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출애굽기

[출4:18] 할례 언약과 피남편

'코이네' 2020. 6. 2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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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례 언약

 

본 문 : 출애굽기 4:18-26

 

 

모세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위대한 일꾼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태어나서부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죽임을 모면하고 건져 주심을 받았습니다. 애굽 왕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40년간 자라났고, 40세가 되던 해 하나님께서는 그를 광야로 보내어서 다시 40년동안 훈련과 연단을 광야에서 마친 그러한 인물입니다.

 

이제 훈련을 다 받은 80세된 모세를 하나님께서 다시 불러 주십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신음 중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보내어 그 백성들을 불러 가나안 땅으로 출애굽 하는 엄청난 일에 이 모세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큰 사명을 갖고서 모세는 이제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의 지팡이를 가지고 애굽으로 떠나게 됩니다. 자기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사명의 길을 갑니다.

 

그런데 길을 가는 도중에 갑자기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시려고 하십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오늘 본문 출애굽기 42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시는지라.”

 

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이해가 잘 안가는 부분들이 있습니다만은 여기 본문도 이해하기가 참으로 힘듭니다. 어떤 성도님께서도 성경의 이 부분을 읽으시다가 왜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어서 보내는 모세를 갑자기 죽이시려고 하시는지 이해가 잘 안된다고 전화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모세를 자기 백성 구원시키는 일에 사용하시려고 사명을 주셔서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하나님이 그러한 사명자 모세를 죽여 버리시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화가 나셨으면 모세를 사명의 길을 떠나려고 하는 마당에 죽이시려고 하셨습니까? 모세가 무엇을 얼마나 크게 잘못했기에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오늘 본문을 조금 더 읽어보면 2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가로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그제야 비로소 여호와께서 모세를 놓으니라 그 때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를 인함이었더라.”

 

그래서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할례를 행해야 하는 모세가 자기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이방인 아내 십보라가 자기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자고 해서 모세가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할례를 행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

 

그러자 하나님께서 진노를 하셔서 하나님께서 80년을 훈련시킨 모세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할례를 시키지 않는 모세의 가정을 보고 모세를 죽이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깜짝 놀란 모세의 아내가 차돌을 취해서 두 아들의 양피를 베어 집어 던졌습니다. 그러면서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내 자식들의 피를 꼭 보아야 하느냐하면서 할 수 없이 할례를 행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지 않고 놓아주십니다.

 

도대체 할례가 무엇이기에 그렇습니까? 자신도 아니고 두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명의 길을 가는데 죽이시려고 하셨습니다. 이 할례가 뭐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오늘 이 시간에 한 번 이것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옛날 연속극중에 사랑이 뭐길래라는 드리마가 있었습니다. 이 시간에는 할례가 뭐길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할례 언약을 맺으시는 장면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아브라함에게 할례 언약을 지시하시는 모습입니다. 창세기 17장입니다. 1절부터입니다. 이 창세기 17장은 유명한 할례의 장입니다. “아브라함의 구십 구세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언약이라는 말이 벌써 두 번 나왔습니다.

7절에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7절에는 언약이라는 말이 두 번이나 나옵니다. 벌써 네 번이나 언약을 말씀하십니다.

 

도대체 무슨 언약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9절입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하면서 드디어 언약이 무엇인지 이야기하십니다. 10절입니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할례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간단히 말하면 포경 수술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지 반드시 행하라고 하십니다. 11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난지 팔일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그래서 24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그 양피를 벤 때는 구십 구세이었고 그 아들 이스마엘에게도 양피를 베고 당일에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고 그 집의 모든 남자 곧 집에서 생장한 자와 돈으로 이방 사람에게서 사온 자가 다 그와 함께 할례를 받았더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세운 이 유명한 할례 언약을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후로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누구나 전부다 할례를 받게 됩니다.

