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누가복음

[눅18:1] 하나님의 나라를 받는 자 / 강기원 목사

'코이네' 2016. 3. 12. 20:45

하나님의 나라를 받는 자

(눅18:1-43)

 

세상에서는 공로가 많은 사람에게 상을 줘요. 업적이 많은 사람이 인정을 받구요. 그래서 영화계에서 공로가 크 면 아카데미상을 주고 대종상도 주고 해서 업적을 알리고 공로자를 치하한단 말이죠. 또 노벨상이라는 제도도 있어 서 학문적으로 혹은 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된 사 람에게 막대한 상금과 함께 굉장한 명예를 주죠. 이러한 인간의 공로와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알리는 제도가 올림 픽 경기를 비롯하여 각종 수많은 포상제도가 있단 말이 죠. 어버이날에 주는 효자/효녀상, 스승의 날에 모범적인 스승에게 드리는 상도 있어요.

공로와 업적이 없는 사람은 취급을 받지 못하는 이 러한 제도는 심지어 가정에서도 일어나요. 자녀들이 학교 에서 공부를 잘 하면 자전거나 혹은 컴퓨터를 사 준다는 약속을 하는것등이 그런 거 잖아요? 이런 포상제도가 있 는 것은 더욱 좋은 업적과 공로를 쌓도록 격려하고 보답해 주려는 좋은 의도가 있어요. 그래서 이런 상을 얻기 위해 서 경쟁이 붙고 많은 경쟁을 물리칠 수록에 더 많은 상과 명예가 주어진다 말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많은 공로가 있 으면 당연히 상을 얻고 공로가 없으면 상을 받을 수 없다 고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이러한 문화는 어디서 시작이 됐을까? 바로 인간의 종교심이 그 원인이다. 인간은 자신의 능력이 제한 되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 되지 않는 문제나 상황을 만나면 신에게 의존하려고 한다. 그래서 이 신에게 평소에 잘 보이고 친하게 지내 둘 필요 가 있는 것은 바로 이 신의 도움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인은 정한수를 떠놓고 새벽마다 정 성을 다 하여 빈다.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간 낭군을 위해 서 열심히 빌면 칠성님이나 성황 님이 그만 감동을 하여 소원을 들어준다고 생각하는 거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라는 말이 바로 그거요. 내가 열심히 칠성님, 성황임, 혹은 조상신을 잘 섬기면 그들이 감동을 한다는 말이지... 그런데 이런 종교심이 동서와 고금을 구별하지 않고 모든 인간을 사로잡아 왔어요.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 도 예외는 아니였다. 그들은 열심을 다 하여 하나님을 잘 섬겨드림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율법을 철칙으로 알았다. 하나님을 잘 섬기지를 않으면 저주요 개 같은 짐승이라고 생각했다.

 

이 글의 주제로 택한 성경 본문에서도 이러한 이스 라엘 백성의 종교심을 예수께서 지적하시는 거예요. 바리 세인은 스스로를 의롭다고 생각하면서 기도하기를 저 세리 처럼 '자기는 토색, 불의, 간음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 나 감사하고... ' 더욱이 금식을 일주일에 두 번씩이나 하 고 십일조를 철저히 지키기 때문에 의롭게 된 것을 감사하 다고 기도가 아닌 공치사를 늘어 놨어요.

 

또 어떤 부자가 예수께 와서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 하여 질문하면서 자기는 어릴 때부터 간음하지 않았고 살 인은커녕 도적질의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고 심지어는 거짓 말도 해 본적이 없을뿐더러 부모를 열심히 공경했다고 자 부했다. 와... 정말 대단한 사람이예요, 어떻게 거짓말 한 번 해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몰라, 그러니 이 정도 면 영생을 얻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을 하는 거 지...

 

예수는 바로 이 부자를 보고 기가 질리셨나? 와, 그 랬냐? 너 참 수고했다. 너는 합격...!!! 하신 게 아니고 그 무지무지한 자부심을 완전히 묵사발로 만드셨는데 "야, 너 네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너는 나를 쫓아라, 그러면 하늘의 보화를 주겠다" 그러셨어요. 질린 쪽은 바로 자부심밖에 없던 바로 이 부자였어요. 제 딴에는 자기의 계명을 철저히 지킨 그 행위가 선한 선생님 예수에게 어느 정돈 인정을 받을 수 있을 줄로 알았는데 웬걸? 완전 빵점이거든....? 게다가 있는 재산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뿌리고 오라는 예수의 대답을 듣고 그만 근심하면서 뺑소니를 쳤어요. 이런 부자의 등뒤로 던지는 예수의 말씀이 또한 질리는 말씀이예요. "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게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어렵다." 는 거죠. 이 말씀을 듣고 또 누가 질렸게요? 베드로가 질 려 버린 거예요. "그러면 과연 누가 구원을 얻겠어요?" 예 수 가라사대 "사람은 못해도 하나님은 하신다" 는 겁니다.

