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출산의 비밀을 아십니까?
(출산의 규례)
본문/ 레위기 12:1-8
설교 : 황권철 목사
당신의 생명은 하나님의 장중에 있습니다.
옛날 우리의 조상들을 참으로 지혜로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전만 해도 오늘날 우리들 같이 안방과 거실과 식당이 따로 있는 문화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주로 방 하나에 대가족이 한 이불 아래서 생활하는 때입니다. 밤에 이불을 깔면 안방이고, 아침에 밥상을 펴면 식당이고, 저녁에 이웃 손님이 오면 응접실이 되는 시절입니다. 대부분의 가정에는 삼대 혹은 사대가 함께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 며누리가 해산을 하게 되면 씨아버지는 왼쪽으로 새끼를 꼬아서 싸리문 양 담벽에 대나무 둘을 꼽아서 아들일 경우에는 빨간 고추를 달아 매고, 딸일 경우에는 실패를 달아 둡니다. 이것은 이웃에게 출산을 알리는 소식인 동시에 어린 아이와 산모가 정하게 되기까지 출입을 삼가해 달라는 일종의 신호입니다. 이것은 미신적인 행위가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아름다운 삶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3500여년 전부터 이러한 것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유대인들에게 이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광야를 여행하는 성민 이스라엘 백성에게 출산을 통해 생명의 신비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산모가 자식을 놓으면 일정한 기간 동안에는 외부의 접촉을 피하고 자신을 정결케 한 후에야 이웃의 사람을 만나고, 성전에 출입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러한 규례를 지키게 했는가? 아이를 출산은 산모나 태어난 아이는 일생중에서 가장 연약한 때입니다. 산모는 복중에 있는 자식에게 일년동안 자신의 진액을 빼앗겼으며, 태중의 아이는 출산과 함께 탯줄이 끊기는 순간 부모의 생명과 단절된 독립된 생명체로서 이젠 자신의 힘으로 호흡을 하고 젖을 먹어야 하는 고통의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산모와 아이가 외적인 것으로부터 면역성이 가장 약한 때입니다. 이것이 정상으로 회복되는 기간이 1-2개월 정도 걸립니다. 그래서 이러한 때에는 어떠한 자도 만나지 못하게 하며, 그처럼 엄격한 안식일이지만 출산한 산모에게는 성전 출입을 금하신 것입니다.
당신은 출산의 비밀을 통하여 복음의 진리를 깨닫아야 합니다. 생명의 신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게 됩니다. 복음의 핵심은 사랑이요, 기독교 교리의 핵심도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부정한 몸에서 태어난 생명이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존귀하게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언약의 반열에 세워서 할례를 행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정결케하는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게 하셨습니다.
첫째: 왜 출산한 산모가 부정한가?
읽을말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여인이 잉태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칠일 동안 부정하리니 곧 경도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1-2)
왜 출산한 산모를 부정하다고 했는가? 이것은 레위기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레위기의 총주제가 거룩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천지창조시 하나님은 생육하는 것을 복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세기 1:28)고 했습니다.
그러면 왜 복된 생육이 부정한 출산으로 바뀌었는가? ① 출산이 고통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창세기3:16)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파괴한 인간에게 복된 생육이 고통으로 바꾸어진 것입니다. 여인이 자식을 잉태하는 순간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많은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해산할 때는 고통중에서 출산하게 합니다. ② 해산의 고통은 산모의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죽기에 임하여 그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 아비가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창세기 35:18)고 했습니다. 해산의 고통은 한 생명이 태어남으로 한 생명이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구속적인 죽음을 해산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로마서 4:19). ③ 자연적인 출산은 영적으로 죄악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에서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편 51:5)고 했습니다. 죄인이 죄 많은 세상에서 죄인을 낳은 것은 영적으로 부정한 것입니다.
얼마전 신문과 방송에 보도된 바 있었던 여중생이 등교길에서 출산의 진통이 와서 도로가에 있는 집으로 들어가서 화장실에 출산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와 유사한 사건이 몇 차례 보도된 바 있었습니다. 이 보도를 접하는 순간 많은 사람이 그 소녀에게 냉대와 비소로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학생 아닌 산모와 어린 아이에게 가장 먼저 따뜻한 사랑과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 행위는 비도덕적이어서 부정하지만 그 몸과 어린 생명은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보게 됩니다. 생명은 존엄한 것이므로 철저하게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둘째: 왜 자식에게 할례를 베풀어야 하는가?
