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료/누가복음

[눅 5:1] 제 2의 갈릴리 _ 신기영 목사

'코이네' 2024. 1. 8. 20:39

제 2의 갈릴리
본문 : 누가복음 5 : 1~11
 설교자: 신기형 목사



  제가 한국에 방문한다고 하니 저희 교회 (리치몬드 중앙장로교회) 장로님 몇 분이 태종대에 갔던 일을 회상하며  부산얘기를 하셨습니다. 부산역까지 기차로 새벽에 내려와 태종대에 가서 시원한 바다를 보고 다시 기차로 돌아갔던 추억, 태종대는 젊음,미래,신선함이 함께 어울러졌던 다시 돌아가고 싶은 장소였습니다.  
 사람마다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습니다. 떠올릴수록 아름답고,언제 생각해도 귀한 그 때, 그 장소. 그런데 우리의 인생 행로와 더불어 영적 생활에 있어서도 결정적 계기가 된 정말 귀한 장소가 있습니다. 고향 교회일 수도 있고, 청년회때 함께 갔던 기도원일 수도 있고, 또 지금 다니고 있는 교회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를 베드로의 영적인 고향, 갈릴리 바닷가로 인도합니다. 거기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 앞에 헌신을 약속했던 그 장소. 그러나 주님을 배반하고 다시 본 직업인 고기잡이로 돌아왔을 때 다시 불러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은 그 장소. 아마 베드로가 나이가 늙어 자신의 영적 인생 행로를 얘기할 때 가장 자주 언급됐을 곳. 
  갈릴리 호숫가는 갈릴리 지역에 속해 있습니다.  갈릴리는 이방의 땅으로 여겨졌습니다.
다윗 왕때 빼앗았다가 솔로몬이 성전과 왕궁을 짓는 대가로 두로와 히람왕에게 23도시 중 20도시를 선물로 희사할 정도 중요치 않는 주변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베드로에게는 너무나 귀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배에 올라타셨습니다.  다른 배가 아니라 베드로의 배, 다른 사람, (요한.야고보)도 있었지만 베드로의 배를 예수님이 택하셨습니다.  이때 베드로의 기분이 어떠했을까요? 
  이 당시 예수님의 인기는 절정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각색 병이 나으며 예수님의 능력과 권위의 소문이 온 장안을 가득 채우고 있을 때 이런 귀한 예수님께서 누추한 베드로의 배에 올라타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배경으로 한 스페인어 찬송은 이때의 상황을 잘 표현해 줍니다. 

이 제목은 “주님 바닷가에 오셨습니다.”

 

      1.당신은 바닷가에 오셨습니다.
        똑똑한자, 부자도 찾지 않으시고 당신은 오로지 제가 주님만 따르기 원하셨습니다.
    후렴:오 주님, 당신의 눈은 나를 보았고,  으시면서 내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내 배는 바다를 뒤로 두고 항해를 시작하였고, 지금은 당신과 함께 다른  바다를 바라봅니다.
      2.당신은 제가 소유한 것이 얼마나 작은 지를 아십니다.
        내 배에는 돈도 없고 무기도 없습니다.
        거기에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그물과 수고뿐입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주님이 함께 하는 축복의 사건이 베드로에게 일어났습니다.

  두번째 갈릴리에게 일어난 것은 갈등과 고민입니다.  배에 올라탄 주님 이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명령과 같습니다. “육지에서 조금 떠나자” 하시고 주님은 배위에서 뭍에 선 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은 계속됩니다.  “좀더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주님의 명령은 점점 더 베드로의 중심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배의 사용이 베드로의 영역이 아닌데서 베드로가 가장 내세울 만한 것에 이릅니다.
  처음 요구는 베드로에게 받아들이기가 쉬웠습니다. 그러나 두번째 요구는 베드로도 할 말이 있는 영역입니다. 거절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갈릴리에서 뼈가 굵은 사람, 어디에 고기가 많고 언제 가장 많은 어획을 올릴지에 대해서 전문가적 지식이 있다고 베드로도 자부하고 있는데 주님은 이점을 건드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밤이 맞도록 수고했지만 얻은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는” 인간이 공유하는 가치관, 경험으로 확증된 것으로 과거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의 말씀은 확증된 것이 아니고 미래적이며 앞으로 기다려 봐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갈등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놀랍게도 과거보다 미래를, 인간의 공유된 가치관 보다 말씀을, 경험보다 믿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배는 다시 조금더 조금더 깊은 데를 향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배는 지금 움직이고 있습니까?  아니면 더 이상의 진전이 없이 그대로 멈추어 서 있습니까?믿음을 선택하고 미래를 선택할 때 세상 지혜와 경험을 말씀으로 판단할 때 여러분의 배는 깊은 곳을 향해 움직임을 기억합시다.
  
