 21:51

 

무기력을 극복하려면

 

본 문: 마태복음 17:14-20

 

 

예수님께서 세 제자와 더불어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 산 밑에 있었던 제자들은 귀신들린 아

이를 고치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 예수님께서 내

려 오셔서 그 아이에게서 귀신을 내쫓으시므로 그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이에 제자들이 낙담하여 조용히 예수님께 나와 여쭈어 보았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제자들에게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 사회에 만연한 악을 몰아내는데 있어서 무기력한 한국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왜 우리는 악을 몰아내지 못합니까?" 라고 조용히 예수님께 여쭈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 앞에서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며 숨어 있었던 이스라엘의 군인들처

럼 오늘 우리도 우리가 물리쳐야 할 사회악 앞에서 우리 스스로의 무기력을 한탄하면서 누군가

강력한 초인이 나타나서 이 악을 일소해 주기를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들은 스스로 믿음이 있노라고 자랑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책망하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무기력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대로 믿음이 적은 연

고일 것입니다. 소년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두려움 없이 적을 향해 나갈 수 있는 믿음이 적은 연고일 것입니다. 우리는 속히 이 믿음을 회복하여 우리의 사회에서 악을 몰아내야 하겠습니다.

 

무기력의 원인

 

우리는 먼저 우리의 무기력의 원인을 찾아내야 하겠습니다. 왜 우리는 악을 쫓아내지 못하는 믿음이 없는 무기력한 자들이 되었을까요? 몇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너무 악의 실체를 영적으로만 생각해 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악의 권세를 꺾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악을 이길 수 있다고 믿어 왔습니다. 우리가 기도만 하면 악의 존재들은 겁이 나서 도망간다고 생각해 온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만 부르면 악령들은 혼쭐 빠지게 도망갈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악령이 도망가면 자연적으로 우리 사회는 선하여질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봉사는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면 자연히 이 사회는 선하여질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사실상 우리 한국 교회만큼 열심히 기도하는 교회는 없을 것입니다. 한국 교회만큼 급속하게 성장하는 교회도 드물 것입니다. 한국 교회 교인들만큼 많은 시간을 바쳐 교회에 봉사하는 교회도 흔치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 사회에서 악이 사라지기는 커녕 점점 더 증가하고 있으니 어찌된 일일까요? 왜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는데도 악령들은 물러가지 아니할까요? 그것은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서 쫓겨나간 악령들이 믿지 않는 사회 속에 들어가 더욱 기승을 부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악마들이 처음에는 우리의 기도 소리에 놀랐다가 가만히 보니 기도 이외에는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아니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종이 호랑이로 보고 활개를 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개집 안에서 컹컹 짓는 강아지 정도로 생각하고 악

마는 마음 놓고 집안을 돌아다니며 휘젓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기도의 능력을 과소평가 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로 능력을 얻었으면 나가서 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소년 다윗의 믿음은 "믿습니다"하고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기가 친히 골리았을 향해 나가서 물매돌을 던진 것입니다. 악령은 기도로만 물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나가 직접 싸워서 물리치지 아니하면 악령은 도처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기도로 얻은 능력을 가지고 나가 우리 사회에 편만(遍滿)하여 있는 악과 맞서 싸워야 하겠습니다. 능력은 사용할 때 능력이지 사용하지 않으면 무능력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둘째로, 우리는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명분 때문에 잘못된 정치에 의하여 저질러진 사회악에 대하여 애써 외면하여 온 것이 오늘 우리의 무기력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야 된다는 명분이 사실상 성경에 근거하여 나온 것이 아닙니다. 성경 어디를 뒤져 보아도 그런 말은 없습니다. 성경은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 아래 모든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진리의 말씀이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정교분리(政敎分離)를 내세워 세상 정치가 어떤 악을 행하든 상관치 아니하고 교회당 안에서만 선을 행하려고 애썼던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은 교회에서만 갖기로 하고 세상에서는 신앙 없는 삶을 사는 이원적인 생활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그렇게 능력 있어 보이고 믿음이 있어 보이는 사람이 교회 밖에만 나가면 그렇게 겁쟁이고 그렇게 무기력해 보일 수 없습니다. 무기력한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더 약삭빠르고 더 이기적이고 거짓과 부정을 저지르는 있어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것입니다.

