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요한계시록

[계2:12] 버가모 교회에 보내는 편지

'코이네' 2017. 1. 22. 02:14

 버가모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 내용(2:12-17절)

“12버가모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 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13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4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6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17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 2:12-17)

1) 버가모 교회에 예수님은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는가?(12절)
(1) 좌우에 날 선 검을 가지신 이 (심판하시는 예수님)
버가모 교회에는 주님이 좌우에 날카로운 검을 가지신 분으로 나타나셨다(계 2:12). '좌우에 날카로운 검'의 원뜻은 '두 입의 날카로운 검(τήν ῥομφαίαν τήν δίστομον τήν ὀξεῖαν)'이다. δίστομον이 δίς(두 번) + στόμα(입)의 합성어에 날카로운 검(ὀξύς ῥομφαία)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선악과 정사를 다스리는 두 가지 권위를 가리킨다. 칼은 버거모의 상징물이었다. 칼은 힘, 정의, 장긍심을 상징한다. 또한 심판권과 사형권을 가진 권력을 말한다. 로마 총독은 두 계층으로 분류되는데, 그것은 이우스 글라디이(ius gladii)라고 하는 검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는 총독과 그런 권리가 없는 총독으로 분리된다. 검 사용권을 가진 총독은 생사권을 가지고 있어서 사형 집행을 할 수도 있었다. 버가모 총독은 그 권한이 있었다. 버가모의 상징이 칼이었던 것은 로마로부터 재판권과 사형집행권을 위탁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은 양날에 날카로운 검을 갖고 계신 부활하신 주님으로 표현하여 기독교를 핍박하는 세상 황제의 권력 곧 사탄의 권력보다 주님의 권력이 더 크고 강함을 보여주고 있다. 

(2) 버가모 교회를 향하여 무엇을 칭찬하는가?(계 2:13절)
예수님의 증인 안디바가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음을 칭찬했다. 

① '네가 어디서 사는 것을 내가 안다'(2:13).
주님은 버가모 교회의 사정을 잘 아신다. 에베소 교회는 그들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아시고(계 2:1), 서머나 교회는 그들이 당한 환난과 궁핍을 아시고(계 2:9), 버가모 교회는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의 사정을 잘 아신다고 하였다(계 2:13).

② '(네가 사는 곳은) 사탄의 위가 있는 곳이다’(2:13).
'사탄의 위' 곧 사탄의 자리로 사단의 왕적 권좌를 뜻한다. 황제 예배의 중심지로 로마 황제를 로마 신으로 숭배하도록 했고 여러 신전이 세워졌으며 신상이 안치되었고 각종 제사 의식이 집행되었던 것이다. 

* 3대 황제 숭배
1) 아우구스투스(Augustus: B.C 30 - A.D 14) 황제 신전
2) 트라얀(Trajan: A.D 98 - 117) 황제 신전
3) 세베루스(Severus: A.D 193 - 211) 황제 신전

* 4대 신 숭배
1) 제우스(Zeus) 신전
   B.C 180년 건축, 세계 7대 명물 중 하나로 높이 40피트, 장이 90피트로 제우스는 최고 의 통치의 신으로 섬겼다.

2) 디오니소스(Dionysos) 신전 
   술과 환락의 연극 신으로 특히 애주가와 연극 배우들에게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3) 아테네(Athene) 신전
   수태에 의한 번식과 지혜의 여신으로 출산하지 못한 여자나 얼굴이 고와지기를 소원할 때 경배하는 신이다. 특히 예술인과 군인들의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4) 아스클레피오스(Asklepios) 신전
   의료의 신으로 병자들이 치료받기 위해 경배하는 신이다. 

버가모의 남서쪽엔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우스 (Asclepius)의 신전이 있는 아스클레피온 (Asclepion)이 있다.  아스클레피우스는 보통 뱀이 꼬고 있는 모양을 한 지팡이를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뱀은 자라면서 껍질을 벗기 때문에 새롭게 된다고 해서 회춘과 예언을 상징했다고 한다.  피부가 새로워진다고 얼굴을 벗기는 현대의 박피술을 연상케 한다. 두 마리의 뱀이 감긴 꼭대기에 두 날개가 있는 지팡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헤르메스의 지팡이인데 평화와 의술을 의미한다고 해서 미 육군 의무대의 휘장이기도 하다. 

