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출애굽기

[출32:1] 당신은 시내산 비극을 아십니까_금송아지 우상

'코이네' 2020. 8. 17. 21:35


당신은 시내산 비극을 아십니까?

(금송아지 우상)

                        본문/ 출애굽기 32:1-35
                       

 

우리 모두 금송아지 앞에 절하지 맙시다.
  

오늘 이 본문은 우리에게 영적인 새로운 도전을 줍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본문에 대한 하나님의 감추어진 비밀한 계시를 찾기에 너무나 안일하게 피상적으로 접근해 왔습니다. 그저 나타난 금송아지만 보았고, 그 책임을 아론에게만 전가시켜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비밀한 계시가 이속에 감추어져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시내산에서 일어나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와 이 일을 방해하는 사단권세를 보는 신령한 안목이 열여야 이 본문을 바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금송아지 우상입니다. 애굽에서는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하는 고센 근처 멤피스에서는 황소를 신으로 섬겨 왔습니다. 소는 가축중에서 두 뿔을 가진 짐승으로 대적을 막아줄 힘있는 신의 상징이요,  번식을 잘 하므로 소멸하지 않게하는 신이요, 부지런하게 일하는 풍요를 주는 신으로 섬겼던 것입니다. 이렇게 섬겨온 우상숭배 행위를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도 모르게 영향을 받아 그들의 삶의 양식이 몸에 배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그들을 지켜주며, 소멸되지 않고 번성케 하며, 풍성이 먹여 주실 신으로 금송아지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다음은 아론의 범죄입니다. 우리는 금송아지 하면 아론을 생각합니다. 그가 이 범죄의 주범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기억할 사실은 이 범죄가 아론의 책임으로만 돌려서는 않됩니다. 왜냐하면 금송아지 저변에는 무서운 사단권세가 역사하고 있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방해하기 위하여 아론을 도구로 사용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알고 보면 아론 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 무리가 하나님 앞에 범죄한 사건입니다.
   마지막으로 시내산의 비극입니다. 가장 거룩한 산에서 가장 추악한 우상숭배 행위가 저질러 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계시인 돌판이 주어질 때 사단은 인간을 유혹하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의 언약을 대신하게 하려 했던 것입니다. 사단권세는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행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우리를 넘어지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고 된줄로 생각하다가 넘어지게 됩니다(갈라디아서 6:3).

 

