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레위기

[레19:9] 네 이웃을 사랑하라

'코이네' 2020. 12. 14. 21:29

네 이웃을 사랑하라

19:9-10, 18

 

 

 

우리는 오늘 지난 주일부터 예고해 왔고,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를 설교를 통하여 살펴본 바와 같이 이번에 전국적으로 내린 집중호우로 인하여 가족을 잃고, 재산을 잃은 우리 동포들을 위하여 헌금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고, 동시에 우리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명적인 행동입니다. 초대 교회에 마게도니아에 있었던 교회들,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등에 있었던 교회들은 극한 가난과 많은 환란의 시련 가운데서도 예루살렘 교회가 기근과 핍박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힘에 지나도록 헌금하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IMF 관리체제 아래에서 경제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당하고 있고, 게다가 집중호우로 인하여 많은 농작물들이 유실됨으로 물가가 많이 올라 생활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지배한다면 우리 동포들이나 이웃들 가운데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리가 가진 것이 비록 적다할지라도 구제하고 봉사하는 일에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집중호우로 인하여 가족을 잃거나 재산을 잃어 고통 가운데 있는 동포들을 위하여 헌금에 참여하면서 지난 주일에 이어 다시 한번 성경적인 원리를 찾기를 원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일은 신자의 특징적인 삶의 방식입니다. 오늘은 특히 우리 신자에게 있어서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레위기의 문맥에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본문의 주제는 구원함을 받아 하나님과 교제하는 신자는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특히 수입의 일부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주제를 연구하면서 첫 번째로는 레위기의 구조와 주제, 두 번째로는 이웃 사랑의 구체적인 실례, 세 번째로는 이웃을 사랑해야 할 이유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레위기의 구조와 주제

 

우리 신자들이 일반적으로 창세기부터 읽기 시작하다가 레위기가 나오면 뛰어 넘어가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복잡한 제사제도를 기록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레위기서를 자세히 읽어본 성도라면 알고 계시겠습니다만, 제사제도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는 있지만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내용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법입니다.

 

레위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바른 방법을 보여주려는 목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레위기의 주제를 분명하게 파악하기 위하여 출애굽기와 연관하여 살펴보면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25장부터 마지막 40장까지 성막에 관한 기록입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40장에는 성막이 완성되어 그 위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40:34-38). 하지만 이 마지막 부분에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하여 모세도 함부로 들어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출애굽기 마지막 부분에 완성된 성막에 들어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겠습니까? 레위기는 이 성막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레위기는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 어떻게 하나님께 나갈 수 있고, 교제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은 본질적인 부분입니다. 리랜드 라이컨이 지은 청교도 : 이 세상의 성자들이라는 책에 청교도의 삶의 특징들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청교도들이 가자 애용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는 "경험"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경험은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오는 경험을 말합니다. 이 책에서 "성도는 은혜의 작용에 관하여 경험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성도는 불 곁에 있으면 덥다는 것을 알고, 꿀을 찍어 먹어 본 후 달다는 것을 알 듯이 은혜의 작용을 경험으로 확실히 안다"고 하였습니다. 만약에 우리 신자의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으면서 그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처럼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의 본질적인 부분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은혜를 경험하는 일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 은혜를 체험할 수 있겠습니까? 구약의 레위기서는 이 점을 아주 자세하게 가르쳐 주는 책입니다.

 

하나님은 레위기에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길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제사제도를 통하여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제사제도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건제, 속죄제, 대속죄일에 대한 규례 등이 있습니다(1-5, 16-17). 두 번째로는 제사를 집행하는 대제사장이나 제사장의 중보적 사역을 통하여 나아갈 수 있습니다(8-10, 21). 세 번째로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 즉 하나님의 백성들의 성결을 통하여 나아갈 수 있습니다(11-15, 18-20, 24-27). 우리는 잘 알고 있는 대로 구약의 제사제도나 제사장이 예표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그 모든 예표하던 것이 실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함을 받은 우리는 구약의 제사제도나 제사장의 중보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 자유롭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레위기에서 세 번째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인 제사를 드리는 백성들의 성결한 생활은 그대로 우리에게 적용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과 교제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할 수도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연구할 본문, 레위기 19:9-10은 바로 이 문맥 속에 있습니다. 레위기의 문맥 속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일은 살아 계신 하나님과 교제하는 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 교제하기 위해서는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이웃 사랑의 구체적인 실례

 