  세번째로 베드로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곳에 그물을 내렸을 때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가 잡혔고 다른 동무를 불러 두배에 가득 채우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배에 고기가 가득 찼을 때 기뻐하며 감격하여 감사하기보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왜 이런 고백을 하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에 대한 베드로의 인식에 변화가 왔기 때문입니다.  5절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선생으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제야 베드로의 눈이 떠져서 자기 배에 올라 있는 분이  누군지를 제대로 발견했습니다.  예수님의 지식에 비해 볼 때 자기의 지식은 얼마나 하찮은 것임을 발견하고, 자신의 경험과 이 땅의 가르침이 하늘의 지혜 앞에  얼마나 우수운   것인지를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놀라운 분과 함께 하기엔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것임을 발견하였습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나와 동행하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제대로 몰라서 아무렇게나 말하고, 상상하고, 행동하는 것 아닌가를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나를 당신의 집으로 삼아 거하시는 하나님이 그렇게 의롭고 두려우시며 고결하신 분임을 조금이라도 깨닫는다면  어찌 그런 행동을 그렇게나 쉽게 할 수 있겠습니까?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는 시편 기자의 고백은 이런 배경 속에서 받아들여집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두려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4장 19절에서는  “나를 따라오너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주님의 제자가 되어 어떻게 주님을 섬기고 그분과 함께 사는 것임을 배우라는 말입니다.
  부족을 덮어주는 말이 아니요, 온전하기에 따르라는 말도 아닙니다.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는 그 순간이 주님의 가르침을 배울 준비가 된 때임을 알려줍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 중 첫 단락인 팔복을 보면 주님의 제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이 여기는 자,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해 핍박받는 자,마음이 청결한 자.  이런 자질은 베드로의 고백, “나는 죄인이오니 나를 떠나소서” 라고 깨닫는 자에게 싹트는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 앞에 겸손치 못한 자, 주님의 함께 하심에 황송해 하지 않는 자,자신이 의롭다고 여기는 자들은  결코 주님의 제자가 되어 멍에를 메고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울 수 없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어 그분과 동행하는 첫 조건은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주님이 함께 하심이 귀한 것인지 깨닫는데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이와 같은 귀한 일이 베드로에게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배에 올라타셨고, 주님의 명령으로 갈등했지만, 말씀을 선택함으로 주님을 발견케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하기에 부족한 자신이었지만, 다시 불러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제자가 되어 평생 주님의 뜻을 섬기며 사람을 취하는 어부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 동래 중앙교회에 찾아드는 모든 이에게 베드로의 경험이 일어나야 되지 않겠습니까? 주님이 함께 하시는 축복과 감격의 은혜, 세상 풍습과 가치관을 말씀으로 판단하고 거부하며 믿음을 택하는 역사, 불러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대한 헌신의 다짐. 이것이 동래중앙교회의 기도 제목이라고 믿습니다.
  특히 청년주일을 맞이하는 성도 여러분!  한국 교회의 내일이 이들에게 달려 있다고 믿을 찐데 이들에게  이런 갈릴리의 사건이 동래 중앙교회에 출석하는 동안 일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
  우리를 통해 이런 믿음의 좋은 본이 이들에보여지기를 소원합시다. 그리고 우리가 섬기는 봉사가 바로 이 갈릴리사건의 좋은 열매로 이끄는 것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그럴 때 동래중앙교회는 모든 청년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이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귀한 장소로 우리 주님이 사용해 주실 것입니다.