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싸우지 말라!
본문 : 사9:1-4 (고전1:10-18, 마4:12-23)
사람이 서로 모여 살면서 다투지 않고 지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 여겨집니다. 아무런 일도 도모하지 않고 그냥 지낸다면 몰라도, 무슨 일이든지 하고자 할 경우, 갈등과 다툼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두 사람이 무슨 일을 하고자 해도, 서로 생각을 달리할 때가 많습니다. 하물며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데, 의견이 같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교회라고 하는 기관은 특수한 단체입니다. ‘사랑의 실천’이 교회의 최고 목적이면서도, 그 목적 의식이 희박해지게 되면, 갈등과 다툼이 세상보다 더 많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목적이 땅의 것이 아니고 하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교회가 추구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해서, 개인적으로 손해나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세상 물질에 대해서는 크게 애착을 갖지만, 교회의 목적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가 이래서 되겠느냐?’고 하면서 크게 걱정하듯이 말하는 사람도, 실상 그의 관심은 세상에 치우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실로 교회의 목적을 바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하여 애쓰는 사람이라면,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큰소리치거나 다투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가 하는 일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쉽사리 뛰쳐나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세상의 기관이나 단체는 땅 위의 것, 곧 돈을 목적하고 세워진 까닭에, 그런 곳에 소속된 사람은, 다른 사람과 생각이 다르거나 비위가 맞지 않아도 그 불만을 쉽게 토로하지 못합니다. 싸우고 싶어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꾹꾹 참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다니던 사람이 속 상한 일이 있다고 해서, “나, 교회 안 다닐 거야!”하고 교회 다니기를 그만 둔다고 해서, 손해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헌금을 하지 않게 되니, 그 돈이 굳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교인 중에는 쉽게 불만과 불평을 말하고 싸우듯이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때로는 아무 고민 없이 교회를 등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돈보다 더 귀한 것, 아니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더 귀한 생명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아무튼 교회가 그 목적을 상실하게 되면, 다툼과 분열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장하지 않으면, 마귀가 들끓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려고 애쓰는 사람보다, 자기 생각대로 교회를 이끌어 가려는 사람이 많게 되면, 교회 안에서는 말이 많아지고 다툼이 자주 일어납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를 부정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더욱 사탄이 원하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조용히 제단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를 지켜야 한다고 하면서 반대 세력과 맞서 싸우거나, 아니면 그들을 저주하거나 비난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교회의 상징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헌신, 그리고 용서와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정신과, 그것이 옳다고 받아들인 성도들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는 세워졌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소속된 성도들은 교회 안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비관적으로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더욱 부풀려서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은 사탄이 원하는 바를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에 사랑이 없다거나 봉사 정신이 없다고 해서, 그것을 큰 소리로 떠들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이 없다고 여겨지면, 먼저 사랑을 실천하도록 노력할 일입니다. 봉사 정신이 부족하다고 여겨지면, 봉사하는 일에 먼저 앞장서야 합니다. 기도가 적은 것 같으면, 아무 말하지 말고 조용히 기도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그 목적을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애쓰는 것이, 성도의 의무이자 본분인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는, 이와 같이 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이 올바른 신앙으로 발전해 나아가는 사람들도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불행스럽게도 간혹 좋지 않은 소문이 들리는 교회들과 교인들이 있습니다. 바울 시대에는 고린도교회에서 다툼과 분열이 있다는, 그런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1.제발 싸우지 말라
그래서 바울 선생은 고린도교회에 편지하기를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제발 싸우지 마십시오. 교회 안에 분열이 없도록 참마음으로 하나가 되십시오(고전1:10)」하고 간절하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 선생은 「같은 생각과 목적으로 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고전1:10)」고 강조합니다. 같은 생각과 같은 목적이란, 결국 사람의 생각이나 세상적인 목적을 버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생각과 교회의 참된 목적을 회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 선생은 교회가 다투고 분열하는 원인이 ㄱ.파당을 짓고 편가르기를 하기 때문이며
ㄴ.우리만이 참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라 떠들고 다니기 때문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바울 선생은 그 해결책을 밝히고 있는데, 그것은 교인들이 다투는 일은 그만하고 복음전하는 일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이 고린도전서 1장에서 적고 있는 말씀을 다시 한 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ㄱ.고린도교회의 문제는 다툼과 분열입니다.