기원후 2세기경에 버가모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성장하여 의학과 철학을 공부하여 의술을 베풀었던 갈렌(Galen, 129-199 AD)은 매우 유명한 의사였고 많은 글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처음엔 검투사들을 치료하였었는데 다시 의학에 정진하면서 버가모에 있던 의과대학에 혼신을 기울였는데 그 당시 그에 의한 의학적 발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이 아스클레피온은 세계 최초의 헬스 스파(Health Spa : 마사지나 물의 열, 부력 따위로 온몸의 혈액 순환을 촉진하여 피부를 관리하고 몸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어 놓은 장소.)형 종합병원이었다.  피곤에 지친 지도급 인사들이 많이 찾아 왔다는데  흰 대리석으로  잘 지어진 엄청난 시설에 놀라웠다.  긴 입구라던지, 주랑을 갖춘 비밀의 길이 있고, 명상하는 곳이라던지,  음악이 퍼지고, 물을 끌어들여서 물길 따라 조용히 흐르는 소리마저 들을 수 있게 되어있었다.  모든 피로와  마음의 짐을 풀 수 있는 여러 가지 치료가 있어서  가망이 있는 환자들은 심리학자 프로이드가 태어나기 전인데도 그 당시에 이미 정신을 분석하는 치료방법이 있어  정신치료도 받을 수 있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뒤적이기도 하고, 치료의 효험이 있는 온천수에 몸을 담근다던가, 3천5백 명이 앉을 수 있는 극장에 가서 소포클레스의 연극을 보던가, 친구들과  어울려 며칠씩 머물면서 피로를 풀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버가모는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르고 있는 자들이 있어 주님의 입의 검으로 심판을 받고야 말리라는 경고장을 받은 것이다. 

③ '나의 이름을 굳게 불들었다'(2:13).
주님의 이름을 놓치지 않고 굳게 잡았다는 뜻이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찬송이 절로 나온다. 예수 이름의 가치 때문이다.

④ '나의 충성된 증인 인티파스가 있다'(2:13).
안디바의 헬라어 이름 '안티파스(Ἀντιπᾶς)'는 안티(ἀντί, 반대하여)+파스(πᾶς, 모든)의 합성어이다. '모든 것에 대적하는 자'의 뜻이 된다. 주님의 뜻에 반하는 모든 것 즉 우상숭배와 영적 행음을 반대한다는 것으로 예수님의 충성된 증인이 되기에 합당한 이름이다. 실제로 안디바는 버가모의 감독으로서 도미티아누스 황제 통치 때에 황제 숭배를 거부하다가 불에 벌겋게 달군 놋쇠 황소 위에 얹혀져 처참하게 타 죽어 순교했다고 한다(옥스포성경원어대전 p. 171). 처참하게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의 충성된 증인으로서 십자가에서 순교하셨다면, 안티파스는 충성된 증인이신 예수님을 위하여 처참하게 순교하였던 것이다.

⑤ '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아니하였도다'(2:13).
    죽음의 환경에 처하면 도망치거나, 동화되거나, 배반하거나, 굴복하거나 한다. 그러나 안티파스는 끝까지 인내하고 순교하였다. 서머나 교회의 모범적인 믿음이었다.  

2) 예수님의 책망과 권면이 무엇인가?(14-16절)
(1) 발람의 교훈, 곧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 있도다(2:14-15절).

① '발람의 가르침을 지키는 자들이 있음이라'(2:14).
    바람의 기사는 민수기 22장-25장, 31장 8절, 16절에 나타난다. 돈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해야 하는 길이다. 그는 모압 왕 발락이 돈을 주고 고용해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재물을 먹게 하고 행음하게 하였다(민 22:5-25:3; 31:8)

행음은 문자적 의미와 은유적 의미를 갖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민 25:1-3에서 모압 여인들과 육체적으로 행음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신들과 영적인 음행을 하였다. 예수님의 시각에 따라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육체적 음행(9:21; 21:8; 22:15)와 영적인 음행(2:20, 21; 14:8; 17:1,2 ,4, 5, 15, 16; 18:3, 9:19:2)의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하였다. 

발람은 돈에 팔려 이스라엘 백성을 정면으로 저주하지는 못하였으나 후면으로는 모압 여인을 통해 우상 숭배와 음행으로 진리를 거짓으로 꾀었고 그 결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수 만 명이 죽게 되었다. 그것은 '발람의 길'이요 교훈이다. 버가모 교회는 충성된 증인의 순교가 있는 반면에 우상과 행음에 유혹되어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다는 부끄러움이 있다.

