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히브리서

[히1:3] 하나님의 섭리란 무엇인가?

'코이네' 2018. 1. 31. 07:43

섭리란 무엇인가?

(1:3, 104)

  설교 : 이성봉 목사

 

 

우리는 지난 번에 창조 사실과 창조 신앙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창조의 사실을 믿고 전능하신 창조자를 생각하는 일은 당연하고 옳은 일입니다. 그러나 창조와 창조자를 믿는다는 것으로 하나님을 바로 믿고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17세기 영국의 이신론자(理神論者, deist) 또는 자연신론자(自然神論者)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는 이 세상이 그 나름의 법칙에 따라 움직여 나가게 끔 하셨다고 생각한바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피조계를 바라보면서 이 정교한 우주를 디자인하신 창조자를 생각하고 그에 대한 경이를 느끼고, 그가 자연계에 부여하신 법칙을 애써 찾아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창조 이후에 하나님께서 이 피조계와 어떤 직접적인 관련을 갖지 않으시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능력과 동일하신 능력을 발휘하셔서 이 세상과 역사의 과정에 관여하고 계십니다. 이를 전통적으로 섭리(攝理, providence)라고 불러왔습니다. 그러므로 위에서 말하였던 이신론자들은 창조는 믿되 섭리는 믿지 않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조만 믿고 섭리를 믿지 않는 것도 하나님께 대해서 심각하게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섭리 개념을 성경적으로 바르게 이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 섭리의 문제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하이델베르그 요리 문답 제27문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다음과 같이 묻는 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라는 말로써 당신이 이해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1. 섭리 개념의 이해

 

섭리를 생각할 때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이 일이 "전능하고 항존적인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어 지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가지신 그의 본유적인 능력, 특히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사용하셨던 그 능력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창조의 능력과 동일하신 능력으로써 섭리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능력은 "항존적인 능력"이라는 또 하나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에 섭리에 작용하는 능력이 항존적인 능력이 아니라면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능력은 항존적인 것이므로 우리로 하여금 전혀 걱정을 하지 않도록 합니다.

 

그런 전능하고 항존적인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일은 다음 두 가지 용어로 표현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는 "유지 또는 보존"(preservation)이란 말이고, 또 하나는 "통치"(government)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유지, 또는 보존하신다는 말은 "모든 피조물을 붙드신다"는 말로도 표현될 수 있는 말입니다. 오늘의 본문인 히브리서 13절에서도 성자께서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신다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그것들의 존재가 유지될 수 있도록 돌보아 주심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만일에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을 붙드는 일을 하지 않으신다면, 이 피조계는 계속해서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단 한순간이라도 일을 하지 않으신다면, 이 피조계는 계속해서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단 한순간이라도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하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은 그 존재의 시작에서만이 아니라 그 지속에 있어서도 그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항상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포함되지 않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섭리의 대상인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도 다 하나님이 우리를 붙드시는 손길의 결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세상에 있는 것들 가운데 하나님과 관련이 없는 존재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피조계 전체를 바라 보면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한 바 있습니다. "이것들이 다 주께서 때를 따라 식물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주께서 주신즉 저희가 취하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저희가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저희가 떨고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104:27-29). 이런 것을 생각하면 이 세상에 있는 존재 전체가 하나님께 감사를 표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 모두가 하나님의 붙드시는 손길 때문에 이 순간도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그저 유지해 나가시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영원 전부터 가지신 목적을 향하여 이 세상이 진행해 나갈 수 있도록 세상을 운영해 나가십니다. 이를 하나님의 경영 또는 경륜(oiconomia, economy)이라고 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다스리심 (統治)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때로는 이 세상의 죄악을 역사의 과정 가운데서 심판하시는 이로 나타나기도 하고 최후의 심판에서 잘 드러날 것입니다. 역사의 과정 가운데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는 말로 다음과 같은 아모스의 말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기둥 머리를 쳐서 문지방으로 움직이게 하며 그것으로 부셔져서 무리의 머리에 떨어지게 하라. 내가 그 남은 자를 칼로 살육하리니 그 중에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며 그 중의 하나도 피하지 못하리라. 저희가 파고 음부로 들어갈지라도 내 손이 거기서 취하여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내가 거기서 취하여 내리울 것이며, 갈멜산 꼭대기에 숨을 지라도 내가 거기서 찾아 낼 것이요, 내 눈을 피하여 바다 밑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뱀을 명하여 물게 할 것이요, 그 원수 앞에 사로잡혀 갈지라도 내가 거기서 그 칼을 명하여 살육하게 할 것이라. 내가 저희에게 주목하여 화를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아모스 9:1-4). 이런 심판에 하나님의 분명한 섭리가 나타나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심판만이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섭리의 대상인 것입니다.

 

보존과 통치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유지하시는 것이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정하신 목적을 향해 잘 다스려 나가시는 과정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이루시려고 하는 것은 이 땅위에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며, 모든 피조계가 기꺼이 하나님께 복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잘 이루어 나가는 그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 나라의 형성을 위하여 온 세상을 지금도 유지하시며 다스려 나가시는 것입니다.

