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Ⅱ. 하나님 형상)
본문/ 창세기1:26-28
설교 : 황권철 목사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는 인간창조로 막을 내립니다. 인간은 소우주로써 천지창조의 축소판입니다. 인간은 천지창조의 극치요, 절정이요, 면류관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이러한 위대함이 어디에서 주어졌는가? 바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인간의 생명이 존엄(尊嚴)함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은 과연 어떠한 존재입니까?
첫째: 하나님은 당신을 예배적인 존재로 지었습니다.
본문 26절에서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이란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할 때 흔히 우리가 오해하기 쉬운 함정이 있습니다. 즉 우리의 몸으로 구성된 지체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오해하기가 쉽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우리와 같은 육체적인 형질을 가지신 분이 아닙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에베소서4:24)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성품으로 우리를 지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과의 계약을 어김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고 일그러져 타락한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우리가 예수 안에서 그 형상을 다시 회복하게 되었으며 그 안에서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고린도후서5:17). 예수를 믿음이 곧 의요, 그의 말씀을 따르고 지킴이 진리요, 세속에서 항상 그 편에서 결단하여 서는 것이 거룩입니다.
인간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통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는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느니라”(전도서3:11)고 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신을 찾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종교의 씨를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세기2:7)고 했습니다. 그런데 인생이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인생에게 주님은 참된 길과 진리와 생명을 가르쳐 주셨습니다(요한복음14:6). 이렇게 하여 인간은 하나님을 찾게 되었고 그 앞에 나아가서 예배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창세기2:3) 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복은 엿새에 수고하는데 있지 않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예배드리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가? 예배는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드리는 지상최고의 가치요,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인 종합예술입니다. 이보다 더 귀한 것이 없으며, 하나님은 이보다 더 기뻐 받으시는 것이 없습니다. 예배에는 찬양, 기도, 헌금, 봉사, 말씀 등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이러한 예배를 우리는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한복음4:24)고 했습니다. 먼저 예배의 대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영이신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가 무슨 보이는 것에 얽매여서는 안됩니다. 여기에서 세속적인 우상숭배 행위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이신 하나님의 인도보다는 보이는 것에 현혹되어서 금송아지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신령함으로 드려져야 합니다. 예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신령한 영적인 사건입니다. 하나님과의 교통을 통하여 영적사건이 일어나야 합니다. 예배인도자는 예배를 통하여 성도들에게 영적사건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육적인 세속과 영적인 신령한 것의 만나는 신비가 예배입니다. 마지막으로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자의 태도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육적으로는 최선을 다하는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배를 무성의함으로 드려서는 안됩니다. 나의 전인격으로 드릴 수 있는 최상의 준비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자세와 태도가 바뀌지 않고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당신을 사회적인 존재로 지었습니다.
본문 27절에서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지상에 최초로 세운 기관이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하나님의 계약에 근거하여 건설이 되어야 합니다. 최초의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주례로 가정이 이루어졌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습니다. 결혼을 앞둔 청년들은 하나님의 말씀 중심인 계약 아래서 맺어져야 합니다. 가장 복된 결혼식은 당사자가 주님의 말씀으로 맺어지는 것이요, 주님이 세운 종 목사의 주례를 받는 것이요, 주님이 피흘려 값주고 세운 성소에서 예식을 올리는 것입니다.
가정은 계약에 근거한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가정을 지탱하는 힘은 건강도 재물도 지식도 명예도 권세도 아닙니다. 가정에 사랑이 식어지면 순식간에 파괴되고 허물어집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하나님이 하와를 지을 때에 아담의 머리뼈로 짓지 않음은 하와로 하여금 교만하지 못하게 함이요, 발가락의 뼈로 짓지 않음은 아담으로 하여금 무시를 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했습니다. 왜 하와를 아담의 갈비뼈로 지었는가? “가슴에 품고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베드로전서4:8)고 했습니다. 부부는 서로 돕는 배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2:18)고 했습니다. 인간은 서로 돕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서로의 약점과 부족하고 모자라는 점이 무엇인가를 보고 서로 돕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가정이 서로 돕기보다는 약점을 보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시비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가정에 주신 일차적 사명은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입니다. 창조원리의 기초를 보면 모든 것이 쌍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밀고 당기는 인력관계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광명체의 천체에도 음이온과 양이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식물도 암수의 수정으로 번식하게 되어 있으며, 인간도 남자와 여자로 지어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사회가 만년되게 행하고 있는 “가족계획”같은 것을 해도 가능한가? 인간에게 이성적인 지각을 주신 하나님께서 규모있게 살기 위해서 계획을 세워 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가족공동체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본능적인 욕구를 절제하고 규모있게 사용하는 계획이어야지 인간의 정욕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계획은 하나님의 계약을 중심한 것이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당신을 문화적인 존재로 지었습니다.
본문 28절에서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짐승은 육적인 것으로 지었고, 천사는 영물로 지었으나, 사람은 육과 영으로 결합된 생령으로 지었던 것입니다(창세기2:7). 그러므로 인간이 땅에 것만 바라보고 살면 짐승과 같은 버러지 인생이 되나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면 천사와 같은 삶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살면 하늘과 땅의 권세로 공중의 권세를 잡은 사단의 권세를 정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권세를 인간에게 위임해 주었습니다.
인간에게는 문화적인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우리가 비록 소보다 힘이 새지 못하나 이성으로 트랙트나 콤바인을 만들어 이용하면 소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다의 고기보다 헤엄을 잘 치지 못하나 군함이나 잠수함을 만들어서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독수리처럼 나르는 날개가 없으나 비행기나 인공위성을 만들어서 그보다 더 높은 창공을 나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이성적 지각을 선용하면 문화적인 혜택을 누리면서 생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화를 대적하는 반문화주의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니며, 그렇다고 세속문화에 동화되어 세속적인 유행에 빠져가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크리스천은 인류의 문화를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 위에 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문화를 개혁하고 변혁하는 자라야 합니다.
노동은 신선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범죄 이전의 노동은 신선한 것이며,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의 계약을 파괴함으로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가 내려짐으로 노동은 수고하는 고통으로 변하게 되었으며, 인간은 이러한 고통속에서 사단의 지배를 받게 된 것입니다.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세기3:17)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예수 안에서 새롭게 변화된 것입니다(고린도후서5:17). 바울은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로마서12:9)고 했습니다. 요한도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요한계시록2:10)고 했습니다. 주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마태복음 22:37)고 했습니다.
사랑하는성도 여러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아직도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생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지 못한 죄 아래 있는 인생입니다. 죄 중에 가장 크고 무서운 죄는 하나님을 모르는 죄요, 곧 예수를 믿지 않는 죄요, 성령을 훼방하는 죄입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은 예수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예수를 믿지 않고는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요한복음14:6, 사도행전4:12). 이 메세지를 읽는 순간에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설교자료 > 창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년예배 설교] 하나님은 꿈의 사람을 씁니다 _황권철 목사 (1) | 2025.09.18 |
---|---|
[창 1:1]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_황권철 목사 (0) | 2025.09.18 |
[추석설교] 창 50:22 고향 (5) | 2025.08.25 |
[창 20:1] 아브라함의 반복된 실수_황규철 목사 (1) | 2025.08.19 |
[창 22:1] 아브라함의 부활신앙 _황규철 목사 (3) | 2025.0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