 

이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으로서 지키면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 축복의 은혜를 내리시고 안 지키면 천국, 이스라엘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 끊쳐지리라고 하는 아주 엄격한 효력이 있는 언약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해서 할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할례를 받는 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에서 시작한 이 할례를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자기 아들들에게 안 시키려고 그랬던 것입니다. 이 할례 언약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약속은 철저히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친히 불러서 사용하시는 도구라 할지라도 할례 언약을 어기게 되는 모세를 그냥 죽이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언약에 철저하신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엄위하심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확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그렇게도 소중히 여기십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언약, 약속들을 보십시오. 안 이루어진 것이 없습니다. 노아의 가족들에게 무슨 언약을 체결하셨습니까?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해서 무지개 언약을 세워 주셨습니다. 지금도 비온 후에 무지개가 생기곤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처녀의 몸에서 아들 메시야를 보내리라고 했는데 약속대로 예수님이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습니다. 죽으리라고 했는데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부활하시리라고 했는데 과연 약속대로 부활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성령을 보내 주시기로 약속했는데 마가의 다락방에 정말 성령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이 세상에서 자기의 언약을 지키십니다. ? 자기를 두고 맹세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두고 맹세하신 이 언약에 대해서 지키지 않는다면 자기 스스로 자기 존재를 부인하는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 언약을 지키려고 자기가 아끼는 모세라 할지라도 할례를 행하지 아니하면 그 자리에서 죽이려고 하셨던 엄위로우신 철저한 모습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할례 언약을 세우셨습니까? 왜 하필 남자아이들의 성기 포피를 베어 버리는 그런 이상한 언약을 세우셨습니까? 요즘은 건강상의 이유로 남자라면 보통 포경 수술들을 많이 합니다. 더욱이 요즘은 어린아이들에게 포경 수술을 해 줍니다. 태어나자마자 포경 수술을 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들이 권장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창세기 시절부터 인간의 건강에 좋다는 이유로 할례를 명하셨습니까? 그러려면 태어날 때부터 아예 할례를 해서 보내시지 왜 태어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시킵니까? 하나님의 실수입니까?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깊은 무슨 뜻이 있으십니다. 이 성경은 잘 지키면 영육간에 여러 가지로 건강하지만 이 할례에 대해서는 건강을 목적으로 할례 받으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다른 깊은 뜻이 있으십니다.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명령들에는 어떤 감추어진 깊은 뜻, 참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비유에도 알고 보면 나중에 깊은 뜻이 있지 않습니까? 비유, 모형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신명기 1016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이상하지 않습니까? 여기서는 몸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에 할례를 행하라고 합니다. 신명기 306절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이것은 무엇입니까? 실제로 진짜 할례는 마음에 하라는 것입니다. 육체의 할례로 양피를 베어 던져 버리듯이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을 던져 버리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44절에도 이렇게 말합니다.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 마음의 할례를 하라고 말합니다. 예레미야 926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그래서 바울은 신약 시대에 로마서에 이렇게 비밀을 말합니다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참 할례는 사람 몸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마음을 벗기는 것입니다. 로마서 229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그러면 마음에 할례를 받는 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골로새서 211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실 할례는 손으로 양피를 베어서 잘라 버리는 것입니다. 벗겨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손으로 하는 할례인데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진짜 할례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수술 칼을 들이대사 나의 더러운 육적 소욕과 욕심과 욕정의 더러운 모든 것들을 벗겨 버리고 내 속에 깨끗한 새 영혼을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할례요,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할례입니다.

 

이렇게 참 할례를 받지 않으면, 마음에 그리스도 예수를 믿어서 마음이 새로워지고 죄된 욕심의 마음을 깨끗이 벗어버리지 않으면 천국 백성에서 끊쳐진다는 것입니다. 옛날 유대인들은 몸에만 할례 받으면 다 되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만은 바울이 혈기를 나타내면서 육신의 할례는 진짜 할례가 아니요,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것은 마음속에 받는 할례를 말하려고 구약에 비유로 육신의 할례를 말씀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22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내 영혼 속에 더러운 생각, 죄된 생각, 육신의 모든 악한 생각을 다 벗어버려야 이것이 참 예수 믿는 것이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마음의 참 할례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또 귀에다가도 할례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하느냐귀가 무엇으로 가리워져서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씀을 듣지 못하므로 귀에 할례를 받아서 막혀져 있는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고 이렇게까지 말을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조금 더 살펴보십시다. 성경은 깊이 살펴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구약에서는 부싯돌로 할례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당시에 철, 칼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칼로 서로 싸움도 했습니다. 칼도 있고 청동기도 있는데 하필이면 왜 부싯돌로, 차돌로 할례를 베풀라고 했습니까? 위생적 이유입니까? 아닙니다. 여호수아 52절에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여호수아 장군 시대는 칼로 싸우던 시대입니다. 여호수아 53절에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오늘 본문에도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것으로 할례를 행합니다. 여기에 무슨 뜻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냥 일부러 하나님께서 장난으로 구하기 힘든 차돌을 구해서 할례를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왜 돌멩이로 사람 몸에 피를 내서 육적 껍질을 벗기라고 합니까?

