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소선지서

[욘2:8] 감사와 거룩 _ 김기홍 목사

'코이네' 2021. 8. 17. 20:10

감사와 거룩

본문 : 요나 2:8-9

설교 : 김기홍 목사

 

 

대학생 때의 일이다. 대학합창단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중 소프라노 한 사람이 서울음대 오페라의 주역으로 나가게 되었다. 돈이 없던 남학생들 몇이서 꽃을 구하러 가을 산으로 갔다. 마침 각종 들꽃이 아름다움을 찬란하게 발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름다운 꽃들만을 골라서 한 짐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버스 운전사와 싱강이를 벌린 끝에 겨우 싣고 공연장으로 달려갔다.시간은 이미 끝날 때가 되어서 우리는 곧장 무대 뒤로 꽃짐을 메고 그녀에게로 갔다. 그러나 아풀사, 이게 웬일인가! 정말로 "들꽃처럼 시든다"는 말대로 그렇게 빛나던 꽃들은 몇 시간 뒤에 모두 다 말라서 건초더미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준비한 사람들은 너무도 부끄러웠다. 받는 사람이 아무리 고맙다고 외쳐도 우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를 도망쳐서 나왔다.

 

산에서는 그처럼 아름다웠던 꽃들이 우리 손에 오니 마른 풀로 변해버린다. 왜 그 생기와 아름다움이 유지되지 못하는가? 그것이 들꽃의 생리이다. 뿌리로부터 진액이 끊어지면 너무도 쉽게 시드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놀라운 교훈을 받는다.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모든 것이 그러하다. 아름다운 모든 것이 우리 손에 넘겨지고 나면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변하고 만다.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자기가 수고해서 얻은 것을 자기의 공로로 돌린다.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은 그 즉시 그 사람 스스로가 만든 것이 되고 만다. 그러니 거기에 무슨 영원한 의미와 영적인 생명을 줄 수 있겠는가! 마치 들꽃이 대지와 단절되고 즉시 시들듯이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이 그 생기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자기가 누리는 모든 것이 어디서 왔는지 깨달아야 한다. 감사함으로 받은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된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은 하나님의 생기와 능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 효력을 그대로 사용하는 사람의 삶은 세상 사람들과는 그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에게는 가진 모든 것이 그를 행복하게 하고 살게 하고 강하게 한다.이것은 절대로 관념적인 차원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도 감사함으로 받지 않으면 아무런 효력이 없듯이 세상의 모든 것들도 하나님의 선물로 감사로 받아야 그 효력이 나오게 된다.

 

모든 축복은 감사하기 전에는 절대로 축복이 될 수 없다. 이것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느낌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러면 영적인 힘은 그 축복과 함께 움직여 들어오는 것이다.열 사람의 문둥이가 고침을 받았다. 그러자 모두 다 달려가고 단 한 사람만이 고치신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왔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격한 마음으로 엎드려 감사하였다. 열 사람이 고침을 받았지만 정말로 고침을 누리는 사람은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의 감사로 인해서 그가 받은 것은 영적이고 초자연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하나님의 선물은 영원히 그의 것이 되었다.다른 병나은 이들은 그저 보통 사람들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것으로 끝이었고 세상에서 죄 속에서 고통하고 살 것이다. 그러나 이 한 사람, 감사하는 이는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가 된다. 그는 자신의 병나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연결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기는 계속 그의 속에 머물러서 건강만 공급할뿐 아니라 삶 전체를 축복하고 있었다.

 

그리스도를 보자. 그는 언제나 받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보리떡 다섯 덩어리를 받아들고 감사하였다. 비록 그것이 사람의 손을 통해서 전해졌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자 그 떡은 하나님의 떡으로 바뀌고 위대한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수천명이 먹고도 남을 만큼이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바로 영적인 삶의 비결을 발견하게 된다.모든 세상의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그리고 그것들은 사람들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이상한 것이다. 일단 사람의 손에 가면 모든 것이 생기를 잃는다. 그리하여 겉모습은 그대로 있되 생명은 없어지고 만다. 그러기에 바울은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그들이 죄지은 인간들의 손에 의해 모두다 썩어짐의 종노릇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세상의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인간의 손에 들어가면 소유자의 도구가 될뿐이지 본래 창조의 목적과 힘은 잃어 버리고 만다. 이것은 아무에게도 예외가 없다. 악한 인간에게는 재물이 악한 것이 되고 권력도 악 자체로 변하고 만다. 누가 주인인가에 따라서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함께 선한 도구도 되고 악한 도구도 된다. 그러니 이 피조물들이 얼마나 원통한 마음을 품겠는가!

