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료

양자됨에 대한 이해

'코이네' 2017. 10. 21. 23:12

양자됨에 대한 이해

 

 

중생은 우리의 영적 탄생을 의미하는 용어이지만 의로워짐과 양자됨은 법률적 용어입니다.
양자란 말은 로마 사회에 배경을 두고 있는 말입니다. 이 말은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거의 들을 수 없는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스 사회에서는 양자를 삼는 일이 많이 있었으며 로마 사회에서는 매우 흔한 일이었습니다.


 해리 A 아이언 싸이즈(Harry A. Ironsides) 박사님이 쓰신 ‘In the Heavenlies’란 책에 보면, 양자됨이란 말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양자 입양의 문자적인 의미는 ‘아들로서 완전한 위치를 부여함’이란 말이다. 이는 성경을 통해서 그 배경을 이해할 때 한결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인은 몇 명의 아내를 거느리고 있었고, 그 아내들 가운데는 노예도 있었다. 주인이 노예로부터 태어난 자식에게 자신의 유산을 물려주고 싶을 때 몇 명을 선택해서 적법한 절차를 거쳐 공개적으로 양자임을 선포한다. 이렇게 하면 아들로서 합법적인 아버지의 상속자가 되며 모든 법적 지위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양자’란 말은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쓰인 적은 결코 없습니다. 바울 사도가 유일하게 그리스도와 함께 한 공동 상속자로 우리들의 지위와 특권을 언급할 때 한번 사용했을 뿐입니다. 로마의 관습에 정통했던 바울 사도는 이런 로마의 법률적 관점을 통해 그리스도인들과 하나님과의 법적 관계가 로마시대의 주인과 양자의 관계와 동일함을 설파했던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썼습니다.
“그분을 영접한 자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능을 주셨으니 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자들이니라”(요1:12,13).

 

중생이란 신자가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말합니다. 양자됨이란 새로운 탄생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자가 즉각적으로 신분이 변화되어 상속자의 지위를 확보함을 의미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내가 말하노니 상속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아이일 때에는 종과 다름이 없고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는 가정교사와 감독하는 자 밑에 있나니 이와 같이 우리도 아이였을 때에 세상의 초등 원리 밑에서 종노릇하였더니 충만한 때가 이르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대속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아들로 입양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의 영을 너희 마음 속에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더 이상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상속자니라”(갈4:1-7). 

 

양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나옵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경배하고 우리는 경배하는 것을 아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요4:22).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유대인들은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백성에게 오시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요1:11).


구원받을 때까지 이방인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가족에 속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기억하라. 너희는 지나간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하는 할례를 받은 자들 곧 할례자라 일컫는 자들로부터 무할례자라 일컬음을 받던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공영권 밖에 있던 외인들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낯선 자요,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들이더니”(엡2:11,12)


로마서 8장과 갈라디아서 4장에서 “아바, 아버지”란 표현은 우리가 이방인에서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되었음을 말해 줍니다. ‘아바’란 히브리어로 ‘아버지’입니다. 이방인들이 구원받을 때, 그는 구약 성경의 족보를 거슬러 아브라함의 후손에 호적이 등재됩니다. 영적으로 그는 유대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들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너희가 다시 두려움에 이르는 속박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 삼으시는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바, 아버지, 라 부르짖느니라”(롬8:14-15).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씨요, 약속에 따른 상속자니라”(갈3:29).

 

우리는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이며, 구약 성경에서 유대인들에게 주기로 약속했던 하나님의 약속들의 참여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육체적, 문자적 유대인이 아니라 영적 유대인입니다(주의 요망!). 이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유대인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 약속하신 모든 축복을 우리가 대신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교리이며, 전혀 진리가 아닙니다.
“이는 겉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겉으로 육체에 행하는 할례가 그 할례가 아님이라. 오직 속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이요, 할례는 마음의 할례이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하니라. 이런 사람에 대한 칭찬은 사람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롬2:28,29).

(29절의 할례 또한 영적 할례이지 육체의 할례가 아닙니다.) 

 

양자되는 때


어떤 의미에서 양자됨은 영원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쓴 에베소서에 이 내용이 나옵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하여금 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자신이 크게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의 자녀로 입양하셨으니”(엡1:4,5)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심을 통해 창세 이전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을 사람들을 양자로 입양할 것을 예정하셨습니다. 비록 모든 신자들이 양자로 입양될 것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실제 양자로 입양된 것은 믿는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현재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구원받았다면 말입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그런즉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것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함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되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분과 같게 될 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을 계신 그대로 볼 것임이라”(요일3:1,2).


 

비록 우리가 왕의 아들의 신분이며,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들이 되었다고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그렇게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신분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변화된 신분에 만족하고 믿음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요1:12).


