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소선지서

[스가랴 3장] 더러운 옷을 입은 여호수아

'코이네' 2014. 4. 17. 20:22

스가랴 3장, 스가랴가 본 환상, 더러운 옷을 입은 여호수아




 슥 3:1-10        더러운 옷을 입은 여호수아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슥3:4)

스가랴는 하나님 앞에서 놀라운 환상을 계속해서 보는 가운데 네 번째로 하나님의 종 여호수와가 하나님의 사자 앞에 더러운 옷을 입고 서 있는 모습을 봅니다.
이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대신 짊어지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또한 본문에는 주님이 도래하시면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축복이 임한다는 말씀이 마지막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8-10절).

1.스가랴가 본 환상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슥3:3)

여호수아가 입은 옷은 더러운 옷입니다. 때묻은 옷, 먼지 묻은 옷, 진 흙투성이가 된 핏자국이 있는 옷입니다.그리고 그 곁에서 사단이 더러운 옷을 입은 여호수아를 고발하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백성이 죄를 상징하는 더러운 옷을 그의 사자의 손에 의하여 벗기시고 그 대신에 사죄를 상징하는 깨끗한 옷을 입혀 주시겠다고 하십니다(1-5절). 스가랴는 더러운 옷을 벗기고 새 옷을 입혀 주시며 이어서 대표자 자격으로 선 여호수아가 하나님으로부터 명령을 받고 약속을 받는 장면을 봅니다.

2.환상이 주는 교훈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슥3:2상)

1).메시야의 도래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슥3:1하)

스가랴 3장에는 아무리 봐도 메시야라는 단어는 하나도 안나와있는데 어떻게 메시야의 도래를 알 수 있습니까. 본문 1절과 2절을 보면 ‘여호와의 사자’ ‘여호와’라는 말이 나오는데 학개서 2장 6-7절, 말라기 3장 1절, 마가복음 1장 2절을 참고해 보면 여기 나오는 여호와의 사자는 메시야, 그리스도 바로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새 옷을 입히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여호와의 사자 하나님 되시는 예수님이 지금 스가랴에게 환상으로 나타나십니다.

2).사탄의 유혹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슥3:1)

사탄은 “내가 사탄이니까 나를 따르라” 이렇게 나오지 않습니다. 사탄이 뿔을 달라고 그 모습을 드러내며 공격해 온다면 못이길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우리를 점령하려 들어올 때는 회개하는 영처럼 들어옵니다. 마치 겸손의 허리띠를 띠고 들어오는 것 같아서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때는 우리가 예수를 잘 믿고 겸손한 자와 같이 생각할 때에 사탄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들어와 마음에 교만을 심어 주고 하나님 앞에 범죄케 하고 하나님의 뜻을 멀리 떠나가게 합니다.우리가 조금이라도 방심하고 있으면 사탄은 곧바로 우리에게로 오며 우리로 하여금 사탄의 유혹에 끌려가게 합니다.

3).하나님의 긍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슥3: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고발하는 사탄을 책망하십니다.예루살렘을 택하신 여호와께서 “내가 택했는데 사탄인 네가 왜 고발을 하느냐 예루살렘은 너의 추천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택했다. 옷이 더러워도 내가 갈아 입힐 것이고 잘못을 했어도 내가 용서하면 그만이다” 말씀하십니다.이것은 하나님의 긍휼이요 사랑입니다.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에게는 구원도 없고 소망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엄청난 죄, 말못할 죄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택함을 받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내 생명의 주입니다” 라고 믿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곧 택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아침에도 새벽에 기도하러 오셨습니다.기도는 왜 합니까. 그 기도가 욕심이 가득찬 것이든 어떻든 믿으니까 하는 것입니다.하나님 앞에 구하면 주실 것으로 믿는 믿음은 택한 자이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우리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기 때문에 오늘 이 시간 이곳에 오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4).신분의 변화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슥3:4)
옷을 바꿔 준다는 것은 신분의 변화를 의미합니다.왕은 왕의 옷을 입어야 왕노릇 할 수 있습니다.우리는 예수님 믿고 회개하게 되면 새 이름을 받고 새옷을 입는 신분의 변화를 받게 됩니다.본문을 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하고 회개했다는 말도 없습니다.하나님께서 그냥 제하여 버렸습니다.이것은 우리의 의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구원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우리는 이와 같이 굉장한 은혜를 받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지옥을 상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벌써 건져냄을 받았을 뿐아니라 새 옷까지 입히어 하나님의 왕자로 공주로 만들어 주셨으니 이것은 사람의 지식과 판단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3.하나님의 상급

