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마태복음

[마6:9]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_주기도문

'코이네' 2019. 10. 5. 23:14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주기도의 내용: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본문 : 마태복음 6:9-13

 

오늘은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내용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기도는 이방인들이 똑 같은 말을 하고 또 하면서 이 세상을 것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 간단하고 명료합니다. 기도는 이렇게 간단하고 명료하게 해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들으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기도는 예수님의 제자된 사람들이 드리는 기도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된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을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은 것을 기도할 수 없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가르쳐준 기도가 세상 사람들의 기도와 어떻게 다른 지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기도는 아버지를 부름, 6개의 청원,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를 부름이란 '우리 아버지 하늘에 계시는 분이시여'를 말합니다.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라는 부분을 말합니다.

6개의 청원이란 이렇습니다: '당신의 이름이 거룩해지소서/ 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일용할 우리 떡을 주소서 오늘/ 우리의 죄빚을 우리에게서 떼어내어 주소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에게서 죄빚을 떼어낸 것 같이/ 우리를 시험에 빠지게 하지 마시고 다만 악에서 우리를 구하소서/ 이 중에서 앞의 3 청원은 '당신'형 청원이라고 합니다. 당신의 이름, 당신의 나라, 당신의 뜻과 같이 당신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고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앞의 청원들은 하나님 아버지 중심의 청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뒤의 청원들은 '우리'형 청원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문제들에 대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청원은 하나님쪽의 일들에 대한 것과 우리들의 문제들에 대한 간구로 구성 구성되어 있는 셈입니다. 양쪽이 반반씩 구성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 부분은 한글 번역에서 괄호로 되어 있는 부분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아멘". 성경을 베껴 쓴 것을 사본이라고 하는데, 어떤 사본에는 이 부분이 없고, 어떤 부분에는 이 부분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글 번역에는 괄호 속에 번역하여 놓았습니다. 하지만 원래는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내용상 결론이 있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좀 자세하게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는 부분을 생각해 봅시다.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시여'라는 부분입니다. 제가 앞에서 '우리 아버지 하늘에 계시는 분이시여'라고 번역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이와 같이 부를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여'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우리 아버지'라는 말은 아람어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막힘 없고, 두려움 없이, 자녀가 아버지를 부르듯이 부르는 부름입니다. 잘 했을 때도 '아빠 잘 했지요?' 라고 할 수 있고, 못했을 때도 '아빠 잘 못했어요'라고 할 수 있는 친밀한 관계의 부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름을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라고 지칭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라고 지칭된 사람들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아버지는 모두의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에 포함되는 사람들만의 아버지임을 예수님은 밝혀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해석할 때에 단편적인 작은 구절에서 일반적인 이치를 끌어내는 것에 대하여 조심해야 하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좁은 해석이 옳은 지를 성경의 다른 곳의 가르침에서도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확인해 봅시다. 앞장 5:9에서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요"라고 했고, 5:48에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점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했습니다. 원수도 사랑하여서 하늘 아버지같이 온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늘 아버지가 원수를 사랑하였으니까요. 이런 말씀들에 비추어 보면 6장의 주기도문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말씀은 일차적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의 아버지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뿐만 아니라 이 제자들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자들의 아버지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1:12절에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자의 아버지입니다. 주기도에서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한 것은 예수를 믿는 자들의 아버지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 틀림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주로 믿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우리 아버지'라는 이 말은 구원론적인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예수를 주로 믿고 그분에게 복종하기로 하고 믿고 따르는 자의 아버지 곧 구원에 참여한 자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국에 들어 온 사람들의 아버지라는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 아버지는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온 세상을 있게 한 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 아버지라고 할 수도 있지만 예수님이 가르치는 하나님 아버지는 이런 보편적인 의미에서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들어 온 사람, 선택을 받아서 구원에 들어온 사람의 아버지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선택을 받아서 예수를 믿고 구원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하나님 아버지가 계심을 심각하게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기에게 자신이 친히 모시고 있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것처럼 행사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구원론적으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는 말을 이해해야 한다면, 아버지라는 말도 역시 구원론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습니다. '아버지'라는 말은 존재의 근원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란 하나님이 자기 존재의 근원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창조주로서 나를 존재하게 한 아버지라는 의미보다는 여기서는 나를 하나님 나라에 낳아주신 아버지를 의미한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재창조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이렇게 재창조하신 방법 곧 하나님 나라에 낳으신 방법이 자기 아들 그리스도를 보내어서 죽으시고 부활하게 하여서 하늘을 여시는 것이라면, 우리 아버지는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를 다시 낳으신 아버지를 뜻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분은 아들을 보내셔서 대속 사역을 하시고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이 성령으로 우리는 하늘나라에 태어났습니다. 이것을 중생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누가 질문하거든 당당하게 '나는 중생했습니다. 