현재 우리는 마치 고아처럼 보입니다. 우리의 호적 서류가 다 올라갔고, 법적으로 완벽히 양자로 입양되었으며, 많은 것들을 양자로써 누리지만 아버지가 돌아와서 집에 데려 갈 때까지 우리는 고아처럼 남아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몸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변화될 때 우리의 양자됨은 완성될 것입니다.


이에 대해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뿐 아니라 우리 곧 성령의 첫 열매를 소유한 우리까지도 속으로 신음하며 양자 삼으심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나니”(롬8:23)


우리는 이미 양자로 입양되었으며 앞에서도 언급된 것같이 우리의 속사람은 죄없고, 완벽하게 거룩한 사람입니다. 속사람은 이미 그리스도와 합해져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겉사람은 아직 결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셔서 우리에게 새 몸을 입혀 주실 때, 우리의 양자됨은 완벽해 질 것입니다. 그 날에 우리는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결합할 것이며, 우리의 양자됨은 모든 열거된 특권들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요일3:2). 

 

 양자의 축복


양자가 누릴 축복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아버지의 사랑 - 요17:23
2. 아버지의 보살핌 - 요12:27-33
3. 아버지의 징계 - 히12:5-11
4. 아버지의 위로 - 사66:13, 고후1:4
5. 아버지의 상속 - 벧전1:3-5, 롬8:17

 

 양자의 특권


양자가 누릴 몇몇 특권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가족의 이름 - 요일3:1, 엡3:14,15
2. 가족과 동일함 -롬 8:29, 요일3:2
3. 가족 사랑 - 요13;35
4. 가족과의 유대 - 롬8:15, 갈4:6
5. 가족의 일 - 요14:23,24, 요15:8

 

양자의 증거들


영국 리버풀 출신의 위대한 전도자였던 J.C. 라일(1816-1900)은 ‘새 출생’(The New Birth)에서 양자로 입양된 우리의 아들 신분에 대해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다음은 그의  책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1. 하나님의 아들들은 우선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하는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들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롬8:14).

 

양자된 자들은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일에 있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그분의 가르침을 따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자신의 길로 가지 않으며, 자기 눈에 좋은 대로 행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천연적인 본성에 따라 행동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십니다. 성령님은 그들을 지도하십니다. 마음 가운데, 삶 가운데, 우리가 애착하는 모든 것들에서 성령은 진리라는 한 방향으로 인도하십니다. 비록 느끼지 못하고, 알아차리지 못할지라도 성령의 역사는 계속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자기 의란 죄로부터 멀리 떨어지도록 하시며,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십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인도하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양자로 입양한 아들들을 가르치시고 훈련하십니다. 성령님은 그들에게 그들의 마음을 열어 보여 주십니다. 그들이 아무것도 아닌 자요,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임을 알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내적 평안을 갈구하도록 하시고 또한 부여해 주십니다.
* 양자들은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 양자들은 성경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 양자들은 기도를 통해 인도함을 받습니다.
* 양자들은 거룩함을 추구하도록 인도 받습니다.

 

이 길들이 성령께서 양자들로 걷게 하는 좁은 길이요, 협착한 길입니다. 하나님이 양자로 삼으신 사람들은 늘 거룩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죄가 그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알게 하십니다. 또한 거룩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를 깨닫게 해 주십니다.


독자들이여, 이 말씀들을 마음에 담아 두십시오. 그리고 버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2.  모든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향해 양자된 아들의 감정을 갖습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너희가 다시 두려움에 이르는 속박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 삼으시는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바, 아버지, 라 부르짖느니라”(롬8:15).


하나님의 아들들은 노예처럼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그런 두려움에서 건져냄을 받았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본성상 죄를 지을 때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아들이 될 때 아담이 동산에서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신들을 가린 그런 죄 의식, 가인이 하나님의 면전에서 물러날 때 지닌 그런 죄 의식으로부터 놓이게 됩니다. 아들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거룩함과 위엄, 공의앞에 죄인으로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놓여 있는 깊은 골, 높은 장벽이 있던 그런 느낌을 갖지 않습니다. 이런 혼의 속박과 두려움에서 완전히 자유를 얻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향해 갖는 느낌은 평안과 확신입니다. 아버지이시기에 담대함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속박의 영이 자유의 영으로 바뀌었습니다. 두려워하는 영이 아니라(딤후1:7) 사랑의 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 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갖는 감정입니다.


저는 어떤 다른 사람들보다 이런 감정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가끔 옛 사람의 본성이 살아 나와 하나님 앞에 두려움과 거리낌이 있기도 하지만 그런 감정의 표출은 날이 갈수록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갖는 감정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갖는 감정은 완전히 다릅니다. 이것이야말로 양자된 또 다른 확실한 증거입니다.

