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들의 용납
본 문 : 레 12:1-8
요 절 : (레12:8) 그 여인의 힘이 어린 양에 미치지 못하거든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하나는 속죄 제물로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할지니 그가 정결하리라
산모가 아이를 낳은 다음에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할 이유는 무엇이었던다? 출산하게된 것이 진정 죄가 되기 때문에 죄를 용서받기 위해 희생물을 가지고 제사장을 찾아가야 했던가? 출산은 죄가 아니었다. 단 산모로서 피흘린 몸이 되었기 때문에 그 몸의 정결의 예식(禮式)으로 본문의 속죄제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의 깊게 집중시키는 말씀은 산모가 양 한 마리를 바칠 형편이 못되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져다가 한 마리는 번제물로, 한 마리는 속제 제물로 드릴 수 있도록 허용한 점이다. 그럴 때 제사장은 그 산모의 죄를 속해 주면 그 산모는 정결케 될 수 있다는 규례다. 철통 같은 율법이었지만 가난하고 고단한 심령에게 가능한 길을 열어주었던 점이 가슴에 와닿는다.
1. 비둘기는 어린 양을 살 수 없는 가난한 자들의 제물.
속죄의 제사는 언제나 어린 양을 제물로 바치면서 진행되었던 소중한 예전이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에게 한 마리의 양을 바친다는 것은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비둘기를 제물로 용납하셨다. “(레5:7) 만일 힘이 어린 양에 미치지 못하거든 그 범과를 속하기 위하여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여호와께로 가져 가되 하나는 속죄 제물을 삼고 하나는 번제물을 삼아.” 여기서 하나님은 제물의 질을 보지 않고 예배자의 심령을 보셨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정신의 속죄 제물에 관한 규칙들은 갈보리 산에서 이루신 그리스도의 희생과 관련이 있다. 예수님의 희생은 가장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에게까지 그 효력이 미친다. 누구에게든 그가 너무 가난하기 때문에 그 구원의 효력이 미치지 못하는 법은 없다. 오히려 복음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세상의 물질이 넉넉하지 못하였던 사람들에게 선포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값비싼 양으로 제사를 지내면서 하나님 앞에 교만한 사람보다 두 마리의 비둘기를 들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무리를 오늘도 원하신다.
2. 연약하여 쓰러지셨던 희생양을 보라.
손쉽게 생명을 끊어 제물로 삼을 수 있었던 비둘기를 명상해 보라. 몸부림도 고통의 함성도 지를 겨를도 없이 순간적으로 희생물이 되어버린 연약한 그 제물을 상상해 보라. 그리고 골고다 언덕을 십자가를 지고 오르시다가 쓰러지고 또 쓰러지셨던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나약성을 상징할 수 있다. 연약해서 쓰러지시면서 나아가 드렸던 십자가 위에서의 희생 제사는 제사장들이 황소로 드렸던 제사와 비교할 수 없다.
문제는 희생 제물이 얼마나 많고 화려한가에 있지 않다. 누가 어떠한 믿음과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가 하는 것이 문제다. 아무 것도 손에 든 것이 없이도 주님의 옷만 닿아도 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깊은 신앙을 소유했던 여인이 곧바로 깨끗함을 받지 않았던가?
(마9:19)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 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마9:20)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마9: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마9: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3. 아기 예수와 함께 드렸던 빈약한 제물.
요셉과 마리아는 산후 40일이 되었을 때 오늘의 본문대로 정결 예식을 위해 성전으로 갔다. 그리고 주께 아기 예수를 드리는 예식을 갖기 위해 성전에 갔던 것을 읽게 된다. 이때 그들이 비둘기를 제물로 드렸던 기록이 오늘 말씀과 깊은 연관이 있다. (눅2: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대로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 둘로 제사하려함이더라.
비록 죄가 없으신 몸이었으나 세상 죄를 담당할 몸이셨기에 그는 겸손히 속죄제에 함께해야 했었다. 그는 법이 허락하는 가장 빈약한 희생을 드렸다. 그는 부한 자의 제사의 모습이 아니라 빈약한 제물을 드리는 제사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러나 그가 비웠으므로 우리는 채워졌고, 그가 가난해졌으므로 우리는 부자가 되었다. 그가 사람이 됨으로 우리는 신적인 존재가 되었다.
적용.
1) 복음은 가난한 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오늘 한국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이 들어가기에 문턱이 너무 높다는 말이 들린다. 주위를 돌아보자.
2) 우리는 스스로를 비워 가난해지는 법을 배워야 복음의 능력이 나타난다. 복음은 풍요로운 육신의 삶보다는 청빈한 삶 속에서 더욱 빛난다.
3) 연약한 제물로 드려졌던 주님의 속죄의 제사가 영원한 희생 제물로서 우리 죄를 속해 주심을 깨닫는 신앙이 시들지 않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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