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히브리서

[히1:1] 아들로 말씀하신 하나님

'코이네' 2020. 1. 20. 21:59

 

아들로 말씀하신 하나님

 

본 문: 1: 1- 3

 

히브리서는 신앙 때문에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다. 일종의 변론서라고 말할 수 있다. 재판정에 가보면 원고와 피고를 세워놓고 검사와 변호사가 불꽃 튀는 설전을 벌인다. 피고를 위하여 변론하는 변호사는 고도의 설득력을 드러낸다. 그렇게 아니하면 상대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많은 비용을 들여가며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하는 것은 낭비 같으나 재판에서 이기기 위하여서는 사실 투자할만 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다른 사람을 변호하려면 변호하려는 그 인물에 대하여 분명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대강대강 알고 있다가는 오히려 밀리기 쉽다. 기독교인들이 이단종파 사람들에게 밀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 그들은 한가지를 알아도 분명하게 체계를 갖추고 말할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많은 것을 알면서도 단 한가지라도 설득력 있는 변론을 못하는데 문제가 있다.

 

지금 나는 예수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알고 있는 것만이 아니다. 그 이상이다. 야고보가 말 한대로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은 마귀도 알고 떠는 사실이다. 사도행전을 보면 스게와라 하는 유대인의 한 제사장이 있어 그의 일곱 아들이 귀신을 내어 쫓다가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가 덤벼드는 바람에 혼비백산하여 벗은 몸으로 도망한 사건이 19장에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이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소위 인류의 4대 성현 중 한 사람으로 존재하였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문제는 그 분이 나와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남이 믿으니까 따라 믿고 남이 교회에 가니까 나도 한번 가 볼까 하고 교회에 나온 사람이 있어서는 안된다.

 

오늘 이 즐거운 성탄절에 이 성전을 찾아온 성도 여러분!

크리스마스가 무엇인가? 크리스마스란 영어로 CHRISTMAS라 쓴다. 이 단어는 CHRISTMAS라는 단어의 합성어이다. 곧 그리스도에 대한 예배를 말한다. 사람들이 성탄절을 가리키는 단어를 X-MAS라고 사용하는데 이 단어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물론 그리스도라는 단어의 헬라어 크레스토스의 첫문자가 X로 시작되기 때문에 그것을 따서 X라고 사용하는 줄 안다. 그러나 수학공식에서 X는 무엇인지 모르는 가상의 수를 나타낼 때 사용하는 함수이다. 그러므로 X-MAS는 누군지 모르는 이에게 예배를 드린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지나친 말일까? 많은 사람들이 예배의 대상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예배를 드린다. 이것은 잘못이다. 아이들은 그저 성탄절이면 선물을 받는다는 것 때문에 즐거워 한다. 청소년들은 전날 밤부터 온 밤을 지새면서 연인과 함께 즐거워 하는 날인 줄로 안다.

 

상인들은 이 날이 대목 즉 대단한 수입을 기대하는 날로 여긴다. 유흥업소들도 나름대로 많은 손님들을 즐겁게 해 주고 수입을 늘리려고 안간 힘을 쓴다. 어른들은 이 성탄절이 하필이면 신정과 함께 설정되어 있는지 의문을 가진다. 성탄절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어 있다. 커다란 백화점에 그려져 있는 것은 산타클로즈할아버지이다. 선물을 가져다 주는 맘씨 좋은 할아버지를 그려 놓았는데 이 그림이성탄절 즉 예수님의 탄생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처럼 그려 놓았다. 그러나 아니다. 정작 제 자리에 모셔져야 할 예수님은 백화점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예수님은 어디에 모셔야 하는가? 교회를 들여다 보아도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다. 성탄목은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교회의 종탑마다 명멸되는 깜박이 등은 눈부시도록 매달려 있다. 그러나 이 추운 겨울 예수님은 과연 어디에 계신지 궁금하다. 1993 년도 성탄절을 맞으면서 우리가 믿는 그 예수님은 과연 어떻게 모시고 있는가 생각해 보자.

 

1. 믿을만 한 가치가 있는 분이시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말할 때는 굳이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그들의 사고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분명하게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유대인들의 의식구조 속에는 메시야에 대한 개념이 분명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 모든 유대인의 희망이었다. 그들은 메시야 오시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메시야가 오셨을 때 사람들은 그를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처녀의 몸에서 태어난 자, 갈릴리 나사렛동네에서 무슨 지도자가 나겠는가 하는 의심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예수를 메시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의 지도자들은 이 사람들을 핍박하였다. 사람들은 동네에서 쫓겨나야 했고 가족들은 흩어져야 했다. 그들의 재산은 빼앗겼고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여러날을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신앙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 예수는 온 세상을 지으신 분이요, 또한 만물의 상속자이다.

