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부활과 평강
본문:요한복음20:19-23
부활을 믿는다 말은 우리가 육신이 죽고난뒤에 일어나는 믿음의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성탄절은 아득히 먼 옛날의 일을 기념하는 것이고 부활절은 아득히 먼 미래에 성도들에게 일어날 미래의 일로만 여기고 있습니다.현재가 없는 과거는 역사는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오히려 그 과거가 현재의 내 삶을 어렵게 만들 뿐입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내 삶에 투영되지 못하는 미래는 허황한 하나의 꿈이 될뿐 아무런 힘이 되지못합니다. 단순하게 예수님이 죽으시고성경대로 예수님이 무덤에서 살아나셨다는 것이 내게 어떤 감동과 현재의 내 삶에 적용되지 못하다면 그 부활은 겁데기요 알멩이 없는 믿음입니다. 부활이 내 지금의 생활에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믿는 것이 헛것이요 우리의 전파하는 것이 헛것일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싸우며 분쟁을 일삼는 고린도 교회에 성도들에게 너희가 예수의 복음을 받았다면 너희가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다시 사신 예수의 부활을 믿을 것이다. 고전15:15절 하반절이하에 말씀하십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 하셨으리라 앞으로 우리가 부활할 가능성이 없었더라면 예수님도 부활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일이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요 전파하는 복음도 헛것이요 우리 성도들이가장한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미성숙한 한자는 싸우고 지혜없는 일을하는데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예수부활을 믿는 단계로 나가기를 원해서 에수 부활을 믿는 그런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은 엄연히 우리가 육신의 죽음이후에 오는 성도의 특권입니다. 그러나 오늘 요한 복음에는 마리아와 12제자들은 살아있을때에 이미 예수 부활의 평강을 받고 부활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 부활의 평강을 충만히 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마리아와 12제자들이 누렸던 예수부활의 부활의 평강은
첫째로 두려움으로 해방되는 평강을 누렸습니다.
19절 말씀에
이날 곧 안식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찌어다 이날 새벽에 베드로와 요한 막달라마리아 이렇게 세사람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그 중에서 마리아가 가장먼저 무덤에 도착하였습니다.무덤을 막았던 큰 돌이 옮겨져있었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겁이 나서 선뜻 무덤안으로 들어가서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것을 알고 뒤 따라오는 베드로와 요한에게로 오던길을 되돌아가서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요한이 아무래도 젊은니까 베드로 보다 먼저 무덤에 도착했습니다. 요한 역시 무덤에는 도착했지만 무덤안으로 들어가지못하고 구프려서 세마포가 놓인것만 보고 무덤밖에서 머뭇거렸습니다. 베드로가 와서 같이 무덤속에 예수님의 수의는 잘개여져있는데 에수님의 시신은 없었습니다.저들중에 어느누구도 성경에 예수께서 그가 죽은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리라하신 말씀을 알지 못했습니다. 두제자는 마리아를 남겨두고 산에서 내려가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마리아는 혼자 울고 있는데 동산 관리인을 만납니다. 마리아는 그 관리인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좀 찾아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그런데 그 관리인이 갑자기 인자하고 부드로운 음성으로 마리아야 하고 마리아의 이름을 불렀습니다.마리아는 그때야 예수님의 시신을 잃어 버린것이 아니고 부활하신것을 깨닫고 선생님하고 예수님을 만지려고 합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나를 만지지말라 내가 아직 아버ㅗ지께로 올라 가지못하였다고 말씀하시면서 내아버지 곧 너희아버지 내 하나님 곧너희 하나님께로 올라 가신다는 것을 내 형제 들에게 가서 알려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는 그길로 제자들에게 내가 주님을 보았다하고 외쳤습니다. 그날밤에 제자들이 모였습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 부활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유대인을 두려워했습니다.유대인들이 예수의 부활하신것을 막으려고 어떤 흉계를 꾸밀런지 모른다생각하니 유대인이 자기들을 에수님처럼 체포하고 또 십자가에 못박을런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두렵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인는 것도 지금 숨어서 몰래 만나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방문을 꼭 잠그고 두려워 떨며 숨어 있는 형편입니다. 분명히 문을 잠갔는데 에수님게서 오셔서 저들의 가운데서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첫마디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지금 제자들의 마음은 불안하기 짝이없습니다. 그러한 저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평안할찌어다 하고인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으로 부터 듣는 첫마디입니다.이 첫마디는 제자들이 죽고 살아날때듣는 미래에 들은 말이아닙니다. 아직 육신의 부활이있기 전에 주님께서 들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나의 부활을 믿는 저와 여러분에게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서 평안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가 죽었을때에 마르다가 예수님게 예수님이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주시는 줄 믿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너무나 엄청난말을 합니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요11:23)이때에 마리다의 대답이 현대 그리스도인의 부활신앙을 대변해 줍니다.