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자료

[송구영신예배 시105:1] 여호와의 얼굴을 보라

'코이네' 2024. 12. 30.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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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얼굴을 보라

본문 : 105:1-4

서울해방교회/이승하목사

 

 

 

성경에 의하면 여호와의 얼굴을 보는 사람은 죽고 살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여호와의 등을 보았고, 이사야는 성전에서 여호와의 옷자락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지금 이 시간은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해를 알리는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고 난 직후입니다. 바로 새로운 희망의 시간이 출발하고 있습니다. 매우 황홀한 시간입니다. 가슴이 막 방망이로 치는 듯한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의 얼굴이 전과는 다르게 보이는 순간입니다. 역사는 지나가고 새로운 장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들에게 시작을 허락하셨습니다. 지금 이 순간 들려오는 말씀이 바로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본 시편 105편은 󰡒이스라엘을 향하신 언약"이라고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이 시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우리는 새 역사의 시작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기사를 말하라고 외칩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역사로 시작하여 가나안에 들어간 후까지입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800년 내지 900년의 역사입니다. 그러는 중에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기적과 또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보았습니다. 그 오랜 역사 속에서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생각을 갖게 됩니다. 어떤 여호와의 얼굴을 보아야 합니까?

 

1. 여호와의 낯을 피하지 말라.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인 다음 도저히 하나님 앞에서 살수가 없어서 피하여 도망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기 위하여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다시스로 도망하려고 배를 탔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고자 해서 다락방에서 예수님을 퍼나 어두운 곳으로 나갔다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얼굴을 항상 구하라는 말씀은 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합니까? 죄를 범한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얼마나 하나님의 앞을 떠나서 살아왔습니까? 그 수가 많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금년에는 결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하지 맙시다.

이 말은 중요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여호와의 낯을 피할 수 없습니다. 가인이 피했습니까? 요나가 피했습니까? 가룟 유다가 피했습니까? 그 누가 피해서 도망했습니까아무도 없습니다. 성군 다윗은 말합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139:7-12)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피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 죄를 범하지 말고 살자는 굳은 의지를 갖자는 것입니다.

 

2. 여호와의 기적의 얼굴을 보라.

모세가 왜 여호와의 얼굴을 보고자 했습니까? 이사야가 왜 여호와의 옷자락을 보았습니까? 그것은 그들에게 간절한 소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나타나 주기를 바랐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적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하나님에게 간절한 요구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가 여호와의 얼굴을 구합니까?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금년에 여호와의 기적을 구하지 않는 사람이 여기 나오셨습니까? 한 사람도 없을 잣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기적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처럼 어리석은 기적을 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보기 위한 기적이 아니라 우리들 생활의 변화를 위한 기적입니다. 곧 여호와를 위한 삶을 위한 것입니다. 인간적인 욕심이 아니라 영원하신 복음의 기적을 위함입니다.

누가 여호와의 얼굴을 구합니까? 현재 나의 형편이 어려울 때입니다. 시편22:24에는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길어하지 아니하시며 그 얼굴을 저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부르짖을 때에 들으셨도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부르짖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는 사람은 '항상'이라는 부사가 붙어 있습니다. 이것은 기적을 구하는 사람은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기적을 행하실 때에 기도로 하셨습니다. 사도들도 그랬고, 과거 2천년 동안 기적을 행하는 사람들이 기도로 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들도 그들과 같은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1년 중 어느 날이나 기도를 쉬는 사람은 여호와의 기적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도로 여호와의 기적을 구하는 사람이 됩시다.

 

3. 여호와의 희망의 얼굴을 보라.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항상 희망으로 살아갑니다. 우리들은 왜 이 시간 이 자리에 나아와 하나님께 예배하고 있습니까? 희망의 신앙인들이기 때문입니다. 희망을 갖지 못한 사람은 한 사람도 이 자리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향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6:25-26)고 하십니다. 요한 계시록 22장에 보면 마지막 날 하나님 왕국에 들어갈 사람들은 어린양의 보좌가 있는 데서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22:4)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희망을 바라는 사람은 항상 그의 얼굴을 보아야합니다. 그래야 계속해서 볼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항상 볼 수 있게될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들은 하나님의 희망을 원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희망이 아니라 여호와의 희망입니다. 그것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요 영원한 것입니다.

해바라기는 하루 종일 해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그 얼굴을 향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 바라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는 여호와를 구하는 사람이요, 그에게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요, 그의 복으로 세상에서도 희망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금년은 이 시간부터 한 순간도 여호와의 얼굴에서 우리들의 눈을 떼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또한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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