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마태복음

[마12:9]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코이네' 2021. 2. 21. 00:4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마태복음 12: 9-21

 

 

예수님은 땅에 계실 때 인생고에 허덕이는 인간들을 불쌍히여기 셨읍니다. 이 광야같은 세상에 상한 갈대처럼 쓰러지고, 버림받은 인간들의 모습이 수 없이 비춰 올 때, 주님께서는 눈물을 금할길이 없었읍니다.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대로 무리를 보고 민망히 여 기셨읍니다.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 었읍니다 .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회를 쉬게 하리라'고 하였읍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 가시니 한쪽에 손 오그라든 사람 이 있었읍니다. 참으로 불쌍한 불구자였읍니다. 상처 난 인간이었 읍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을 불쌍히 여기사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펴라고 하시자 저가 손을 폈고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 하였읍니다 (마l2 :4).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상한 갈대를 회복시켜 주었읍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이것을 보고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 하여 율법을 파괴하는 인간이라고 죽이려고 하였읍니다. 예수 님은 조용히 그곳을 떠나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상처난 인간들에게 향한 온유하신 성품 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읍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마 l2 : 2o)하셨읍니다. 물론 이 예언은 그리스도의 온유하신 모습을 설명한 것이지만 우리 인간 편에저 보면 우리 자신이 상한 갈대들 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들의 존재를 갈대에 비교하여 설명하였읍니다. 요단강 강변에는 지금도 넓은 지역에 갈대 밭이 있읍니다. 바람이 불거나 물결이 치면 갈대는 꺾어지고 상할 수 밖에 없읍니다. 갈대 는 습기있는 곳에는 어디서든지 자라는 식물로서 유대땅 도처에 혼 히 볼 수 있읍니다. 이처럼 연약하고 상한 갈대 같은 존재가 바로 '인간'이 우리들 자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단 강변에서 유대 민중에게 세례 요한에 대하여 말하시기를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 바람에 흔 들리는 갈대냐? 하였읍니다. 갈대는 유대 민중을 가르키고, 여러 가지 인생고에 허덕이는 백성을 표현하고 있읍니다. 인간은 약한 존재입니다. 인생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으며{약 4 . l4), 육체 는 풀과(사4o : 6)같습니다, 아침에 돋는 화초가 낮에 꽃이 피어 자 라다가 저녁에는 떼인 바 되어 말라버럽니다(시9o : 6)'갈대같은 존 재!이는 인간의 연약성을 말합니다. 인간은 갈대와 같이 약한 것 인데, 더구나 상한 갈대는 무력하고 나약한 인간성을 표시한 것입 니다. 갈대는 바람에 꺾어지기 쉽습니다, 사람이 한 번 지나가도 상 하게 됩니다. 인간 역시 그러합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전쟁이나 슬픔인생의 폭풍우가 지나갈 때 마음과 육체에 상처가 나고 깨어집니다. 생각하면 모든 사람은 상한 갈대입니다. 사람은 모두가 마음의 뚜껑을 열고 보면, 마음의 비애 와슬픔의 탄식이 있고 절망의 몸부림이 있읍니다. 상한 갈대입니다. 험악한 인생 광야에서 상한 갈대들이 여기 있읍니다. 바람에 흔들 리며 꺾어지고 상한 갈대들입니다. 주님은 오늘 이 자리에 오셔저 상한 갈대 같은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첫째. 주님은 상한 갈대를 버리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자기에게 유리할 때는 이용하려 들지만 조금만 상처가 나서 흠이 있으면 버림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세상인심입니다. 한 형제가 이른 아침부터 회사를 위해 열심히 뛰고 일했읍니다. 그런데 과로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자마자 해임 조치를 받았읍니디. 이 비정의 현실에 애통하는 것을 보았읍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 만난 사람이 있었읍니다. 강도는 그에게 상처를 입히고 다 빼앗아 버리고 갔읍니다. 제사장 도 레위인도 그냥 지나갔웁니다. 그러나 선한 사마리아인은 상처 난 인간, 쓰러진 갈대처럼 되어버린 인간을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부었읍니다. 이 이야기에 예수님의 상한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읍니다. 이 세상은 상처 난 인간을 버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여러 꼬양으로 상처 난 인간들을 찾으시고 그 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을 하셨읍니다. 예수님은 약한 자를 택하사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 없는 것을 택하여 있는 것을 폐하려고 하셨읍니다.(고전1 : 2d-sO) 시편 s4 . l8절에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하였습니다. 시편 l47:3절의 말씀과 같이 하나넘은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회 상처를 싸매도다.'하나님은 우리가 상한 갈대처럼 쓰러질 때 불쌍히 여기십니다.