 

지금까지 베드로는 예수의 말씀을 듣고 잠잠히 있었 지만 참으로 황당한 심정 이였다. 하나님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요새말로 날아가는 새까지도 떨어뜨리는 재판관이 원 한에 사무친 일개 과부의 번거롭게 구는 걸 견디지 못하고 그 과부의 소원을 들어주었다는 말씀을 듣고도 가만히 있 었다. 그리고 토색, 불의, 간음 등을 하지 않고 금식, 십일 조를 열심히 하는 의로운 바리새인의 기도를 무시해 버린 말씀을 듣고 도저히 이해를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잠잠 히 참았다. 그러나 부자의 경우에는 정말로 참을 수가 없 었어요. 아니..., 어릴 때부터 계명을 열심히 지키면서 살아 온 사람, 간음하지 않고 살인, 거짓말, 도적질하지 않고 부 모를 열심히 공경해 온 저 분, 우리 동네에서 제일 부자요 제일 효자라고 칭찬이 자자한 저 부자까지도 구원되지 못 한다면... 그러면 나는(베드로자신) 어떻게 되는 건가?

 

재판관도 안되고 바리새인도 안되고 저 부자까지도 구원이 안된다면 나는(베드로) 어떻게 되나? 설사 저 재판 관은 뇌물을 많이 먹어서 구원이 안된다 치고..., 저 바리새 인도 교만이 심해서 안된다 치자, 그리고 저 부자는 돈을 너무 좋아해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지 못해서 구원이 안된다 치자구...., 그렇지만 난 있는 돈, 배, 그물, 부친까지 몽땅 다 버리고 예수를 죽어라고 쫓아다니잖아? 이 정도 면 부자보다도 더 잘하고 있는 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이 미치자 잠잠히 있을 수가 없었겠지?

 

"예수여, 나는 나 뿐만 아니라 우리 제자들은 다 우 리의 것을 몽땅 버리고 예수를 쫓아다니고 있어요..." 이 정도면 구원될 수 있겠느냐는 애원일는지 자부심일는지를 예수께 주장했다. 그러면 예수는 이 베드로에게는 점수를 주셨나?. 아니란 말이지... 오히려 더 무거운 짐을 주셨다. "... 하나님 나라를 위해 집, 아내, 형제, 부모, 자녀를 버린 자는 .... 내세에 영광을 받는다." (29, 30절). 베드로가 과연 집, 아내, 형제, 부모, 자녀를 버렸냐? 그렇지를 못했거든,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니까 너무나 충격이 컸고 실망과 좌절이 밀려왔고 하도 황당해 하다가 먹고 살 일이 생각이 나서 다시 고기를 잡으러 갔었거든... 옛날에 버린 거 다시 챙겨 가지고...

 

그러니까 예수는 무슨 말하시는가? 재판관도 자기의 힘으로 구원될 수 없고 바리새인도 자기의 의로 구원될 수 없고 부자도 자기의 계명을 다 지킨 그 행위로 구원될 수 가 없다, 인간의 힘으론 절대로 구원되지 못한다.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말씀이시다. 이 말씀이 끝난 후 한 소경이 원한이 있는 과부처럼 불쌍히 여겨 달라고 소리를 치는 일 이 생겼고 예수는 이 소경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고 하시면서 고쳐 주시는 장면이 누가복음 18장의 내용이 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구원될 수 있겠느냐' 는 많은 사람들의 의문(26절)은 당신도 지금 느껴져야 한다. 이런 고민이 없이 그냥 교리 적으로 너무 쉽게 천국을 이미 따 논 아랫목 정도로 생각한다면 당신의 성장은 기대할 수가 없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당신이 알고있는 확보되어 있 다는 구원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더 크다. 과연 누가 그 어려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가 있겠느냐...? 하는데 대한 결론을 15절에서 17절까지에서 보여 주신다. 그 대답 은 바로 "이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 어가지 못한다" 라는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고민이 생긴다. 그게 뭐냐 하면 과 연 어린아이가 '받든다'는 생각조차 할 수가 있겠느냐는 거예요. 내가 세상을 그렇게 많이 살지 않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과 경험과 상식으로 갓난아이가 자기 부모를 잘 받들고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를 못했어. 설사 백번 양보해서 이 젖먹이 혹은 철도 안 난, 그리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부모를 받들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치자, 그러면 과연 이 녀석이 자기 엄마를 잘 받들 어 드릴 수 있어? 도대체가 자기 앞가림도 못하고 똥오줌 도 못 가리고 날마다 빽빽거리고 울어대기만 하는 놈이 어 떻게 남을 '받들어' 드리나....? 이거 도대체 예수 님이 무 슨 말쌈을 이런 식으로 헷갈리게 하시는가? 뭐 좀 어디가 잘 못된 거 아냐?