중생의 날자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예수를 주로 믿고 있다는 사실입니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이렇게 우리를 자기 나라 안으로 낳으신 분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는 이런 하나님 아버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하나님 아버지는 세상 모든 자의 아버지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자들의 아버지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 주기도도 믿는 자들의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차적으로 그 당시의 제자들에게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일차적인 의미를 이해하고 그 다음에 그 후에 믿고 있는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의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 이후에 믿는 자들이기 때문에 십자가 이전에 주신 기도를 문자 그래도 이해할 것이 아니라, 부활 이후의 입장에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 기도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의 기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예수님의 이름이 들어 있지 않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말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성경을 너무나 근시안적으로 읽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성경을 잘못되게 읽고 잘못되게 해석할 수도 있는 가를 보여주는 실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근시안적이고 문자에 매이는 시각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우리 아버지'라는 말 속에는 하나님이 가까이 계심을 암시해주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 말은 친밀함도 의미하지만,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사람들 가까이 계시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친밀함이란 멀리 있으면서도 잘 알고 사랑스러운 관계를 가지고 있음도 포함됩니다. 하지만 가까움이란 공간적으로도 멀리 계시지 않는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약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자기 선민을 멀리하신 적이 없습니다. 멀리 한다는 것은 배역하였을 때에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의미했었습니다. 하지만 자기 사랑하는 사람들과는 늘 함께 계시면서 일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이삭이 그랬고,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그들 속에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를 믿고 자기 백성이 된 새 이스라엘 속에도 함께 계심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백성은 그분과 함께 있고, 언제든지 아뢸 수 있는 것이 틀림 없습니다. 물론 이러한 가까운 임재는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성령으로 인간 속에 내주하시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기도를 자기의 사역을 내다보시면서 가르치셨음이 틀림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하늘에 계시는 분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예수님이 사용하신 이 말씀은 솔로몬이 성전 봉헌식에서 기도할 때에 말씀하신 말씀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솔로몬은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기도할 때에 하늘이라는 말을 여러 번 사용했습니다(왕상8:30,32,34,36,39,43, 45,49). 그 중에는 그냥 하늘이라고 하지 않고, '주께서 계시는 곳 하늘'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39,43,49). 이것은 '주께서 거주하시는 확고한 곳 하늘'(^eT.b.vi !Akam. '~yIm;'V'h;)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확고한 곳'이라고 하는 말은 존재의 기초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 어원은 '어떤 것을 존재하게 하여서 확고한 존재가 되게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이 계신 곳 하늘이 어떤 곳인지를 암시해 주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 하늘은 자체가 모든 것의 기초가 될 수 있는 확고한 곳이요, 또 모든 존재를 존재하게 하는 기초가 되는 곳이라는 인식을 솔로몬은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창조를 생각하면서 말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계시는 확고한 곳 하늘에서 가져와서 창조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창세기의 창조를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늘 우주 세계를 먼저 창조하시고 거기서 가져온 혼돈의 물질을 가지고 이 지구와 가까운 우주를 창조하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쨌든 하늘은 자체가 확고한 곳으로서 이 세상의 기초가 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곳에 계신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 그곳 하늘의 주인이요 통치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거기 계시기 때문에 그 하늘은 확고한 곳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놀랍고도 위대하신 분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왕상8:27)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말씀에 비추어서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다는 말을 생각하면, 이것은 하나님이 한없이 크고 크신 분, 모든 존재의 존재 이전부터 영원히 스스로 계시는 분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며, 상상을 초월하는 분입니다.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전능의 능력자요, 영존하시는 분이요, 한 없이 크신 분이신 하나님이 우리들을 다시 자기 백성으로 만드시고는 가까이 계시면서 돌보시고 계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할 때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참으로 놀라운 분이요, 그분에게 택함을 받아서 그의 돌보심을 받게 된 사람들도 참으로 놀라운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신과 인간이 교통하고, 무한과 유한이 하나가 되고,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도록 하신 하나님을 뜻하는 하나님의 칭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들을 통해서 놀라운 일을 이루신 하나님의 칭호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이 칭호는 참으로 우리에게 소망을 가지게 하고 튼튼하게 서게 해 줍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삶의 한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아버지의 나라 하늘로 돌아가게 됨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망이 하늘에 있음을 상기시켜 주는 명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할 때마다 이 땅에 있는 것을 중언부언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늘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우리들이라는 것을 상기하고 그런 자로서 아버지께 기도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 기도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된 사람들의 기도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기도가 가르쳐 주는 정신과 형식을 따라서 우리는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의 기도는 모두가 이 기도의 정신과 형식과 서로 상통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그리고 종합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말할 때 마다 예수 믿는 사람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이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하늘 가족이라는 것을 기억하도록 합시다. 육신의 가족도 가족이지만, 육신의 가족은 이 땅에서만 가족입니다. 그러나 하늘 가족은 영원한 가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큰 가족 속으로 들어와 있고, 더 많은 형제자매들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되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