 

여러분 가운데 상한 심령이 있읍니까?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그 상한 갈대를 소생시키는 분이십니다. 마음이 상 한자를 불러서 상처를 고쳐 주시려고 힘쓰십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울고 마음이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하여 주십니다. 죄로 상한 심령을 꺾어 버리지 않으시고 회복케 하셔서 구원하여 주시는 분이 우 리 주님이셨읍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자가 있읍니다. 바리 새인들이 끌고 와서 모세의 율법에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 자는 돌로 치라 하였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고 성난 짐승처럼 돌을 들고 왔습니다.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자 ! 문자그대로 상한 갈대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아주 꺾어버리길 재촉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얼마 후에 조용히 머리를 들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있거든 먼저 돌을 들 어 치라. '하실 때 양심의 가책을 받아 다 사라지고 그 여자만 흘로 남았읍니다. '너를 정죄하던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느냐?'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리니 돌아가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하였읍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상한 갈대에서 새 움 이 나고 자라기를 바라시며 쓸모 있는 갈대로 소생되기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를 잘 알고 있읍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연약한 갈대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건장한사 나이였기에 용기도 있었읍니다. 그는 장담하기를 '다 주님을 버릴지언정 나는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을 하였읍니다. 그러나 그 는 주님이 잡히시던날 밤 닭 울기 전 연약한 소녀 앞에서 주님을 모른 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읍니다. 그때 주님의 시선은 베드로를 돌아보았읍니다. 베드로는 주님 말씀이 생각나서 심히 통곡하였습니다. 그는 상한 갈대가 되었고 연약한 소녀 앞에서 부러진 갈대였읍니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하신 후, 베드로에게 나타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었읍니다. 베드로의 마음속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읍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다시 큰 사명을 맡기셨으니 내 양을 치고 머이라고 분부하였읍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지고 회복해서 귀한 리분을 맡기 셨습니다.

둘째, 주님께서는 상한 갈대를 향한 기대가 있습니다.

 

갈대는 곱게 자랍니다. 꺾이면서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비록 상한 갈대일지라도 잡초와는 다릅니다. 갈대는 약하지만 특성을 지닌 식물입니다. 아무것도 아니게 보이지만 무엇인가 쓸모있는 존재 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향하석 흔한 것 속에서 그 가치의 존귀 성을 인정하셨읍니다. 너회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실 때, 소금은 혼히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참으로 존귀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나부끼는 갈대, 요단 강가의 바람에 대'그러나 그 갈대는 참으로 감추어진 쓸모가 있읍니다.

 

갈대는 성서를 기록한 재료였옴니다. 성서를 기록한 종이가'파피루스.라고하는 갈대였읍니다. 이 갈대 에 성서가 기록되어 전승되었다는 것은 신기한 일입니다. 비록 우 리가 상한 갈대일지라도 하나님 말씀을 기록할 갈대라는 것을 알아 야 합니다. 주님은 당신의 말씀을 책에 기록하지 않았고 남기지 않 았읍니다. 세계 역사상 위대한 성인들은 다 종이에 글을 써서 남겼읍니다.그 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글을 쓴 일이 없으십니다. 그 이유는 상한 갈 대같은 우리들 속에 직접 그 진리를 기록하기 위한 것이었읍니다.