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날 부활에는 다시 살줄을 내가 아나이다. 마지막날 부활만 믿고 지금 우리가 사망의 두려움으로 부터 해방되지못한다면 마지막 날 부활은 지금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마지막날에 있을 부활만 믿고 있는 마르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마리다 처럼 마지막날에 있을 부활만 믿고 있다면 저와 여러분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요한 복음 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게 믿느냐 죽어서 예수님이 이세상 마지막날에 나를 부활하실것이라는 미래의 부활만 믿고 있다면 오늘 주님께서 지금 네 속에 생명이 있지 아니하느냐 지금 네가 이 생명을 믿고 있다면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것을 믿고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죽어있는 용기가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죽어 있는 신앙이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절망이 살아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생명이 이제나의 생명으로 바뀌어 졌기때문입니다.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찌라도 해 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그러나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을 영접할때에 우리에게 영원히 죽지않는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내가 나를 지배하는 것은 지배자가 사망으로 갈수밖에 없습니다.죄의값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배자를 내인생의 통치자를 바꾸었습니다. 예수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새생명으로 태어나고 새생명으로 태여난 사람은 새생명의 삶을 살고 새생명으로 성장합니다.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부활을 허락하셨기때문에 일생동안 이 부활의 선물을 허락하셨는데 사망의 두려움에서 해방 시켜 주셨습니다.
히2:15절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를 놓아 주려 하심이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사람이 누구이니까? 죽기를 두려웧지않는 사람입니다.얼핏보면 목숨을 내 놓은 사람은 참 용기 가 있어보이고 겁닐것이 없는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형이 선고되고 형집행을 기다리는 사람의 용기를 진정한 용기라 할수 있겠습니까?생명을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는 생명을 포기하는 용기입니다. 말하자면 이판 사판입니다.살아날 길이없습니다. 이런용기는 무모하고 오만 방자한 용기입니다. 부활오늘 우리에게 주는 죽음을 두려하지 않는 용기는 생명으로 부터오는 용기 올시다.
죽음때문에 두려워하고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있을찌어다히신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찾아오셔서 실패의두려움 낙망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평강할찌어다
마리아와 12제자들이 살아서 누렸던 예수부활의 평강은
두째로 주를 보는 기쁨입니다.
20절 말씀에
이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부활하신 예수의 흔적을 보고 기뻐하였다는 것입니다.세상에는 근심과걱정이 염려가끊어질날이없습니다. 그러나 부할하신 주님을 보면 우리 마음 속에 걱정 염려 고통이 사라집니다.
마리아는 에수님의 시신이라도 찾으려고 했지만 부활의 새벽동산에서 실의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때 한가닥 동산지기에게서 에수를 찾을 길이 없을까하고 나아갔다가 마리아야 라고불러 주는 그 음성을 듣고 그는 슬픔과 걱정으로 올라갔던그동산을 기쁨으로내려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노라 오쳤지만 제자들은 예수부활의 기쁨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마침 도마가 없을때에 예수님께 손과 옆구리를 보이실때에 제자들이 예수를 보고 기뻐하는 자리에 마침 도마가빠졌습니다.다른 제자들이 기쁨이 충만해서 우리가 부활하신 주를 보았다고 했을때에 도마가 내가 그의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옆구리에 넣어보지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했습니다. 도마는 의심이 많은 그런 성품으로 낙인이 찍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제자들도 마찬 가지입니다.마리아가 동산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만났다고 외쳤을때에 그 제자들 역시 마리아의 그 기쁨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게서 오셔서 손의 못자곡과 옆구리를 보여주실때 그 들에게 이부활의 기쁨이 찾아온 것입니다. 도마는 다른 제자들이 가진 그 기쁨을 자기도 간직해야하겠다는 욕심으로 그 제자들이 기쁨을 얻었던 그 못자국과 그 옆구리를 직접만져보지않고는 그 기쁨을 믿지 못하겠다는 말씀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방법도 그때 열두제자와 같을수없습니다. 장소도 다릅니다. 그러나 변함이 없는 것이 하나있습니다. 부활하신예수님은 오늘이나 내일이나 동일하십니다. 그리고 그 부활의 주님이 내게 허락하신 그 기쁨은 마리아와 같을것입니다. 이 기쁨은 열두제들과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부활의 기쁨을 사도들이 성령의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못자국난 주님의 손을 봅니다. 창에 상처를 입으신 옆구리를 봅니다. 예수님게서 일찌기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0:29절말씀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고 하시니라
부활의 기쁨을 예수님의 손에 박힌 못자국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지 않고도 우리는 말씀 속에서 사도들이 본 예수를 믿고 부활하신 주를 보는 자는 복되도다고 하셨습니다.