 

그렇다 잘못되어 있다, 뭐가...? 성경의 번역이 잘못 이다. 성경의 원어는 물론이요 킹 제임스, NIV, Amplified Bible... 등의 권위 있는 모든 영어 성경에도 번역이 제대 로 되 있거니와 무슨 일인지 우리의 '대한 성서 공회' 의 한글 개역판의 번역만 삐딱하게 잘못돼 있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 부분을 원어의 의미대로 그리고 영역본의 의미대로 번역을 한다면 "...어린아이와 같이 받지 않는 자 는..." 이라고 해야 옳다. '받들지...' 가 아니고 '받지...' 라 고 해야 한다. 우리 한글 개역판에 오역이 상당수 많은 것 으로 알고 있지만 왜 수정이 안되는지 모를 일이다. 어디 우리 한글성경을 성경이랍시고 믿고 읽을 수가 있어야 지...? 다시 말해서 예수께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 이 어린아이처럼 하늘나라를 받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 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거다.

 

그렇다! 이제야 말이 되는군...재판관..., 자기가 아무 리 잘났어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다. 바리새 인...? 그가 아무리 토색, 불의, 간음을 하지 않고 금식하고 십일조를 죽으라고 열심히 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받들어 드린다고 해도 천국과 거리가 멀다. 부자? 그 분도 마찬가 지... 제까짖게 어릴 때부터 계명을 다 지킨 모태신앙이라 고 폼을 잡아도 결국 그 마음은 하나님 보다 돈을 더 좋아 하는 이상 천국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그럼 베드로? 베드로는 재판관, 바리새인의 의, 부자의 행위보다 더 월등 해? 부자는 돈 때문에 근심하고 예수를 떠나 도망갔지만 베드로는 있는 재산 다 내 동댕이치고 예수를 따랐으니 까...? 그리고 따라 다니면서 예수의 수발을 들고 열심히 예수를 '받들어' 섬겨드렸으니까 그러니까 천국에 갈 수 있어? 아니... 아니요.

 

'받들다' 는 것과 '받다' 는 것의 차이는 설명이 필 요 없을 줄로 안다. '받들다' 는 받드는 주체자가 '나' 이 고 내가 남을 받들고 섬겨 드린다는 거다. 그러나 '받다' 는 내가 받드는 주체자가 아니고 '남' 이 주체가 되어 있 다. 남이 나를 섬기고 나를 받들어 드리는 것을 나는 오직 수동적인 입장이 되어 '받는...' 것이다. 바로 어머니가 어 린아이를 받드는 것을 어린아이는 수동적인 입장이 되어 ' 받을...' 뿐이다. 만약 이 아이가 '받지 않으면' 엄마와 관 계가 없는 게 된다. 그래서 이 어린아이처럼 '받지 않는 자는...' 결단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예수의 말 씀이시다.

 

그렇다!!! 재판관도 그렇고 바리새인도 자기의 열심 을 가지고 하나님을 받들어 드리려고만 했지 하나님의 섬 김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부자도 자기의 어릴 때부터 계 명을 열심히 지킴으로 하나님을 받들어 드리려고 온갖 노 력을 다 한 것이지 결코 하나님의 받들어 주심을 '받지 않 은 자' 이다. 베드로도 부자의 행위 위에 한 술 더 떠서 전 재산을 다 포기하고 예수를 쫓음으로 예수를 열심히 섬 기려고 노력한 사람이지 예수의 섬김을 '받으려고' 한 사 람이 아니다. 재판관, 바리새인, 부자, 베드로...등 모두가 하나님을 받들어 드리려는 능동적인 노력을 한 사람들이지 저들이 어린아이처럼 하늘 나라의 섬김을 '받으려고' 한 사람들이 아니다.

