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레위기

[레10:1] 잘못 드려진 제사

'코이네' 2017. 5. 11. 07:53

잘못 드려진 제사

 

본문/ 10:1-7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광야에서 겪었던 너무도 놀랍고 두려운 사건을 다룬 말씀입니다. 그 사건의 전모를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광야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과 소위 선민 언약이라는 것을 체결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했던 민족입니다. 거룩함과는 거리가 먼 민족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듬기 시작하셨습니다.

 

제일 먼저 하신 일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 훈련을 시키신 일입니다. 우선 제사법에 관해 가르쳐 주시고, 구체적으로 제사를 위한 준비를 시키신 후에, 실제 제사를 드리게 하셨습니다.

 

레위기 1-7장은 바로 제사법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8장은 제사를 위한 준비를 시키신 말씀으로 제사장을 세우시고 이들을 위임하신 이야기입니다. 이제 9장에 오면 제사장 아론이 본격적으로 제사를 드리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고, 오늘의 본문에 오면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제사 드리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바로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제사드릴 때 문제가 생깁니다. 겉으로 보기에 이 두 사람은 제사장의 직무를 이상 없이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각각 향로에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서 분향할 때 갑자기 여호와 앞에서 불이 나와서 이 두 사람을 불살라 버려서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켜 뒷수습을 하셨습니다. 시체를 치우게 하셨고, 이 사건의 의미를 말씀하셨고, 앞으로 어떤 자세로 제사를 드리라고 경고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바람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얼마나 놀랐고, 또 얼마나 두려워했겠습니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는, 제사 드리고 있는 사람을 불에 태워 죽이셨다는 점 때문일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악이 관영하던 성 소돔과 고모라에 불이 떨어져 사람들이 다 타죽게 된 것은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던 노아 시대 사람들을 물로 심판하신 것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는 사람을 불에 태워 죽게 하신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을 불태우셨다는 점 때문입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누구입니까? 24:9를 보면 이들은 모세의 뒤를 따라 아버지 아론과 그리고 70명의 장로들과 함께 시내산에 올라 하나님을 보았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군들에게 하나님을 직접 뵈었다는 것은 특별한 자격이었습니다. 모세가 그랬고, 바울이 그랬고, 에스겔이 그랬고,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28:1을 보면 하나님께서 직접 이 두 사람을 제사장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29장을 보면 물로 씻으시고, 제사장 옷을 입히시고, 화목제를 드리게 하시고, 거룩한 기름을 부어 특별히 구별하여 세우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볼 때 이들은 하나님께서 구별해서 세우신 하나님의 종들이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속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도대체 제사가 무엇이 길래! 제사 잘못 드렸다고 불로 사람을 그것도 특별히 선택하신 제사장을 태워 죽이시는가?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사를 그렇게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는 점입니다. 제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드려지기를 간절히 바라신다는 말입니다.

 

4:22-23에 보면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된 예배를 바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참된 예배자들을 찾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참된 예배가 드려지기를 간절히 바라시고 계시고, 참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4장에 보면 가인과 아벨의 제사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이 드린 제사에서 참된 예배를 발견하셨습니다. 아벨이 참된 예배자임을 발견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인이 드린 제사에서 참된 예배를 발견하지 못하셨습니다. 가인이 참된 예배자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를 저주하셨습니다.

 

여기 우리가 하나님께 축복을 받는 가장 확실한 비결이 있습니다. 바로 예배를 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된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잘못

 

그러면 도대체 이들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들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고, 이들을 제사 현장에서 죽게 하셨을까요?

 

첫째로, 명령을 어기고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본문 1절을 보면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에게 번제단에 지펴진 불만을 사용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은 성소의 향을 태워 하나님께 분향할 때 번제단에서 불을 채취해서 향로에 담아 성소로 가서 분향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답과 아비후가 이 번제단의 불이 아닌 다른 불로 성소의 향을 태워 분향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 두 사람이 저지른 죄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입니다.

 

출애굽기 25장 이하를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직접 제사 준비를 명하시는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 명령이 얼마나 자세하고 세밀한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막은 어떻게 만들고, 성소, 번제단, 증거궤, 진설병 놓는 상은 어떻게 만들라고 구체적인 재료, 치수, 만드는 방법까지 하나에서 열까지 자세하게 일러주셨습니다. 제사에 쓰이는 제물은 무엇이며, 어떻게 준비하라고 일러주셨고, 제사 방법까지 빠짐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 제사장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패를 달고, 위임도 어떻게 하라고까지 자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자세한 명령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직 제사 문제에서만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명령대로 드린 제사만을 받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자기들 마음대로 제사 드리도록 내버려두시고, 제사 드리는 지 여부만 판단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여기에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명령하신 것보다 더 좋은 제물도 바라지 않으십니다. 명령하신 것보다 더 많은 제사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명령하신 대로만 제사 드리기를 바라십니다.

 

바로 여기에 제사의 본질이 있습니다. 순종입니다. 하나님은 제사 드리러 나온 사람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십니다.

