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고린도서

[고전3:16]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

'코이네' 2017. 12. 24. 00:34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

 이종배 전도자
 고전 3:16~17  2010-03-21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구약 율법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제사를 잘 드렸을 때 하나님의 성막이나 성전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임하였던 것을 볼 수 있다 [왕상8:11; 대하7:1~2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뿐만 아니라 이 성막이나 성전에는 아무나 접근할 수 없었고 오직 하나님께서 지명하신 레위 가문의 제사장들만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성결예식을 치르고서야 가까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은 장차 나타날 그림자에 불과한 것으로 그리스도의 오시기까지 있었던 임시적인 법이었다고 증거하고 있다.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으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갈3:19)

 

그런 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바로 성전이심을 선언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2:19~21)고 요한 사도는 기록하고 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이고 실제로 오순절 날 이 약속은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제자들을 통하여 모든 거듭난 자들에게는 이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였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2:38)

이 약속의 성취로 이제 성령께서 자리하고 계신 믿는 사람들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는 귀중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믿음의 사람들조차 이 사실을 더러 잊어버리고 살고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놀라운 사실에 대해서 의식하지 못하고 삶으로 함께 하시는 주님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성령께서 서운해 하심도 우리는 알아야 한다.(성령이여 강림하사~)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사신다는 사실이 성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려는 사람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지만 세상과 별로 다르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움과 부담감이 된다는 사실도 보게 된다.

 

오늘 바울 사도는 비록 하나님의 진리에 충실하지 못하고 있는 고린도 교우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 후부터 오늘 우리에 이르기까지 신령한 하나님의 성전은 사람이 손으로 지은 집이 아니라 바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의 몸임을 증거하고 있다.

오늘 우리 몸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함께 사신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하고 성전을 성전으로 거룩하게 지켜가고 보존할 뿐만 아니라 그 성전 된 우리 육체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

 

Ⅰ. 믿는 사람들 마음에는 성령께서 거하신다.(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앞의 (v9)에서는 믿음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밭, 하나님의 집’으로 표현하심을 봤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밭이며,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라고 쓰여진 형태는 역시 다르지 않다. 그리고 당연히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성전이라는 원리를 더 강조해서 말씀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너희라는 복수(pl)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단수로 쓰여지고 있어서 우주적 하나의 교회를 강조하고 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엡4:4~6f)

 

◈성령의 임재에 대한 약속을 주셨다. 구약에서도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36:27) 하셨고 주님께서도 직접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7)고 약속하셨다.

로마서 8장에서 육의 사람 영의 사람을 말하다가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9)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14~16) 라고 우리 거듭난 사람이라면 육신의 사람이 아니라 성령의 사람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고정된 집이 아니라 움직이는 성전이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고후6:16)

 

◈보다 완전한 영광을 드러내는 성전이다. 성결을 위해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완성되었다. 성도들은 성령을 모시고 다니는 성전이기 때문에 성소에 하나님의 영이 임재 하여 영광을 보였던 것처럼[레9:23 …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하나님의 영광이 성도를 통해서 나타나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성전 됨을 부정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비로소 이런 의식을 가질 때 산제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2)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완성되어가는 성전이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21~22)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2:5)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바른 이해가 중요하다.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성전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이는 건물에 대한 명칭으로 사용하고 이 건물을 짓는 것 자체를 [성전건축] 이라고까지 표현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바른 이해가 신앙의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 [사람은 성전을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성전 안에만 가두어두는 한정된 이해는 신앙의 삶을 이원화시키고 있어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세상에서야 어떻게 살던 자신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성전에서만 성결하고 거룩하면 되고 세상에서는 어쩔 수 없이 세상의 방법을 버릴 수 없다는 이른 바 이중적인 삶은 바로 잘못된 성전 이해에서 출발하는 것이다.[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의 문제도 이런 것이었다.]

최초로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지었던 솔로몬 조차도 “누가 능히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내가 누구이기에 어찌 능히 그를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요 그 앞에 분향하려 할 따름이니이다”(대하2:6) 라고 고백한 바 있다.