 

예수께서 왜 이 세상에 오셨는가? 섬김을 받기 위해 서가 아니고 섬기려고 오셨다고 분명히 밝혔거늘 여전히 이 뜻이 무엇인지 모르고 오늘날에도 열심을 다해 예수를 섬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얼마나 많은지.... 죽도 록 충성 봉사함으로, 열심히 전도하고 헌금하고 교회의 각 기관에 속하여 열심히 충성을 다 함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 고 있다는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그렇게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아무리 그렇게 해도 그것은 하나 님을 섬기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하나 님을 섬기는 거냐? 글세 하나님을 섬기라는 게 아니고 하 나님의 섬김을 당신이 받으라는 거다. 왜 황송하셔? 그러 면 또 바울이 뭐라고 외쳤는지 들어 보시려우? (행17:25) 읽으셔...!

 

"...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 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누가? 하나님이... 하나님은 인간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실 필요가 없으시다고 했다. 그 이유는 부족함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섬김을 받 는 자는 부족함이 있는 자가 섬김을 받아야 한다는 거다. 완전한자는 섬김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거다. 이해가 되 셔?

 

환자는 의사의 섬김을 받아야 한다. 만약 '받지 않으 면...' 죽어야지 뭐..., 그리고 제자는 스승의 섬김을 받아야 한다. 만약 '받지 않으면...' 무식한 사람이 되는 거지 머..., 가난뱅이는 부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이것도 섬김의 모 습이다). '받지 않으면...' 굶어야지 머..., 북한은 남한의 경 제적 섬김을 받아야 한다. '받지 않으면...' 붕괴하는 수밖 에..., 요리를 할 줄 아는 아내는 요리에 빵점인 남편을 섬 긴다. 그래서 하늘같은 남편에게 날마다 밥을 지어 '받들 어' 섬기지 않으면 남편은 금방 배 고프게 된다. 자, 누가 섬기고 누가 섬김을 받아? 완전한 자가 섬기고 부족한 자 가 섬김을 받는 거다.

 

그런데 당신이 완전해? 하나님은 부족하구...? 그래서 죽어라고 당신이 하나님을 섬겨야만 돼? 왜 이렇게도 인 간은 어리석은가? 왜 이렇게 됐나? 이 글 서두에 언급한 우리 인간의 종교성 즉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생각과, 이 세상의 문화 즉 공로와 업적을 쌓으면 포상하는 문화에다 가 플러스, 우리 한글 개역성경의 잘못이 우리를 이 지경 으로 몰아 넣었다. 우리의 목사들도 소경이고 이 소경들을 따르는 평신도들이 다 소경이 되어 가지고 몽땅 구덩이에 빠져서 완전하신 분, 섬김을 받으실 필요가 전혀 없으신 분 하나님을 죽어라고 섬기는 구덩이에 빠져서 헤어나올 줄을 모르고 있다.

 

어떤 예배의 사회자가 설교자의 택한 본문을 읽기 전에 교인들에게 말하기를 " 오늘의 본문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 읽겠습니다." 하더라.... 이런 식으로 말하면 더 겸 손하고 더 하나님을 잘 섬겨 드리는건가? 말씀대로 살자 고 말들은 뻔들어지게 하는데 말씀자체를 모르고 있고 설 사 알아도 고칠 생각을 못하고 있으니 어디까지 갈건 가?

 

교회는 사회의 조직보다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한다. 그런데 교회가 오히려 사회의 조직보다 더 세속적이면 세 속적이지 결코 덜 하지가 않다. 예수의 가르치신 섬김의 방향을 안다면 목사가 부목사를 섬기고 목사가 장로를 섬 기고 장로는 집사를 섬기고 집사는 평신도를 섬겨야 제대 로 된 거다. 그러나 실제로 그래? 대형교회 일수록 더욱 이런 현상이 심화되어 있는데 목사는 곧 왕이 되어있다는 점이다. 저가 교회라는 집단에 예수의 이름을 도용하여 왕 으로 등극해서 온갖 추잡한 섬김을 기대하고 있다. 어떤 부흥사는 설교때 교인들을 향해서 " 부흥강사를 이따위로 대접해...? " 하면서 디립다 치더군... 이 말을 들은 교인들 은 교인들대로 벌벌 떨면서 식사, 빨래, 사례비... 등의 대 접의 수준을 높이고... 다행히 지금은 좀 덜 하지만 잔재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래도 되는 거유...?