 

그러나 일단 하나님의 자녀의 손에 잡혀지면 그때부터는 의미가 달라진다. 그리고 만약 그 자녀가 믿음의 지식으로 충만하다면 더욱 놀라운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게 잡힌바 되면 기적으로 변하며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데 사용이 되는 것이다. 피조물들에게야 이 일을 위해서 사용되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은 있을 수 없다. 그들이 무감각한줄 아는가"우리가 영적인 귀가 있어서 우리 소유의 탄식을 듣는다면 재미있을 것이다. "우리 주인은 술마시고 접대부에게 팁주는데 우리를 사용한다." "우리 주인은 도박하는데 우리를 이용한다." "우리 주인은 못된 자기 과시하는데 우리를 쓴다." "우리 주인은 일하기 위해서 하기는 하는데 영혼 구원하는데는 별로 사용을 하지 않는다.""우리 주인은 자기 몸에만 돈을 쓴다."그렇게 재물을 사용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할리가 없다. 자기가 잘나고 똑똑해서 그런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그 모든 소유는 소유자의 수준으로 떨어져 버리고 만다. 거기 무슨 힘이 나오고 거기에 무슨 생명력이 나타나겠는가! 그저 자기 자신과 함께 썩어가는 재물만이 있을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명 없는 재물은 자기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본래는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굉장한 효력을 가진 것이 우리 손에 들어오면서 영적인 힘은 모두다 잃어버린다는 말이다. 왜 그런가? 하나님으로부터 그것들이 왔다는 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확인하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재물이 고귀함을 알고 어떻게 사용할지도 알게 된다. 그러나 자기가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영적인 의미는 사라진다.그것은 훌륭한 디자이너의 야외복을 일하는 가정부의 옷으로 주어 버리는 것과 같다. 아무렇게나 관리해서 마구 입고 뒹글 때 그 옷의 생명은 모두 사라지고 만다. 도대체 훌륭한 작품이 땀에 절고 아무렇게나 걷어부친 그에게 무슨 존재 의미가 있겠는가. 옷이 말을 할 줄 안다면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로 우리 소유 전체가 탄식할지도 모르지 않는가!그러나 어느날 주인은 누구에게서 그 옷의 진가를 들었다고 치자. 자세히 그옷의 브랜드를 살펴보고 놀래서 그 옷을 다시 찾는다. 조심해서 세탁을 하고는 전문가에게 부탁해서 옷을 손질한다. 잘 모셔놓았다가 큰 파티가 열렸을 때 그 옷을 입고 나간다. 그 때 옷은 진가를 발휘하게 되고 모든 보는 사람들은 입은 사람의 아름다움을 찬양한다. 이것이 옷이 만들어진 목적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를 돕기 위해서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주었다. 우선 확실하게 알아야 하는 것은 그것이 최고의 디자이너의 손으로 만들져서 내게 특별히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이 깨달음은 우리에게 그 받은 것을 감사하는 마음을 준다. 그리고 받은 것을 고귀하게 생각하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 창조주의 생기는 여전히 그 주신 선물 안에 남아 그것이 살아있게 한다.그리하여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의 것처럼 되어 위대한 능력을 발하게 된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선물들이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보잘 것 없는 것도 하나님이 직접 그것을 사용하는 것처럼 놀라운 일을 만든다. 기적을 만들 수도 있다. 그 물건이 위대하고 재산이나 권력의 힘이 강해서가 아니다.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믿음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노만 필 목사가 젊은 나이로 뉴욕주의 시라큐즈 교회에 부임했을 때는 미국의 불경기 시절이었다. 교회는 당시 돈으로 5만 5천불의 빚을 지고 있었다. 당연히 목사의 봉급은 약했다. 매월 이자로 나가는 돈이 대부분이었다. 이 한심한 상황에서 그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기회를 주신 것을 감사했다. 그러나 상황은 대단히 어려웠다. 직분 맡은 이들은 누구나 이 빚에 눌렸다.그는 제직들에게 해결책을 짜보라고 했다. 그들은 5만 5천불이 너무 많으니 우선 2만불만 해결해 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목사는 2만불이라도 모금하기 위해서 그 교회에서 가장 사업을 크게 잘하고 헌금도 많이 하는 교인부터 만났다. 그리고 얼마나 낼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뜻 밖이었다. "한 푼도 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목사의 평생의 의식을 바꾸어주었다.그는 함께 기도하자고 했다. "오 하나님, 이 젊은 목사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가 전의 사람들이 하던 것처럼 2만불만 갚으려고 소극적으로 나간다면 저는 아무 것도 내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그가 만약 용기를 내어 5만 5천불 전체를 갚으려고 결심한다면 저는 5천불을 내 놓겠습니다." 과연 크게 성공한 사람은 그만큼 생각이 컸던 것이다. 생각은 곧 그 사람이 아닌가.그리고는 교회에 있는 한 의사를 찾아가라고 했다. 그에게 5천불을 요구하라고 했다. 목사는 그렇게 말하기가 무서웠다. 5백불이나 기껏해야 천불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그 사업가의 믿음을 따르기로 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5천불을 말했다. 의사는 놀라는 얼굴이었지만, 기꺼이 5천불을 내겠다고 말했다. 여기로부터 시작이 되어 빚은 모두다 갚아지고 교회는 부흥되었다.