ㄴ.그 원인은, 파당을 짓거나 편가르기를 하면서, 우리만이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ㄷ.그 해결 방법은, 싸우기를 그만두고 복음 전하는 일에만 전념하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다툼과 분열이 있게 되면, 많은 성도들이
①혼돈과 어둠에 빠지고 소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뭔가 바람직하게 사는 길이 없을까?’ 하고 교회를 찾은 사람들이, 교회 지도자들끼리 서로 다투는 것을 보게 되면, 많은 실망을 하게 되고 좌절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도자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자기 이익과 명예만 탐하면서 나라 일을 소홀히 하게 될 때에, 틀림없이 그 나라는 망하거나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백성들만 애매하게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교회를 찾았는데, 교회 안에서까지 세상에서 벌어지는 추태를 보게 될 경우, 그야말로 갈 길을 영영 잃어버리고 어둠 속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지도자들 스스로는 물론이요, 많은 사람들을 죽음의 길로 빠뜨리게 될 것이니, 그 죗값을 어떻게 다 감당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정의를 위해 싸웠으니 괜찮다’고 주장하겠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성도들이 싸워 이겨야 할 상대는 교인이 아닙니다. 우리를 그와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하는 사탄입니다.
②그런데 교회 안에서 다툼과 분열이 있게 되는 그 원인이, 대개는 교회의 본질과는 사실상 거리가 먼 것들입니다.
우리 믿음의 옳고 그름은 하나님께서만이 판단하실 수가 있습니다. 내가 믿는 방식대로만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독선이요 아집입니다. 만일 누가 정말로 엉뚱한 믿음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에는, 그를 위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할 뿐인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에서는, 누구에게 세례를 받은 것이 더 좋은가 하는 문제로 다퉜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서 세례를 받은 사람은 바울파요, 아불로에게서 세례를 받은 사람은 아볼로파였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들만이 참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떠들며 다닌다고, 바울 선생은 한탄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라고 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산산조각 나게 하고 있노라고, 바울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말하기를, 교회의 본질은 ‘누가 더 잘 믿는가?’하고 키재기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 각자가 십자가 정신으로 살아가려고 애쓰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고전 1장 17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본질을 벗어나게 되면,
ㄱ.자기만이 옳다고 하는 교리와 사상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를 결박하고 고통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ㄴ.뿐만 아니라, 교회의 본질을 망각한 채 자기 중심으로 살아가게 되면, 예수를 믿는 참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 생명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지요.
세상의 어둔 쪽을 바라보게 되면, 모든 게 다 틀렸고 모조리 망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교회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주 예수님은 성실한 성도들과 함께 하셔서, 그 빛을 계속 드러내고 있습니다. 세상이 어두우면 어둘 수록 작은 빛이라도 아쉽고, 그리고 그 빛은 더욱 빛나게 되어 있습니다.
일이 바쁠 때에는 어린 아이 작은 품이라도 귀하듯이, 교회가 어려울 때에는 우리의 작은 믿음이나마 귀하게 쓰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세상이나 교회를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국가나 교회가 나의 작은 믿음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닌지, 오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2.하나님은 어둠 속에 헤매는 백성들에게 큰 빛이 되어 오셨습니다
우리가 그 빛을 바라보게 되면, 작은 빛을 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두운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밝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달이 태양을 향하고 있을 때에, 그 반사하는 달빛이 이 땅을 비출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사야서 9:2-3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하기를, 어두운 세상에 큰 빛이 비치게 될 때에는, 다음과 같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ㄱ.백성들이 그 빛을 보게 되면, 백성들이 위대하게 된다고 했습니다(사9:3).
ㄴ.그리고, 쇠사슬과 같은 모든 얽매임에서 풀려나게 되고,
ㄷ.그래서 온 백성이 즐거워하고 기뻐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빛이란, 물론 예수를 말하고, 또한 복음의 말씀, 곧 진리를 뜻합니다.
①진리를 받아들이게 될 때에, 받아들이는 그 사람 또한 빛을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의 빛을 외면하고 자기 고집대로 살게 되면, 이러한 약속은 다 소용이 없습니다.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늘 사모하면서 말씀 듣기를 즐겨 할 때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백성으로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그 마음에 역사 하지 않는 사람은 여전히 그 얼굴이 굳어 있으나, 말씀으로 충만하게 되면 그 얼굴빛이 빛나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은 곧 빛이기 때문입니다.
