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출애굽기

[출32:1] 믿음의 다른 이름 세 가지

'코이네' 2020. 8. 17. 21:33

믿음의 다른 세가지 이름
본 문 : 출 32:1-35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항상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은행장을 담임 목사님이 만나러 은행장실을 찾았습니다. 문에는 하얀 종이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비서가 지금 30분 가량은 대통령이 와도 못 만나는 시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비서가 말했습니다. “우리 은행장님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이렇게 흰 종이를 문밖에 붙여 놓고 기도하시는데 그때는 누구도 만날 수 없습니다.” 목사님도 밖에서 기도하다가 만나고 돌아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늘 의지하고 기도하는 삶은 믿음의 사람의 특징입니다.

본문으로 들어 갑니다. 모세는 40일 금식기도를 하며 세 가지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1.613가지 율법
2.성막
3.십계명
모세는 자기를 환영하는 소리거나 전쟁에서 승리한 소리인지도 모른다고 착각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려와 보니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절하고 있는 소리였ㅅ브니다. 모세가 산위에서 하나님과 장엄한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을 때 밑에서는 하나님과 이별하는 이혼식을 거행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모세의 믿음의 다른 면이 나타났습니다. 믿음의 다른 면이 보입니다. 믿음이 있는 자에게는 다음과 같은 역사가 나타납니다.

 

1. 믿음의 다른 이름은 인내입니다.

 

모세는 40일을 금식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확실한 은혜를 우하여 오직 기도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산위에서 혼자 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공동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를 먹으면서 살았습니다.
누가 먼저 지쳐야 합니까? 말할 것도 없이 모세부터 지쳐야 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끝까지 참고 승리하고 내려오는데 백성들은 모세를 기다리지 못 하고 우상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출32: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있는 산에 올라 오지도 못하게 엄명을 내리셨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1) 굶어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물도 음식도 없는 산꼭대기이기 때문입니다.
2) 불에 타죽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10계명을 주시는 동안에 계속 번개와 불을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밑에서 보니 늘 불이었습니다.
3) 목말라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산밑에서 물문제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는데 산위에 오죽하였을까하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4) 모세는 도망갔을지도 모릅니다. 자기들이 너무나 말을 안 듣고 속썩인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모세가 40년간 살았던 고향과도 같은 미디안이 바로 앞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5) 에녹처럼 승천하였을 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같이 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승천시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이유는 모두 핑계입니다. 모세가 있는 곳에는 늘 옹기점같은 불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출19:18)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
하나님이 십계명을 주시는 표시였습니다. 얼마든지 찾아 갈 수 있습니다. 가까이 가서 모세를 불러 볼 수도 있습니다. 몇 시간동안 몇 명만 수고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은 믿음이 없으니까 인내심도 없었습니다. 믿음의 다른 이름은 인내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 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그래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실상을 기다리면서 이루어질 때까지 인내로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믿음을 이렇게 정의하였습니다. “믿음이란 참외씨를 보면서 참외먹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모든 것을 참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인내합니다. 이루어질 때까지 결코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시간표를 따라서 기다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산위에서 40일동안 기도하고 있을 때 39일째 되는 날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하루만 더 참았더라도 3,000명이 비참하게 죽는 일을 면하였을 것입니다.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믿음은 참는 것입니다. 참는 자가 믿음이 있는 자입니다. 모세는 40일을 산위에서 고독과 목마름과 배고픔과 뜨거움과 추위를 참았습니다.

 

