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소선지서

[하박국 3장] 말씀하시는 하나님, 하용조 목사

'코이네' 2014. 5. 7. 11:15

하박국 3장, 말씀하시는 하나님, 하용조 목사 설교


하박국 3장
말씀하시는 하나님 / 2002년 성령집회 / 하용조 목사

대부분 신실한 크리스천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과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인가’를 알고 싶어합니다. 저도 사탄으로부터 여러 번 이런 공격을 받았습니다. 12년 전 건강이 좋지 않아 하와이에 1년간 안식년을 지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음성을 많이 들려주셨습니다. 그런데 돌아올 무렵 사탄이 제게 “네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왜 네게 병을 주시겠느냐? 온누리교회로 돌아가지 말고 사표를 써라”고 시험을 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라면 왜 실패하고 병이 드느냐?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하며 사탄은 우리를 조롱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많이 듣습니다. 저는 한 달 동안 마귀의 시험을 받으며 싸웠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모든 사탄의 조롱을 물리치고 온누리교회에서 성령사역을 하리라 결심하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와 성령사역을 하고 성령집회를 했습니다. 아마온누리교회가 생긴 이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일이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성령충만 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교회에 청년들이 메뚜기 떼처럼 오기 시작했습니다.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계기로 온누리교회가 10여 년 동안 이렇게 성장했습니다.





하박국의 외침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으면서도 ‘내 생각과 욕심, 야망이 그 안에 있는 것은 아
닌가?’하는 회의가 가끔 듭니다. ‘어디까지가 하나님의 뜻이고 어디까지가 내 생각일까’ 하는 혼돈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2천 6백년 전, 한 선지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런 갈등과 고민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계속 항의하고 질문을 하다가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는 경험을 합니다. 이성으로만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은 이렇게 흥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깊은 고난과 역경, 절망 중에 내 전심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은 하박국 선지자가 말하는 그런 간증, 고백, 용기, 믿음, 환상이 생겨납니다. 오늘 본문 하박국 3장 17절에서 보면 하박국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것은 기도라기보다 자기의 신앙 고백이며 간증이고 찬양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열매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겠습니까? 내가 노력한 만큼 보상과 대가가 없다면 어떻게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박국은 하나님 한 분만으로 건강이나 재물, 성취나 상황은 절망적일지라도 즐거워합니다. 18절과 19절을 보십시오.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저는 이것을 지난 아프가니스탄에서 봤습니다. 아프간에 갔더니 무엇이든지 주면 다 고
마워했습니다 . 왜냐하면 거기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프간, 북한, 파키스탄 등 세상 한 구석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밥을 먹지 못할지라도, 직업을 잃어버릴지라도, 내일 죽을지라도 연연해 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을 행복하게 하고 여러분의 인생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보장해주는 것은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하나님을 만나고, 음성을 듣고, 하나님으로부터 확신을 받을수 있었다면 무섭고 두려운 것은 없습니다.

유다 땅은 부정과 부패 등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만 저질렀습니다. “하나님 왜 심판을
하지 않으십니까? 왜 악이 득세합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입니까?”라고 하박국이 1장과 2장에서 항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악의 심판자로 당시 강대국인 바벨론이 등장합니다. 그러자 하박국은 더 화가 났습니다. 이스라엘 보다 악한 세력이 더 악한 짓을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왜 그냥 두고 보시는지 이해할 수 없어 하나님께 따집니다. 그것이 2장의 이야기입니다. 그런 갈등 속에서 하박국이 하나님을 만납니다. 저는 여러분이 부조리, 이해되지 않는 것, 억울함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복을 얻길 바랍니다. 2장 14절을 보면 유명한 성경구절이 나옵니다.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20절을 보십시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찌니라”

이것이 대답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를 행하시고, 구원을 베풀고 계십니다. 밤이 깊으면 새
벽이 가까워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지금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을 하박국이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부흥과 긍휼