요일1:1-2절 말씀에
태초부터 있는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나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
사도들이 예수님의 직접보았고 그리고 만져 보았고 관심있게 보신 것을 우리에게 성경을 통하여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성경을 통하여 부활하신 영원한 생명을 만난 사람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복되도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근심과 걱정과 슬픔 많은 우리에게 오늘도 부활하신 주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개인적으로 만나주신 것을 믿습니다. 말씀의 부활입니다.말씀이 우리의 생활과 관계를 가지지못하면 그 말씀은 우리 속에서 죽어있고 썩은 것이고 아무런 능력을 발휘할수없습니다. 이 부활의 아침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육신의 생활속에서 부활하기를 원합니다.
마지막날에 사는 부활 이전에 이 세상에서 말씀속에서 부활하신 사실이 우리 생활속에 역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리아와 12제자들이 살아서 누렸던 예수부활의 평강을 어떻게 받았습니까?
첫째로 순종과 성령의 역사를 받아드렸기 때문입니다.
21절과 22절에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를 보고 기뻐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다시금 평강하찌어다 하신 것입니다. 19절에 첫번째 평강할찌어다고 말씀하신 것은 저들속에 에있는 불안과 초조를 버려라는 뜻으로 평강을 유지하라고 말씀하셨다면 이제 부활하신 예수를 나가서 전파할것을 명령하시는 파송의 사명을 맡기면서 평강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아담은 불순종함으로 우리 많은 사람에게 죽음의 길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순종하시므로 우리에게 생명과 부활의 새길을 만들어놓았습니다.
로마서 5:19절 말씀에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사람이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부활은 지금도 순종하는 자에게 부활의 기쁨이 살아납니다.
순종하는 자에게 부활의 영을 주어서 이 세상에서 날마다 부활의 기쁨과 감격속에서 살아가게 하십니다.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을 보기는 보았어도 그들이 생활속에서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순종할때에 부활의 영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예수 부활의 증거자로 삼으셨습니다. 이일을 감당하기 위하여 부활의 영을 주셨는데 바로 이성령을 누구에게 허락하십니까?
말씀에 순종하고 예수그리스도에게 전적으로 순종하고 의탁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성령을 베플어 주십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이 성령이 충만해서 히아한 능을 행하고 병든자들이 치료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때에 유대교의 공회가 이들을 불러서 심문하고 엄포를 놓습니다. 베드로를 불러서 다시는 이 사람 곧 예수읾으로 가르치지말라 예수 부활의 전도 금지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저들에게 대답합니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행5:29)
오히려 베드로는 이 기회에 저들에게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초대교회의 전도 내용은 예수의 부활이였습니다. 예수님이 활동을 이미 알려 진 사실이고 그 예수를 너희가 죽였으나 살아나셨다는 것이 복음의 내용이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부활의 증거를 막는 유대인의 종교지도자들에게 담대하게 말합니다.