 

바로 성경에서는 돌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반석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도 자기 자신을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세상을 다 쳐서 멸망시킨다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돌은 곧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반석이 깨뜨려져서 반석에서 돌이 나왔으니 이 반석은 곧 그리스도니라.” 이해가 되십니까? 바로 예수님으로 심령을 할례 하라는 것입니다.

 

또 차돌은 어떻게 하면 날카로워 집니까? 깨뜨리면 차돌을 짝 갈라집니다. 끝부분이 유리처럼 날카로워 집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깨어졌습니다. 돌멩이가 깨어지고 그 깨어진 것으로 내 몸에 자국을 내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향유 옥합 한 근을 가지고 와서 깨뜨렸습니다. 깨뜨렸더니 그 향유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저가 내 장사를 예비하느니라다시 말하면 이 향유 옥합이 깨어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옥합인 예수 그리스도가 깨어져서 향유 기름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하듯이 예수님이 세상 사람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시려고 자기 자신이 깨뜨려 졌다는 말입니다.

 

부싯돌을 깨뜨려서 그 돌멩이의 날카로운 부분으로 할례를 행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그 놀라우신 예수님께서 내 마음에 할례해 주시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가 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8일만에 할례를 행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또 무슨 이유가 있는 것입니까? 7일이면 7일이지, 3일이면 3일이지 왜 8일만에 할례를 하라고 하는 것입니까?

 

출애굽기 2230절에 너의 소와 양도 그 일례로 하되 칠 일 동안 어미와 함께 있게 하다가 팔 일 만에 내게 줄지니라.”고 했습니다. 첫 초태생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소나 양이 처음으로 새끼를 낳으면 태어나자 마자 하나님께 가져오지 말고 7일 동안은 그 어미에게 있게 한 후에 8일째에 하나님께 가져와서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어미가 불쌍해서 그렇습니까? 그 새끼가 불쌍해서 그렇습니까? 7일 동안 젖먹으라는 뜻입니까? 7일은 놓아 두었다가 8일째에 가져오라고 합니까? 왜 우리 인간에게서 태어난 아기도 8일째 하나님께 데려와서 할례를 받으라고 합니까? 예수님도 세례 요한도 다 8일째 성전에 와서 할례를 받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기에도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6일간 창조하시고 7일째 쉬셨습니다. 일하시고 쉬는 것으로 한 기간, 이것을 텀(term)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끝이 납니다. 그 다음 8일째는 새로운 시작입니다. 오늘이 일주일 중 몇 번째 날입니까? 첫째 날입니다. 달력에도 일, , , , , , 토로 되어 있습니다. 토요일이 안식일입니다. 그래서 제 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는 토요일에 예배드립니다. 그런데 구약에는 안식일입니다만은 사도행전에 보면 여드레 날에, 안식 후 첫날에 예배를 드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우리는 안식일에 예배 안 드리고 주일날 예배를 드립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 땅의 모든 죄를 지고 죽으셨습니다. 안식하셨습니다. 금요일날 십자가에 달려 토요일날 하루 푹 안식하셨습니다. 그것으로 이 세상 우리의 죄는 다 사해진 것입니다. 장사지낸 바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일 아침에 부활하셨습니다. 8일째에 부활하셨습니다. 새롭고 위대한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완전히 새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오묘한 8일의 진리가 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7일간은 데리고 있다가 8일째는 다시 시작하는 첫 시작의 날에 하나님께 새로이 바치라는 말입니다. 그 전 7일하고는 틀립니다.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 다음주의 첫날입니다. 8일째에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약 시대에 에수 믿는 사람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안식으로 끝나고 새로운 주님과 함께 새 출발하는 주일날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하여 예배드리는 것으로 안식일이 주일날로 신약 시대에 새롭게 바뀌어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8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상관이 있습니다. 완전히 주님과 함께 새 출발을 하자는 것입니다.