3장을 보십시오. 이제 하박국은 하나님과 논쟁하는 것을 멈춥니다. 자기 신앙 경험과 논리로는 악인이 득세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아 괴로웠는데, 성소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박국의 원망은 기도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1절은 항의나 따짐이 아니라 ‘기도’입니다. 믿음이 없을 때는 ‘왜 이런 고난이 나에게 주어졌나’ 계속 따지고 항의하고 부딪히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부터 중보기도로변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하박국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자기 조국의 비참한 운명, 국제정세의 참혹한 현실, 살아날 방법이 없는 절망 중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하박국은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라는 기도를 드립니다. 여러분이 놀라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냥 교회 와서 설교 듣고 성경공부하고 머리로만 믿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죽음에서 부활하는 영적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발견했던 것처럼, 쓴 물이 단물이 되는 것을 발견했던 것처럼, 최악의 상황인 광야에서 이런 비밀들을 발견하기 시작할 때 광야는 흥분되고 감격스러운 복이 된다는 사실을 경험합니다.

이 충격을 경험하고 하박국의 마음에 두 단어가 생각납니다. 하나는 ‘부흥을 주옵소서’입니다. 그 마음에 부흥에 대한 소망이 생겨난 것입니다. ‘살아난다. 부활한다. 내일이면 변한다. 황무지에서 장미꽃이 핀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것을 본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긍휼’입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한 존재입니다. 돌이켜보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의 허물을 감싸주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을 다 덮어주십니다. 공의, 정의라고 인간들은 주장하지만 그 틀에 제일 먼저 걸리는 것은 우리들 자신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감싸주시고 눈감아주시고 모르는 척 해주셔서 우리가 다 살아난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긍휼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전환점


3절부터 6절에서 하박국은 하나님의 엄청난 영광을 목격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음
성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영광, 광채, 온 세계 가득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게 된 것입니다. 7절부터 9절까지 하나님의 병거가 구산의 장막과 미디안 땅을 심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박국이 본 환상은 아주 구체적이고 입체적이고 생동적이었습니다. 10절부터 15절에는 하나님의 승리, 하나님의 권능이 만연합니다. 바다를 밟으시고 바다와 강과 모든 것을 흩으시고 악한 세력을 하나님께서 순식간에 무찌르십니다. 누구도 무찌를수 없는 강대국을 무찌르십니다. 승리하시는 그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환상을 보고 나면 어떤 절망도, 죽음도, 패배도 나를 절망케 할 수 없습니다.

16절입니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 왔으며 내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예수님 믿는 것은 단순한 지적 활동, 이성적 활동이 아닙니다. 신앙은 내 심장을 쏟는 겁니다. 내 창자가 떨리고 입술이 떨리고 내 삶에 지진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7절에서 하박국은 기뻐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막에 버려질지라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사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무 성취감이 없어도 결코 선교를 멈추지 않습니다. 분노하고 하나님께 항의하던 하박국의 소리가 중보기도로 변합니다. 염려는 예배로 바뀌고 두려움은 믿음으로, 공포는 신뢰로, 자기포기는 희망으로 바뀌기 시작하고 번민은 찬양으로 사라져버립니다. 물음표는 느낌표로 바뀝니다. 오늘 이 밤에 여러분에게 이런 일이 동일하게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1장과 2장, 3장 사이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하박국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에게 환경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처지는 사막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사역자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혹시 사역하다 지치지 않았습니까? 혹시 사역하다 영혼이 메마르지 않았습니까?여러분이 하는 일이 하나님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지치지 않았습니까? 하박국 3장의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만나는 기적과 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구약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므로 하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냥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처럼 허무맹랑한 것은 없습니다. 그하나님은 야훼일수도, 이슬람의 하나님일 수도, 동양의 하나님일 수도 있습니다. 종잡을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깨닫고 만나고 경험하고 체험하려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나는 듣습니다. 신앙은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형태로든지 말씀하십니다. 구약시대에는 직접 말씀하셨고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실체를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은 말씀을 들을 뿐이지 보지도 만지지도 못합니다. 우리는 육이고 그분은 영이시기 때문에 그 분을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실체가 잡히는 것이 있습니다. 말씀입니다. 말은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므로 하나님의 실체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 분이 능력으로 나타나신 것이 성령님입니다 . 그래서 성령을 통해 말씀을 경험하고, 예수님을 통해 성경을 경험합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크리스천임을 나타냅니다. 그것이 성령의 내적 증거입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매를 맞을 때도, 목이 잘릴 때도 기뻐했습니다. 이것을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실체가 내 몸 안에 들어왔기 때문에 내 모든 오감, 지성, 이성, 내 경험의 세계를 말씀이 통치합니다. 이런 복이 오늘 여러분에게 있기를바랍니다. 하박국이 이것을 3장에서 경험합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모든 언어가 바뀌고 그의 기도는 시가 되고 찬양이 되고 예배로 변합니다. 성공과 실패를 초월하십시오. 병과 건강을 초월하고 환경을 초월하십시오. 내 안에 계신, 말씀으로 오신 그 분을 모십시오.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일곱 가지 이유


