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갈라디아서

[갈5:1] 기독교의 자유관

'코이네' 2019. 3. 22. 23:28

 

기독교의 자유관

 

구 절 : 5:1

 

 

우리 사회가 요사이 처럼 자유를 부르짖고,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몸부림을 치는때도 일찌기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오늘의 모든 정당이나 사회단체가 일제히 일어나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위하여 헌법을 개헌하면서 마치 민주주의란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한다는한 상징이 되어 있는것 같습니다. 이러한 차제에 우리기독교의 입장과 태도를 바로 정립하여 기독신자로써의 바른 처세와 사명을옳바로 수행하여 보자는데 오늘 설교의 의도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둡니다. 오늘 우리 기독교의 역사를 고찰해 보면,옛날이나 지금이나 오로지 영적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 싸우며 발전해 나온 종교라고 하겠읍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에 의하여 애굽에서 해방되어 가나안으로 입국한 역사가 그러했고, 또한 예수그리스도에 의한 구속의 역사가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Paul당시에는 로마의 제국주의와, 유대의 율법주의와 싸우면서 신앙의 자유를 수호해 나아왔고 16세기에는 루터와 칼빈이 일어나서 부패한 로마 카톨릭과 싸우면서 신앙의 자유를 주장했고,17세기에는 피유리탄들이 영국 앵그리칸(성공회)과 싸우다가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지금 아메리카로 이민을가게 되었습니다. 과거 한국교회도 일본의 신도주의와 싸우면서 신사참배를 항거하다가 투옥을 당하고 순교를 하였고, 해방후 공산주의와 싸우면서 피흘려 순교한 것은 오로지 영적신앙의 자유를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스펄죤"목사는 "국민생활의 자유도 가치가 있고 귀하지마는 종교의 자유는 더욱 귀하고 나아가서 영적자유는 지극히 값진 보배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귀한 보배인고 하니 미국의 "파드릭 헬리"의 말에 의하면 "나에게 자유를 달라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하였으니 자유는 생명같이 귀하다는 말입니다.

 

. 첫째, 자유의 원천에 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이 점에 대하여 "제퍼슨"은 이르기를"우리에게 생명을 부여하신 하나님은 그와 동시에 자유를 부여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성경에 근거한 바른 신앙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몇가지 특권을 부여하여 주셨습니다. (1)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만물의 영장이 되게 하셨습니다 (2)우주만물을 주관하고 통치할 수 있는 통치권을 부여하여 주셨습니다 (3) 영생할 수 있는 영원불멸의 생명을 부여하여 주셨습니다 (4)취사선택의 영적자유를 위시하여 신앙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부여하여 주셨습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은 이 고귀한 특권을 사타에게 유혹을 받아 범죄함으로 모두 상실당하고 비극적인 운명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만물의 통치권도 상실하고, 생명도, 자유도, 상실하고 마귀의 종, 사망의 종, 만물의 노예가 되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와같이 자유를 상실한 비극적인 인생들에게 생명과 자유를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4:18, 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고 하였습니다.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 둘째, 자유의 개념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합니다.

이점에 대하여 우리나라말 사전에는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제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하였고, 철학사전에는 (1) 정치상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의미하고 (2) 심리학상의 자유는 선택의 자유를 의미하고 (3) 형이상학상의 자유는 초시간적, 초인과적으로 자기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있는 자체가 자유라고 하였습니다.이외에도 자유의 범주는 광범위하여 양심자유, 도덕상 자유, 법률상 자유, 정치적인 자유등 여러가지를 들어 볼 수 있습니다.이 점에 대하여 "밀턴"은 주장하기를 "나에게 다른 일체의 자유보다 아는 자유, 생각하는 자유, 믿는 자유 그리고 양심을 좇아서 마음대로 발언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 사도 Paul은 두가지 자유를 언급하였는데 (1) 육체적인 자유와 (2) 영적인 신앙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이 영적 신앙자유가 육체의 기회로 사용되어서는 아니된다고 하였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피타고라스""모든 자유로운 행동의 원칙은 그 내부에 질서가 있고 목표가 분명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것은 첫째, 이 자유가 사회에 무질서화 혼란을 일으켜서는 아니되고, 둘째, 이 자유가 방탕과 타락을 초래해도 아니되고, 세째, 이 자유가 충돌과 파괴를 가져와도 아니된다는 말입니다. 이 자유로, 육체의 사리사욕을 초월하고 서로 사랑하고 일치 단결하여 공산주의 국가를 승리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 세째, 기독교의 자유관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기독신자들은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때로는, 정치적인 자유, 경제적인 자유, 사회적인 자유를 초월하여 투쟁해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우리 기독신자들도, 현실적인, 정치,경제,결사,집회, 언론의 자유로 향유해야 되겠지마는 보다 더 고귀한 것은 영적 신앙의 자유를 수호해 나아가야 된다는 말입니다.그 내용은 (1) 첫째, 하나님을 섬기고 공경하는 신앙생활에 구속을 받지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양심에 따라 사는 신앙생활에 구속을 받지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3) 세째,하나님중심의 교회 집회 및예배행위와 복음선포의 구속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 신앙의 자유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방해하고 구속하려는 세력은 마귀요, 적 기독이요, 오늘의 향락주의와 세속주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기독신자들은 이 신앙자유를 유린하고 탄압을 해올 때는 십자가를 지고 목숨바쳐 싸워 쟁취해야 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신앙의 자유와 전도를 위해서 순교를 각오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