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마태복음

[마13:10] 복된 귀, 들을 줄 아는 귀

'코이네' 2021. 4. 17. 23:07

복 있는 귀

마태복음 1310-17

 

 

우리 말 속담에 귀가 보배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뜻이 무엇인가를 우리말 사전에서 찾아보았더니 배운 것은 별로 없으나 들어서 아는 것이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몸에는 여러가지 지체들이 있는데 그 지체들 중에서 우리 나라 사람들은 귀를 소중히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귀에 대한 여러가지 말들 중에 귀가 크면 부자가 되겠다. 귓 부리가 늘어 졌으면 후덕한 사람일 것이다. 귀가 크게 잘생겼으면 장수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그런데 그런 생각이 꼭 옳은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귀가 커도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고,귓 부리가 늘어 졌어도 인색한 사람들도 있으며,귀가 크게 잘생겼어도 단명한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성경을 상고해 보면 복된 귀가 있고, 복되지 못한 귀가 있음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복되지 못한 귀는 듣지 못하는 귀입니다.

 

귀가 있기는 하지만 듣지 못하는 귀를 가진 사람은 복되지 못한 것입니다.사람들이 흔히 대화를 하거나 상거래를 하다가 말귀를 못알아 들으면 답답하다고 가슴을 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의 말귀를 못 알아 들어도 답답한데,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 듣지 못한다고 하면 그 답답함은 말로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시편 584절에 보면 '저희는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귀를 틀어막아 버린 귀머거리 독사와 같은 그런 존재들 이었습니다.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란? 술사가 공교한 방술을 쓴다 할지라도 전혀 그 마술에 걸려들지 않는 독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왠만한 독사들은 술사가 방술을 쓰면 거기에 걸려들어 술사가 시키는 데로 독사가 춤도 추고 움직이기도 하지만 그런 방술에 전혀 걸려들지 않는 독사가 있는데 그런 독사를 가리켜서 귀머거리 독사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의 공의나 그 가르침 또는 진실한 조언이나 충언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악한 뜻만 고집하는 그런 사람들을 비꼬아서 하는 말로 영적인 귀머거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영적인 귀머거리가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마귀가 눈을 딱 감겨 버리니까 교회 나와 앉아 있기만 하면 졸리기 부터하고 귀를 딱 틀어막아 버리니까 귀가 있어도 아무소리가 안 들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찌니라'고 책망하셔서 벙어리 귀신을 쫓아내어 주셨습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의 하나는 귀먹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세례요한에게 돌아가서 예수님에 대해서 보고하기를 예수님은 소경을 보게 하시며 귀머거리의 귀를 열어 주시며 벙어리의 혀를 풀어주시는 분이시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마귀는 사람들의 귀를 틀어막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귀머거리 귀신을 쫓아내어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귀를 열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복되지 못한 귀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귀입니다.

 

본문 14절에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전혀 듣지 않는 것이 아니라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귀를 복되지 못한 귀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귀를 가리켜서 우리말 속담에 마이동풍이니, 혹은 우이독경이니 하는 말로,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리는 그런 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귀를 가리켜서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귀이며, 복되지 못한 귀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도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디모데후서 43절에 보면,'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둔다'라고 하였습니다. 귀가 가려워서란, 간지러운 곳을 긁어서 만족감을 얻는다는 뜻으로 즉, 육체의 본성을 충족시켜 주는 솔깃한 말만 듣는다는 뜻입니다. 에스겔서 3331절에 보면 '나의 백성이 내 앞에 앉아서 말을 듣기는 하겠지만은 그대로 실행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말로는 좋다고 하나 마음으로는 제 좋은 데로만 행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복음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색다르며 감각적인 것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서 그릇된 욕심을 충족시켜 줄 거짓 선생을 따르게 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솔깃한 말, 가려운데를 긁어줄 말만 듣기를 좋아 하십니까.그런 귀를 갖고 있는 사람은 진리의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 복되지 못한 것입니다. 이날 아침에 여러분과 저는 그러한 사욕을 좇고 육체의 쾌락을 만족시켜 주는 솔깃한 말만 들으려고 하는 그런 귀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진리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복된 귀가되기를 축원 드립니다.

 

둘째는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예레미야 610절에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기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아니하니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귀가 없었습니다.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즐겨하지 못했고 도리어 짐으로 여겨 자기에게 유익한 것만 추구하는 그런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스데반이 성령으로 충만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외쳤을 때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나타냈습니까. 그들은 귀에 할례를 받지 못했고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성령을 거스렸습니다. 그들의 조상들처럼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의인들을 죽이는 일에만 열심을 품는 자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귀에 할례를 받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할례라고 하는 것은 선민된 표시를 몸에 지니는 것으로 몸의 일부를 베어 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정욕, 명예욕, 탐욕, 물욕 등 육신의 소욕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방해하는 요소들이므로 이 시간 성령의 권능으로, 말씀의 능력으로 모든 육체의 소욕을 베어 버리는 마음의 할례를 받게 되어지기를 축원드립니다.