 

삼상 15장에 보면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았습니다. 제사도 열심히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삼상 15:22에 보면 사무엘이 사울에게 버림받은 이유를 설명하는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열심히 예배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순종 없이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사는 사람들이 드리는 예배를 받으신다는 말입니다.

 

영어로 제사를 표현하는 단어가 여럿 있습니다. 그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 하나가 Service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봉사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말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말씀을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 이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이신가?, 예배 드리는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고 있는가?

 

둘째로, 생각 없이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너무도 중요한 실수를 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불 아닌 다른 불을 쓴 것입니다. 주석학자 프레더릭 브라운이라는 사람은 이들이 성소의 향을 분향할 불을 번제단이 아닌 성막 문에서 고기를 삶기 위해서 준비해 놓은 불에서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보다 쉽고, 보다 편리한 곳에서 대충 제사를 준비한 것입니다.

 

물론 이들이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닙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정성껏 규례에 따라 제사를 잘 드렸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흐르다 보니 제사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게 되고 정성이 부족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큰 실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됐을까요?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제사가 형식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다만 아론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을 세습제로 규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제사장이 된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고, 제사를 여호와 앞에서 집례한다는 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격스런 일인가를 마음 깊이 느끼지 못했습니다. 결국 형식적으로 제사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오늘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시 50:23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그렇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감격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드리는 여러분에게 감격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예배드리는 여러분이 감사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감사가 빠진 예배, 감격이 빠진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다른 하나는 제사가 습관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제사 드리는 것이 직업이 되었습니다. 그가 자고 나면 하는 일이 제사를 준비하고 제사를 드리는 일입니다. 피곤하고 지칩니다. 때로 짜증스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해야 했습니다. 결국 습관적으로 제사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주일이니까 교회 오고, 늘 하던 대로 순서에 따라 예배를 드립니다. 이것은 다만 예배를 보는 것이고, 예배에 참여한 것이지 예배를 드린 것은 아닙니다. 그 중심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삼상 16:7에서 말씀하십니다.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예배를 중심으로 드려야 합니다. 예배를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드려야 합니다. 몸만 와있고 생각은 집에, 가게에, 학교에, 만날 사람들에 가 있어서는 않됩니다.

 

셋째로, 경건치 못하게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본문 9절을 보면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영영한 규례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을 왜 하셨을까요? 아론을 비롯한 제사장들이 술 취한 채로 제사 업무를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나답과 아비후가 술 취한 채 제사 업무를 수행하다가 실수를 저질렀고 그 결과 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과 달리 제사장들의 제사 업무는 너무도 힘들고 또 불결했습니다. 쉴새없이 소나 양과 같은 짐승들을 잡아야 했습니다. 짐승들을 죽여야 했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떠야 했고, 피를 받아서 제단 사방에 뿌려야 했고, 고기와 가죽을 제단 위에 놓고 태워야 했습니다. 늘 피비린 냄새와 고기 타는 연기를 맡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술을 마실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사 드리는 과정에서 제사 드리는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어 먹었고, 그들이 주는 술을 받아 마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사 뒤풀이로 축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다 보니까 들뜬 분위기, 고되고 불결한 업무 때문에 늘 술에 취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사의 경건성을 상실하게 되었고, 함부로 제사를 집행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경건치 못한 모습으로 예배 현장에 나옵니다. 29:9 말씀을 보면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소경이 되고 소경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인함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인함이 아니라" 이 말씀은 우리의 경건을 빼앗아 가는 것이 꼭 술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음란에 취할 수가 있습니다. 세상 즐거움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또 세상 욕심에 사로잡히거나 세상일에 너무 집착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로부터 경건을 빼앗아갑니다. 그런 상태로 예배 현장에 나오면 않됩니다.

 

우리는 평소에 절제해야 합니다. 경건을 지키기 위해서 힘서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했습니다. "나는 나의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 우리가 바른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경건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징계

 

본문에 보면 잘못 드린 예배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나옵니다. 불로 나답과 아비후를 태우셨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여호와 앞에서 나온 불은 번제단 위의 제물을 태웠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불이 범죄한 제사장들을 태우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제사 제도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서 제물이 피를 흘렸고, 이 제물을 태워 하나님께 올리도록 하기 위해 불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불이 직접 나답과 아비후에게 떨어진 것입니다. 제물이 불타야 할텐데 제사 드리는 사람이 불에 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두려운 마음으로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은혜의 불, 축복의 불이 저주와 심판의 불이 된 것입니다. 예배 현장에 나왔다고 다가 아닙니다. 예배 현장이 은혜와 축복의 현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 현장이 오히려 저주와 심판의 현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않됩니다.

 

열심히 성수주일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들이 하나님께 축복을 받는 지름길입니다. 열심히 예배 현장에 나오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예배드리는 사람들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축복하십니다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예배를 바로 드리는 일입니다. 예배를 예배답게 드리는 일입니다. 우리의 예배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지, 형식적이고 습관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지는 않는지, 경건하게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금년 한 해 예배를 바로 드려서 주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고 예배자에게 주시는 크신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