 

3.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의 마음 가운데 성령의 증거를 지니고 있습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8:16)


 

하나님의 아들들은 누구나 자신들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옛것은 지나갔고 새것이 들어 왔으며 죄는 사라지고 평안이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의 문이 열리고 지옥의 문이 닫힌 그런 내적 의식을 지니게 됩니다. 간단히 말해 세상 사람들이 전혀 느낄 수 없는 적극적이며, 확실한 소망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말한 성령의 인(도장), 성령의 보증을 가지고 있습니다(고후1:22; 엡1:13).


저는 이런 성령의 내적 증거가 제가 표현할 수 있는 정도보다 훨씬 더 깊고 다양하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분명하고, 생생하고 뚜렷하고 독특한 내적 증거를 의식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고, 그리스도는 내 안에 있도다’ 반면 어떤 이는 이런 의식을 전혀 갖지 못한 채 마귀의 속삭임과 육신의 욕구에 이끌려 삽니다. 어떤 아들들은 구원받자마자 안전한 항해 길을 택해 하늘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갑니다. 반면 어떤 아들들은 그들의 배를 타고 이리 저리 흔들거리느라 거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심지어 자신들이 얻었던 믿음조차 의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아무리 안되어도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사실을 붙들어야 합니다. 스스로 물어 보십시오. 내가 현재 철저히 세상으로 마음을 돌렸는가? 내가 한 때 붙들었던 모든 것들을 내팽개치고 세상으로 돌아가고 있는가? 마음을 터놓고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 대답에 누구 토를 달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면 여러분 안에 떨쳐 버리기 싫은, 결별하기 싫은 무엇인가 한 가지는 있다는 사실을 알 것입니다. 그 한가지가 무엇입니까? 바로 성령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 의식 속에 성령의 증거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아들의 표시입니다.

 

4.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아들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받는데 참여합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자녀이면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니 우리가 그분과 함께 고난 당하는 것은 함께 영광도 받으려 함이니라.(그러하다면(if so be that) 그분과 함께 고난 당하며 또한 함께 영광스럽게 되리라.)”(롬8:17)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겪어야 할 시련, 어려움, 고통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오는 시련, 육신으로부터 오는 시련, 마귀로부터 오는 시련도 있습니다. 친구들로부터 심한 말, 심한 행동, 심한 판단을 받기도 합니다. 오해와 욕설과 조롱과 모욕과 이에 준하는 모든 나쁜 일들이 비처럼 쏟아집니다. 때때로 세상의 이익에 눈이 돌아가기도 합니다. 사람을 기쁘게 할 것인지, 하나님을 기쁘게 할 것인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다가 사람들을 잃어버리지나 않을는지 선택의 순간이 자주 찾아옵니다. 이런 유혹은 자신의 마음 속에서부터 찾아 듭니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육신의 가족 가운데서 찾아 들기도 합니다. 가족이 원수요 마귀적일 때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겪는 경험입니다.


고난은 주의 가족들의 식단에 놓인 음식입니다.
“이는 주께서 자신이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자신이 받아들이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셨으니...징계는 누구나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요, 아들이 아니니라”(히12:6,8).


“제자들의 혼을 굳건하게 하고 믿음 안에 머물러 있으라 권면하며 또 우리가 반드시 많은 환난을 거쳐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야 하리라 하더라”(행14:22).

 

집 주인이 래티머 주교에게 자신은 어려움을 겪어 본 적이 없다고 말했을 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여기에 계실리 없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고통이란 하나님의 아들들이 거룩하게 되는 과정의 일부입니다. 가끔 징계를 통해 세상과는 점점 멀어지며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예자가 되어 갑니다. 그들의 구원의 대장이 고난을 통해 온전해 지셨다면, 그들도 똑같이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엄청난 고난을 겪어 보지 않거나, 깊은 타락 가운데 있어 보지 않고 위대한 성인이 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필립 멜라크손이 ‘걱정거리가 없으면 기도할 일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고난을 받은 구세주는 고난받는 제자들을 갖습니다. 우리의 신랑은 슬픔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신부가 슬픔을 전혀 알지 못하는 기쁨의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십자가에 대해 불평하지 맙시다. 이것은 아들됨의 징표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이여, 저는 여러분이 성경적 아들의 징표도 없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여기지 않기를 경고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주의하십시오. 제가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성령의 인도하심도 받지 못하고, 내적 증거도 없고, 삶 가운데 어떤 십자가도 없다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입니까? 저는 감히 확답을 내리지는 못하겠습니다.

(원문글 -> http://blog.daum.net/01077308337/782)

 

 


by 코이네설교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