② '(발람처럼) 거치게 하는 것(올무)을 놓게 하였다'(2:14).
   거치게 하는 올무는 '스칸달론(σκάνδαλον)'으로 구약에서 '올무'와 '장애물'로 번역되었다(레 19:14). 이는 넘어지게 하는(마 13:41; 16:23) 것이며, 실족케 하는(마 18:7; 눅 17:1) 것이고, 거리끼는(고전 1:23; 요일 2:10) 것이다. 발락은 발람에게 속임수를 써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와 음행의 이중적인 죄를 짓도록 올무를 놓는 방법을 보여 주었다.

③ '(발람처럼)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게 하였다'(2:14).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는 예루살렘 총회에서 금지하였다(행 15:20, 29). 우상 제물을 먹게 할 뿐만 아니라 우상 숭배의 동참을 유도한 것은 사탄의 올무임에 틀림없다.

④ '(바람처럼) 행음하도록 하였느니라.'(2:14).
    행음의 헬라어 '포르뉴사이(πορνεῦσαι)'는 동사 '포르뉴오(πορνεῦω)'의 제1 과거 부정사이다. 발락은 발람을 꾀하여 이스라엘로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모압 여자들과 행음하게 하였다. 이 일로 인해 염병으로 2만 4천명이 죽었고(민 25:9), 약속의 땅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요인이 되게 하였다. 음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기억하기 바란다(고전 6:10). 물론 여기서 행음은 하나님 앞에서 신앙의 절개를 버린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와 사랑의 관계를 설정해 놓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으로 외도하면 분노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지만 부부처럼 사랑의 관계를 설정하셨다.

호세아서는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라 하시어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묘사하였다. 아가서는 신랑과 신부의 사랑으로 묘사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끝이 없음을 보인다. 말라기서에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눈먼 희생으로 드리고, 저는 것과 병든 것을 드리고 의무를 다하였다고 자신했다. 총독도 받지 않는 것을 드렸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조치를 취하신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말 1:10) 

발람의 타협주의(Compromisism)는 잡혼과 우상 숭배의 타협이요, 발람의 혼합주의(Syncretism)는 우상숭배와 교회의 연합이며, 발람의 탐욕주의(Covetousness)는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벧후 2:14-15). 뇌물과 명예에 매수되면 사망이다.

(2)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2:15절). 
(1) 니콜라파의 가르침이 무엇인가?

가) 반율법주의 : 노스틱적인 자유파다. 죄에 대하여 자유와 양심을 내세우는 파로 특히 요 한복음과 계시록을 불신한다. 그러므로 복음과 계시를 불신하는 자는 니콜라파이다 (Tertullian)

나) 반도덕주의 : 음식에 매우 방종했으며 불결한 생활을 하고 호색에 몰두했다.(Irenaeus)

다) 종교적 혼합주의(Syncretism) : 헬라 철학과 사상을 기독교 생활에 옷 입힌 위선자들(Rasay)이었다. 

헬라철학의 양대 산맥은 에피쿠르스학파와 스토아학파이다(행 17:18). 에피쿠르스학파는 쾌락주의로 신과 사람은 물질적인 현상이 있고 진정한 평화는 검소한 생활로 마음의 평화 ‘아타락시아’를 얻는 것이다 하여 쾌락주의로 불리었다. 

스토아학파는 금욕주의로 자연이 부여한 운명대로 살대 자연으로 돌아가라 했다. 자연에 순응한 현자는 자연 그 차체로서 신과 같다 했다. 로마 통치에 순응케 하도록 이끌어 로마 통치자의 환영을 받았다. 네로의 스승 세네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등이 주요 그 파의 철학자들이다. 중세 가톨릭 수도사들에게 금욕주의의 영향을 주었다.

라) 타협주의 :헬라신과 로마 황제 숭배 및 축제 참여, 신당의 승려들과 음행까지 한 이방신과 타협하는 이단의 무리(Chilton)

마) 이원론적 영지주의(Dualsm Gnosticism) : 인간을 이원론적인 선악의 존재로 파악, 육은 악하고 영은 선한 것으로 보고 육의 행위인 장유행위(壯遊行爲 = 쾌락주의)의 타당성을 주장하였다.(Tenney)

바) 무절제주의 : 은혜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육으로는 무슨 죄를 지어도 구원에 상관없다고 주장하는 방종주의.