영적으로 성숙한 분들이 한 얘기를 정리해보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데는 일곱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유는 관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주파수가
맞아야 합니다. 텔레비전에 케이블을 꽂기 전에는 화면이 지직거리지만, 케이블을 꽂으면 선명하게 보이듯이 주파수를 맞추면 하나님의 음성은 선명하게 들립니다. 사랑의 주파수와 구원의 비밀번호가 맞으면 누구든지 하나님과 접속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비밀번호도 맞고 주파수도 맞는데 들리지 않는 이유는 접속이 불량하기 때문입니다. 관계가 정상적일지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숨은 죄가 있거나 죄 가운데 있으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자기 이기심, 욕망, 야망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충고가 들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말씀을 해도 듣지 못합니다.

세 번째, 동기가 불순할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이기적인 동기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누구를 미워하거나, 어떤 이익을 취득하려 하거나, 야망을 성취하기 위해 교회에 나오고 사람을 이용하면 금식을 한다 해도 음성은 들리지 않습니다.

네 번째, 성경에 대해 지식이 부족하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성경에 해답이
다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지금 몇 시입니까?’하고 물으면 하나님은 “지금 9시 40분이다”하고 대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시계를 봐라”고 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물음의 해답 대부분은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에는 십계명부터 직업선택 원칙, 사람 사귀는 원칙, 상처 받았을 때 해결하는 방법이 다 있는데 우리는 하나님께 음성을 들려달라고만 합니다.

다섯 번째, 교만하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교만은 자기를 높이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여섯 번째, 믿음으로 순종하지 않을 때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다 정해놓
고 하나님을 이용합니다. 자기 이기심은 다 숨기고 겉으로 교양있고 신앙적으로 행동합니다. 이기심도 만족시키고 신앙적 칭찬도 받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일곱 번째,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이유는 자기 포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진정한 적은 사탄이 아니라 내 자신입니다. 자기를 쳐서 복종하게 해야 합니다. 대화도 그렇습니다. 내가 조용해야 상대방 말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내 소리가 크면 상대방 이야기가 들리지 않습니다. 내 생각을 죽여야 하고, 내 자존심과 의지를 꺾고 ‘주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하고 주님께 의뢰할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음성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 분께서는 말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는 성부하나님이 말씀하셨고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듣는 음성은 전부 성령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가장 기본적인 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 매일 기도하십시오. 하루에 15분씩이라도 매일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과 교제
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맑은 영혼과 깨끗한 양심과 거룩한 믿음을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한 사람이 되게 해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십시오.

두 번째, 일곱 가지 장애를 기억하며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점검하십시오.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대로 나와 하나님의 사이를 막는 장애물이 무엇인지 점검하십시오.

세 번째, 성경을 많이 읽으십시오. 꾸준히 성경을 읽으면 성경적인 세계관과 가치관, 안
목이 생깁니다. 그리고 영적 민감성이 키워집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 하나님과의 관계, 교제를 끊임없이 계속하며 민감하게 자기 영혼을 다듬어 놓으면 쉽게 하나님의 마음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감동받은 시가 있습니다. 피곤한 어머니는 폭풍우 가운데도 잠을 자지만, 갓 태어
난 어린아이가 뒤척거리는 소리에는 깨어난다는 내용입니다. 그것이 엄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신음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끊임없이 우리를 격려하시고 회복시키시고 치료하시고 도전하시고 우리를 강하게 만드십니다.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더욱 더 친밀한 관계로 들어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y 코이네 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