정치와 종교는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신앙과 삶을 분리시키는 일입니다. 우리가 정

치과 종교의 분리를 주장하면서 교회 안에만 머물고 있을 때 악은 정치를 통하여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치는 무엇이고 종교는 무엇입니까? 다같이 올바로 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것은 따로따로 떨어져 있을 성질의 것이 아니라 서로 밀접하게 관련을 갖고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치를 외면하여 있는 동안 그 악은 골리앗만큼이나 거대해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 눈치를 봐야하고 함부로 덤벼들 수 없을만큼 무서운 존재로 군림하게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거대한 악은 우리의 신앙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제 떨치고 일어나 소년 다윗처럼 신앙의 물매돌로 무장하고 나가 골리았을 향해 과감하게 도전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뜻밖에도 그렇게 거대하게 보이던 골리앗도 힘없이 나가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의 정치, 우리의 사회, 우리의 환경을 모두 지배하고 계시며

다스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 안에만 이루어져야 할 작은 나라가 아닙니다. 모든 사회 모든 사람 속에 이루어져야 할 나라입니다. 이런 사실을 분명히 아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은 반쪽 믿음입니다. 교회만을 위한 믿음일 뿐입니다. 그러니 믿음이 적을

수 밖에 없습니다. 역사 전체를 통찰 할 줄 아는 믿음이라야 온전한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이 적은 연고로 해서 오늘 사회악이 만연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과 대항하여 싸울만한 능

력이 없는 무기력증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겨자씨 믿음

 

우리는 이제 믿음을 회복하여야 하겠습니다. 반쪽 믿음이 아닌 온전한 믿음을 지녀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다고 하시면서 한 알의 겨자씨만한 믿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겨자씨는 가장 작은 씨이지만 그 안에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은 충만한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리 작아도 온전한 것입니다. 생명은 그 안에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을 낳을 수 있는 놀라운 생산력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이란 바로 이와 같은 생명력을 지닌 것을 의미합니다. 살아있는 믿음, 움직이는 믿음, 자라나는 믿음, 열매 맺는 믿음, 이것이 바로 겨자씨 믿음입니다. 그 믿음의 능력은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거대한 산과 같은 모든 악을 퇴치할 수 있는 능력이 그 안에 간진된 것입니다.

겨자씨 믿음은 하나님과 인간이 협력하여 이루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신 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홀로 일하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 인간을 통하여 그의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모세를 불러 그를 통하여 능력을 행사하시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를 통해 하늘의 능력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농사를 짓는 일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햇빛과 비를 주시면서 모든 생물을 자라게 하십니다. 그러나 농부가 일하자 않으면 기대한 추수를 거둘 수 없습니다. 농부가 부지런히 심고 가꾸고 일할 때 풍성한 추수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받아 리면서 그 능력을 가지고 나가서 일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능력을 우리에게 받아드리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능력을 주심은 그의 일을 대신하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능력을 힘입어 이 세상에 나가 악령들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사랑과 의와 평화를 이 땅에 실현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겨자씨 믿음은 바로 이런 협동하는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80주년을 지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기적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하고자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신다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이 사회악을 퇴치하기 위하여 우리가 마음을 모으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능력을 통해 이 사회 속에 깃들인 악령과 능히 싸워 이길 수가 있는 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만 기적을 볼 것이 아니라 이 사회 속에 나타나는 기적을 또한 보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제까지의 무기력을 떨쳐버려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겨자

씨 믿음을 가지고 나가 우리 앞에 험산준령처럼 버티고 있는 이 사회악에 맞서 싸워야 하겠습니

다. 그러나 겨자씨 믿음이 주는 교훈은 작은 일에서부터 차근차근히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혁명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서부터 출발하자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 우리는 통일과 경제정의 그리고 환경보전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다음 주일에 우리는 실천대회를 가지려고 합니다. 우리가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항을 만들고 이를 해 노력해 갈 것입니다. 작은 겨자씨처럼 출발하지만 마침내 그 출발은 거대한 산을 옮기고야 말 것입니다. 이제까지의 잘못된 관념을 버리고 온전한 믿음을 가지므로 능력있는 주의 일군으로 새 역사를 창조해 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