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요한복음

[요2:1] 그대로 하라

'코이네' 2018. 8. 8. 22:28

그대로 하라

2:1-11

 

오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번째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 곳은 갈리리 가나의 어느 혼인잔치 집이었습니다. 잔치집은 손님이 많아야 하고 음식이 넉넉해야 하고 흥겨움이 있어야 합니다. 손님은 많은데 음식이 모자란다든지, 음식은 많은데 손님이 적다든지, 음식도 손님도 많은데 잔치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심각하고 굳어진 얼굴을 가지고 앉아 있다면 즐거운 잔치는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다 좋았는데 한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가나 혼인자치 그 집도 처음부터 음식이 모자라진 않았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포도주도 음식도 넉넉했습니다. 그러나 잔치가 계속되는 동안 모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다 떨어지고만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 속에서 우리 시대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인간의 삶이라는 것도 백일잔치나 돌잔치로 시작해서 결국은 장례식으로 마치게됩니다.

유대인들은 포도주를 약용으로, 음료로 주로 사용했고 때론 제물이나 예배용으로도 사용했습니다. 잔치집에 포도주가 모자라다가 떨어졌다는 것은 마치 꼭 있어야할 것들의 상실과 결핍으로 상막져가는 우리 시대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는 참 만족이나 기쁨이 없습니다. 모두가 욕구불만으로 지쳐있고 긴장해 있습니다. 양심도 떨졌고, 도덕도 떨어졌고, 윤리성도 바닥이나 버렸습니다.

마치 호세아 시대처럼 진실도, 인애도, 사랑도, 공의도 다 메말라 버렸습니다. 그리고 에스겔 골짜기의 해골떼들처럼 흉칙하게 말라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무런 소망이나 기대를 걸어볼 가치조차도 없는 시대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봉독한 말씀을 통해서 새로운 출구와 해결의 길을 밝히려고 합니다.

 

1. 예수님을 내 중심모셔야 합니다.

 

2절에 보면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라고 했습니다. 말일 그 혼인 잔치에 예수님을 모시지 않았더러면 즐거워해야할 잔치가 소란하고 불쾌하고 피곤한 잔치로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용두사미로 인생을 마칩니다. 또 어떤이는 잔치에서 시작해서 장례식으로 마치는 것처럼 즐거움으로 시작했다가 눈물과 허탈감으로 마칩니다. 더욱 가슴 아픈것은 신앙으로 시작했다가 불신앙으로 마칩니다. 왜 그렀습니까?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속에 전인격적으로 모셔드리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지식적으로 혹은 감정적으로 예수를 믿기 때문입니다.

2:19에 보면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지식적인 신앙, 감정적인 신앙은 예수님을 내 중심에 모셔드림이 아니라 문박에 세워둠과 같습니다. 찬송가325장에 나 구주를 믿노라고 그 이름 부르나 문밖에 세워두니 참 나의 수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십니다. 모든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그리고 멸망에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소망이 없는 인생들일찌라도 소망의 주가되시는 주님을 중심으로 영접하기만 하면 소망이 넘치는 심령이 되는 것입니다.

기대할 수 없는 존재, 가치없는 존재라할찌라도 복된 주님을 중심으로 모셔드리기만 하면 천국의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이 넘칩니다. 미음이 있는 곳에 사랑이 넘치며, 불화가 있는 곳에 평화가 넘칩니다. 그리고 근심과 걱정과 어두움이 있는 곳에 소망의 밝은 빛이 넘칩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감격스럽게 부르던 찬송이 생각납니다.

‘....예수님, 내 주여, 내 중심에 오시사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옵니다그렇습니다. 이러한 참된 만족과 기쁨이 주님을 모신 여러분들의 심령속에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철저히 없어져야 길이 열립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가나 혼인잔치 집은 포도주가 모자라다가 아주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만일 어느 정도 포도주가 남아있었다면 그날 그집에 모인 사람들은 예수님이 만드신 포도주를 맛볼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히 떨어졌기 때문에 마리아는 주님을 찾게 되었고 그래서 주님은 새 포도주를 만들어주셨고 그들은 그것을 맛볼수 있었습니다.

내 자신이 완전히 부서지고,깨어지고,없어질 때에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신앙도 나는 약간 신앙이 있다고 자부하거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더 어렵습니다. 성경이나 기독교 진리를 전혀 모르고는 사람들보다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전도하기가 더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새로 집을 짓는 것보다 헌 집을 뜻어고치는 것이 더 어려운 이치와 흡사한 것입니다. 자신의 죄인됨을 50%인정하면서 자신의 의를 50%인정하려드는 사람은 구주가 되시는 주님 앞에 서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베드로가 갈리리 바다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주여,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날이새면 바다에 나가 고기 잡고, 밤이면 처자식과 함께 평범한 삶을 누리던 베드로가 무슨 죄가 그리도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예수님 앞에서 자신을 완전히 100% 죄인으로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만든 포도주가 완전히 바닥나야 주님이 만드신 새 포도주가 항아리에 차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하신 대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것입니다.

