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료

사도들을 핍박한 사두개파 사두개인은 어떤 사람들인가?

'코이네' 2014. 2. 21. 22:36

사두개인은 누구인가?

1. 사두개인의 유래와 특징

사두개인은 '사두개파의 일원'이다. 사두개인들은 1세기 이전과 1세기 동안 팔레스타인 유대교 안에 있었던 한 종파를 가리킨다. 통례적으로 이 용어는 “사독”이라는 고유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추정한다. 사독은 다윗 시대의 대제사장이었으며 다윗왕과 다윗 가문에 특별한 충성심을 보여 주었다(삼하 15:24 이하; 왕상 1:32 이하). 따라서 이 제사장의 후손들과 그들의 모든 추종자들이 사두개인들로 불린 듯하다.

이들이 사두개인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신구약 중간시기인 하스모네가(Hasmoneans)의 제사장들이 통치권을 얻은 이후라고 추정된다. 그들은 하스몬 왕가의 맛다디아와 유다와 요나단 및 시므온(BC168-134)을 메시야 시대의 개척자로 보았으며, 그 열조들이 했던 것을 자신들이 이어가고 있다고 여겼다.

따라서 사두개인들은 레위지파 출신의 제사장들을 포함한 부유하고 지위가 노은 사람들로서 고대의 정통성을 주장하였고, 초자연적인 것을 부인하는 종교 합리주의자들이었으며, 세속주의적이고 현세주의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하나님("운명")을 인간 역사에서 배제하고, 인간의 존재와 축복을 이 세상에서의 삶에로 제한시켰으며, 자신들의 권력과 위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어떠한 짓이라도 서슴지 않았다.

로마의 속국이었던 유대의 자치중앙사법기구 산헤드린의 회원들은 대부분 사두개인들이었으며,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헤롯궁이나 로마에서 파견된 집정관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비록 사두개인들이 로마 권력의 비호 아래 정치적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일반 백성들 사이에선 그다지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백성들을 지배한 것은 엄격한 금욕적 율법주의로 치장한 바리새인의 관점이었다. 따라서 유대 명절시 성전예법이나 정결법 등 율법해석에 있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의견이 다를 때 사두개인은 바리새인의 관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2. 사두개인의 신학적 성향

그들의 종교적, 신학적 견해는 구약성경의 율법을 문자 그대로 다루는 보수적인 경향에서 초래되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에 대한 신랄한 반대자였는데 바리새인들은 구두 전승을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하여 기록된 율법을 해석하고, 새롭게 하여 적용하려 했다. 사두개인들은 그들 자신의 전통과 오로지 기록된 율법(즉, 모세 오경)만을 권위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던 해석학적 방법들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사역의 긴급성과 죽음 이후의 생명을 믿는 신앙을 포함하여, 바리새주의와 관련된 성서 이후의 많은 발전 사항들을 거부하였다.

그들은 몸의 부활을 부정하고, 영혼의 불멸과 미래의 보응은 물론, 천사들과 영들의 존재도 부인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예정 교리에 반대하여 인간의 자유를 주장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세속주의자들이었다. 이러한 동기들이 사두개인들로 하여금 예수님과 유대교회에 반대하게 했다.

사두개인들은 또한 내세, 육체의 부활, 혹은 죽음 이후의 보상과 징벌에 관한 신앙도 배격하였다(War2, 165; Ant. 18, 16). 요세푸스는 두 번씩이나 사두개인들이 "운명"(즉, 예정설)을 배척하였음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하나님과 악과 분리시키기 위하여 그들은 주장하기를 "모든 것은 우리 자신의 힘 안에 있으므로, 우리 자신은 우리 자신의 복지에 대해 책임이 있으며, 반면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분별없음으로 인해서 불운을 겪는다"라고 한다(War 2, 164f.; cf. Ant. 13, 173).