 


 

 

2. 섭리의 구체적인 과정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섭리하신다고 했을 때 흔히 하는 오해는 "그렇다면 이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책임지셔야 하며, 다른 존재들은 다 그의 조정에 의해서 놀아나는 꼭두각시와 같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섭리에 대한 심각한 오해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일반적으로는 이 세상에서 되어지는 원인과 결과의 연관 관계를 무시하고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며, 또한 피조물들의 작용과 의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세상의 원인 결과의 관계를 넘어 서서, 또는 그 과정에 역행하여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직접 일으키기도 하시고, 관여하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이런 소위 이적들(miracles)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닌 그야말로 비상 섭리(extraordinary providence)인 것입니다. 말 자체가 말하고 있듯이 이는 참으로 비상(非常)한 일로 늘 있는 일이 아닌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홍해를 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바다 가운데에 내신 길로 가게 하신 일이나,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을 먹이신 일이나,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행하신 이적들이나, 사도들의 선포의 확증을 위해 하나님께서 사도들로 하여금 일으키도록 하셨던 소위 "사도적 이적들"(apostolic miracles)과 같은 이적들은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개입하셔서 일을 하신 비상 섭리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런 식으로 역사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또 보편적으로는 대개 이 세상의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사용하셔서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2의 원인(the second cause)을 사용하셔서 섭리하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벌써 이 세상에 되어지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다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말입니다. 중세 때 스콜라 신학자들이 즐겨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은 만물의 "제일 원인"(the prima cause)이십니다. 그러나 이 말이 모든 것의 직접적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는 말이 아님을 유의해야 합니다. 제 일의 원인이신 하나님은 제2의 원인들을 무시하고서 사역하시는 것이 아니라, 2의 원인들을 사용하셔서 사역하시되 그 제2의 원인들의 성격을 잘 활용하셔서 그리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하나님과 제2의 원인들이 협력하여 일이 이루어진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의 원인의 원인으로서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섭리하신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의 의지를 사용하셔서 어떤 일을 하도록 하실 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뜻과 주관하심이 있지만 그것이 우리의 의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하시지는 않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바울이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라고 말할 때, 이는 하나님의 행하심과 우리의 소원을 두고 행하는 일의 연관성을 잘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 때 주의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행하심이 우리의 소원을 두고 행하는 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뜻과 경

영이 우리의 의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우리는 자동 기계나 로봇과 같아서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서 우리는 책임이 없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어서 하나님의 뜻의 작용이 간접적으로 있어도 그것이 우리의 의지를 강요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우리 자신이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과 우리의 의지의 활동, 하나님의 하시는 일과 제2의 원인이 동시 발생적으로 작용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섭리 교회의 실천적 의미는?

 

이러한 섭리 교리는 삶에 대해 매우 실천적인 함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로 이 세상에 우연히(by chance) 일어나는 일은 없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다 하나님과 관련하여 일어난다는 것이 섭리 교회의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위에서 말했던 이적들과 같이 직접적으로 하나님과 관련되는 일도 있으나, 대개는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등 하나님과 간접적으로 관련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일어 나든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관장 아래에 있으므로 이 세상에는 "우연히 일어났다"고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섭리를 인정한다면,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해서 우연에 근거하거나 요행을 바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개혁자들이 카드놀이를 금한 한가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연이나 요행을 바라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오락으로 카드 놀이 등을 즐길 수는 있습니다마는 기본적으로 요행이나 우연을 기대하는 태도는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문제시해야 하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각국마다 유행하고 있는 복권 제도입니다. 미국이나 영국이나 한국이나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요행을 바라고 열심히 복권을 사고 있습니다. 그런 일에 따르는 다른 문제점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복권 제도 배후에 있는 우연에 근거한 생각, 즉 이 세상에 우연히 요행이 되는 일도 있다는 생각에 가장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진화론이 옳을 수 없는 것도 이 생각이 기본적으로 우연에 근거하여 생물의 발생과 진화를 설명해 보려고 하려는 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것이든지 우연에 근거하여 무엇을 설명해 보려는 태도를 버려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섭리 교리의 첫 번째 실천적 의미입니다.

 

둘째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그들에게 닥치는 모든 일들이 모두 다 하나님의 아버지다운 손길에서 우리에게 온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좋은 일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적인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우리들의 아버지의 손길에서 온다면 우리는 그것을 의미있게 생각하면서 잘 받아 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 문답 제27문에서는 "꽃잎이나 풀잎, 비나 가뭄, 풍년이나 흉년, 음식이나 음료, 건강이나 병, 번영이나 가난 이 모든 것이 사실은 (하나님)의 아버지다운 손길에서 우리에게 온다는 것입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신자나 불신자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고, 따라서 섭리의 대상에는 신자나 불신자, 피조계 전체, 심지어 천사들과 타락한 천사들인 악의 영들(귀신들)이 모두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존재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섭리는 똑같은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계 일반보다도 인간들에게, 또 인간들 일반보다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에게는 더 특별한 섭리를 하시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인간들에게 미치는 섭리를 특별 섭리라고 하고, 그 중에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미치는 섭리를 "아주 특별한 섭리"(특특별 섭리)라고 불러 왔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된 이들은 그저 세상 만사를 하나님께서 다 섭리하신다는 수준 이상으로 나아가, 자녀된 자신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아주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섭리하시는 줄 알고서, 그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의식하고 그 인도하심에 잘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이들과 그 섭리 아래 있으나 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큰 차이인 것입니다.

 

존재론적으로는 모든 이들이 다 섭리 아래에 있습니다. 그러나 인식론적으로는 오직 성경적으로 바르게 생각하는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섭리를 인정합니다. 그들은 섭리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의 아버지의 자녀들만이 섭리를 인정합니다. 그런 하나님의 자녀들은 다음 말씀을 실천적으로 체험하며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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