베드로,요한, 마태, 그리고 마리아, 그리고 간음한 여인의 마음에 당신의 말씀을 기록하셨읍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s장2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의 마음에 ?고 뭇사람이 알고 있는 바라. 너희는 우 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 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우리는 편지를 쓰는 갈대입니다.' 비록 상한 갈대일지라도 상한 갈쌔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위대한 진리가 전승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보십시오 죄로 말미암아 상 할대로 상한 어거스틴 같은 청년을 불러서 회복시켜 천년간의 기독 교 사상을 지배할 수 있는 위대한 신학자로 만든 것입니다. '진리의 갈대로 삼으셨읍니다. ' 지금도 그렇습니다. 빈곤과 실패,고난과 변 슬픔과 죄에상 한 인간들을 불러서 죄를 사해 주시고 회복시켜 하나님 나라의 귀 한 일꾼으로 삼고, 복음의 산 증인'으로삼았습니다.

 

조용히 묻습니다. 과연 나 자신이 예수님 말씀을 기록 할만한 갈대인지요? 우리의 얼굴에서 하나님 말씀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손과 발이 움직일 때 하나님 말씀이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을 통 하여 하나님 말씀을 찬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레미야 31장ss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 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 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하였습니다.

 

갈대는 피리를 만들어 하늘나라 노래를 부르는 기구로 쓰입니다.

하나님은 상한 갈대 같은 인간들을 다시 회복하셔서 하늘나라 노래를 부르게 만든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신앙인의 아름다운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악기와 같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장18 절에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하였읍니다. 상한 갈대를 소생시켜서 피리를 만들어 쓰셨읍니다. 우리는 매일 생에서 아름다운 찬송이 흘러 나와야 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럽보 감방에서 손과 발에 착고가 채워진 채 기도하고 하나님께 찬송을 하였읍니다.(사도행전16 '24) 이 찬송 소리에모 든 죄수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었고. 흘연히 큰 지진이 나고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지고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읍니다. 바울과 실라는 연약한 갈대, 상한 갈대같은 존 재였지만 하늘나라의 노래를 부르는 악기로 쓰임 받는 것입니다.

 

작곡가 헨리 크로스비는 출생한 지 6주만에 소경이 되었읍니다. 상한 갈대였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상한 갈대로 피리를 만들어 하늘 노래를 부르게 하셨읍니다. 그는 이렇게 간증했읍니다. .주께서 내 시야를 어둡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 볼 수 있도록 속눈을 열어 주셨다.'하였읍니다. 그의 작곡은 무려 천 여곡이 되는 데 그 중에 우리가 부르는 찬송도 많이 있읍니다. '인애하신 구세 주여, 돌아와 돌아와,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주 예수 크신 사랑, 슬픈 마음 있는 사람 ' 외에도 많이 있읍니다. 헨리 크로스 비는 육신의 눈은 소경이 되었지만 마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봄으로 주의 음성을 듣고 아름다운 노래를 작곡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 나님은 상한 갈대를 들어 아름다운 악기로 만들어 쓰셨읍니다.

 

갈대는 자로 사용함니다.