그들은 장차 오실 메시야를 기대하는 것을 헛된 것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 시대가 이미 마카비 시대의 영웅들에 의하여 시작되었으며, 또한 그 시대는 자기들이 감독 하에서 현재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중이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두개인들에 있어서 메시야란 하나의 이상이었을 뿐이며, 어떤 인격적 존재 자체는 아니었다. 게다가 그들은 정치적인 지도자들과 지배적인 지주들로서 마카비 통치 시대의 모든 정치적 경제적인 권력을 이양 받았던 자들이었고, 또한 실세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헤롯가와 로마와의 협력과 현상 유지를 강조했다. 그리고 당시 대부분의 제사장들은 이런 사두개인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3. 요세푸스의 기록

요세푸스는 최초로 사두개인들(Ant. 13, 293)을 요한 히르카누스(John Hyrcanus)(B. C. 135-105)의 통치와 관련하여 언급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그 당시에 잘 정립된 단체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요세푸스의 말에 의하면 이들이 행위에 있어서는 무례하며(War 2, 166; 참조: Ant. 18, 16), 숫자적으로 소수였고 "고위 직위를 가진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으며(Ant.18,16), "오로지 부자들의 신임"을 받았다고 한다(Ant. 18, 293).

요세푸스는 보통 바리새인들과 끊임없이 논쟁하는 내용에서 사두개인들을 언급한다. 이 두 무리는 사두개인들이 "율법을 제외하고는 어떤 류의 의식(observance)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의견의 차이가 있었다. 요세푸스는 이런 사실로써 사두개인들이 바리새인들에게는 권위 있던, 구두율법("앞 세대들에 의하여 전수된 법규로 모세의 법에는 기록되지 않은 것," Ant. 13, 297)을 배척하였음을 표현했다.

4. 신약성경에서 사두개인

신약성경에서는 마 3:7-9과 마 16:1-16이 사두개인들을 바리새인들과 함께, 침례 요한과 예수에게 꾸지람을 받는 유대 백성의 지도자로서 명명하였다. 막 12:18-27(병행구 마 22:23-32; 눅 20:27-39)에서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없다 하는" 자들로서, 그들의 관념으로는 부활을 믿는 것이 우스꽝스러운 것이라는 상황을 예수님에게 내놓았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잠잠하게 만든 기록된 율법에 근거하여 논쟁을 하셨다.

이러한 동기들이 사두개인들로 하여금 예수님과 교회에 반대하게끔 하였다. 예수님의 설교와 행위는 정치적인 현 상태를 유지(스타투스쿠오)하여 정계 내부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는 제사장의 무리에 대해 하나의 위협이 되었다(참조: 요 11:47ff.). 영적인 영역에 대한 예수의 강조, 유대민족의 외부 종교에 대한 공격, 그리고 예수님과 그의 추종자들을 대중이 따뜻이 맞이한 일은 이미 불안정한 사두개인들의 지위에 위협이 될 수가 있었다. 게다가 기독교는 사두개인들의 적의 위치에 있는 바리새인들과 많은 점에서 일치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의 설교와 행위는 그들에게 하나의 위협이 되었다. 사도행전은 사두개인들을 초기 기독교인들을 반대하던 자들 속에 속한다고 규정해 놓았다. 행 4:1에서 사두개인들은 제사장들과는 다르면서도 한패인 것으로 나온다. 행 5:17에서는 대제사장들과 함께 있는 자들은 "사두개인의 당파"라고 특별히 밝혀져 있고, 이들은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였다″고 하며,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이 모든 것이 다 있다고 한다"라고 사도행전은 기록하고 있다.

특히 사두개인들은 기독교 교리 중 한 가지 강조점이 어떠한 바리새인들의 가르침보다도 더욱 못마땅함을 발견하였다. 바리새인들은 부활을 이론 및 미래의 가능성으로서 가르쳤던 반면, 기독교는 그것을 예수 안에서 성취된 현재의 실재로서 가르쳤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세 지향적이며 권력지향적인 사두개인들은 주후 약 70년경 로마에 의하여 제 2 유대국가가 파괴되자 사두개인의 세력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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