우리 신자들이 이웃을 사랑한다는 말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구체적인 실례들이 레위기 19:9-18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 우리 수입의 일부를 가지고 봉사하는 것, 도적질하지 않는 것, 속이지 않는 것, 거짓말하지 않는 것, 거짓 맹세하지 않는 것, 이웃을 압제하거나 강제로 재산을 강탈하는 것, 품꾼의 삯을 미루는 것, 장애자를 마음 아프게 하거나 괴롭히는 것, 불공정한 재판을 하는 것, 형제를 미워하는 것, 복수 정신을 가지는 것, 동포를 시기하는 것 등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말씀의 결론으로 레위기 19:18 후반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와서 계명 중 어느 계명이 가장 크냐고 질문하였을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22:37-40)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 가운데 후반부는 바로 레위기 19:18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은 이웃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실례 가운데 맨 처음에 나오는 부분입니다.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너의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의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19:9-10)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과 그 나라에서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타국인을 위하여 곡물을 추수할 때 다 거두지도 말고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고, 포도원의 포도도 다 따지 말고, 또한 떨어진 과일도 줍지 말하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가난한 자들이나 타국인들이 먹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이 사사시대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룻기서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나오미는 그 남편 엘리멜렉과 함께 이방 나라 모압으로 갔다가 남편과 두 아들이 외국에서 다 죽고 모든 재산까지 다 잃어버리고 빈털터리로 돌아왔습니다. 오직 그의 자부 룻만 그 곁에 있었습니다. 자기 땅 한 평도 없었던 나오미와 룻에게는 주변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룻은 추수하는 밭의 이삭을 줍기 위하여 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보아스의 밭으로 인도하여서 많은 이삭을 줍게 하였습니다. 보아스는 그의 밭으로 이삭을 줍기 위하여 온 룻을 위하여 평소보다 더 많은 이삭을 남겨 주어서 먹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보아스를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다윗의 증조부 오벳을 낳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보아스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밭의 일부를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밭의 전부를 추수하지 않고 일부를 남겨놓거나 포도원의 과실을 따지 않고 일부를 남겨 놓는 것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의미는 오늘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당시의 사회가 오늘날처럼 산업사회나 정보화 사회가 아니고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추수 때 다 추수하지 않고 남겨 두거나 이삭을 남겨 두는 것은 소득의 일부를 가난한 들과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타국인을 위하여 사용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남겨 둔 밭이 1/10일 수도 있고, 5/10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소득의 일부를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주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받는 소득의 일부를 그것이 우리 전체 소득의 1/10이나 2/103/10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 이상 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소득, 비록 작은 수입에 생계에 의존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수입의 일부를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사는 것이 성막에 들어가 하나님과 교제하며 은혜를 받으며 사는 사람들의 삶의 특징적인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말씀을 실천하지 않고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활동하던 기원전 8세기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잔인하게 가난한 자들을 멸시하고, 이들을 이용하여 부를 축적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모스 2:6-7에 보면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었다"고 책망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시 가장 작은 가격에 해당하는 신 한 켤레 값을 받고 가난한 자들을 노예로 팔기도 하고, 가난한 자들의 머리에 있는 작은 티끌까지도 탐내어 억압하고 착취하였습니다. 이것은 당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소득의 일부를 가난한 자를 위하여 내어주라는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베풀지 않음으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까지 바 빼앗고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였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역사가 보여주는 교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볼 때 우리 수입의 일부를 떼어서 베풀어야 합니다.

 

3. 이웃을 사랑해야 할 이유

 

그러면 왜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이 가난하거나, 어려움을 당하고 있으면 도와야 할까요? 이 본문은 그 이유를 말하기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 속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은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는 말씀 가운데 "너희"라는 말씀 가운데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신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구속받은 자들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계적인 표현이 구약에서 가장 많이 표현되고 있는 말씀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적인 표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사야 41:10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보호자가 되시고 인도자가 되시며,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동일한 말씀이 기록된 신명기 24:19-22에서는 이 말씀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네가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하노라." 여기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큰 능력으로 구원해 내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셨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가난한 이웃들을 위하여 수입의 일부를 구별하여 베풀어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우리 하나님으로 섬기게 되었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 가운데 에베소서 2:1-5에서 우리는 허물과 죄로 다 주었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던 백성들이었으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으로 인하여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지은 죄와 허물을 예수님에게 다 담당시켜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사흘만에 살리셨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 앞에 산 자가 되어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은혜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 가운데 하나가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을 위하여 우리 소득의 일부를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우리 신자들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요 책임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많이 사용하고 있는 프랑스어로 된 노우블레스 오우브리지(noblesse oblige)라는 말과 같은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특권에는 책임이 수반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는 특권을 부여받았다면 가난하고 고통받는 자들을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난한 자들을 도울 때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24:19)고 하셨습니다.

 

돈이 우상인 사람은 가난한 자들이나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절대로 도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았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지배하고 이것을 축으로 우리의 삶을 조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받는 모든 수입을 하나님께 나라와 그의 복음을 위하여 사용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가난한 자들이나 고통받는 자들을 돕는 일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레위기 본문에서 가난한 자들이나 고통받는 이웃을 사랑하는 문제를 살펴보았습니다. 레위기서의 주제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은혜를 누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제사 제도와 제사장의 중보를 통하여 나아가기도 하였지만, 또한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성결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살펴본 바가 있습니다. 신약시대에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함을 받은 우리는 합당한 삶으로 나아가야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 은혜를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가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우리 소득의 일부분을 나누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집중 호우로 인하여 고통받는 이웃을 위하여 우리의 소득의 일부를 나누는 것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은혜를 경험하는 방편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이번 한번만이 아니라 마지막 완전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날까지 가난한 자들이나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위하여 우리 수입의 일부를 떼어놓는 일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절제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삶을 살 때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신비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