읽을말씀☞ “제팔일에는 그 아이의 양피를 벨 것이요, 그 여인은 오히려 삼십삼일을 지나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 여자를 낳으면 그는 이칠일 동안 부정하리니 경도할 때와 같을 것이며 산혈이 깨끗하게 됨은 육십육일을 지나야 하리라”(3-5)
할레는 태어난지 팔일만에 남자 아이에게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면 왜 남자에게만 할례를 행하게 하셨는가? 그것은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한 것도 아니요,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아담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으로 하와는 자연이 연약의 반열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하와가 범죄했어도 그 책임은 아담에게 있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연합하는 순간에 한몸이 된 것입니다(창세기 2:23). 그러므로 여자의 머리이신 남자만 행하면 됩니다(고린도전서 11:3). 그러면 왜 할례는 팔일만에 행해야 하는가? 그것은 생후 팔일이 출혈이 가장 적고 회복이 빠르다는 것입니다. 현대의학이 최근에 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미국 뉴욕에 있는 시내산 병원 연구에 의하면 유대인은 포경수술을 해서 유대인 여자들 대부분은 자궁암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면 영육간에 복입니다.
할례에 숨은 영적인 의미는 이러합니다. ① 하나님의 자녀된 인침의 증거입니다. 할례는 아브라함 시대에 성민에게 주어진 제도입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언약이니라”(창세기17:10-11)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해가 않되어도 지키면 복입니다. ② 유월절 먹을 자격을 얻습니다. 모세의 출애굽 시절에 할례를 받은 자만이 유월절을 먹게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회중이 다 이것을 지킬지니라, 너희와 함께 거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 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출애굽기 12:47-48)고 했습니다. ③ 중생의 증거로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여행하면서 할례가 신약의 세례로서 중생을 의미하는 것을 미리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신명기 10:16)고 했습니다. 모세는 할례의 외적인 증거보다는 내면적인 숨은 뜻을 더욱 중시했던 것입니다.
할례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베푸는 언약의 표시입니다. 타락한 백성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구약에는 할례라는 예식으로 신약에서는 세례라는 성례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호력이 없되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갈라디아서 5:6)고 했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세상에 그 어떠한 세력도 이 언약을 깨뜨릴 자가 없습니다(로마서 8:35-39).
셋째: 왜 그들이 번제와 속죄제를 드렸야 하는가?
읽을말씀☞ “자녀간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거든 그 여인은 번제를 위하여 일년된 어린양을 취하고 속죄제를 위하여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취하여 회막문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 앞에 드려서 여인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리하면 산혈이 깨끗하리라 이는 자녀간 생산한 여인에게 대한 규례니라, 그 여인이 힘이 어린양에 미치지 못하거든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새끼 둘을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제물로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가 정결하리라”(레위기 12:6-8)
산모가 정결한 규례는 이러합니다. 남자 아이를 낳으면 칠일간 부정하여 외부와 접촉을 피합니다. 그러다가 삼십삼일이 지나면 산혈이 그치고 깨끗해져서 제사장에게로 가서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게 합니다. 여자 아이를 낳았을 때는 그 기간을 배로 합니다. 하나님이 연약한 여자에게는 더 큰 긍휼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 여인이 드리는 제사는 이러합니다. ① 번제를 드립니다. 번제는 완전히 태워서 드리는 온전한 희생제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편에서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갈보리에서 단번에 돌아가심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신 완전한 제사입니다. 번제를 드릴 때 여인은 온전한 헌신을 다짐합니다. 그 인생의새로운 삶을 헌신하고 결단합니다. ② 속죄제를 드립니다. 속죄제는 허물과 죄를 속하는 성막 밖 재버리는 곳에서 태워서 드리며, 제물중 일부만 번제단에 올려 드립니다. 이것은 인간 편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어떠한 죄라도 씻음받은 속죄의 은총을 누리는 죄용서함 받은 기쁨의 삶을 누리는 것입니다. ③ 이 제사에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여인의 힘이 여기에 미치지 못하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새끼로 드리게 했습니다. 주님이 이 땅 위에 오셨을 때 가난한 목수의 가문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모세의 법을 따라 결례의 날이 차매 예루살렘에 갔을 때 비둘기 한쌍이나 반구(산비둘기)둘을 가지고 제사하려 갔습니다(누가복음 2:22-24).
당신의 생명은 번제와 속죄를 통해서 거룩하고 성결해집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가난하고 연약한 상태를 아시나 반드시 피흘리는 제사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구원이없음을 가르칩니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 즉 죄사함이 없느니라”(히브리서 9:22)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생명은 참으로 존귀합니다. 왜 생명이 존귀한가? 생명의 주관자가 존귀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장중에 있습니다. 부정한 몸이지만 생명은 존귀합니다. 그래서 선택된 백성에게 할례를 받게 했습니다. 할례받은 언약의 백성들은 번제와 속죄제로 구별된 삶을 살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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