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마태복음

[마6:13]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코이네' 2019. 11. 30. 22:57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

본 문 : 6:13(누가복음 10:17-20)

 

 

여는 말

 

주기도문을 하나님께 드릴 때 마지막 끝맺음은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 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주의 깊게 읽는 분들은 여기에 의문점을 갖습니다.

1.왜 마태복음에서는 이 부분을 괄호 안에다 넣어 놓았을까?

2.왜 권위 있는 현대판 영어성경에서는 이 내용을 삭제하여 버렸을까?

3.왜 누가복음에는 이 부분이 들어있지 않는가?

4. 대개라는 말은 원래 없는 말인데 어디서 나온 것이며 그 의미가 무엇인가?

 

푸는 마당

 

1.괄호 속에 든 기도

 

이런 것들은 평신도에게 별 흥미가 없는 질문인지도 모릅니다. 이 문제는 성경학자나 교회지도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면 되지 우리가 알아서 뭘 하느냐고 넘겨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문이므로 의미를 알아야 할 것은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하고 또 분명히 확인해야 할 것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기도문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 기도에 관한 무엇이든지 알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는 기도를 해야지 모르는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기도하는 사람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흔히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하는 이 본문을 영광송(榮光頌)이라고 부릅니다. 마태복음에서 이 본문을 괄호 안에 넣은 이유는 신약성경의 원문이라고 할 수 있는 권위 있는 사본 중에 이 부분 이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의 사본은 수백 개가 되는데 그 사본 가운데서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또 초대교회 때 널리 읽혀지고 인정을 받았던 사본에서는 이 영광송이 빠져있습니다. 그런데 좀 후대에 기록된 사본 중에 4-5세기경에 나온 <고대 라틴어역본> 에서는 이 영광송이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영광송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원래의 원문에는 없었으나 초대교회가 나중에 첨가한 것으로 보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입니다.

오래 전부터 유대교회에서는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를 드린 후, 찬양으로 마무리 하는 것이 전통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 관습에 따라 초대교회 성도들이 이 영광송을 붙였다고 보는 것이 권위있는 바람직한 해석입니다. 기도를 드리고 난후 금방 일어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던 유대교의 관습은 초대교회에 그대로 이어지는 것을 봅니다. 이는 바울 서신서에도 등장합니다.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딤후4:18) 이 말씀처럼 기도를 하고 단순히 일어나는 것보다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 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름다운 일입니다. 이와 같은 영광송을 주기도문에 붙여서 우리에게 전해준 조상들에게 감사를 드리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대표기도를 드린 다음에는 반드시 기도송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많은 분들에게 기도를 부탁받습니다. 함께 앉아서 간절히 기도를 드리고 나면 성도들은 반드시 작은 목소리로 '주여, 아멘, 믿습니다'를 합니다. 이 또한 이런 전통을 이어서 하는 것임을 아아야 합니다.

 

2. '대개'라는 말 

 

1)대개의 사용 변화.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 <대개(大槪)>라는 말은 중국에서 도입하여 오래 전에 쓰이던 말로서 오늘날에는 다른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것은 '큰 원칙은' 또는 '큰 원칙으로 말하면'의 뜻인데, 오늘날에는 '대충'의 뜻으로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옛말의 뜻을 미리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말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외우고 있을 뿐입니다.

 

2)성경에는 없는데 삽입되어야만 하는가?

주기도문을 주님 앞에 드리면서 우리 한국 사람들은 좀 어색하게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소위 '대개'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대개'라는 말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찬송가 표지안에 삽입한 주기도문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특이한 것입니다. 그것은 마태복음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사실 원문 상으로 볼 때 대개라는 말이 꼭 들어가야 하는냐 하는 점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고대 라틴어역본>에는 < >가 삽입되어 있어서, 권위있는 영어성경인 King James판이 '거기에' for(왜냐하면)라는 접속사를 붙였습니다. "왜냐하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라는 의미로 나와 있는데 100여년 전 우리 조상들이 성경을 번역하면서 <왜냐하면> 이라는 의미대신 <대개>가 붙여진 것입니다. 1)로스역(1887)// 송영 자체가 없다.

2)구역(1906), 게일역(1925)// 본문 가운데 있다.

3)개역(1976), 공동번역(1971)// 괄호 안에 두었다.

4)새번역(1967)// 본문에는 생략하고 뒷면 사본 고증란에 두었다.

5)표준새번역(1993)// 괄호 안에 두고 난외주에 고대 사본에는 없다고 언급함.

 

현대에는 이 대개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곳은 두 곳 뿐입니다. 하나는 찬송 가 표지 안에 있는 주기도문이고 다른 하나는 습관적으로 우리의 입에 익숙 해진 주기도문입니다. '대개'의 뜻은 '일의 큰 원칙으로 말하건대'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아마 이 말을 좀더 요약하면 '요컨대'라는 뜻이라고 생각 되는데 이 단어가 뚜렷한 의미가 없이 주기도에 붙여 있습니다. 그래서 한 때는 기독교 일각에서 제기하여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다가 최근에는 다시 사용하는데 이것은 다분히 습관때문에 보편화된 것입니다.

 

3)'대개'를 사용하지 않는 교우들의 타당성 있는 이유.

무슨 뜻인지 의미도 모르는 단어를 습관적으로 횡설수설하듯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증언부언 하지 말라는 기도원칙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에 문제의식을 던져주기 위해서입니다.

수 십년 전에 번역된 기도문에 문제가 있다면 좀 더 잘 다듬어서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에게 분명하게 다시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주기도문을 성도들이 습관적으로 그냥 외우는 것을 방치한 채 조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한국교회의 고쳐야할 과제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3.아름다운 영광송을 드림의 타당성.