 

부모는 자식들을 위해서 온갖 것을 희생하는데 자식들은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70세된 어떤 할머니가 아들 셋을 낳아서 잘 키워 장가들을 보내고 큰아들 집에서 살았습니다. 낮시간에는 아들은 출근을 하고 손주들은 다 학교에 갔으므로 며느리와 단 둘이 집에 있게 되었는데 점심때가 되자 속이 출출하여 할머니가 냉장고 문을 열고 과일을 꺼내서 먹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며느리가 쫓아와서 야단을 치면서 하는 말이, 이 과일들은 저녁에 아범과 아이들과 같이 먹으려고 준비 해 좋은 것인데 왜 미리 꺼내 잡수시느냐고 퉁명스럽게 야단을 치면서 냉장고 문을 닫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할머니가 얼마나 속이 상했겠습니까. 그래서 눈물을 흘리면서 내가 갈 곳은 양로원 밖에 없다라고 생각하고, 저녁에 아들이 돌아오자 아들에게 말을 했습니다. 나는 늙어서 말벗이 필요하니 말벗이 있는 양로원으로 들어가겠다고 하자 아들이 인상을 찌프리면서 어머니는 아들 체면은 생각하지 않고 무슨 양로원에 가신다고 하느냐며 야단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 할머니는 양로원에 갈수도 없었고 눈물겨운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네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하는 말씀을 귀 기울여 들었다고 하면 그런 잘못은 범하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그런 귀가 할례를 받아 들을 수 있는 귀로 바뀌어 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복된 귀는 어떠한 귀냐 하는 것입니다.

 

들을 줄 아는 귀가 복된 귀입니다.

 

본문16절 말씀에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천국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귀를 갖고 사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국 복음은 들으면 좋고 안 들어도 그만 이라고 하는 선택(Option)의 문제가 아니고 ,생과 사를 가름하는 필수(Obligation)의 과제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복음을 믿고 받아 들으면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지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면 영원한 지옥불 속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천국복음을 아멘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귀가 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육체에 귀가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데 예수님께서 설교를 하실 때마다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뜻은 영의 귀가 있는 사람은 들으라는 것입니다. 이날 아침 여러분의 귀는 열려있는 복된 귀가 되기를 바랍니다.

 

계시록 2,3장에서도 성령께서 아시아 일곱 교회에게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지키면 하나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 과실을 주어 먹게하고,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하며,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흰돌을 주며, 철창 권세를 주고 흰 옷을 입을 것이며,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흐리지 아니하고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며, 하나님 보좌에 함께 앉게하여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엄청난 복들을 받게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아담과 이브는 마귀의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는 열려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는 꽉 닫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자신도 불행해 졌고 자자손손 불행을 안겨다 주는 장본인이 되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순종하는 열릴 귀를 가지셔서 여러분 자신이 복을 받으시고 자자손손 복을 끼쳐 주는 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또 옳고 그릇됨을 분별하는 귀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15절에 보면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말세가 되어 너무도 많은 이단들이 달콤한 말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진리와 비진리 또는 달콤한 말로 우리를 꾀이는 말인지 아닌지를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사이 갖가지 이단들의 달콤한 말에 끌려서 불행해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 달콤한 말에 끌려가면 이단의 소리가 진리인 줄로 생각해 죽을 때까지 끌려다니며 비참한 생을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귀를 가짐으로 이단의 미혹에 끌려가서 불행해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은 진리를 분별하는 옳바른 복된 귀를 가지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그 다음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귀가 복된 귀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판할 때 양심의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릇된 것이 없으시며, 죄가 없으시다. 그런데 제사장들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또 헤롯당원들이 뿌린 돈에 백성들이 매수 되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백성들 다수의 소리를 외면해 버리면 자기가 그 총독의 자리에서 쫓겨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육체의 행복을 따르느냐, 양심의 소리를 따르느냐, 갈등 속에서 고민을 하다가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여 백성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다가 그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받도록 정죄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빌라도는 양심의 소리를 듣지 못했으며 복되지 못한 귀를 가졌으므로 비참하게 죽어서 지옥 속으로 떨어져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요사이 돈에 대한 이상한 명칭들이 생겼습니다. 길 잃은 돈, 검은 돈, 세탁한 돈, 그런 이상한 말들이 생겼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돈은 세탁하는 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어떻게 세탁을 해야 하느냐하면 양털과 같이 희게 씻어 주고, 흰눈보다도 더 깨끗하게 씻어 주시는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야 정말 세탁이 되는 것입니다. 검은 돈은 양심대로 돈을 버는 깨끗한 돈으로 바꿔져야 되고, 길 잃은 돈은 참 길 되시는 예수님께로 돌아와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검은 돈의 소유자, 길 잃은 돈의 소유자들이 주님께로 돌아와서 검은 마음이 깨끗해지고 길 잃은 돈을 좋아하는 마음이 참 길과 진리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꿔지기를 축원 합니다.

 

계시록 13절에'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가 열려져서 그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자와 양심대로 살고 진리를 분별하며 사는 자가 복된 삶을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밤새도록 그물을 던지며 피,땀 흘려 고기를 잡았지만 헛수고에 그쳤고, 노동의 대가는 아무 것도 거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새벽에 예수님께서 찾아 오셔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지혜와 머리로는 아무리 피땀 흘려 애를 써도 헛수고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순종하면 엄청난 기쁨과 축복이 넘치게 임하실 줄로 믿습니다. 만일 듣지 못하는 귀,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그런 복되지 못한 귀를 가지신 분이 있으면 귀에 할례를 받아서 열린 귀, 복된 귀로 바꾸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 들여서 진리를 분별하고, 진리에 순종하며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양심대로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넘치도록 받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