 

3. 기도해야 합니다.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먼저 안 사람은 바로 마리아였습니다. 그녀는 먼저 예수님께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당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몇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내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임을 시인하는 것이요. 둘째, 모든 만사가 하나님의 장중에 달려있음을 믿는 중거요. 셋째, 구하는 자에게 언제나 좋은 것으로 주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는 확신의 표가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기도하는 자를 사랑하시고, 기도하는 자에게 가까이 오셔서 들으시고 응답해주십니다. 믿습니까?

주님은 우리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격고있는 이 사실과 이 사건을 마리아처럼 주님께 말씀드려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누군들 그러한 사건, 그러한 사실이 없겠습니까? 그리고 가나 혼인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보다 더 절박하고 답답한 사정이 누군들 없겠습니까?

그 사실을 그대로 말씀드리고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4.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해야 합니다.

 

마리아는 그 사실을 먼저 예수님께 아뢰였고 그 다음 하인들에게 주님께서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당부했습니다. 본문7-8절에 보면 주님께서 돌항아리 여섯에 가득가득 물을 채우라 그리고 떠다 연회장에 갖다주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명령을 받은 하인들이 선뜻 순종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비정상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날 그집에 있었던 돌항아리는 식사전후에 손씻고 그리고 밖에서 돌아왔을 때 발씻기 위해 사용할 물을 담아두는 항아리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포도주 용기가 아니였습니다. 세수대야에 고기국을 담으라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은 비상식적이었습니다.

둘째는 비과학적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졌으면 빨리 시장에 가서 사오라든가 옆집에 가서 꾸어오라든가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포도를 가져오라고 하신것도 아니요 물항아리에 물을 가득채우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순수한 물만으로 포도주를 만든 사례는 요2장 사건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습니다.

포도주는 포도로만이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포도가 아무리 현장에 많다고 해도 당장 되는 것이 아닙니다. 포도를 깨드리고, 짜서 그 포도즙을 상당 기간동안 발효되도록 보관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은 비상식적이고 비과학적인 방법으로 포도주를 만들겠다고 하인들에게 명령하고 있기 때문에 선뜻 순종하기 어렸웠을 것입니다.

세째는 믿을 수가 없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주경학자는 하인들이 항아리에서 물을 떠서 가지고 가는 동안에 포도주가 되었다는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돌항아리에 물을 포도주라고 떠다주다가 손님들에게 핀찬이나 받지 않을까...하는 의심이나 염려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는 상식이나 과학적인 사고라는 것들이 그다지 위대한 것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진흙탕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의 색갈이 진흙탕색갈이어야 그것이 상식입니다. 푸른 풀을 먹고 사는 소의 우유색갈이 푸른 색갈이어야 그것이 상식에 맞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적이고 과학적인 사실보다 비상식적이고 비과학적인 사실이 더 많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던 사건, 난공불락의 든든하고 높은 여리고성을 대포한방 쏘지않고 무너뜨린일.....등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의 인간의 상식과 과학을 초월한 사건들로 연속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중요한 교훈은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는 것입니다.그것이 이치에 맞든지 안맞든지, 상식적이건 비상식적이건, 과학적이건 비과학적이건 그대로 믿고 그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같이 ‘2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 믿고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45:9절 상반절에 보면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자로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피조물은 창조자의 절대 권능앞에서 이러쿵 저러쿵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저 순종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대로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경험과 하나님의 능력을 동일시 하기때문입니다.

내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도 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서 자기중심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사단이 그사람의 마음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것은 사단이 그들의 마음을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사단이 내 마음을 사로잡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째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과소평가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십시요.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불순종한 사람들은 모두가 다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 사실을 외면하거나 무시하기 때문에 불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밷전2:8절에 보면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라고 하였습니다.

 

가나 혼인잔치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은 순종의 사람들로 인하여 기쁨과 만족을 얻게 된것입니다. 아니 그 포도주가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고 먹는 자들도 즐거워했지만 주님의 말씀을 친히 믿고 순종하고 그 신비한 능력을 체험한 마리아와 하인들의 기쁨은 그들과 비교할 수가 없을 만큼 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포도주가 있고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입니다. 물을 채우라고 했을 때 물을 채웠습니다. 떠다 주라고 했을 때 군말없이 떠다 주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라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나, 설교를 들을 때 성령의 감동을 받는 대로 미루지 말고 즉시 순종하는 것입니다.

 

7:47과 요12:48절에 나타난 불행이 우리가운덴 없기를 바랍니다. 거기에 보면 저희가 이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이런 사람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이러한 심판의 대상이 되지않기를 바랍니다.

 

돌항아리에 물을 채우라하시면 가득가득 채우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떠다가 갔다 주어라 하시면 두말말고 떠다 줍시다. 믿으라 하셨으니 그대로 믿읍시다. 기도하라 하셨으니 기도합시다. 사랑하라 하셨으니 서로 사랑합시다. 염려하지 말라 하셨으니 염려하지 맙시다.

 

기쁨과 행복이 바닥난 가정이라고 해도 그곳에 주님이 계시면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삶의 의미가 끊어지고 희망이 떨어진 내 신앙이라 해도 능력이 많으신 주님을 영접하면 그 삶속에 새로운 희망이 솟아오르게 될것입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옳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합시다. 그리하면 텅텅빈 돌항아리에 새로운 가치와 축복으로 가득차게 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내 자신을 부정하고,능력의 주님께 모든 것을 아뢰며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하는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새로운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