사) 무질서주의 : 교회의 집사직을 남용, 목사나 장로의 치리를 거부, 반대하면서 교회의 주도권을 잡고 행정과 제반사를 관장하겠다는 지극히 비성경적인 주장을 했다.(Tatford) 

(3)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2:16절).

   회개하라는 헬라어 '메타노에손(μετανόησον)'은 '돌이키다'(메타노에오, μετανοέω)의 제1 부정과거 능동태 명령법으로 긴급함을 나타내는 시상이다. 

헬라어 석학인 트렌취(Trench) 박사는 '회개하다' 동사 '메타노에오, μετανοέω) '에 대해 4가지로 해석했다.

가) 잘못된 기존 지식에서 벗어나 새 지식에 이르는 것.
나)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
다) 하나님께 대하여 범죄 한 것을 근심하는 것.
라) 내적 변화로 사죄 및 정화를 추구하는 결의적 행동.

회개란 무엇인가?

회개란 지(知), 정(精), 의(意)의 변화이다. 지적으로 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정적으로 죄를 슬퍼하고 통회하며, 의지적으로 죄를 청산하고 새로 변화된 삶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돌아오라의 거리는 지역의 거리가 아니고 마음과 행동의 거리를 말한다(말 3:5).

②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2:16).
   회개가 없으면 심판하겠다는 주님의 결단이다.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히 4:12) 심판하신다는 경고이다. 그러므로 회개를 미루어서는 안 된다. 즉시 깨닫고 즉시 회개하여야 한다. 십일조, 주일성수, 새벽기도 등 대의명분 성공하다가 작은 물질 앞에 무너지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3) 이기는 자에게 주는 종말론적 약속이 무엇인가?(계 2:17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 2:17)

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귀(우스, οὖς)란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듣는 귀를 뜻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는 귀가 있는 자는 많지 않다. 더구나 마지막 때에는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리어져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아(딤후 4:3-4) 예언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 11:15, 13:19, 13:43, 막 4:9, 4:23; 눅 8:8, 14:35)라고 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7교회에 보낸 편지의 결구(結句)로 반복되었다(계 2:7, 11, 17, 29, 3:6, 13, 22, 13:9) 성령으로 할례 받은 자의 귀 만이 들을 수 있다(행 7:51).

(2)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과 그 흰 돌 위에 기록한 새 이름을 주겠다. 
① '이김'의 대상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니골라당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것에 대해 회개하고, 그런 자들을 바로 잡는 일을 실천하는 것이다.

②감추었던 만나는 무엇인가?
만나를 담은 항아리가 언약궤에 숨겨져 있었는데(출 16:32-34; 참조 히9:4) 이는 유대인의 눈에 숨겨져 있는 비밀이다. 이 문구의 의미는 메시야적 축제와 연결되며 하늘의 영원한 강복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Beale, 1995, 252) 만나는 주님을 상징한다(요 6:31) 주님과의 천국 백성의 혼인 잔치에 참여함을 묘사한 것이다.

③ 흰 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흰 돌은 재판 때 피고에게 무죄 시는 흰 돌을 유죄 시에는 검은 돌을 주었다. 고대 세계에서는 특별히 기쁘고 즐거운 날은 항아리에 흰 돌을 좋지 않은 날에는 검은 돌을 집어넣었다고 한다. 또한 초대 시 초대장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흰 돌은 산돌이신 예수님을 의미하기도 하여 믿음으로 승리한 자들이 예수님 안에서 안식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④ 흰 돌에 새겨지는 새 이름은 무엇인가?
흰 돌은 고대사회에서 재판의 마지막 승리의 표현이었다 한다. 또한 초대장(초대 입장표)이기도 했다 한다. 무엇보다도 흰 돌은 건축자의 버린 돌이셨던 예수님의 가슴에 새겨지는 영광을 얻게 된다. 새 이름은 새롭게 거듭난 성도의 이름으로 흰 돌이신 예수님의 가슴에 새겨진 이름이다. 이는 영광스러운 자리인 혼인 잔치에 참여하도록 자격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서야 하는가? 항상 깨어 있어 두렵고 떨림으로 살아야 한다. 스스로 섰다고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