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신명기

[어린이주일 설교] 아이들에게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

'코이네' 2014. 5. 2. 14:18

어린이주일 설교, 신명기 6장, 아이들에게 마땅히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할 세 가지


 

제목 :  " 가르쳐 지키게 하라 "
 본문 :  신명기 6:1-9
 설교 :  장명하목사
 날짜 :  2000.  5.  7. 주일낮
 
 
  고대에서 현대까지의 가정의 주도권은 가장 이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에는 밥상 앞에서 아버지로부터 예의범절에 대해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밥을 먹을 때는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들고 반찬에 손을 댄 후에 수저를 든 다든지, 밥을 먹을 때는 소리를 내서 먹어서는 안 된다든지, 자기 입에 맞는다고 한 음식만 먹어서는 안 된다는 등의 설교를 듣고야 밥을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본문은 가정교육의 중심에 서있는 부모에게 주는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입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치 않습니다. 이 말씀으로 무너져가는 가정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어린이의 인권이 무시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가장의 권위가 무너져도 안되기 때문입니다. 맹수인 사자나 호랑이는 새끼를 약하게 키우지 않습니다. 약한 새끼는 과감히 포기해 버립니다. 맹금류인 독수리도 새끼를 훈련시킬 때는 무섭게 다룹니다. 과잉보호 속에 이기적이고 가치관을 상실한 우리의 자녀들에게 성경이 명하는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합니다. 이 사회의 혼돈은 학교 교육의 부재에서라기보다는 가정 교육의 부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1절에 보면 『이는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 명하신 바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여기에서 명하는 것은 명령이기도하고 규례이기도하고 법도이기도한 삼중적인 의무라고 하겠습니다.

   첫째 -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 (4-5절)

  천지가 없어져도 변함없는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학설도 변하고 학문도 변하고 유행도 변합니다. 심지어는 가치관도 변합니다.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벧전2:24』하였습니다.

  사람의 오만과 방자함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비롯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시14:1).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며(잠9:10), 참 지식의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잠1:7).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행복의 으뜸 되는 비결입니다.

  이 말을 다른말로하면 예배에 성공하라는 말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사랑을 받으십니다.

  성경의 분량이 방대하고 난해한 곳이 많지만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워낙 빈틈이 없으니까 율법사 중에 가장 똑똑한 자를 선발하여 예수님께 어려운 질문을 하여 콧대를 꺾고자 하였습니다(마22:34-40). 율법사의 질문하기를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라고 묻자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이웃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즉,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성경의 중심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에는 무제한적이고 무조건적입니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은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조건이 없습니다. 무조건적입니다. 이 말을 현대적의미로 바꾸면 아이들이 예배에 대해서 알든 모르던 상관없이 예배에 참석 시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환경과 어떤 조건이 이유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에는 어떤 제한도 어떤 조건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입시생에게도 전쟁터에서도 예외가 없습니다. 목숨이 위태로워도 해야합니다. 불이익이 와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웃을 사랑하는데 에는 기준이 『자기 몸』입니다. 내가 배고프면 상대방도 배고픈 줄 알고 내가 싫어하는 일이면 상대방도 싫어하는 줄 알아라 는 것입니다. 이기심으로 뭉쳐있는 아이들에게 이웃 사랑의 계명은 중요한 일입니다.

   둘째 - 역사의식을 가르쳐라 (1절)

  1절에 『규례』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가 잘 알 듯이 유대인들에게는 『탈무드』라는 거대한 책이 있습니다. 탈무드는 유대의 역사를 잘 요약해 놓은 것입니다.

  기독교는 역사적인 종교입니다. 미신과 고등종교의 차이는 역사의식이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신은 과거 현재 미래가 없고 항상 현세적 기복주의적입니다. 기독교는 역사를 중시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역사 가운데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육의 맹점 가운데 하나가 역사교육의 부재입니다. 남의 말인 영어는 잘 알면서도 자신의 역사에 대해서는 너무 무지합니다. 컴퓨터는 잘 다루면서 최근세사도 모릅니다. 이는 마치 뿌리 없는 나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를 통해서 좋은 것은 본받고 잘못된 것은 버릴 수 있습니다. 역사 안에서 우리는 많은 교훈을 받게 됩니다. 역사 의식을 가질 때만이 우리의 바른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방향을 설정할 수 있게됩니다. 역사의식이 있어야 발전이 있습니다. 잠언 29:18절에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하게 행하거니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묵시를 역사의식으로 바꾸어도 손색이 없습니다. 묵시는 『꿈』 혹 『비전』입니다.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자만이 꿈을 가질 수 있고 비전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 준법정신과 예절을 가르쳐라 (1절)

   1절에 『법도』라는 말이 나옵니다. 오늘날 법질서의 문란은 심각한 수준에 와 있습니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법은 필요합니다. 법의 정신은 강자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약자를 위해 있습니다.

  십계명은 세 가지의 질서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첫째가 대신관계요, 둘째가 대인관계이고, 셋째가 대물관계입니다. 우주천체에는 규칙이 있고, 비행기에는 항로가 있고, 배는 선로가 있고, 기차가 철로가 있으며, 자동차는 도로가 있듯이 인간이 사는 곳에도 법이 있게 마련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늘나라의 법과 세상법 둘 다를 준수할 의무가 있습니다. 전도를 나가보니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 가정적 의무에 불성실한 것 때문에 호감을 가지지 못한다는 평을 들을 때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린이 주일을 맞이해서 아이들의 기만 키워주려고 하지 말고 마땅히 가르칠 것을 가르치고 지킬 것은 지키게 해서 하나님이 만드신 행복한 가정 천국을 만들어갈수 있도록 어릴 때부터  철저한 교육을 시켜야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요 규례 법도이기 때문입니다.

 




by 코이네 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