 

1)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튼 영광송이 원문에는 없이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기도를 마칠 때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는 것은 대단히 아름다운 일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기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주십시오! 주십시오! 하는 것으로만 되기가 쉽습니다. 우리가 이런 기도만 늘어놓고 일어서려면 하나님 앞에 겸연쩍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우리는 기도를 마치고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찬양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진정한 기도자는 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생각하면서 기도가 끝날 때에 그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이 영광송을 즐겁게 사용했습니다.

 

2)기도의 응답자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주기도문 초두에서 "나라이 임하옵시며", 또 주기도문 끝에는 영광송에서도 "나라가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하고 찬양합니다. 성도들이 기도하는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그 나라의 주권자이시고, 기도하는 우리는 그의 백성이요 종일 뿐입니다. 기도의 응답은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를 마치면서 "아버지여, 이 세계와 장차 나타날 영원할 나라의 모든 주권이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있음을 믿습니다. 이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심을 감사합니다."라는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일어난다는 것은 아름다운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3)당연한 사항을 재확인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주기도문 초두에 "주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그렇게 기도하기 때문에 마지막 영광송에서도 "권세가 영원히 아버지께 있사옵나이다."하면서 찬양을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광 중에 권세를 가지신 전능자로서 자기가 원하는 것은 하늘에서 펴시고 땅에서도 펴시는 분입니다. 그의 뜻을 펴지 못할 장애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놀라운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에 있는 모든 기도를 드린 다음에 조용히 마음을 열고 하나님을 향해서 "권세가 우리 아버지께 영원히 있기를 기원합니다."라는 찬양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 가령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憲法) 4<예배와 예식> 51항에 의하면 '목사는 예배가 성경적이 되도록 신약시대 교회의 예배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져야 한다."라고 명시된 것에 근거하여 예배는 담임목사에게 일임된 사항입니다. 이 당연한 사항이지만 어떤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예배는 그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의 고유 영역이라는 선언은 바른 신앙의 자세인 것입니다.

 

4)영광이라는 말은 하나님께만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주기도문 서두에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기심을 받으시옵소서." 마치면서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을찌어다."하는 기도로써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너무나 좋은 일입니다. 영광이라는 말은 하나님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독특한 말입니다.

 

<예화>// 로마의 황제 트라이안은 유태인의 유명한 학자였던 여호수아 랍비를 만나 "랍비여, 내게 하나님을 보여 주면 하나님을 믿겠다"고 말했습니다. 여호수아 랍비는 "폐하! 당신은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보면 죽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패한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고 대답하자 황제는 다시 "그러나 그러한 말로 나를 설복시킬 수는 없다. 나는 꼭 하나님을 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랍비는 궁전을 비추고 있는 정오의 찬란한 태양을 가리키며 "폐하! 그렇다면 저 태양을 바라보십시오"고 말하자 태양을 바라 본 황제는 "너무 눈이 부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랍비는 "그렇습니다. 폐하! 피조물의 광채도 바라보기 어렵거든 어찌 창조주의 영광을 볼 수 있겠습니까?"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십시오. 아니,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완벽하신 절대자 하나님, 내 모든 것을 불꽃같은 안목으로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 앞에 설 때 사람들은 회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입니다. 그 이름이 영원히 높임을 받고 영원히 경배와 영광을 받으실 분입니다. 그 놀라운 분에게 우리가 기도하는데 어찌 영광을 노래하고 찬양하지 않겠습니까? 자녀를 키워 보신 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부모 생각은 안하고 날마다 달라! 달라고만 하는 자식은 주면서도 밉습니다. 그러나 부모를 존경해 주는 자식은 달라고 하지 않아도 주고 싶은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기도 드리는 것도 좋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기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기도자는 달라하고는 그대로 일어나는 사람이 아닙니다. 마음에 있는 것을 다 아뢴 다음에 기도를 들으시는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생각할 때 너무 기뻐서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교우가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길 바랍니다.

 

4.신약 성경에 나타난 영광송들 

 

(11:36)"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딤후4:18)"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1:6)"...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4:11)"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5:12-13)"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19:1)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닫는 마당

 

주기도문에 대하여 장로회신학대학에 있는 나채운 교수는 16(반복까지 합하면 20)에 문법, 의미, 표현 등에서 국문학적으로 시급히 대폭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습니다. 아마 성경 번역의 방법과 과정을 알지 못하고 무조건 성경상의 변경을 금물로 하는 보수적인 교인들에게는 충격 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빨리 수정해야 할 것은 2인칭 대명사인 <당신>이라는 용어입니다. 현재 젊은이들이 너무 가볍게 사용하고 있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오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또한 악에서도 건지시옵소서,

이는 나라와 권세와 권능과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음이니이다. 아멘

 

그러므로 주기도문의 송영은 이러한 뜻입니다.

1)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될지어다.. 왜냐하면 나라가 아버지의 것이기에.

2)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할지어다 ..... 왜냐하면 나라가 아버지의 것이기에.

3)아버지의 뜻이 ... 이루어지이다 ..... 왜냐하면 나라가 아버지의 것이기에.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의 것입니다. 주여! 이것을 믿을 때 나는 기쁩니다.

내 기도 하나님이 들어주심을 나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이 세상을 힘 있게 살 수 있습니다."

 

라고 하나님께 찬양하는 자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기도자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아버지로부터 날마다 얻을 줄을 확신합니다. 이러한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그 하나님을 위해 사는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