 

그는 확실히 알았다. 역경도 감사의 대상임을. 오히려 역경은 하나님의 창조를 발휘하게 하는 기회가 아니던가! 그것도 감사함으로 받아서 하나님과 함께 멋있는 미래를 열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고 하지 않았던가. 기회를 주시니 감사한 것이다.요나의 경우를 보라. 그는 하나님을 거역하였다. 하나님이 가서 외치라고 했지만 그는 반대로 다른 곳으로 갔다. 풍랑이 일고 그는 바다에 던져졌다. 그의 몸은 물고기가 삼켰다. 이제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그가 얼마나 더 버티겠는가? 이것이 바로 순수한 의미에서 절망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에 도달하는 경우가 가끔은 있다. 요나같은 선지자도 그랬으니까.그러나 그는 그러한 역경 속에서 감사의 찬양을 한다.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 .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아직 물고기의 뱃속에 있으면서 그는 감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건지심을 믿음으로 보고 있었다. 그는 생사의 모든 권한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그리고는 외친다.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립니다."

 

그렇다. 불신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버려서 무가치한 것으로 만든다. 그러나 신자는 하나님께 감사의 목소리를 높인다. 그는 자기 신앙의 결론으로 찬양을 마친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예수 그리스도는 죽은지 나흘된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감사했다. 자기에게 기회를 주신 것을 그리고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을 감사했다. 그가 외칠 때 시체는 벌떡 일어나서 수의를 입은채 나왔다. 여기서는 아무 것도 받은 것이 없었다. 단지 환경, 그것도 절망적인 환경뿐이었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생기를 주셔서 자신을 통해 호흡하심을 안다.성경의 모든 인물들은 그리스도처럼 감사하면서 모든 복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확인하였다.

 

감사함으로 복을 받는 것으로 그치는게 아니었다. 그 복과 함께 하나님을 그대로 받는 것이었다.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니 모든 것이 거룩한 것이다. 음식, 의복, 집, 사업, 작품, 사랑하는 이들, 모두가 감사함으로 받으면 거룩한 것이 된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처럼 된다.이렇게 되면 모든 만물이 하나님처럼 우리를 대할 것이다. 보라. 느끼라.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찬란한 모습을. 그의 사랑을. 그리고 그의 권능을. 이제 감사하며 사용하는 사람은 언제나 세상 만물에서 하나님과 일하게 된다. 이제는 세상이 모두다 다정한 모습으로 바뀐다. 역경도 풍파도 더 이상 전처럼 무서운 얼굴은 아니다. 우리를 훈련시키는 하나님의 얼굴일 뿐이다.이야기를 정리하자. 우리가 받은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감사하면서 받아야 한다. 성찬을 받는 마음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감사와 기쁨으로 받자. 그러면 하나님의 생기가 거기 살아서 숨쉬며 나의 삶을 그 수준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감사함을 언제나 느낀다면 하나님을 그대로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소유와 삶 전체는 거룩한 것으로 펼쳐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