- 예수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다.

- 예수는 능력있는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시다.

- 그는 죄를 깨끗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 분이시다.

 

예수는 과연 이 세상의 어떤 분 보다도 더 위대하신 분이시다. 공자보다도 석가보다도 더욱 위대하신 분이시다. 저들은 오늘 일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내일 일을 어찌 알리요 하였으나 예수는 오늘도 내일도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으로 우리와 함께 세상 끝날까지 계실 것을 약속하셨다. 유대인들은 천사와 선지자들을 매우 존경하였다. 천사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존경을 받는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이기 때문에 더욱 존경하였다. 그러나 천사도 선지자도 우리 인간의 죄를 해결할만 한 능력은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우리 죄 문제를 해결하실만한 능력을 가지신 분이시다.

 

바울은 많은 학문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스스로 자기의 고뇌를 해결할 수 없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라.' 고 호소하였다. 그의 고민은 언제 해결되었는가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해결되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당당히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는 자기의 모든 것을 분토같이 버리고 따를만한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여러분에게 예수는 과연 믿을만 한 가치있는 분이신가?

 

2. 천사보다 더욱 크신 분이시다. (4)

천사는 무엇인가? 천사는 하나님의 종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선지자가 위대한 인물로 존경을 받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기 때문이다. 선지자 처럼 천사들도 존경받는 대상이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천사를 하나님의 종으로 묘사하고 있다.

 

천사들이란 하나님의 바람, 불꽃이라고 불리웠다. 그들이 신속하고 영향력이 있다는 뜻이다. 천사는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기 위하여 보냄받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천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을 섬긴다. 하나님께서 그 어느 천사를 향하여 '내 아들' 이라 부르신 일이 있는가 ?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서 뿐이다. 하나님은 모든 천사에게 명하셨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모두 그에게 경배하라.' 예수님은 모든 천사들에게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우리가 섬기는 예수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 한마디로 인간은 자기 스스로를 높이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를 낮추시는 분이시다. 많은 사람들은 아담과 하와를 원망한다. 왜 선악과를 따 먹어서 우리로 고생하며 유리하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누가 아담인가 ? 누가 하와인가 ? 바로 우리들이 아닌가 ? 아담과 하와가 그러했던 것처럼 인간은 지금까지도 계속하여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솔직하게 그건 너가 아니라 바로 나 때문이라고 고백하여야 한다.

예수는 모든 인생들의 잘못을 보시고 '너희 잘못을 너희가 담당하라.' 하지 않으시고 친히 모든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셨다.

 

예수는 지금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가 이렇게 나타났다. 사랑을 말하면서도 사랑하지 못하고 헌신을 말하면서도 부분적인 헌신을 나타낼 뿐인 우리 인생을 위하여 그분은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헌신하셨다. 바울의 견해에 의하면 '이 예수를 하나님이 오른 손으로 높이셨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다. 의를 심은 사람은 화평을 거둔다. 열심으로 땀 흘린 개미가 풍요한 삶을 누리는 것 처럼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열심을 다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신다.

 

천국은 자기를 낮추는 사람들에게 임한다. 어떤 사람이 기독교잡지를 창간하면서 이런 말을 썼다. '우리는 한국교회에 범람하는 또 하나의 잡지를 만들어 내고 싶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뭐 좀 색다른 책을 만들어 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새로 출간되는 잡지 뿐인가? 목회자들도 여러가지 모양으로 자기를 차별하려고 한다. 기성 목사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한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주변에 수 많은 교회들이 있지만 우리 교회를 그런 교회와 비교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그것은 평신도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제발 다른 교회 교인들과 비교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모두 제가 훌륭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탄의 정신이 아니다.

 

예수는 하나님과 본체이시다. 그 영광을 버리고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시다. 그는 죄 없이 고난을 받으셨다. 그분은 오직 고난을 받기 위하여 오신 분이시다. 죽기까지 복종하신 분이시다.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면서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라고 힘 주어 기도하셨는가 ? 그러나 예수는 곧 자기의 기도를 포기하셨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세례요한은 와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였다.

에수님은 철저하리만큼 하나님의 뜻을 따른 분이셨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그는 온전히 자신을 쳐서 복종하셨다.

 

오늘 우리가 경배하며 찬양하는 예수는 바로 이러한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