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마태복음

[마7:13] 넓게 걷는 좁은 길

'코이네' 2020. 5. 29. 14:41

넓게 걷는 좁은 길

본 문: 7:13-14

 

 

1. 다시 듣는 `좁은 문'혹은 `좁은 길'이야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의 삶이 정말 어렵기 때문에 그 삶을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삶, 혹은 좁은 길을 걷는 것과 같은 삶이라고 합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이 좁은 길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끊이지 않는 대화의 주제이고, 많은 설교자들도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이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앙의 성숙을 위하여 매우 바람직한 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이 좁은 문 혹은 좁은 길이라는 말씀이 힘들고 고단한 희생의 길이라고 흔히 알고 있습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길이 반드시 힘들고 고단한 희생의 길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은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2. 정말로 좁은 길일까요?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이 세속의 논리와 법칙에 많은 부분이 배치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일이 어렵고 또한 고단한 일임에도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여정에 있어서 예수님을 따라 사는 일이 진실로 어려운 일이냐에 관해서는 우리의 생각을 한번 집중시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사랑하는 후배 중에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청년이 있습니다. 그는 젊은 나이의 청년임에도 불구하고 사법고시의 합격을 위하여 젊은이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한 청년입니다. 그는 데이트를 하는 것보다 법률서적을 한 장이 라도 더 읽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잠자는 시간도 아깝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밥 먹는 시간도 줄이기 위해 하루에 두 번밖에 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참으로 딱한 청년이었습니다. 사법고시도 좋지만 젊은이로서 의 폐기와 발람함이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에게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물었습니다. 쉬어 가면서 공부하라고 말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이 길을 걸을 수 있겠 습니까?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변호사가 되려면 이 정도야 당연히 감수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후배는 남들이 다 힘들고 재미없게 여기는 그 과정을 어렵게 여기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 어려움들을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법률전문가가 되기 위한 예비과정으로서의 현재의 힘들고 고단한 길을 그는 싫은 표정 없이 걷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후배를 만나고 돌아오면서 저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너무 엄살이 심한 것은 아닌가에 대해서도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우리들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소망을 안고 사는 우리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이어갈 우리들입니다. 사법고시의 합격이 문제가 아니고, 변호사가 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현존하는 어떤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획기적인 일이고, 우리의 능력으로 볼 때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3. 마음 먹기에 달린 일입니다.

 

우리는 흔히 "세상 일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말을 합니다. 저는 이 말이 모든 면에서 옳은 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렇게 틀린 말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14:2"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귀에는 소음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 소리가 요한의 귀에는 거문고 타는 소리로 들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 마태복음 13:44에 보면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춰진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천국이라는 보화를 발견한 이 사람은 자기의 모든 것을 동원하여 그 보화를 확보하는 일에 투자하였다는 내용입니다. 이 사람은 천국이라는 보화를 얻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매각해 버리는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빌립보서 3:7-10에서 바울은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고 확언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 안에서의 삶이 자신의 그 어느 것보다도 중요하고 고상한 일로 여겼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바울은 그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니"라고 일괄했습니다. 바울은 팔일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족속이며, 베냐민 지파이고,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며,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라는 자신의 화려한 이력보다도 지금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훨씬 귀중하고 행복한 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분량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에 따라 믿음의 길이 더욱 좁아질 수도 있고, 좁은 길이지만 넓게 걸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4.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 꼭 좁은 것만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걷는 믿음의 길, 구원의 길은 분명히 좁은 길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며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길을 좁고 협착한 것으로 여기기에는 우리가 받은 은혜의 분량이 너무 크고, 우리가 받게 될 상급이 너무 아름다운 것입니다.

눈을 들어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십시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은 결코 좁은 길이 아닙니다. 할렐루야!

 

by 코이네 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