2. 믿음의 다른 이름은 사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절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출32:10)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아브라함을 통하여 민족을 이루시려던 하나님의 계획이 변경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모세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골치 아픈 민족이었습니다. 이를 갈만큼 싫은 민족이었습니다. 아마 저같으면 이렇게 말씀드렸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정말 잘 생각하셨습니다. 나도 이들을 얼마동안 데리고 살아보니 정말 골치 아픈 민족입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못 된 이들입니다. 이번 기회에 노아의 홍수처럼 다 멸하시고 이종을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루소서!”
그러나 모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출32:11) 모세가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출32:12)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출32:13)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
이런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시고 화를 내리지 아니하셨습니다. “(출32: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 모세는 엄청난 축보기의 기회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였습니다. 1,500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을 상기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하나님은 책임지셔야 한다고 하나님께 따져 말했습니다.
모세의 믿음의 기도는 보통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출32: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의 죄를 속할까 하노라 하고 (출32:31)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출32:32)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
자기 이름을 지워달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나도 죽어도 좋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저주받아도 좋으니 저희들은 구원받아야 한다는 자세였습니다. 이 정도의 사랑을 모세는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같이 믿음이 있는 이는 사랑할 줄 압니다. 믿음의 다른 이름은 사랑입니다. 이는 비단 모세 뿐만 아닙니다.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들은 다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3. 믿음의 다른 이름은 정의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죄를 보면 견딜 수가 없게 됩니다.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시는 것이 죄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보면 견딜 수 없는 아픔을 가지게 됩니다. 모세는 금송아지를 보았을 때 하나님이 주신 두 돌판을 던져서 송아지도 두 돌판도 깨뜨려 버렸습니다. “(출32:19) 진에 가까이 이르러 송아지와 그 춤추는 것을 보고 대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금송아지를 가루로 만들어 금송아지를 만든 이들에게 물에 타서 마시게 하였습니다. 레위 자손이 3,000명을 칼로 죽이고 말았습니다. 3,000명을 하루에 죽였다면 지금도 세계 역사상 찾아 볼 수 없는 대사건입니다.
그리고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임명하였습니다. 레위인이 제사장이 될 이유를 우리는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 야곱 때 선택된 레위인
그러나 사실 레위인은 야곱때부터 하나님이 사용하시려고 예비하고 계셨다고 미드라쉬는 말해주고 있습니다.(미드라쉬=문서의 자의적인 의미보다는 더 깊은 뜻을 찾아 내기 위해 취해지느 유대교 정전의 해석, 이 해석 방법 성립의 배후를 이루는 것은 정전은 그 세부에 이르기까지 신적기원을 가지므로, 특별히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확신이다. (1) 모세의 율법에 포함되지 않은 일상생활의 준칙 (2) 성서의 율법 이외의 부분의 해석으로 교회와의 관련을 목적으로하여 행해진 것. 대하13:22, 24:27) 진즈베르그가 말하는 미드라쉬의 증언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야곱이 미가엘 천사와 씨름하면서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이 때 천사장 미가엘은 하나님 보좌에서 찬양을 드려야 할 시간이 다 되었는 데도 야곱이 놓아주지 않자 축복을 빌어 주는 대신에 놓아 달라고 요청을 하였습니다.
이 때 미가엘 천사장이 야곱에게 이렇게 축복하였습니다. “야곱아! 하나님께서 너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네 이름을 바꾸어 주실 때부터 언제나 너와 함께 하실 것이다. 네 이름은 이제부터 야곱이 아니다. 이스라엘이라고 불러라. 너는 이제부터 여자가 낳은 자중에 가장 행복을 맛보게 될 것이다. 너는 하나님의 보좌를 보게 될 것이다”
미가엘은 야곱을 마음껏 축복하였습니다. “야곱아! 너는 하나님의 아들로 복을 누릴 것이며, 네 후손들도 복을 받을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서 미가엘 천사장은 야곱에게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원하였던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말했습니다.
“야곱아! 네가 하란으로 갈 때에 하나님께 서원하기를 무사히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지금이 바로 그 때가 아니냐?”
야곱은 미가엘이 가르쳐 준대로 자녀 중에서도 십일조를 떼어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야곱에게는 4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네 명의 아내가 첫 번에 낳은 아들을 앞으로 불렀습니다. 르우벤, 요셉, 단 그리고 갓이 첫 아들들이었습니다. 이제 8명의 아들이 남았습니다. 다시 두 번째 낳은 아들들을 세었습니다. 그리고 나니 10번째 아들이 레위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레위가 하나님 앞에 십일조로 선택이 되었습니다.

 

2) 레위인의 헌신
그러나 레위인이 본격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게 된 것은 모세가 십계명을 가지고 내려왔을 때였습니다. 성막이 세워지고 본격적으로 제사장이 필요할 때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막이 이루어지고 참으로 피 뿌리는 예식이 제정되고 나서 첫 제사장은 레위인이었습니다.
모세가 십계명 두 돌판을 받아 가지고 하산하여 보니 아론을 중심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절하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두 돌판을 던져서 깨뜨려 버렸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출32:26) 이에 모세가 진문에 서서 가로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 이 때 레위인이 나왔습니다. 레위인은 금송아지 형상을 만드는데 헌금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헌신하지도 않았습니다. 협조조차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레위인을 정식 제사장으로 임명하였습니다. 모세가 말했습니다. “(출32:29)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그 아들과 그 형제를 쳤으니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

 

3) 미드라쉬가 말하는 이유
그런데 레위인을 하나님이 선택하게 된 이유를 미드라쉬는 또 다른 측면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바로의 명령과 하나님의 말씀이 다른 경우에는 순교적인 각오를 가지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킨 지파가 레위 지파였습니다. 다른 지파는 세상과 타협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레위인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킴으로 순교자가 가장 많았습니다. 그 증거가 있습니다. “(출2:1) 레위 족속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었더니 (출2:2)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달을 숨겼더니 ”
레위 남자는 아므람입니다. 레위 여자는 요게벳이었습니다. 당시 아들을 낳으면 바로왕은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냥 두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백성보다 많아질 것처럼 번성할 때였기 때문입니다. 다른 지파 사람들은 왕의 명령이 무서워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레위인인 이들은 준수함을 보고 죽이지 않았습니다. 준수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죽이지 말라고 영감을 주신 것입니다. 왕의 명령과 하나님의 영감 사이에서 부부는 목숨을 걸고 모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만일 들키게 되면 아들도 부모도 모두 사형이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이킨 이들이 레위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레위인을 하나님이 사용하신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었습니다.
출애굽 후에 인구조사를 하였습니다. 603,550명이었습니다. 한 지파당 5만명 정도이어야 평균입니다. 그러나 조사결과 모든 수는 20세 이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레위지파는 20세 이상이 몇 명인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다만 성경는 이런 숫자만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30세 이상 50세까지가 8,580명, 일개월 이상 된 남자가 22,273명이었습니다. 평균 5만명이어야 하는데 턱도 없이 부족한 수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애굽에서 순교자가 가장 많았던 지파가 레위 지파였습니다.

 

4) 미드라쉬은 이런 이야기도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낳으면 8일만에 할례를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례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한곳에 정착하여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은 이 곳 내일은 저 곳으로 이동하여야 하는 유랑생활이었습니다. 그래서 아픔을 이길 수가 없어서 할례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레위인들은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어떤 어려움과 아픔이 있어도 할례를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철저히 지키는 레위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레위인을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임명하였습니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이같이 믿음이 있으면 죄를 짓지 않고 정의롭게 살게 됩니다. 이같이 믿음의 다른 이름은 셋 있습니다.
1. 믿음의 다른 이름은 인내입니다.
2. 믿음의 다른 이름은 사랑입니다.
3. 믿음의 다른 이름은 정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