첫째: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읽을말씀☞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아내와 자녀의 귀의 금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 오라,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 오매”(1-3)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가 이것입니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1)라고 했습니다. 430년을 종살이 한 자들이 사십일을 참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중에 중요한 것이 영원 불변성입니다. 진리라는 것은 변함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거짓은 아무리 변장을 해도 시간이 지나면 그 정체가 드러납니다. 도금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벗겨지게 마련입니다. 약속을 붙들고 때를 기다리는 것은 모든 성도의 일차적인 사명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승천직전에 제자들에게 분부하시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사도행전 1:4, 7)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금하여 마가 다락방을 빠져나가 예루살렘을 떠난 무리들은 성령충만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사도행전 1:5; 2:4) 그래서 바울은 이러기를 “우리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9)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차기까지 기다립시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모세를 더 신뢰했습니다.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1)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자는 모세가 아니고 모세와 함께 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거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애굽기 3:12)고 했습니다. 우리가 모세를 보지 말고 모세속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베드로가 물 위로 걸으면서 주님을 보지 않고 바람을 보다가 빠져간 것입니다(마태복음 14:30).
   그들은 제물을 불의하게 사용했습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많은 은금 패물을 가지고 나왔습니다(출애굽기 11:2). 사실 광야생활에서 은금이 필요치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계획이 있었습니다. 후일에 성막을 세우기 위해서 취하게 하신 것입니다(출애굽기 25:2; 38:8). 그런데 그들은 그것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출애굽기32:2-4). 하나님의 성소에 드려질 물질이 우상숭배하는 제물에 드려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사단에게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아론은 그 앞에 절하게 했습니다.
   읽을말씀☞ “아론이 보고 그 앞에 단을 쌓고 이에 공포하여 가로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이튿날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5-6)
   왜 아론이 이러한 실수를 범했는가? 사명의 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모세가 세워준 사명의 자리를 이탈한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등정할 때 그는 장로들과 함께 올라 갔습니다. 모세는 그를 백성들과는 다른 장소에 세워 두신 것입니다(출애굽기 24:9, 14). 그들의 할 일은 모세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백성을 감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위로 모세와 하나님을 보기보다는 산 아래 백성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것입니다. 이 땅위에 일어나는 혼란과 무질서가 다 사명의 자리를 이탈한데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추하고 더러운 것은 사명의 자리을 이탈한 것입니다. 우리도 깨어 기도로 무장하여 사명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면 군중의 소요와 함성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그는 세미한 음성을 듣지 못했습니다. 보이지 않은 하나님보다는 보이는 군중들의 소리에 더 민감했습니다. 그는 시내산까지 오면서 그들을 향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과 완전히 단절하게 하기 위해서 홍해를 건너게 하시면서 바로와 그 무리를 그곳에서 장사하게 하셨는데  왜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 앞에 절하게 했는가? 보이는 무리들의 시위 때문에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지 못했습니다. 마치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본디오 빌라도가 아내가 들려주는 세미한 음성보다는 군중의 시위를 더 두려워 한 것입니다(마태복음 27:22). 그는 자신의 영예를 얻기 위하여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범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끝까지 변명했습니다.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 백성이 네게 어떻게 하였기에 네가 그들로 중죄에 빠지게 하였느뇨”(출애굽기 32:21)하면서 책임을 추궁하자 그는 끝까지 변명했습니다. “아론이 가로되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곹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어 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출애굽기 32:22-24) 자신이 사명을 망각한 사실은 기억지 않고 그 죄과를 백성들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타락한 아담의 본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세기 3:12)
  
셋째: 모세는 그 앞에서 언약의 돌판을 깨뜨렸습니다.
   읽을말씀☞ “모세가 가로되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 나의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 하고, 진에 가까이 이르러 송아지와 그 춤추는 것을 보고 대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느니라, 모세가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가져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우니라”(19)
   모세의 약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모세가 내려올 때 이러한 상황에 전개되었습니다. 분노를 억제하지 못한 그는 언약의 두 돌판은 던져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잠언에 이르기를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는니라“(잠언 16:32; 14:29)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내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사단은 바로 이러한 약점을 이용한 것입니다. 그는 후일에 므리바에서 분노를 터트려 반석을 두 번 내리침으로 가나안 입국을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민수기 20:11, 신명기3:27).
   그가 사단의 전략을 몰랐던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능력도 알아야 하지만 사단의 미혹도 알아야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능력을 받고 사단의 정체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 꾀임에 빠져들어간 것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언약은  깨뜨리면 없어질 것으로 생각하여 모세를 분노케하여 던져버리게 한 것입니다. 결국은 시내산에 다시 오르게 된 것입니다. 당신은 요나의 사건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 선교의 사명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낮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요나 1:3)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항복시켜 니느웨로 다시 보낸 것입니다(요나 3:3).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그 어떤 자도 항거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불순종하여 거역하거나 분노하여 깨뜨려도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합니다.
   모든 인간은 타락하여 부패한 존재입니다. 모세가 사십일을 금식하며 하나님과 더불어 언약을 받아 내려오는데 순간의 감정과 혈기를 억제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언약을 파괴하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는 한 단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감싸지 않으면 우리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감당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르기를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에베소서 2:8-9)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칼빈은 그의 5대교리 중에「인간의 전적 부패 또는 전적 무능력(Total Depavity or Total Inability)」란 말이 있습니다. 자연인으로서는 아무런 영적인 선을 행할 수 없는 다는 말입니다. 죄 아래 있는 인간이 구원에 있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전적으로 무능력한 인간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사명의현장에서 하나님의 일에 수종드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겸손히 사명을 감당하는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