행5:30-32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 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일의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그러하니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택하셔서 예수 부활을 증거하시기위하여 예수 부활의 증인이 되게 하셨습니다.목숨을 내 놓고 순교하기 까지 예수 부활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행1:8절 말씀도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큰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을 받지 않고는 예수 부활을 증거할수 없고 예수 부활을 증거할수 없는 사람에게 부활의 평강이 임하지 못합니다. 근심과 걱정 염려가 왜 사라지지 않습니까?예수 부활의 증인이 되십시요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움이 필요합니다.오순절 성령의 강림은 예수부활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권세요 또 다른 보혜사이십니다.
부활은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합니다. 현재우리 생활 속에 부활은 예수께서 죽으신 것이 하나님께 복종하셨기에 부활의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바울은 성도의 부활을 보증하는 것이 우리 속에 임하신 성령이라고 로마서에서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8:11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이가 너희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부활을 보증하는 성령이 여러분 속에 살고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부활을 설명하기를 예수를 첫열매로 설명하였습니다.
고전 15:20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가 되셨느니라
첫열매라는 말은 구약에 제사때 쓰이는 말입니다. 처음익은 곡식이나 짐승은 첫태를 하나님께 바침으로 나머지 모든 곡식도 바치는 것과 같이 전부를 바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부활의 첫열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 속한 우리도 비록 잠자지만 우리 속에 우리에게 부활이 이루워 질것입니다.
고전 15:23절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때 그에게 붙은 자요
우리가 예수속에있던 부활의 영이 우리속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예수님께 순종하십시요 예수께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예수를 사망가운데서 살리신 성령을 물붓듯이 부어 주십니다.
마리아와 12제자들이 살아서 누렸던 예수부활의 평강을 어떻게 받았습니까?
두째로 부활의 성령이 함께 하는 자의 생활은 한마디로 용서하는 생활입니다.
순종하여서 성령이 충만 한 사람은 이땅에서 부할의 기쁨과 자유를 체험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 하는 사람에게 부활의 평강이 찾아옵니다.
부활의 평강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강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귀한 축복을 우리에게 허락하시기위하여 우리속에 죄가 남아 있으면 부활의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받아드린지가 이미 수십년이 되었으면에도 불구하고 부활을 단순히 예수 재림때에 몸과 영혼이 살아나는 것만 믿고 있다면 오늘 본문 23절은 우리에게 그 비밀을 알려 주십니다.
23절 말씀에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 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성령을 받으라 명령하시고 죄의 용서에 대하여 권면하셨습니다. 우리가 긍휼히 여김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의 허물과 죄로죽었던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부활의 선물을 받을수 없습니다.
며칠전에 본문을 묵상하다가 주님께서 주님께서 네가 교인들 결석하는 것을 염려하는 것이 교인들 결석하는 것 보다 더 나쁘다는 음성을 듣고 회개 하였습니다. 부활은 세상죄를 지고 가신 어린 양의 죄가 용서 되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고전 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 믿음도 헛것이요 너희가 여전히 죄가운데 있을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죄를 사하셨다는 가장큰 증거는 십자가와 부활하신 빈무덤입니다.우리는 죄로 죽었습니다. 예수와 함께 죽었습니다.빈무덤을 남기시고 죄의 권세인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그 크신 사랑이 우리를 예수안에있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용서 하여 주셨습니다. 이런 엄청남 긍휼을 입은 우리들이 너무나 사소한 죄를 용서 하지 못하고 우리 마음에 두고 두고보자하고 벼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마5:7절에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나에게 지극히 작은 잘못을 한 사람의 죄를 용서하고 불쌍히 여기는 사람은 죄악으로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시는 부활의 긍휼을 받습니다. 엄청난 긍휼을 입습니다.
부활의 용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는 불만과 불평이 남아 있으면 용서 받지 못한 사람이 고통을 당하기 전에 먼저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고통과 괴롬으로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빛이 지금 우리 심령속에 비쳐 왔습니다.
예수 부활은 지금 우리에게 사망의 두려움으로 부터 벗어나게 해 줍니다.지금 우리속에 넘치는 근심걱정 염려로 부터 부활은 지금 우리에게 기쁨을 줍니다. 이 현재의 부활을 맛보려면 예수께 순종하여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다른 모든 사람 누구의 죄든지 용서 해야 합니다. 용서 없는 심령에는 부활의 꽃이 피지 못합니다. 이 아침에 예수 부활의 능력이 사랑하는 성도들의 심령과 생활속에서 다시 살아 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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