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료

[성경인물연구]바울의 스승인 율법학자 가말리엘은 누구인가?

'코이네' 2014. 3. 29. 23:36

성경의 인물, 사도행전에 나오는 율법학자이자 바울의 스승인 가말리엘은 누구인가?


사도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한 사람입니다. 본래 가말리엘의 제자였습니다. 히브리사람들의 문헌에 보면 힐렐이라고 하는 유명한 율법사가 있습니다. 많은 문헌에 그의 모습이 실려 있습니다. 「탈무드」에도 그가 한 말이 많이 있습니다. 온 민족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유명한 랍비 힐렐의 손자가 바로 가말리엘입니다. 그 역시 힐렐 만큼이나 유명한 사람입니다. '율법의 영광'이라고 하는 별명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좀더 높이기 위하여 라반이라고 불렀다 합니다. 그가 죽었을 때에 사람들은 '율법의 영광은 갔고, 그 정결과 성결도 죽었도다'라고 기록하였다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사도 바울의 스승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전설에 따르면 그가 말년에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합니다마는, 그 역사적 근거는 희박합니다. 어쨌든 가말리엘은 당시 대단히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서 예루살렘 공회에 잡혀 심문 받는 사도들을 위기에서 구해준 가말리엘이라는 사람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봅시다.


가말리엘 Gamaliel.

가말리엘은 히브리어 가멜리엘(1583)의 음역이며, '하나님은 나의 보상자시다' 또는 '보수자 하나님'을 의미한다. 가말리엘은 신약성경에서 2회, 행 5:34과 행 22:3에 나오는 유명한 현인이다.

가말리엘은 그들의 미쉬나(Mishnah)에 인용되어 있는 탁월한 타니임, 즉 교사들의 대가족의 우두머리였다. 사도행전에 언급된 한 사람은 가말리엘 하자켄(Gamaliel ha-saqen), "장로 가말리엘"로 알려져 있으며 A.D. 1세기에 살았었다.

전승에 의하면 그의 조부는 다른 사람 아닌 원로원 의원 힐렐(Hillel)이었다고 한다. 힐렐에 대한 많은 전설들이 있지만 이러한 진술들은 믿을만한 문헌들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종종 그와 같은 가말리엘이란 이름을 가졌고 첫 번째 산헤드린 원로인 듯한 그의 손자와 혼동된다.

장로 가말리엘은 토라(Torah)에 관한 랍비의 주석서 미쉬나의 많은 구절에 인용된다. 그의 법적 행동들은 이중 명의로 된 이혼 증서를 무효로 하는 일과 많은 누룩을 섞어 발효시킨 가루를 반죽의 문제와 자비를 위한 여행시의  안식일 금령의 범위 등과 같은 문제들을 다루는 매우 실제적인 성격을 띤 일들이다. 그러나 다소 전설적이며 미신적인 어떤 요소들도 역시 그의 가르침과 그의 제자들에 귀착된다.

그는 교사에게 주어지는 모든 유대식 칭호 중에서 가장 높은 랍바/온(Rabba/on)이라는 칭호를 받았다(참조, 요 20:16). 그에 대한 기억은 랍비의 전승에서 가장 큰 찬사와 존경의 하나가 되어왔다.

초기 기독교 교회에 관하여 말한 그의 정확한 의견은 교계에서 많은 토론의 주제가 되어왔다.  A.D. 70년 가말리엘이 그의 죽음이 가까웠을 때 기독교를 받아들였다고 함으로서 많은 논쟁을 일으킨 중세 초기의 문서 클레멘타인 승인(Clementine Recognitions)이라는 위전의 전승은 전혀 근거가 없다.

사도행전에서의 첫 번째 언급에서 그는 사로잡힌 사도들에 관하여 온건한 실용주의자의 입장을 주장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34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교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간 밖에 나가게 하고 35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36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 37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39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행 5:34-행 5:39).

두 번째 경우는 바울이 예루살렘의 군중들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면서 가말리엘이 자기의 선생이라고 주장할 때에 바울에 의해 언급된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행 22:3). 확정적이지 않은, 미쉬나에 나타난 가말리엘의 무미건조한 진술을 고려해 보면, 하나 하나의 그의 법규가 근본적인 동기에 있어서 개방적이고 인도주의적이었던 것 같으며, 이것은 사도행전에 인용된 연설과 그가 유대인들에게서 가장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고 한 바울의 호의적인 진술과 잘 일치한다.

바울은 그의 이름을 자기 자신의 경우 가말리엘의 방침이 군중에게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은근한 암시로서 언급했을 것이다. 바울이 유대교의 율법에 관한 가말리엘의 능력과 통찰력을 비방하지 않은 것은 주목할 만 하다. 그러나 그는 그와 같은 스승의 제자는 새롭게 번성하는 "도"를 박해하는 일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울은 그의 새로 발견된 믿음이 그 유대인 현인과의 연합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단절시켰기 때문에 다시는 가말리엘에 관해 언급하지 않는다.
(참조: W. WHITE, 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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