갈대는 대나무처럼 곧게 자라서 길이를 재는 척도로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는 주님의 심정은 이 연약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통하여 이 세상을 재는 [자]의 역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세상 사람들이 우리들을 바라볼 때, 자신의 중심과 생활을 판단해 주는 측정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오늘의 사회를 저울질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 돌아가면 부정한 남편이나 방탕하는 자녀들이 어머니의 정결한 마음과 신앙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직장에 가면 그리스도인의 선한 양심과 진실 때문에 모든 직원들이 자신의 하는 일에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5 . 2o절에 보면,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라고 하 였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양심을 재는 자와 같습니 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설 때 자신의 행위를 보게 됩니다. 그리스인들이 바로 오늘 이 세상을 측정하는 자로서의 사명을 다할 때 세상은 우리를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그들 행위의 심판을 스 스로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 다. 불의한 곳에 정의의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두움이 있는 곳에 ?의 [자]가 되어야 합니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의 [자]가 되어 야 합니다. 갈등이 있는 곳에 굉화의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자] 는 하나님 말?대로 정확한 칫수를 가진 [자]라야 합니다. 이 세상 에는 자기 부정한 양심과 거짓된 자로 살려고 하나 의로운 자(끄) 앞에서 자기 위선이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역사의 바른 자(크)로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죽이고 핍박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상한 갈대일지라도 주님의 손에 붙잡힌 갈 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은 연약한 갈대이나 주님의 강한 손이 붙들어 주신다는 것입 니다. 마태복음 27장29절에 보면 수난의 그리스도께서 빌라도의 법 정으로 끌려 가서 그의 몸에 흥포를 입으시고 머리에는 가시 면류 관을 쓰시고 손에 갈대를 가지신 것을 묘사하고 있읍니다. 그것은 불성실한 로마 군인들이 즉흥적으로 꾸며낸 것이지만 예언적이며 암 시깆은 말?입니다. 흥포는 왕=을, 가시관은 면류관을 표시하고, 손에 잡힌 갈대는, 왕권을 상징하는 흘을 대신한 것이었읍니다. 그떻다면 우리 성도들 은 그리스도의 손에 잡힌 갈대로서 그의 권세를 행사하는 그릇이라 할 수 있읍니다.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버리시지 않았 읍니다. 이사야 57장I5절에 보면,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하였읍니다. 시편 5l편17절에는,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하였읍니다. 상한 갈대는 자신의 전적 무능을 느껴 아는 사람이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죄를 통회하는 것이 상한 사람의 심령 입니다. 이런 상한 갈대를 주님은 꺾지 않으시고 더욱 사랑하십니 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자신의 상한 갈대로 철저하게 고백하는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상한 갈대임을 알았읍니다. "우리가 아 보배를 질 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 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 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거 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면 예수의 생명도 우리의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훅4 : 8-I0) 하였읍니다. 바울은 쓰러지고 넘어지고 바람에 거꾸러지는 갈대임을 알았읍니다. 그러나 주님의 손에 붙들린 갈대임을 알았을 때, 결코 망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알고 있었읍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스릴이 있고 승리의 기쁨이 있읍니다. 우리는 모두다 상한 갈대입니다. 육신적으로 병들고, 사업의 실패 마음의 비애, 가정의 파탄, 죄로 얼룩진 심령, 모두가 상처 난 갈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주님의 손 이 이상한 갈대를 붙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들이 서 있는 것은 모두가 다 하나님이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생명, 건강. 가정, 사업, 직장,교 회 인간의 모든 것을 붙들고 계심을 확신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상한 갈대, 그것이 더욱 자랑스러웠고, 그의 큰 능력은 실 로 상한 갈대의 겸손에서 온 것이었읍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I2장7절에 이렇게 간증하고 있읍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너무 커서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육체에 가시가 잇어서 상한 갈대가 되었읍니다. 이것을 고치려고 눈물로 기도할 때 주어진 응답은 내 은혜가 족하다 하는 것이었읍니다. 이는 하나님 의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해지는 것을 알았읍니다. 이제 바을은 자기 자신의 약한 것이 자랑이었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 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였고 약할 그때에 곧 강해지는 비결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지금 상한 갈대라고 느껴집니까? 낙심하지마십시오 주 의 손이 더욱 강하게 붙들어 주실 때인 줄로 믿습니다. 위대한 종 들은 주님의 손에 붙들린 갈대였읍니다. 주님의 손에 붙들릴 때 말을 기록할 성스러운 존재가 되고, 아름다운 찬양을 할 수 있으며, 세상과 교회에 [자]가 될 수 있읍니다. 이사야서 4l장10절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 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하였읍니다. 오늘도 상한 갈대를 붙드시고 우리들에게 가까이 오신 주님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