 

어린아이는 누군가? 가진 게 없는 자다. 따라서 버릴 것도 없는 자이고 더 더구나 예수를 쫓아갈 수 없는 무능 한 자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자 다. 그 이유는 하늘 나라의 섬김을 '받기' 때문이다. 바리 새인처럼 자기의 의도 가지지 않았고 부자처럼 버려야 할 많은 행위와 재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베드로처럼 예수를 쫓아가지도 못했다.

 

어린아이가 누군가? 그는 원한이 사무친 과부다. 그 여자의 행위는 고작해야 '원한' 이라는 배고픔밖에는 더 없어서 '내 원한을 풀어 주세요' 하고 날마다 재판관을 귀 찮게 한 것뿐이다. 그래서 재판관의 섬김을 받아 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어린아이가 누군가? 그는 세리이다. 그는 비록 토색, 불의, 간음을 저지르고 금식커녕 십일조도 제대로 내지 못 하는 것을 아픔으로 알고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부르짖는 사람이다. 자기의 의가 하나도 없는 것을 느끼고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운 것이 너무나 많은 것을 깨우친 마 음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사람이다. 예수는 이 세리에게 ' 네 재물을 다 바치라.'고 요구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는 하늘의 높여 주시는 섬김을 '받는 자'가 됐다.

 

어린아이가 누군가? 소경이다. 이 소경은 예수를 위 해 평소 한 일이 하나도 없다. 베드로처럼 예수의 수발을 들거나 예수의 가르침을 받지도 못했고 예수를 쫓아다니지 도 못했다, 소경이니까... 그는 예수께 어떠한 것이라도 요 구할 아무런 염치도 자격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하고 소리칠 뿐이다. 예수는 이 소경의 외침을 들으셨다. 예수는 이 소경의 눈을 고치심으 로 섬기셨고 이 소경은 믿음으로 예수의 섬김을 '받는 자' 가 되었다. 당신은 예수를 섬기려고 하는 자인가? 재판관 처럼, 바리새인처럼, 부자처럼, 그리고 베드로처럼...? 아니 면 예수의 섬김을 받는 자인가? 과부처럼, 세리처럼, 어린 아이처럼, 그리고 소경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받으시기 원하시는 게 뭘까? 우 리의 충성스런 행위...가 아니고 우리의 마음을 먼저 받으 시기 원하신다. 우리의 착각이 또 하나 있다. 우리의 헌금 을 누가 받느냐 하는 거다. 우리가 십일조를 내고 감사헌 금, 주일헌금, 건축헌금, 선교헌금....들을 내면 그걸 하나님 이 받으시는가? 천만에 만만에 말씀...

 

예수께서 부자에게 분명히 말씀하셨거니와 네게 있 는 것을 다 팔아 누구에게 주라구...? 하나님께...? 아니죠? '가난한 사람' 에게 주라고 했다. 십일조의 용도는 11 지 파가 레위지파를 먹여 살리기 위한 것이였다. 오늘날의 헌 금도 마찬가지이다. 건축헌금은 건축업자에게 주는 것이고 선교헌금은 선교지에 혜택이 가는 것이고 십일조는 목회자 의 몫이지 하나님이 받으시는 게 아니다. 그게 그거라구...?

 

하나님의 받으시기 원하시는 것은 오직 우리의 마음 일 뿐이다. 소경처럼 하나님을 향하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하고 외치는 마음이요, 과부처럼 하나님께 향하여 '나의 원한을 풀어 주세요' 하고 외치는 마음이요, 세리처 럼 하나님을 감히 우러러보지도 못하면서 ' 나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하고 부르짖는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으로 지극히 적은 소자에게 물 한 모금을 주는 게 예수를 대접 하는 거라고 인정되는 거다. 이러한 마음으로 바친 과부의 엽전 두 잎을 예수께서는 누구보다도 제일 많이 드렸다고 칭찬하셨다. 속마음은 예수의 섬김을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자기의 공로와 업적, 행위를 잔뜩 내세우면서 이 정도면 영생을 얻을 수 있지...하는 자부심이 가득한 마음으로 각 종 헌금을 해 보라, 그게 하나님이 받으시는 건가...

 

하나님은 당신의 도움이나 당신의 섬김을 조금도 필 요로 하지 않으신다. 오직 당신의 마음을 필요로 하신다. " 사랑하는 아들아, 할 수만 있으면 네 마음을 내게 다오..." (잠23:26). "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한 자..." (렘9:26). "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가 하나님 을 볼 것임이요"(마5:8). 하늘 나라의 섬김을 깨닫고 받는 마음...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받는 자가 어린아 이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다.

 

설교 : 강기원 목사

 



by 코이네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