 

할례 받는 사람은 주 예수를 믿는 사람이요, 그 마음이 할례 받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인 부싯돌, 차돌로 그 마음에 피를 내서 할례 받는 것입니다. 완전히 예수 믿고 그 마음이 새로워져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할례에는 엄청난 뜻이 있었습니다. 예수 안 믿으면 그 마음에 새롭게 변화되지 않으면 절대로 천국 백성이 되지 못합니다. 마음에 할례를 받아서 예수 믿고 거듭나지 않으면 자기 백성에서 끊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마음에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은 영원히 지옥 불에 멸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철저히 지키시겠습니까, 안 지키시겠습니까?

 

이 약속이 잘 믿어지지 않으면 구약 시대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모세라 할지라도 지금까지 80년동안 기르고 연단 시켜서 지금 자기 백성들에게 보낼 사명자 모세라 할지라도 할례를 행하지 않은 이유로 그 자리에서 죽이시려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구약 시대에 가장 위대한 인물입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 놀라운 할례의 언약을 대대로 영원토록 지키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약속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인생에게 죽음을 허용하시더라도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십니다. 이분이 엄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크고 두려우신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교독문에서도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계 모든 거민은 그를 경외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릅니다.

 

내일 모레면 6.25 46주년입니다. 오늘은 6.25 46주년을 기억하면서 북한 선교 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46년전에 이 나라에 하나님이 엄청난 비극을 허용하셔서 수백만 명의 사상자가 났고 그것을 직접 목격하신 분들도 여기에 많이 계십니다. 그런데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수많은 인간들의 생명이 달린 전쟁이 왜 일어나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하신다면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서운 이 세상의 사고를 보면서 하나님은 하신다면 하시는 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6.25직전에 우리 나라가 얼마나 혼란했습니까? 정치인들은 서로 서로 사색 당쟁으로 싸우고 종교인들은 종교인들끼리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고 서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무서운 혼란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 민족에게 심판의 모습을 보이신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도 모든 전쟁은 하나님의 징계였고, 심판이었습니다. 이 놀라운 모습을 보면서 이 백성들이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고 하신다면 하시는 분임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더 중요한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약속을 지키시고 수백만명까지 전쟁을 통해서 죽이기까지 한 번 하신다는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신데 예수 믿지 아니하고 마음에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천국 백성 중에서 끊쳐져 영원한 멸망에 들어가리라는 이 약속을 하나님께서 파기하시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그럽니다. ‘설마 하나님이 그러실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람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 현재 사람들이 하나님을 무서워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악이 번창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짓고 악을 행하면 죽음 후에 심판을 하신다고 했는데도 하나님을 향해서 조롱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 이 사회가 이 모양이 된 것입니다.

 

성도님 여러분. 6.25 기념 주일을 맞이해서 우리 민족들이 우리 할아버지 어머니 때에 수백만 명이 동족 상잔의 비극으로 넘어져 죽는 하나님의 심판을 우리는 목격했습니다. 하나님은 하신다면 하시는 분이심을 다시 한 번 깨닫고 모세같은 위대한 사명자도 약속을 어기면 죽이신다는 이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깨닫고 마음에 주님의 말씀으로 날마다 할례를 받으시고 여러분 마음에 육신의 소욕을 주님 앞에 내어 던지셔서 이 다음에 지옥 불이 아니라 천국의 백성들이 되시기 바라며, 아직도 할례 받지 못하고 마음이 새로워지지 못한 우리 민족 우리 백성들을 위해서 그들도 마음에 할례를 받아 변화 받고 하나님 두려워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위해서 기도하며 나 스스로가 날마다 새로워져서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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