“네가 만일 내 도를 준 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슥3:7)

하나님께서 우리를 값없이 의롭다고 인 쳐주셨다고 해서 이것을 핑계 삼아서 가만히 손 털고 앉아 있어도 괜찮은 것은 아닙니다.그것은 오히려 하나님 앞에 더 범죄 하는 일이 됩니다.우리는 이전 보다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며 충성해야 됩니다.하나님이 무조건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까 그 사랑에 감격해서 하나님 앞에 순종을 잘하면 하나님의 집을 지키게 하고 뜰을 지키게 하고 이 집에서 왕래케 하신다고 했으니 복에 복을 더 주신 다는 말입니다.

복 받는 비결이 간단합니다.사업을 하는 사람도 머리를 싸매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지혜를 아무리 짜내도 그것은 인간의 수고일 뿐이고 결국은 하나님의 복을 주셔야 되는데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비결이 간단합니다.단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만 하면 됩니다.지금은 망하는 것같고 지금은 손해가 나는 것같아도 때가 되면 하나님이 넘치게 주시는데 인간은 감히 상상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일도 충성 되이 섬기는 일도 열심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실력도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실력과 지혜를 가지고 부지런히 주님을 섬겨야 됩니다.이 실력과 지혜 또한 하나님이 주십니다.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길을 인도하시고 판단력을 주십니다.우리는 소경과 같아서 바른 길을 찾지 못합니다.뿐만 아니라 매일 결심하고 결정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 가운데도 회사에서 책임을 사장님이 계신 줄 압니다만 지도자의 자리가 그래서 어려운 자리입니다.그들이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서 방향이 정해지는데 그들이 소경과 같이 방향감각을 상실해 버린다면 모든 일이 엉망진창이 됩니다.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면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리라’ 길을 인도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솔로몬이 지혜를 구하고 명철을 구한 것은 곧 분별력을 구한 것입니다.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좌충우돌합니다.

4.완전한 그리스도의 속죄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슥3:9)

구약에 있는 모든 의식 제도는 결국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구약 전체가 마치 손가락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혹자는 성전 건축을 위해 필요한 돌이라고도 합니다만 이 돌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세운 돌인데 거기에 일곱 눈이 있습니다.일곱은 완전한 숫자로서 일곱 눈이란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눈을 말합니다.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는 하나님의 눈이 지금 하나님의 교회를,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의 백성을 살피시는 것입니다.그리고 이 땅에서 죄악을 하루에 제하여 버리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속죄하시고 인간의 공로나 고행이 필요 없는 완전한 속죄입니다.

5.평화와 번영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슥3:10)

진정한 신앙은 개인이나 집단이나 가정이나 교회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줍니다.거짓된 종교는 불안과 공포와 다툼을 가져다주지만 참신앙은 평안을 줍니다.저는 세례 문답할 때 가끔 이렇게 물어 봅니다. “예수 믿고 중생 하셨습니까?”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를 모릅니다.그러면 다시 “예수 믿으시고 뭐 좀 달라진게 있습니까?” 하면 그제야 “마음이 평안한 것 같아요” 합니다.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가슴에 닿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마음에 평안이 오는 것입니다.아기가 엄마 품에서 잠잘 때 제일 편안해 합니다.세상에선 태풍이 불고 전쟁이 일어나도 아기는 엄마 품 안에 있으면 안심하고 평안을 누립니다.신앙은 바로 이와 같습니다.

신앙은 곧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다 내어놓으면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진정한 신앙은 평안을 가져오며 동시에 번영을 가져옵니다.“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초대하리라” 열매가 있으니까 초대한 것입니다.번영을 상징하는 것입니다.주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더해 주셔야지 우리는 더할 힘도 덜할 힘도 없습니다.저와 여러분은 말씀 안에 살므로 평안과 번영을 누릴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by 코이네 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