이제 더 이상 건물이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을 모시고 사는 거듭난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령의 전이다.

 

Ⅱ. 우리는 각자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안 된다.(17f)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

우리는 성전을 더럽힌다고 하는 것이 예배당을 지저분하게 하는 것이라든가 청소를 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말씀은 분명 하나님의 성령을 모시고 사는 우리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욕되게 하는 삶을 경계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성막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죽이시겠다고 하는 말씀을 읽게 된다. “너희는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부정에서 떠나게 하여 그들 가운데에 있는 내 성막을 그들이 더럽히고 그들이 부정한 중에서 죽지 않도록 할지니라”(레15:31) “사람이 부정하고도 지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회중 가운데에서 끊어질 것이니라 그는 정결하게 하는 물로 뿌림을 받지 아니 하였은즉 부정하니라”(민19:20)

 

사실 본문에 사용된 단어들을 보면 더 바른 이해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더럽히면, 멸하시리라[, phtheiro, to destroy, ruin, corrupt; 파괴하다, 멸망시키다, 썩히다(엡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상하게 되다, 타락하다, 해롭게 하다, 더럽게 하다, 계19:2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하나님께서 멸망 받아 마땅한 죄의 몸을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제사로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셔서 이제 어두움의 세력인 마귀를 몰아내고 거룩한 성령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을 삼으셨다. 이것은 애당초 사람 자신으로서는 불가능한 것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은혜로 이루신 일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에 합당하게 성전을 성별 되게 보존해야 할 것이다. 만약에 성령의 거하시는 전을 다시 속되게 함으로서 배은망덕을 행하는 것은 참으로 은혜에 합당하지 못한 처사이다. 그런 이유에서 바울 사도는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6:15)고 경계해 주고 있다. 처음부터 사람의 힘과 노력으로 우리가 성전이 되었다고 해도 그럴 수 없을 것인데 은혜의 선물로 된 성전을 더럽히는 것은 은혜를 헛되게 하는 것을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욕되게 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람을 멸망시키시리라고 선언하고 계신 것이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6:1)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이러한 사랑을 누리는 자들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함으로서 주님께 멸망 받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이 영원에서도 거룩한 성전으로 지속되는 …

 

Ⅲ. 하나님의 성전인 만큼 거룩해야 한다.(14~15)

 

“…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출애굽 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당부하시기를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11:44~45) 라고 당부하셨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과 당부에도 이스라엘은 결국 하나님의 이 당부를 저버리고 만다. 그러나 거기에는 오늘 우리 시대보다 불리한 조건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어쩌면 그 때는 완전히 하나님의 율법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인간의 자의적인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한 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시대는 확실히 다르다. 역시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산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확실한 아버지로서 보호자가 되시겠다는 약속을 고린도후서 6장 말미에서 한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6:16~18)고 약속한 후에 7:1에서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독특한 것은 ‘너희가 거룩한 자가 되었기 때문에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가 아니라 “…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는 표현이다. 아직도 우리는 주님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 지어져 가고 세워져 가고 완성되어가야 할 성전이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 거듭났다고 하는 사람이 주체가 아니라 아직도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이 주체이다. 그럴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는 경계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에 확신하고 순종하면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의지하여야 성전으로 지어져 가고 완성 되어져 가는 것이기 때문이 “…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세상과의 성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이러한 성별의 모습을 계시록에서는 “이김”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3:12)

 

신앙은 자신의 죄성을 이기고 세상의 속됨과 유혹을 이기고 나아가는 것이고 그렇게 순종하려는 자들은 그들 스스로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성령께서 함께 역사하심으로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의 성별은 역시 우리 스스로의 노력이 아니라 주님의 약속과 성령의 능력으로 지켜가고 이겨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확신 속에서 비로소 “…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는 하나님의 거룩한 약속은 이루어져 갈 수 있는 것이므로 믿음의 주체는 역시 사람이 아니라 우리를 우리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이시다.

 



by 코이네설교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