②이 진리를 더욱 새롭게 배우고 깨우치며, 그 진리 따라 살아갈 수 있기를 간구하고 훈련받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기를 낮추고 배우는 곳이지, 자기를 드러내며 주장하는 곳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교회는 세상에서 빛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훈련받고 그 힘을 축적하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예수의 이름으로 받습니다. 다시 말하면, 빛이 되시는 진리 예수를 받아들이고 그 진리 따라 살아가게 될 때에, 구원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 안에서 다른 문제를 가지고 다툴 필요도 없고 싸울 필요도 없습니다. 잘못된 것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므로, 우리가 나설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그 잘못된 것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기도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진리 말씀으로 새롭게 되기를 힘쓰고 거듭나기를 계속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서 빛을 온전히 발할 수가 있습니다.
③그럴 때에, 우리는 참 생명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즐거움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3.주안에서 하나의 목적으로 한 마음이 되어 살아야 합니다
영국 크랜취 감독의 시(詩)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평탄한 길에 조그마한 구덩이만 있어도 벌써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가는 험하고 캄캄한 길에 조그마한 빛만 비추어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비로우신 빛이라 하여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도, ‘인생이란 왜 이리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느냐?’고 얼굴을 찡그려 불평하는 사람이 있으며 게딱지같은 오막살이에 살면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하늘 아버지의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일생을 불만과 불평 속에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항상 즐겁고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부정적으로 보면, 교회처럼 엉터리 같은 곳도 없을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찾으며 밤새도록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랑을 힘있게 부르짖으면서도 작은 실수 하나 눈감아 주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하늘나라에 가고 싶노라고 말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대한 욕심이 누구 못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좋으신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참 좋은 기관입니다. 악한 사람들이 조금 물을 흐려 놓고는 있어도, 교회의 본질은 변할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머리되시는 분은 예수이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잠시 동안 교회를 엉뚱한 곳으로 이끌어 가는 일도 있겠지만,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 교회를 지켜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송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대해서 늘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①빛이 되시는 주님을 진심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ㄱ.그래서 세상 중심이 아닌, 하늘나라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려는 노력을 하게 될 때에, 교회 안에서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활을 하게 되고, 나아가서 세상 빛이 되어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세상 욕심을 버리지 않고 그냥 그 욕심을 끌어안은 채 교회에 들어오게 되면, 많은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세상에서 추구하던 권위를 찾거나 자기 자존심을 앞세우게 될 경우, 다른 사람과 갈등과 다툼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ㄴ.빛이 되시는 주님을 영접하게 되면, 우리 또한 빛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노라고 하면서도, 자기 뜻과 맞지 않을 때에는 여전히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는 것은 주를 영접한 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주님을 진심으로 영접한 사람은, 그 얼굴이 환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푸근하고 따뜻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상대방을 감화시키고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매일같이 성경 말씀을 보고 들으면서 자기를 극복하고 훈련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②주님 안에서 하나의 목적과 하나의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주께서 보여 주신 십자가의 정신으로만 뭉치게 된다면, 우리는 이것을 자연스럽게 이룰 수가 있습니다. 예수는 잘못이 하나도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점과 티가 없는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누구를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꾸짖기는 했으나, 십자가 위에서 저들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누구를 탓할 수가 있겠습니까? 남의 탓만 하지 않게 되면, 그래서 주께서 말씀하시고 보여 주신 십자가의 길을, 우리 각자가 열심히 걷고자 하는 노력을 한다면, 우리는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③이렇게 교회가 하나가 될 때에, 우리는 기쁨과 평화를 맛보며 하늘나라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서로 뜨겁게 사랑하고 아끼면서, 기쁨과 즐거움도 나누고 괴롬과 슬픔도 나누게 될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됨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나라가 바로 이런 곳이겠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바울 선생님이 제발 싸우지 말라고 한 부탁을 잊지 않도록 합시다. 그리고 나아가서, 예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부지런히 감으로써, 자신도 보람과 기쁨을 누리고 다른 사람도 기쁘게 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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