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누가복음

[눅13:1] 웬 날벼락인가?

'코이네' 2018. 5. 13. 22:40

웬 날벼락인가

성경본문: 누가복음 13:1-5

 

엊그제 대서양을 횡단하던 미 여객기가 공중폭발하여 200명이 넘는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아직 사고 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예기치 않은 큰 재난임에 틀림없습니다. 본문은 이와 같은 대소간의 재난에 직면한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는 말씀입니다.

 

첫째로, 모든 신자가 반드시 불의의 재난으로부터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사람들이 그분께 나아와서 근래에 성전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어떤 갈릴리 사람들이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해서 예루살렘의 성전을 찾았습니다. 그들이 양이나 염소를 준비하여 제사 절차를 밟고 있는데 로마총독 빌라도의 명을 받은 군병들이 몰려와서 그들을 현장에서 죽이고 그들의 피를 제물에 섞는 기막힌 일이 벌어졌습니다. 희생된 갈릴리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중이었습니다. 다른 때도 아니고 바로 이런 경건한 시간에 불의의 재난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어떤 폭동에 관계된 것 같습니다. 이들에게 사법적인 죄가 있든 없든 유대인들에게 성전에서의 만행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성전은 유대인들의 삶의 구심점이었습니다. 성전제사를 훼방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성모독입니다. 자기 민족에 대한 강대국의 업신여김입니다. 모두들 민족적인 울분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의도는 이 문제에 대한 예수님의 입장 표명을 이끌어내어 함정에 빠뜨리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로마군병의 만행을 규탄한다면 빌라도가 백성을 선동한다는 죄목으로 즉각 체포하여 처벌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처형당한 자들을 동정한다면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탓하는 것이 되므로 신성모독이 될 것입니다. 유대인의 민족감정을 정면으로 거스르게 될 것이고 그분의 명성은 순식간에 땅에 짓밟히게 될 것입니다.

 

벌써 몇 년 지난 일이지만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새벽기도를 갔다오다가 횡단보도에서 차에 치여 목숨을 잃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젊은 주부였습니다. 뒤로 남은 남편과 어린 두 자녀의 처지가 얼마나 불쌍합니까? 사고가 난 시간도 다른 때가 아니라 경건한 삶을 위해서 힘쓰던 때이니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 이것이 당신의 뜻입니까? 너무 야속합니다"는 생각이 들만 하지 않겠습니까?

몇 주 전에는 자가용 택시로 영업을 하던 평택교회 집사님이 행방불명이 되었다가 나중에 온몸이 난자당한 채로 숨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찬양지휘도 하시고 여러 모로 헌신하시던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살아계시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참새 한 마리도 당신의 뜻이 아니라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데 이렇게 비참하게 세상을 떠나는 것이 당신의 뜻입니까?

 

솔직히 우리는 이런 재난소식을 접하면서 난처한 입장에 빠집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주위의 불신자들이 악의를 품고 내뱉는 말에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습니다. 신자에게 닥치는 이런 불의의 재난이나 참사를 볼 때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겠습니까?

 

먼저 하나님의 뜻은 선하다는 말씀(12:2)을 기억하십시오. 그 참사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의한 것이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오히려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 사건에서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까? 나는 있다고 믿습니다. 그 택시강도들은 한 사람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 집사님이 희생되지 않았다면 틀림 없이 다른 누가 희생되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분의 죽음은 타인을 대신한 희생의 죽음이 된 것입니다. 본인은 그런 죽음을 의도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의해서 그런 죽음을 겪게 된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 죽음은 고귀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죽는 것을 귀중히 보십니다.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116:15)

우리 사람들이 보기에는 개죽음이요 헛된 죽음이요 비참한 죽음처럼 여겨지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그 죽음은 귀중한 죽음입니다. 우리는 신자에게도 미치는 크고 작은 고난의 숨은 의미를 다 발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교훈을 주기 위해서 성경에 욥기가 기록되었습니다. 욥은 결코 자신의 고난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에게 그 의미를 계시하시지 않았습니다.

인생에게 닥치는 재난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15:7).

우리가 죄 많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은 고난으로부터 면제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여러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에 의해서 때로는 신자에게 재난이 허용되기도 하지만 불신자에게 임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적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둘째로, 모든 재난이 반드시 희생자의 직접적인 죄로 인해 생기 는 것은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개인에게 임하는 불의의 재난이나 고난은 모두 심각한 죄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를 심판하실 수밖에 없고 선하시기 때문에 죄 없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시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본문 말씀에 앞서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걸어가다가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때 그들은 예수님께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하며 질문했습니다(9:2).

성경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수없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의 심판에서만 사람들의 죄를 다루시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적지 않은 심판을 행하십니다. 그분은 노아 시대의 사람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대홍수를 일으키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를 응징하시기 위해서 불과 유황을 하늘에서부터 쏟아지게 하셨습니다. 집단만을 심판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개인에게도 심판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헤롯왕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충이 먹어 죽었습니다(12:23).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를 놀리던 어린아이들이 심판을 받아 사자에게 물려죽었습니다.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교만하게 행동하다가 갑작스럽게 미치광이가 되어 짐승과 같이 되었습니다. 신자들의 죄에 대해서도 징계를 하십니다. 그러나 모든 재난이 희생자의 직접적인 죄로 인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죄로 인해 고난이 온다는 것을 부인하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고난에 대한 이유가 죄 한 가지라고 생각한 반면 예수님은 그것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평택교회의 집사님이나 교통사고를 당한 자매님의 경우를 생각해 보더라도 개인적인 죄는 아닌 것 같고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은 것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성전에서 참변을 당한 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로마의 통치에 반대하여 폭동을 일으킨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바라바처럼 그 와중에 로마군병은 물론 동족을 죽였는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이 사건은 재난에 대한 유대인들의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아 주는 데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해의 소지를 조금도 남기지 않기 위해서 예루살렘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또 다른 사건을 언급하셨습니다. 실로암 연못 가에 있는 망대가 갑자기 무너져서 그곳에 있던 사람들 18명이 압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분명히 그 희생자들의 경우 그들의 죄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셋째로, 모든 사람이 반드시 재난을 통해서 교훈을 배우는 것은 아닙니다.

 

재난의 원인을 규명하고 재난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그 재난을 통해서 교훈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분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살펴보십시오.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2-3).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4-5).

희생자들로 재난을 당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들도 사람인지라 죄를 지은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히 죄를 더 많이 지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아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그런 소식에 접하게 될 때마다 우리 자신을 살피며 회개하는 기회로 삼으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언제 어떤 일이 생겨 하나님 앞에 부름받게 될지 모릅니다. 따라서 경성하며 후회 없는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두 번씩이나 회개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참사를 너무 쉽게, 너무 빨리 잊어버립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그와 같은 일이 나에게도 닥칠 수 있습니다.

불신자가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받고 지옥 불못에서 영원히 고통받습니다.

신자가 회개하지 않으면 부끄러움 가운데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